총 41분 중 20분
2022
시즌 4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1화 “연상녀에게 혼쭐나는 어이없는 삶”
출연: 어의, 최일, 이조판서
장르: 실험극
프로그램 특징: 어이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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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of Cthulu 7th
 
블라인드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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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 There Someone Waiting for Me? ]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담!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나한은 옷장을 뒤적입니다.
 
나한:(분명 어제 골라놓기는 했는데...막상 오늘 입어보니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옷장 순회 도는 중)
(그야...회사에 다닐 때 입을 옷만 두고 대부분 처분했으니까!)
 
오늘의 약속 장소는 버킹엄 궁전에서 겨우 8마일 떨어진 고급 레스토랑이라던데...
 
출근 복장은 너무 수수하고, 요즘 유행하는 청바지 따위는 출입조차 불가능하겠죠.
 
나한:(이건...너무 장례식같잖아...)
 
하지만 당장 나한의 형편은...
 
나한:(하지만 입을만한 스커트는 이것 뿐이고...한 벌 옷을 포기하고 자켓을 바꿔야만 한다...)
 
새로 자켓을 살 돈은 없으니 과거의 자신을 믿고, 옷장을 다시 뒤져보기로 합니다.
 
나한:(뒤적..뒤적..)
(그나마 색이 있는 자켓 늘어놓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처분하지 않은 괜찮은 자켓이 없을까...
 
 :재력 판정!
 
나한:
재력
기준치: 5/2/1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ㅋㅋ)
 
 :(ㅋㅋ)
 
아... 안돼. 이건 커피 얼룩이..
 
앗, 저번에 이걸 입고 뭘 먹었던 거지? 음식 냄새가 배어있어요.
 
나한:...제기랄...
(차라리 커피 얼룩이 낫다. 팔을 높게 들지만 않으면...)
 
그나마 입을만한 자켓을 찾았다 싶었더니 단추가 떨어져있고!
 
아, 빈곤이란!
 
나한:(지긋지긋하다!)
 
오래 열지 않았던 서랍까지 뒤집어놓은 탓에 괜히 먼지만 풀풀 날립니다.
 
나한:(딱히 전에도 형편이 아주 나았던 건 아니지만...이 정도는 아니었지.)
 
신데렐라가 따로 없네요, 물론 나쁜 의미로!
 
나한:(결국 자신과 타협하고 커피얼룩이 좀 묻은 청록색 자켓을 입는다..)
 
다니던 회사가 실질적 도산 상태에 놓이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 까지는...
 
마지막으로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기 전 까지는...
 
나한:윤이영... ... ...
(다시 생각해도 불운만 불러올 것 같은 이름...)
 
이렇게까지 사정이 나쁘지 않았는데!
 
행운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있다더니, 나한의 운도 쏙쏙 뽑아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나한:(헤어지고 난 뒤부터 갑자기 회사가 도산을 하지 않나...)
... ... ...애초에 사귀는 게 아니었어...
 
이제와서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일이지만...
 
시작조차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겠죠!
 
만나지 않는게 좋았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떠나버린 구남친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옷이 없어 못 나간다고 약속을 취소 할 수도 없습니다!
 
나한:(그야 이미 조건을 들은 후니까!)
 
주선해 준 친구의 말대로 이번 블라인드 데이트는 어쩌면 나한 인생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알아주는 부자, 서글서글한 성격, 끝내주는 핫 바디에 조각같은 얼굴이라던가요?
 
나한:(절대 남들처럼 결혼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고...)
(현실과 타협이라는 것을...) (주먹 꽉 쥔다)
 
솔직히 살면서 그런 사람을 언제 만나보겠어요?
 
딱히 잘 되지 않더라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한 끼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을테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죠.
 
나한:(우선 최근 며칠 끼니를 레토르트로 때웠다는 점에서.)
 
나한이 사는 집은 번화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구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쇠퇴해버린 빈민가지만 한 세기 전까지만해도 시대의 중심에 있었죠.
 
거주지는 빈 말로도 훌륭하다 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만, 그래도 조금만 걸어가면 가게가 빽빽이 들어 선 상점가가 보입니다.
 
나한:(자켓을 입고, 핸드백을 챙기고, 그나마 괜찮은 구두를 신고 나면...나갈 준비 끝이다!)
이 정도 위치면 나쁘지 않아. 자물쇠가 좀 말썽인 것만 빼면...
 
이 상점가는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 주변 가게에서 흘러나오고, 새로 산 최신물품들― 휴대전화이나 컴퓨터―을 서로에게 자랑하며 떵떵거리는 소위 졸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진 후로 증권이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죠.
 
나한:(돈으로 돈을 낳는 놈들...이라고 하기엔...
(나의 직업도...)
아니지. 경영과 투기는 달라. (정신차린다)
 
배가 조금도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남의 일처럼 결백하다기에도 어렵지만요!
 
당신 월셋방의 주인도 이런 부르주아 계층의 인물 중 하나로, 재수는 좀 없지만 겉치레를 중요시 여겨 때로는 세입자들의 사정을 봐주기도 합니다.
 
저기 마침 그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네요.
 
나한:(덕분에 일이 들어올 때 집세를 낼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아, 야다브 양. 좋은 저녁입니다. 외출하시는 겁니까?"
 
집주인은 나한의 차림을 보고 한참 뜸을 들이다 묻습니다.
 
생각해보면 집주인이 이 주변에 올 일은 수금밖에 없는데... 어쩐 일일까요?
 
나한:네, 안녕하세요. (구두 뒤축으로 덜 닫힌 문을 한 번 꿍, 치고) 약속이 있어서요.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오늘은 건물 관리하러 오셨나봐요.
 
아직 월세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번달에는 왜 이리 일찍 찾아온거죠?
 
집주인:아, 그건 아닙니다. 상점가에서 사람 만날 일이 있었거든요. (어깨를 으쓱인다.) 좋은 친구라도 만나시나 봅니다. (가볍게 웃어보이더니 걷어차인 문을 흘끗 본다.)
 
나한:(월세...일은 아닌가? 하고 혹시라도 돈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말을 돌린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집 문을 살짝 가리키며) 집에 따로 용건이 있으신 건?
 
집주인:흠? 모임이라도 나가시나봅니다. (잘 모르겠다는 듯 물러나는 듯 손끝을 들썩인다.) 아, 문이 말썽인가 싶어서요. 고장이면 수리해야하니까.
 
 :말을 돌려보려면, 적당한 대인기능 판정을 해 볼까요?
 
나한:(생계형 연애를 시도하러 나간다고는... ...말 못하지.)
아뇨, 이건... ...
그냥 습관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같잖은 설득을 해본다)
이것저것 편의도 봐주고 계신데, 웬만하면 제 선에서 해결할게요. (주제 무마용 미소)
 
 :판정~!
 
나한:
설득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집주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화답합니다.
 
 :야다브 양처럼 집 깨끗하게 쓰는 사람도 없다니까요. 꼭 한 번씩 수도 터트리고 어디 고장내는 세입자들 참 많은데. 이렇게 자기 집처럼. (끄덕끄덕끄덕)
 
나한:(그야 별 일이 없으면 계속 살 테니까...)
 
 :아, 그러고보니... 일은 아직 못 구했죠? (안쓰런 눈으로 보더니 나한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다.) 요즘 참 경기가 나쁘잖아요, 힘내고, 이번 달은 월세 반만 받을게요. 이건 다른 세입자들한테는 비밀이에요! (쉿, 쉿 하고 검지를 세워 제 입 앞을 가린다.)
 
나한:oO( 놀리나? )
(잠깐 노려볼 뻔 했다가 참는다)
(월세... ... ...반... ... ...) (순해짐)
 
뭐... 생색은 잔뜩 내는데다가, 사람 안쓰럽게 보는 것도 별로지만...
 
잘 됐네요!
 
덕분에 이번 월말에는 사람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겠어요!
 
나한:(데스크 업무용 미소로 화답해준다) 감사합니다. 일은 계속 구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집주인:야다브 양은 잘 될 거야. 인재를 알아보는 사람이 금방 나타날 거라니깐.
 
심지어 약속장소까지 가는 택시까지 잡아줬으니, 군말없이 미소짓습니다.
 
나한:(그래, 돈이 많으면 마음이 넓어지는 법이지.)
(오늘-저녁이지만-은 시작부터 운이 좋군...)
 
시작부터 운이 좋습니다. 번화가를 통과하는 택시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며...
 
어쩌면 오늘은 행운의 여신이 나의 편이 아닐까, 생각해봐도 좋을지도?
 
기사는 부드럽게 커브를 틀어 멈춥니다.
 
나한:(이대로 데이트까지 무탈하면 좋을텐데...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린다)
 
[ Unexpected ]
 
택시에서 내린 나한의 눈 앞에는...
 
부두와, ...커다란 유람선이 있습니다.
 
나한:(유람...선?)
 
호화롭기 짝이 없는 객선 앞은 다른 배들과 달리 휑하기만 합니다.
 
나한:(잠깐 멈칫한다)
 
입구에 지키고 서 있는 직원이 따분해 보일정도로요.
 
나한의 초대장에 적힌 주소지는 이 객선의 이름으로 끝이 납니다.
 
하얀 선체에 매달린 주황색 전구들이 어두운 밤에도 지지않고 찬란한 빛을 뽐내고 있습니다.
 
나한:(들어가면 예약이 되어있는건가? 눈썹을 잠깐 비틀었다가 유람선으로 다가간다.)
(유람선을 통째로 빌리는 미친짓을 하는 놈은...)
 
당신이 다가서자, 그제서야 직원이 당신의 행색을 살피며 말을 걸어옵니다.
 
직원:혹시... 볼 일이 있으십니까?
 
나한:(행색)
오늘 여기에서 약속이 있는데요. (직원에게 초대장을 내민다)
 
직원은 받아든 초대장을 확인하더니... 태도가 일순 변합니다.
 
직원:아, 초대받으신 분이시군요! 이, 이쪽입니다. (잠시 당황하더니 초대장을 들고 앞장서 걷다가 초대장을 접어 돌려주고, 다시 앞서 걷는다.)
 
나한:(직원을 따라 들어서며 유람선 안을 둘러본다.)
...혹시 오늘 여기에 손님이 둘 밖에 없나요?
 
계단을 따라 올라 내부에 첫 발을 디디면, 부드러운 촉감이 감깁니다.
 
처음 보았을 때와 너무 다르게, 과할정도로 상냥해진 직원이 답합니다.
 
 :아, 예. 오늘은 다른 손님이 안 계십니다.
 
나한:(그래...이브닝 드레스에 포드를 탄 사람이 올 줄 알았겠지...하고 눈을 잠깐 질끈 감았다가 뜬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내 이야기는 전혀 못들었나.)
 
직원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도열해있던 직원들이 나한을 보고 얼떨떨해 하다가, 서로 눈짓을 하고는 영업용 미소로 인사를 건넵니다.
 
직원:예, 지금은 6층 레스토랑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한:(파도를 타듯 인사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조금 어색해하며 직원이 안내하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둥 옆면에 비친 모습이 꼭...)
(유람선을 살 사람의 세금을 처리해주는 관리인 같은데...)
 
의아함과 불편함이 뒤섞인 채로... 직원을 따라 강이며 선박 내부가 훤히 보이는 발코니 좌석으로 안내받습니다.
 
여기도 아무도 없습니다.
 
넓은 여객선 안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보니 오히려 무서울 지경이네요. 정말 맞게 탄 걸까요?
 
혹시 나한의 장기라도 뽑아 갈 생각이 아니라면 왜 첫만남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나한:... (요즘 소련에서 신선한 인간 시체를 사들인다던데...)
(멈칫멈칫)
 
멈칫대며 앉아서... 불편한 얼굴로 웨이터가 서빙해준 물로 목이나 축이다보면...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데이지가 섞인 꽃다발로 테이블을 장식해줍니다.
 
매니저:어서오십시오, 야다브 양.
잠깐만 기다리시면 곧 오실 겁니다. 답지 않게 엄청 긴장하셨거든요.
 
나한:...긴장이요? (눈썹을 비튼다)
누가...?
 
매니저:그야 데이트 상대 분이시죠. (살짝 웃더니) 꼭 잘 보이고 싶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나한:(눈을 끔벅인다...알아주는 부자에 서글서글한 성격, 끝내주는 핫바디에 조각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그분은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매니저:음, 글쎄요. (잠시 생각해보더니) 블라인드 데이트가 처음이라고는 하셨는데.
 
나한:(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데...부자들은 이런 스릴을 즐기기도 하는건가, 하는 생각에 빠진다)
 
매니저:그나저나 그렇게 순수하게 긴장하시는 걸 보니 귀여우시더라고요. (하하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대충은 듣고 오셨죠? 자산가시기도 하고 설립, 경영도 하는 분이시거든요.
직감이 좋은 분이시니까 이번 데이트에서도 뭔가 ... 느낌이 온 게 있으신 거 아닐까요?
 
나한:직감이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주 잘 아는 놈이 있지...)
천천히 나와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매니저: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매니저가 웃으며 깍듯이 인사하며 돌아가면...
 
 :지능 판정!
 
나한: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배고파...)
 
매니저의 칭찬에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장기라도 뽑히는 건 아닌가, 이상한 놈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긴장이 풀어지니 허기가 금세 찾아듭니다.
 
나한:(일단 사람이 나오긴 하는 것 같으니...)
 
그간 들어온 온갖 칭찬들이 머릿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그 정도는 돼야,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윤이영을 잊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어요?
 
나한:(그래, 모든 조건 앞에는...)
(윤이영보다가 붙는다.)
...? (여태 누굴 못 만났던 이유가 혹시...)
 
윤이영보다 핸섬하고 윤이영보다 돈 많고 윤이영보다 핫바디에...
 
... 그런 사람을 찾는 거였나?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 아..!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나한:(뒤에서 들린 소리에 잠깐 움찔했다가, 뒤를 돌아본다)
 
정작 비명을 질러야 하는 건 당신이겠네요!
 
웨이터가 놓친 와인잔이 당신 쪽으로 엎어지려 하고 있으니까요!
 
 :행운 판정!
 
나한:아,
기준치: 65/32/13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천만다행이게도, 나한은 조금도 젖지 않았습니다.
 
나한:(다...다행이다....)
 
다만 무언가 탄탄하고 보드라운 것에 코를 박고 말았네요.
 
나한:(당장 내일도 입어야 하는 옷이라 젖었다간...에?)
(이건...설마...)
 
고개를 들어보면...
 
가는 모발을 타고 붉은 와인이 뚝, 뚝, 흐릅니다.
 
그렇게 방울진 것이 방금까지 나한이 머리를 묻고 있던 가슴팍 위로 떨어져 흰 셔츠를 적십니다.
 
나한:아, 죄, 죄송...
 
굵고 날카로운 턱선, 베일 것 같이 날큼한 콧날, 길게 드리운 첩모의 아래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그 낯에 우수를 더합니다.
 
과연 주선자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네요.
 
동화에서 튀어나온 왕자님, 영국에 왕자는 있으니까 왕실 모독대신 억만장자라고 하겠다던가요...
 
강물의 푸른 색과 섞여 일렁이는 해의 노란 빛이 마침 두 사람의 옆 얼굴을 비춥니다.
 
... 눈동자.
 
비로소 마주한 눈동자는 익숙한 색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또는 꿈에도 이를 갈게 만들던…
 
바로 그 눈동자!
 
설마. 설마. 설마요.
 
나한과 소개팅 좀 하자고 크루즈 하나를 통채로 비운 미친 놈이 윤이영이라는 걸까요?
 
나한:(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고... ... ...삽시간에 안색이 변하며 상대방을 삿대질한다) 윤... ... ...
 
 :듣기 판정.
 
나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너무 충격받음)
 
순간 벌어진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던 나한의 귓가에 너무도 유명한 그 음악, 모두를 열광하게 했던 그 음악,
 
라 붐의 'Reality'가 흘러듭니다.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되기라도 했던가요.
 
하여 이런 환청이라도 들리던가요.
 
아니면, 무서운 우연의 일치일까요.
 
나한:(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치고 싶은 충동을 참고...다른 손으로 상대방을 치고 싶은 충동도 참느라...)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면 직원들이 괜히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한:... ...-어떻...아니...
 
이영:괜찮으세요?
 
나한:윤이영! (기어코 삿대질함)
 
이영:네. (가만 내려다보다가 안았던 팔을 풀어내고 뒤로 물러난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셔츠와 머리를 닦아내다가..) ... 예의 차리는 편이 낫죠?
 
재수없어
 
나한:(재수없어)
아니... ... ...잠깐만,
그럼 데이트 상대라는 게...
 
이영:(어깨를 으쓱이더니 나한의 맞은편 자리로 가 앉는다.) 접니다.
 
나한:(미간을 팍 찌푸린다.) ...제가 나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이영:(마주본 얼굴을 가만히 보다 고개를 젓는다.) 블라인드 데이트니까.. 요.
 
나한:(난 대체 뭘 위해서... ... ...한 손으로 미간을 꾹 짚고 있다가...)
누군지 확인했으니까 됐네요. 갈게요.
 
이영:어... (잠깐 곤란한 얼굴로 일어선 나한을 올려다본다.)
또 화 내겠지만 그게 조금 어렵게 됐어요. (물잔을 들어 입술을 축인다.) 그냥 앉아요, 못 내리니까.
 
나한:...못 내린다니? 잠깐만, 이거 설마... (출항했나?! 창 밖을 바라본다)
 
부둣가라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배의 옆면을 타고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언제 출항한 거죠!?
 
나한:(주먹 꽉...)
(저벅저벅 걸어와서 의자에 쾅 앉는다)
 
나한이 앉자, 기다렸다는 듯 직원이 메뉴를 내어옵니다.
 
에피타이저는 갈색으로 달군 양파를 넣고 뭉근히 끓여 달고 깊은 맛이 나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입니다.
 
이영:너무 화내지 말아요. (자주 그랬던 것처럼 깍지 끼운 양손을 테이블에 얹은 채로 마주본다.)
 
나한:(블라인드 데이트 같은 거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는데...0
 
이영:내가 나올 줄 모르고 온 거죠?
 
나한:당연하죠, 제가 들은 건-... ...
(그걸 말하기에도 좀 그래서...중간에 끊는다)
 
이영:뭘 듣고 응한 건지 몰라도... (스푼을 집어든다.) 여기 식사는 맛있으니까. (나한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에 화 낼 때마다 에둘러 달래던 말투 그대로 어깨를 으쓱인다.)
 
나한:대체 이... ...그쪽은 뭘 듣고 나온 거에요?
 
이영:... 고양이상의 미인.
 
나한:(수프 스푼으로 애꿎은 그릇을 탁탁 두드린다) 하?
 
이영:내가 만든 것보다 맛있어요, 그거. (황급히 말을 돌리듯 스푼으로 스프를 가리키더니 먹기 시작한다.)
 
나한:이제 고양이상 배우 중에서는 만날 사람이 없어서요?
 
이영:(호롭..)
 
나한:(스프를 한 입 떠서 먹는다)
 
이영:(짭짭..)
 
나한:(맛은...맛은 있지만...)
(묵묵히 식사만 하고 가주겠다. 그리고 주선자를 광장에 내걸어야...)
 
이영:(흘끔..) 내 스캔들에 관심 많았어요?
 
나한:관심 없어도 신문에 다 나와요.
 
이영:아하.
 
나한:(대체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이영:(이마를 긁적이더니 반쯤 비운 수프 그릇 옆에 스푼을 내려놓는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화 내네.
 
나한:그야 당연하죠. 전조도 없이 헤어지자고 해 놓고...\
 
이영:그 때는... ...그건... ... ... ... 내가 잘못했지.(끄덕.)
(몸을 의자에 파묻듯 구겨 기댄다.)
 
나한:한창 놀다보니 옛날 생각이라도 났나봐요?
 
이영:... 나한 생각?
 
나한:(눈썹을 비틀고 쳐다본다)
 
이영:(깨갱..)
 
나한:식사만 하고, 다시 정박하라고 해요.
주선자한테는 다른 사람 소개시켜 달라고 하세요. 그럼 됐죠?
 
이영:(뭔가 맘에 들지 않는 듯 입을 한참 비죽이더니) ... 그럼 일단 식사는 같이 해 주는 거네?
 
나한:바다에 빠질 수는 없어서 그런거에요.
 
이영:으응..
 
나한:(이 태도는 대체...뭐지?)
(싫어해서 찬 거 아냐?)
 
에피타이저 접시가 빠져나가고, 다음으로 서빙되는 플레이트는 바질 향을 가미한 감칠맛 도는 가리비 튀김입니다.
 
나한:(호화롭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질린 것처럼 차놓고, 이제와서 뭔가요, 이런 태도는?
 
나한:(그래도 식사는 맛있으니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가리비 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는다.)
(자기 분수에 맞는 사람 찾아가겠지 싶었는데...웬 변덕?)
 
스스로 준비한 요리를 내어 오던 때처럼 눈을 반짝이며.. 식사하는 나한을 구경합니다.
 
나한:...안 먹어요?
 
이영:(살짝 미소짓더니 함께 나온 화이트 와인을 든다.) 먹어요.
(조금 늦게 따라 식사를 잇는다.) 그냥... 맛있게 먹는거 보기 좋아서.
 
나한:(그 말에 잠깐 사레가 들린 듯 콜록이다가)
지금... ...장난쳐요?
 
이영:(반사적으로 손수건을 건네다가 스르륵... 물린다.)
 
나한:그만하자고 찬 건 그쪽이잖아요.
 
이영:장난.. 아닌데..요.
그건 그랬지만.
헤어진 거랑은 별로 상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한:그렇게 형편없이 찼으니 저라면 치를 떨고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묵묵히 접시에 시선을 두고 튀김을 마저 먹는다)
 
이영:... 난 나한 안 싫은데. (작게 중얼거리더니, 말을 덧붙이는 게 소용이 없을듯 느껴져 묵묵히 식사를 이어간다.)
 
나한:(예상대로 째려본다)
 
이영:(정수리가 따가운 채로 식사를 이어간다. . . )
 
나한:(우물우물우물우물우물우물)
 
이영:(슬그머니 구경하느라 손이 느려진다.)
 
나한:(생각하다보니 또 화나서...포크를 탕 내려둔다)
그럼 왜 헤어지자고 했는데요?
 
이영:... (입으로 가져가던 포크를 내린다.) ... 글쎄, 그땐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어지는 메뉴는 메인 요리로, 쥐드보 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채끝 등심스테이크입니다.
 
나한:... (맛있겠다)
 
이영:(무언가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닫는다. 음식에 맞춰 제공된 레드와인을 한모금 마신다.)
 
나한:그러니까 한 마디로 변덕이었다는 거네요.
 
이영:... (대답없이 시선이 낮아진다.)
나야 뭐, 항상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눈을 들어 시선을 맞춘다.) 모르는 거 아니었잖아요.
 
나한:... ... ... ...
(동그란 눈으로 보다가...눈을 반으로 접어 미소짓는다) 네, 뭐. 변덕 한 번에 제 목숨과 생계가 오락가락 하기 전까지는 애교로 봐줬죠.
(스테이크 조진다)
 
이영:귀여웠나보네. (중얼..)
 
나한:짜증나게 하지 마세요.
 
이영:응.
(얌전히 고기 먹기)
 
나한:배 정박 될 때까지 격리 될 만한 곳 없나요?
혼자.
 
이영:...
...내가 그렇게 싫어요? (불쌍한 얼굴로 본다.)
매혹
기준치: 85/42/17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나한:네.
 
이영:...(시무룩)
 
나한:저는 누구처럼 형편이 좋지 않아서, 지나간 인연을 낭만적으로 기억할만한 여유가 없었거든요.
당신 이력을 알고도 사귄 제 잘못도 있으니 그냥 앉아있는 거에요.
 
이영:... (입을 삐죽댄다.)
어차피...
(웅얼웅얼)
 
나한:어차피 뭐요?
 
이영:어차피 우리밖에 없는데 그냥 좋았던 때처럼 눈 딱 감고 즐겨도 나쁠 거 없지 않나...
 
나한:.................................................
당신의 그런 태도가...
(와인잔을 뿌리지 않으려고 진짜로 노력한다0
 
이영:솔직히 내가 어디가 빠지는데??
나한도 좋아했잖아!!
 
나한:솔직하게, 지금.
 
이영:지금?
 
나한:윤이영과 수입은 그리 좋지 않지만 항상 성실하게 노력하고 평범한 키에 평범한 몸에 평범한 얼굴을 가졌지만 평생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남자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후자를 골라서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요.
 
이영:...
섹스 못해도?
 
나한:네.
 
이영:하.
말도 안돼..
 
나한:그쪽이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시네요.
저는 당장 제 하루 수입과 월세가 더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이영:...왜 그렇게까지 싫은건데!? 우리가 헤어지기밖에 더 했어? 내가 뭘 했다고, 수입이랑 월세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나한:그러게 말이에요. 당신하고 헤어지자마자 회사가 도산하고, 일도 안 구해져서 매일같이 신문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 찾아왔다는 게 문제인가?
 
이영:... (당황한 모양인지 턱을 괴었다가 입가를 가렸다가 다시 턱을 괸다.) 그런 일이... 있었어? 왜? ...왜?
 
나한:(고개를 일부러 갸우뚱한다) 저도 모르죠. 당신이 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런가?
덕분에 제 처지를 알았으니 감사해야 하나요?
 
이영:... 내가 도울 수 있는게 있으면- ... (튀어나온 말을 끝맺지 않는다. 그게 더 기분 나쁠 것이라는 게 직감되었기에.)
... 하지만 그걸 내 탓을 하는 건 조금...
 
나한:그러니까 당신 잘못은 아니지만... ...
제가 당신을 싫어할 만은 하죠.
 
이영:... 억울한데.
 
나한:그럼 그렇게 사람을 차 놓고도 다시 만나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이영:욕 몇 마디 먹고 괜찮을 줄...
아니, 물론, 만날 기대를 한 건 아닌데, 그러니까..
 
타이밍 좋게 직원들이 빈 접시를 가져가고 디저트를 내어옵니다.
 
럼 시럽에 절인 케이크와 휘핑크림입니다.
 
나한:아주 안일했군요.
(디저트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휘핑크림을 묻혀 먹는다. 그래도 식사가 맛있었으니 아주 나쁜 데이트는 아니지.)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맛있었어요!
 
나한:(냠냠)
 
연인이던 시절 이영이 나한과 데이트하던 곳들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완벽한 식사였습니다.
 
이영:그렇다기보단, 빅데이터..
 
 :관찰력 판정!
 
나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나한은 꺼져가는 휘핑크림 밑으로 라즈베리 시럽으로 그려두었던 하트 모양을 발견합니다.
 
정말이지...
 
할말이 없게 만드는 디테일이네요.
 
나한:(질끈)
 
이쯤하면 이영이 이번 소개팅에 사활을 걸었다는 인상마저 듭니다.
 
구애인인 나한이 상대로 나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요.
 
나한:그나저나 긴장하셨다던데.
집에서 결혼 상대라도 찾으라던가요?
 
이영:...
그렇다기보단.
(포크로 애꿎은 휘핑크림만 휘적인다.) 낭만적이고 좋잖아요.
 
나한:흠, (포크로 라즈베리 시럽을 삭삭 걷어낸다) 연출은 참 잘 준비하셨는데. 제가 나와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요.
 
이영:(대답없이 휘핑크림만 계속 밀어내고 쪼개고 뭉친다.)
... 그렇게 싫지 않다고 하면 또 화 낼거죠.
 
나한:네.
뭐, 다시 하시면 되죠. 소문 안 낼게요.
 
이영:(휘핑크림을 왕창 떠서 입에 쑥 밀어넣는다. 부루퉁한 얼굴로 마주보곤) 안 해요.
 
나한:(다 먹은 케이크 그릇을 밀어내며) 왜요?
 
이영:충분했으니까. (손 안에서 포크를 휘적대다 내려놓는다.) 운명은 한 번으로도 확실한건데 우리는 두번째니까. 이 다음에는 별 감흥 없을 것 같아서요.
 
나한:운명... (눈을 가늘게 뜨고 외면한다)
더 잘 맞춰주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이영:(어깨를 으쓱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한의 뒤로 가 의자를 잡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어떻게 맞춰주는지가 중요해요?
난 아닌데.
 
나한:보통은 그런 걸 보지 않나요?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영:(자연스레 에스코트를 위해 팔을 내민다.) 난 내가 잘 하고싶은 사람이 좋아요.
좋으니까 잘 하고 싶어지는 거겠지만.
 
나한:(잠깐 손을 멈칫거리다가...결국 팔에 가볍게 얹는다)
또 준비한 게 있어요?
 
이영:크루즈에 뭐가 많아요. 내일 아침까지 시간이 기니까, 둘러보기라도 해요. (익숙하게 보폭을 맞춰 이끌어 레스토랑을 나선다.)
 
나한:아침까지... ...
(결국 정박은 안하겠다 이거군, 생각하며 이영을 따라간다)
 
이영:(레스토랑 입구에서 팜플렛을 하나 집어 건넨다.)
 
나한:... ...이게 크루즈 안에 전부 있다고요?
아이스링크?
 
이영:작지는 않던데.
전에 갔던 P 호텔 야외 링크 기억나요? 그 정도 크기.
 
나한:쇼핑몰까지... ...
...잠깐, 이걸 전부 빌린 거에요?
 
이영:뭐... (부정하지 않는다.)
 
나한:... ...
oO( 씀씀이... )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한 탕 하자.)
카지노요.
 
이영:카지노?
그래요. (흔쾌히 발을 옮긴다.) 그런 거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나한:안 가봤는데, 오늘은 왠지 끌리네요.
(한 탕 할 거니까.)
 
이영:흐음... 카드 게임 할 줄 알던가? (갸웃..)
 
나한:...도둑잡기 정도는.
 
이영:(슬쩍 웃는다.)
 
이영이 이끌어 도착해보니, 현란한 기계들과 테이블이 놓여있는 카지노입니다.
 
룰렛과 슬롯머신, 종류별로 나뉜 포커 테이블 등이 보입니다.
 
나한:(카지노 안을 둘러본다. 내가 할 만한 건...)
(룰렛을 건드려본다.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챠캉-
 
룰렛 돌아가는 소리와 노래가 요란하더니 세 개의 다른 그림에서 차례로 멈춥니다.
 
나한:(그림이 전부 다른 걸 보니 전혀 아니군...)
 
이영:이런.
(직원이 가져다 준 칩을 옆에 쌓아준다.)
같은 그림이 나오면 돼. 간단한 만큼 운이 따라줘야하는 게임이지.
 
나한:...그 정도는 보면 알아요.
...왜? (왜 두 개도 못 맞추는거지?)
 
이영:... 자기 능력으로 안 된다는 의미야.
(어깨 으쓱)
 
나한:두 개는 맞았잖아요.
(오기 생김)
(왠지 심기일전하고 왔다)
 
이영:흐음. (귀엽다는 듯이 본다.)
 
나한:아...! (꼭 노력하면 맞춰질것처럼함)
... ... ... (룰렛 손잡이 보면서 망설인다0
 
이영:오.
이건 제법..
 
이영:아쉽네..
 
나한:...돌아왔어...
...사기에요.
 
이영:(손잡이를 잡은 손에 제 손을 얹는다.) 한 번만 더 해 보자.
안 되잖아요. (손 탁 쳐낸다)
 
이영:...쩝.
(더 안됐어...)
(이영 손 룰렛에 올려놓고 내린다)
... ... ... ... ... (진짜 뭐지?)
 
이영:(씩 웃어보인다.)
 
나한:(한 번 더)
사기. (탁 친다)
 
이영:아얏.
... ... ...다른 거 하죠.
 
이영:어... (이미 당긴 손잡이를 놓는다.) 뭐 할 건데?
 
나한:?
 
챠캉-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나한:... ... ... ...
 
칩이, 쏟아집니다!
 
나한:... ... ...
 
이영:많이도 나오네.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은 채로 구경한다.)
 
나한:사기꾼.
 
이영:누가?
 
나한:당신이요.
 
이영:...나?
내가..?
 
나한:...사기꾼...
(터벅터벅 포커테이블로 걸어간다)
 
이영:(억울..)
 
포커 테이블로 향하면, 딜러가 두 사람을 맞이합니다.
 
나한:(포커 테이블에 털썩 앉는다) 조금은 할 줄 알아요.
 
이영:흐음. 여기는 쓰리카드 포커를 하는 것 같네.
 
나한:... ...그건 모르는데.
 
딜러:(짧게 끄덕인다.)
패 보는 방법은? 플러시라던지.
 
이영:(내대사다)
 
나한:(딜러 째려볼뻔)
다섯 장으로 세는 건 알아요.\
원 페어, 투 페어, 트리플, 포 카드, 풀하우스,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 플러시...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억을 되살린다)
 
이영:세 장으로 스트레이트 플러시, 트리플, 스트레이트, 플러시, 페어, 하이카드. 이렇게만 쳐 주는 게임이야.
나랑 대결하는 게 아니라 딜러랑.
 
나한:(고개를 까닥인다.) 간단하네요. 좋아요.
 
이영:대신.. 딜러 하이카드가 Q 아래면 진행하지 않아. 간단하지.
 
나한:이 정도면... (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딜러:게임 하시겠습니까?
 
나한:네, 준비 됐어요.
 
딜러:기본 베팅 받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한:아, 칩. (이영을 본다)
 
이영:(칩이 든 상자를 밀어준다.)
 
나한:(한 장을 버리고...하나 더 가져간다)
흠...됐어요. (엎어놓은 카드를 내민다)
 
이영:(흥미롭게 구경중..)
 
딜러:오픈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로버 5, 클로버 J, 스페이드 Q. 하이Q입니다.
 
나한:(후후후...) 하트7, 클로버7, 다이아6. 페어에요.
 
딜러:(앗실수)
(저도원페어에여)
 
나한:(이럴수가-)
 
딜러:(아니구나~! 맞아여 이기셧어요)
 
나한:(와-!)
 
딜러:기본 베팅에 더해 칩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영:운이 나쁘지 않네.
 
나한:이겼어요. (스스로 칭찬한다)
 
이영:(하이파이브 하려고 손바닥 내밈)
 
나한:(반사적으로 손 가져다댔다가...)
(멈칫)
(작게 치고 내려놓는다)
 
이영:헤헤.
 
딜러:더 하시겠습니까?
 
나한:(이영을 보고) 할래요?
 
이영:나도 해 볼까?
 
나한:(이영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행운을 몰고 다니시잖아요.
 
이영:(어깨를 으쓱이더니 자리를 차지한다.)
 
딜러:기본 베팅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영:(칩을 하나 내려놓는다.)
 
나한:(딜러 카드 보는 중)
클로버 플러시네요.
 
이영:(카드 모아서 밀어둠)
 
나한:홀드?
 
이영:응.
 
나한:(왠지 내가 칩 가진다)
 
이영:?
 
나한:이걸로 새로 배팅할게요. (건너편에 앉는다)
 
이영:(뭐지? 싶은 눈으로 보다가 웃더니 저도 칩을 내민다.)
 
딜러:기본 베팅 완료되었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나한:으음, 좋아요. (첫 게임에서 딴 칩을 모두 내려놓는다)
 
이영:(폴드... 카드를 모아 내밀어 놓는다.)
쓸만하게 나왔어?
 
딜러:오픈하겠습니다.
 
나한:플러시에요,
(나 도박에 재능있을지도!?)
 
딜러:축하드립니다.
(칩을 계산해서 정리해 밀어준다.)
 
이영:행운은 네 편인 것 같은데. (씩 웃는다.)
 
나한:(나...딜러로 취직할까나.)
(진지하게 고민 중)
 
딜러:더 하시겠습니끼?
 
나한:아뇨, 여기까지...
(왠지 이 행운...가지고 있고 싶어)
 
딜러:(고개를 까딱여 인사한다.)
 
이영:꽤 벌었네, 나한. (흘끗흘끗)
잘하잖아. (헤죽..)
 
나한:행운의 칩이에요. (딴 칩을 소중하게 품는다...) (딜러로 취직해야지.)
(배에서 내리면 당장 면접 볼거야.)
 
이영:교환은 안 할 거야?
(무슨 생각하는 지도 모르고 갸웃거린다.)
 
나한:이것만 빼고요. (칩 하나 가진다)
 
이영:(씩 웃어보인다.) 정말 행운의 칩이네. (내밀어진 면에 새겨진 7을 톡 건드린다.)
 
나한:(그런가, 하고 칩을 들여다 보다가...) 효과가 있기를 바라야죠.
 
행운의 붉은 칩은 챙겨두고, 딴 칩은 전부 직원이 교환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영:있을 거야. 오늘도 봐, 점점 운이 좋아졌잖아.
 
나한:(꼭 행운 충전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다...)
(괜히 다시 팜플렛만 들여다본다.) 모르는 일이죠.
(전부...너무 호화로워.)
 
이영:(옆에 서 왼팔을 내민다.) 딱히 맘에 드는 게 없으면 바다라도 구경할래요? 갑판에 나가서.
(문득 물끄럼... 내려다본다.)
 
나한:(한참 왼팔 방치하다가...아, 하며 잊은 듯이 손을 올리고) 그럴까봐요.
...평소에 이런 델 안 다녀서.
(내려다보는 시선 사이에 팜플렛 끼우며) 뭐 가고 싶으신 곳이라도.
 
이영:조금 있으면 불꽃놀이도 할 거예요. (살짝 소리 내 웃더니 고개를 기울여 팜플렛 옆으로 시선을 낸다.) 항상 단발이었는데, 싶어서.
나가면 바람에 머리가 잔뜩 날릴테니 머리끈이라도 사야할까, 추울테니 겉옷이 필요할까, 생각 중이었어요.
 
나한:... ... ...
(미용실 가서 머리 정돈할 돈이 없어서 길렀다고는...)
사정이 있어서요.
 
이영:뭐, 그런 건 자유니까...
(또 물끄럼..) 근데 예뻐요, 긴 머리.
 
나한:아, 예... ... (서먹하게 시선을 피해 고개를 내린다)
...나가죠. 머리끈은 가지고 있어요.
 
이영:그래요. (천천히 이끌어 걷는다.) 내가 말 한 적 있던가, 나 긴 머리 좋아한다고...
... 거절당했던 거 같다, 단발이 좋다고..
 
나한:(그랬었나...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다른 애인들은 전부 긴 머리였지.)
(손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을 들어 머리를 아래로 모아 묶는다) 지금도 단발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이영:(가만히 드러나는 뒷목을 내려다본다.) ... 그래서 나도 단발이 좋아졌었지.
 
나한:(이걸 풀어? 말아? 하듯이 손이 움찔거리다가) 다 옛날 일이죠.
 
이영:(머리를 다 묶기를 기다리다 다시 팔을 내민다. 대답 대신 여느 때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내비친다.)
 
나한:(만났던 모델이나 배우들도...긴 머리였던가...생각하며 엉거주춤 팔을 올린다0
 
생각해보면...
 
나한과 만나기 전 그의 여성 편력은 긴 머리의 고양이 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헤어진 이후로는.. 단발, 숏컷, 중단발의 고양이상을 만나서 머리가 길어질 때 쯤 갈아타는 기이한 전적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나한:.................................
oO( 변태 같다... )
oO( 지독한 취향... )
(하지만 하필 직전 연애가 윤이영이라서 누구와도 사귀지 못한...또는 금방 차인 처지인 본인도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하는 중)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요.
당신의 기이한 여성 편력에 다시 낄 생각은 없어요.
 
이영:... (물끄러미 보더니 빤질한 낯으로 웃어보인다.)
 
나한:(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이영:(시선을 휙 피한다.) 알아요.
나 싫어하잖아요.
 
나한:이제 잘 아시네요.
아까는 충격받은 것 같았는데.
 
이영: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나한:(밤바람이 부는 갑판으로 나오면... ...)
(이제 후일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세찬 바닷바람이 거세게 몰아칩니다.
 
나한:(결국...블라인드 데이트를 빙자한 도피성 연애(혹은 결혼)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구나...)
 
머리를 묶지 않았다면 머리카락이 날려 뺨을 쳤을지도!
 
나한:(삶의 풍파...)
(단단히 묶는다)
 
도피성 연애(혹은 결혼) 프로젝트는 물건너가고 말았지만...
 
펑펑 터지고 있는 불꽃놀이는 아름답습니다.
 
저것도 다 돈이구나, 싶더라도요.
 
나한:(물끄러미 바다 건너편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돌아가면 다시 일자리도 알아보고, 아예 새로운 직종도 찾아보자. 그래, 딜러라던가...유람선 직원도 괜찮을 것 같아...)
(오늘 일은 하룻밤 꿈처럼 날려버리고...)
 
찬바람에 몸이 식어갈 쯤, 이영의 손짓에 직원이 담요를 들고 옵니다.
 
나한:(하아아아...하고 조용한 한숨을 쉰다)
 
이영:(받아든 담요를 어깨에 둘러준다.) 그렇게 한숨쉬면 배 바닥에 구멍 뚫려요.
 
나한:...아, 감사... (어깨에 둘러진 담요를 한 손에 모아 잡는다)
저는 당장 고민할 게 많다고요.
 
이영:(담요가 날아가지 않게 어깨를 안싸 안는다.) 같이 고민 해주면 안되는 문제겠죠?
 
나한:네. 제 미래 일이니까. (기대 있는 게 익숙하다는 듯이 붙어 서 있다가 난간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다)
 
하늘을 수놓는 폭죽이 아름답게 부서져 어두운 밤하늘과 수면을 밝힙니다.
 
나한:(생각 없이 유람선이나 타고 세계 일주나 했으면...) 예쁘다...
 
찬바람이 코끝과 눈을 시리게 합니다.
 
세상의 풍파와 내 신세에 눈물이 나는건지, 추워서인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져요!
 
나한:(둘 다...)
(축축...)
(훌쩍)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유람선을 타고 하룻밤의 꿈이 아니라 120일의 꿈같은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나한:(왜...헤어져도 부자는 잘 살고 나는 이렇게...)
 
이영:(머리를 폭 기댄다.) 예쁘다, 그치.
아프리카 가서 기린 보자고 했던 거 기억 나?
 
나한:...안 나요.
 
이영:... 누구한테 한 말이었더라
 
나한:... ... ...
 
이영:(머쓱하게 머리를 뗀다.)
 
나한:(그래...이런 점이...)
(어쩌면...사귀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이직해서...지금도 잘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
 
이영:(아무것도 모르고 껴안음..) 이집트 가보고싶지않아?
피라미드 꼭대기가 황금으로 만들어져있다던데
 
나한:... ... ...
(옆눈으로 째려본다)
 
이영:아아, 요즘은 아시아가 더 인기있나?
 
나한:그럴 시간 없어요.
 
이영:... 만들면 안돼?
 
나한:당신이야 매일같이 쌓인 돈을 어떻게 쓸 지 고민하겠지만... (몸을 굽혀 빠져나온다)
 
이영:(쑥 빠져나가는 나한 멍청하게 봄)
 
나한:저는 매일같이... ... ... (말하려니까 내 처지가 너무 어이없어서 입 다문다)
... ... ...
(물끄러미...이영 보는 중)
 
이영:(갸웃..)
 
나한:(도와달라고 하는 건 자존심 상해.)
... ... (아직 마음이 있다면 그걸 빌미로... ...아니,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해?)
 
이영: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화 그만 내면 안돼? (불쌍한 척 재시도)
 
나한:(당연히 당신이면 전부 해결되지...)
 
이영:
매혹
기준치: 85/42/17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나한:(그런 점이 화나는거라고)
(입이 달싹거리다가..)
(주먹 꽉...안돼...그런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만 그게 밥 먹여줘? 그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나...?)
(돈만 보고 붙는 건 다른 애인들하고 다를 바 없는데...)
 
이영:그럼...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어? (유능한 PT용 얼굴)
재력
기준치: 99/49/19
굴림: 9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나한:... ... ...
당신이면 다 해결이 되는 게 문제라고요!
 
이영:(깜짝)
 
나한:(씩씩)
 
이영:... (눈 껌뻑껌뻑..)
 
나한:그렇...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당신이 나타난 게 싫다고요!
 
이영:내, 내가.. 잘못한 거야? (눈썹을 늘어트린다. 어느새 어깨는 잔뜩 굽어 넓은 어깨는 한껏 쪼그라든 채로 바라본다.)
나는 그냥...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만...
(입을 달싹이며 우물쭈물대다 말을 잇는다.) ... 미안...
(이해는 못 했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눅이 든다.)
 
나한:하다 못해 다른 사람이었으면...아니,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때였으면... ...
꼭 자존심이나 옛날 일은 무작정 덮어두고 당신 재산만 보는 것 같은 게 싫은 거에요!
 
이영:(한참 쭈그러든 채로 듣던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 ... 그게 뭐가 나빠?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써. 그래야 해. 인맥도 능력이야. 누누히 얘기했던 거지만.
 
나한:... ... ... ...
 
이영:나는... 나한이 써먹겠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래줄 수 있어.
 
나한:당신은...뭐든지 가진 사람이니까 모르는 거에요.
 
이영:그래, 몰라. 나는 모르지. 다른 사람의 사정은.
사람은 다 그래. 나한은 내 사정 모르잖아. 똑같아. 하지만...
도와줄 수 있고 그러고싶은 사람이 있으면, 없는 자산으로 두는 건 아깝다는 거야.
 
나한:(시선이 이영에게 박혀있다가, 천천히 굴러 떨어진다.) 그거랑은 달라요.
(그러더니 앞장서서 도로 뚜벅뚜벅 유람선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이영:(짧게 한숨쉬며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제 발끝을 한 번 내려다보다가,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따라 들어간다.)
 
나한:(그래도 재킷은 정말 하나 필요하니까...팜플렛을 보고 두리번거리다가 쇼핑몰로 향한다)
 
쇼핑몰로 향해보면, 여느 상점가 부럽지 않게, 오히려 백화점에 가깝게 화려하게 꾸며진 가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백화점 브랜드' 라는 느낌으로, 화장품, 악세서리, 의류, 잡화, 기념품 점까지 다양합니다.
 
나한:(백화점... ... ...)
(자켓 하나 정도는...아니...안 되나? 잠깐, 옷을 산 지 너무 오래 돼서 제대로 계산을 못하겠어.)
... (일단 보자!)
(혼자만의 고뇌를 마치고 상가를 둘러본다)
 
여성 의류 브랜드들이 늘어선 곳으로 향해보면, 드레스부터 캐주얼까지 다양하게 가게가 늘어서 있습니다.
 
속옷 매장도 있습니다.
 
나한:... (필요해)
(드레스...스쳐지나간다. 입을 일 없지.)
(그나마 익숙한 스타일이 걸려있는 캐주얼 매장에 들어서서 자켓들을 확인한다. 약속이나 회사에 입고 가도 괜찮은 것으로...)
 
여성 정장류를 판매하는 매장도 보입니다.
 
세미 캐주얼 정장 셋업이 마네킹에 착장되어있고, 안쪽으로도 셔츠, 자켓, 바지와 원피스, 치마등등..
 
한 켠에는 청바지도 보입니다!
 
나한:(문득 자신의 옷장을 떠올리고...)
... (유행하는 옷은 커녕 정말 필요한 것 빼곤 전부 처분했다. 특히 이영이 선물한 호화로운 드레스 같은 것들...)
(고르고 고르고 골라 결정한 자켓)
(1 살 수 있는 가격! 2 살 수 없는 가격) 2
(택도 없어)
 
그 때 직원이 다가옵니다.
 
직원:마음에 드시는 상품이 있으시면 택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나한:네? 아, 아뇨.
(덜걱 걸어놓음)
...괜찮아요.
 
직원:그럼 이런 디자인은 어떠신가요? (다른 디자인의 자켓을 권한다.)
 
나한:... ...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말하려다가...)
...이거 주세요. (결국 월세(로 쓸 예정이었던 카지노에서 딴 돈)로 자켓을 하나 산다)
 
그러나 직원은 택을 제거한 자켓을 포장해 건넬 뿐 계산을 받지 않습니다.
 
나한:저기, 계산은...
 
직원:아, 오늘은 다른 손님이 계시지 않아서 결제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업미소..) 다른 것도 보시겠어요?
 
나한:... ...
그럼, 이건... (뒤쪽 어딘가에 서 있는 이영을 가리킨다)
 
직원:(끄덕~)
 
이영:(마네킹 보는중)
 
나한:(얼결에...받았다)
... ... ... (방금 그렇게 말하고 와 놓고...)
(성큼성큼 이영에게 다가가서 빼놨던 돈을 턱 내민다)
받아둬요.
 
이영:...응?
(내밀어진 돈을 본다.) 이게 뭐예요?
 
나한:자켓 값이요.
 
이영:... (한숨을 푹 쉬더니 한 걸음 다가서서 귓가로 고개를 기울여 붙인다.) 오늘은 내가 초대한 거고, 여기까지 전부 내가 준비한 성의예요. 이 이상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단호한 투로 속삭이고 물러난다.) 내가 뭐가 되겠어요. (물러난 얼굴은 잔잔하고 평화롭다.)
 
나한:(그래...이런 점이...)
(귓가로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넘기다가 결국 다른 손에 쇼핑백을 든다.) 만약 사귀는 중이었으면... ...
유람선을 빌린 부분부터 화냈을 거에요. 오늘은 손님이지만.
 
이영:(살짝 웃는다.) 헤어진 게 다행인 건 또 처음이네요.
 
나한:(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이영을 붙잡아 이끌고 남성복 코너로 향한다)
 
이영:(얌전히 이끌려 가면서 의아한 얼굴로 본다.)
이쪽은 왜요?
 
나한:아까 와인 쏟은 거요.
셔츠에서 과일 향이 나시거든요.
 
이영:아아.
향긋하고 좋은데. (너스레떨듯 웃어보인다.)
골라줄 거예요?
 
나한:너무 늦게 빨면 안 지워져요. 골라드릴게요.
 
이영:(와인 엎은 옷을.. 빨아?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해 봤지만 조용히 서서 기다린다.)
 
나한:(그런 생각 하는 줄도 모르고...주섬주섬 셔츠랑 넥타이 고르는 중)
(몇 장 들고와서 대 봤다가...다시 들고간다)
 
이영:(멀뚱한 얼굴이다가 점점 미소로 변해선 즐겁게 기다리는중.)
 
나한:(다시 와서 넥타이 대 봄)
(가져간다)
 
이영:(목 내밀었다가 도로 허리 펴고 기다린다. 그렇게까지 정성껏 골라요? 감동이네. 같은 소릴 했다간 던지고 가버리겠지 생각한다.)
 
나한:(그 후로도 몇 바퀴 돌다가...감색 셔츠와 광이 없는 회색 넥타이를 내민다.) 이거요.
 
이영:고마워요. (가벼운 미소로 답하곤 받아든다. 성큼성큼 걸어 탈의실로 향한다.)
 
나한:(만족...)
 
이영:(조금 지나 자켓과 조끼는 든 채로, 셔츠 단추는 두어개 풀어두고 넥타이를 매며 나온다.)
나한, 나 셔츠가 조금 작은 거 같은데..
 
나한:..............
그런 건...
입기 전에 말하세요.
 
이영:아아.
난 보통 맞춤 셔츠 입어서...
 
나한:그게 제일 큰 사이즈에요.
 
이영:아아.
(딱 맞는 가슴 내려다봄)
 
나한:... ... ...
(자켓 여며서 가린다)
(휴)
 
이영:안되겠는데.. 움직이면 터질거같아
이거봐 (양팔을 들자 단추가 소리없는 아우성을지른다)
 
나한:팔, 팔 내려요. (단추야!!!)
 
 :나한 행운 판정(ㅋㅋ)
 
나한:(ㅋ)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팅!
 
무언가에 이마를 맞았습니다.
 
 :터졌다
 
이영:(내대사다)
 
나한:아야, (설마...
(단추에 맞은건가?)
 
바닥에 구르는 단추를 직원이 주워듭니다...
 
나한:... ... ... (이마...문지른다)
 
이영:(단추 하나가 터져 벌어진 셔츠사이로 맨 가슴팍이 보인다.)
 
나한:... ...
벗고 다니세요.
(저벅저벅 걸어간다)
 
이영:허어!?
(가슴팍 앞 엑스자 팔)
가, 같이 가.. (총총 쫓아간다.)
(명치까지 벌어진 감색 셔츠바람으로 쫓아간다..)
 
나한:아니, 그걸 그대로... ...
(무슨 락스타 같은 차림으로...)
(이영의 어깨를 돌려서 캐주얼 매장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이영:(제법 어울려?)
어 어디가? (가는대로 밀려감
 
나한:티셔츠 사러요.
 
이영:티....
티셔츠...
 
나한:(냉큼 흰색 티셔츠를 골라서 턱 안겨준다)
 
이영:,... (좀 고민하는 얼굴이다가... 그 자리에서 셔츠 단추를 풀어 벗는다.)
(훌러덩-)
(금세 티셔츠 꿰어입고 불퉁한 얼굴로 서 있음.)
 
나한:... ... ...
(방금 내 앞에서 뭐가...하는 표정)
가슴을 내놓고 다닐 순 없잖아요.
 
이영:어차피 나한밖에 안 보는데..
 
나한:지금은... ... ...
볼 생각 없었어요.
 
이영:어차피 볼 거 다 봐놓고 뭐.
 
나한:(말문이 막힌 채로 쳐다보다가... ...)
 
이영:(슬쩍 손목을 쥐더니 몸을 숙여 가까이 간다.) 어차피 할 거 다 해놓고 뭐.
 
나한:(힉 소리를 내며 양 손으로 덥석 이영의 얼굴을 민다) 여긴 거의 야외라고요!
 
이영:(고개가 위로 쭉 밀려 올라가자 멈춘다.) ... 실내면 괜찮아?
 
나한:... ... ...
(좌우로 눈을 몇 번 굴리다가...)
아니, 아니. 아니. 그럴 생각으로 온 게 아니에요.
 
이영:에이...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신다.)
 
나한:...사귀진 않아도 자면 그만이다 이거에요?
 
이영:...
나한은 싫은 모양이지만.
(한 발짝 물러난다.)
 
나한:(상대방이 한 발짝 물러나면 그제서야 손을 내리고 슬쩍 몸을 돌린다)
추천해주세요. 갈 곳. (불쑥 얼굴 앞에 팜플렛을 내민다)
초대하셨으니까.
 
이영:(팜플렛이 불쑥 눈 앞에 들어오면 한숨처럼 웃는다.) 바..에는 안 가려고 할 것 같고.
워터슬라이드 구경할래? 이 유람선이 그게 유명하거든.
 
나한:워터 슬라이드.
...가 볼래요.
 
이영:이쪽. (손을 내민다.)
 
나한:(이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손을 얹고 따라간다)
 
손을 쥔 채로 함께 걷다보면, 굽이 치는 워터 슬라이드가 보입니다.
 
기실 이 크루즈 위의 어떤 것이라도 나한에게는 새롭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나한:(진짜 워터파크가 있어...)
 
나한의 형편에 할 수 없는 경험들이니까요.
 
워터슬라이드는 3층부터 이어져 1층에 위치한 풀장에 도달하는 구조입니다.
 
나한:(특히나 이렇게 유람선을 전세 내는 건...)
 
이영:엄청 길다.
 
나한:...어지러울 것 같은데요.
이런 걸 정말 타는 사람이 있어요?
 
이영:아하하... 인기 엄청 많다던데?
 
이영은 당연스럽게 계단으로 나한을 이끕니다.
 
이영:올라가보자.
 
나한:...타려고요? 이거 안 떨어져요?
 
이영:구경만 할 건데?
 
나한:(안심...)
 
한참 계단을 올라 도착한 3층의 발코니에는 워터 슬라이드 외에도 신문함과 다이빙대가 보입니다.
 
나한:(신문함...에 자동으로 시선이 향한다)
(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매체라.)
 
 :자료조사 판정!
 
나한: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이영:와, 여기 정말 높네. (휘 둘러본다.)
 
나한:(여기 한 켠이 뚫려있어서 무서워)
...여기에서 떨어지면 곧장 1층이에요.
 
선내 소식을 알리는 자체 신문을 모아두는 신문함입니다.
 
이런 발행물까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요.
 
꼼꼼히 신문들을 펼쳐보던 나한은 약 한달 전의 신문에서 이 크루즈의 소유주가 변경되었다는 기사를 확인합니다.
 
선박의 전 소유주는 나한도 익히 아는 이영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이 선박을 인수한 사람은… 윤이영이군요.
 
이영:그래도 아래가 풀장이니까, 죽지는 않겠지.
 
나한:(신문을 들여다보다가... ...이영을 본다)
이영 씨, 이거...
...빌린 게 아니라...
 
이영:응?
 
나한:(기사를 가리킨다)
 
이영:(잠시 들여다본다.) 아...
뭐, 그러니까 이렇게 전세내고 쓰는 거 아니겠어.
 
나한:...크루즈 사업까지?
 
이영:(어깨를 으쓱인다.)
전에도 친구가 하던 거 도와줬으니까... 어렵지도 않더라고.
 
나한:... (스케일이...달라.)
(천천히 다시 신문을 꽂아놓고 다이빙대를 본다.)
(...얼마나 높은거지?)
 
다이빙대 앞에는 커다랗게 '뛰어내리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적혀 있습니다.
 
이런 말을 써놓을 거라면 뭣하러 다이빙대를 설치한 걸까요?
 
나한:다이빙대인데 뛰어내리지 말라고 적혀있네요.
 
이영:아무래도 너무 높아서, 위험하니까.
 
나한:...10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이영:용기를 내서 뛰어내리면 사랑이 오래간다는 얘기가 있어서 명소였는데, 사고도 자주 나서 이렇게 됐어.
(다이빙 대 바로 앞까지 가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넘을 걸.
 
나한:위험하다면서 거기 서면 어떡해요? (당겼다가...떨어질까봐 옷만 잡아둔다)
 
이영:(살짝 웃는다.) 근데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네. 도박이라도, 미신이라도 이해가 돼.
이 정도 용기면 못 할게 뭐겠어. (물결이 얼굴에 반사된다.)
 
나한: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뛰지 마요,.
 
이영:(돌아보며 웃어보인다.) 다칠까봐 그래?
 
나한:사고도 났다면서요!
 
이영:헛디뎌서 그렇지.
 
나한:그러니까 이쪽으로 와야죠!
 
이영:(옷깃을 쥔 손을 밀어내더니 훌쩍 뛰어올라 다이빙대 위에 선다.)
(나한을 돌아보더니) 이런 걸로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을텐데, 그치.
 
나한:방금 자기 입으로 미신이라고...
 
이영:(두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나한:...지금 표정이 딱...
 
말릴 새도 없이-
 
이영이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높이 솟구치는 물줄기, 비치는 파랗고 노란 불빛.
 
무엇 하나 현실적이지 못한 광경입니다.
 
어째서,
 
나한:이- (이영의 몸이 넘어가면 한 손으로 가린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가, 곧장 계단으로 뛰어내려간다)
 
어째서 그런 얼굴로, 그렇게 보며 뛰어내린 건가요?
 
나한:(1층에 닿자마자 다이빙대 아래의 풀로 달려가 들여다본다)
 
1층까지 무슨 정신으로 뛰어내려왔나 모릅니다.
 
흔들리는 물결 사이로 빼꼼 튀어나온 붉은 머리칼이 둥실둥실 떠 있습니다.
 
이영:(젖은 머리를 쓸어올리고 털더니 나한을 돌아보고 웃어보인다.)
 
나한:(당장 풀에 들어갈 것 마냥 한쪽 다리를 급하게 넘겨서 물에 담갔다가...이영이 일어나면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미쳤어요!?
 
이영:(헤헤 웃으며 개헤엄으로 다가온다.) 안 멋있었어?
 
나한:멋있긴 뭐가 멋있어요!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영:헤헤..
 
나한:(가까이 온 이영의 머리를 붙잡고 이리저리 돌린다)
머리가 빨개서 피가 나도 티가 안나니까...
 
이영:(몸은 물 속에 둔 채로 고개를 내맡긴다. 이러나 저러나 상쾌해진 얼굴로 있다가...)
(코피가 주륵 흐른다.)
나 콧물나는 거 같은데. (코먹어봄)
 
나한:머리 부딪힌 곳은 없... ...
피 나잖아요!!!
 
이영:어?
어디??
(코 슥 닦아봄) 으어!?
 
나한:(급하게 소매로 흐르는 코피를 닦고 얼결에 머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푹 수그리게 한다)
그렇게 높은데서 빠지니까 그렇죠!!!
 
이영:(나한이 시키는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다가... 몰래 입꼬리만 올려 웃는다.) 어어, 응, 미안..
 
나한:(하여간 하지 말라는 짓만 고르고 골라서...그러다가 발이라도 헛디뎌서 바닥에 박았으면 어쩌려고...등등의 잔소리를 중얼중얼 하며 급하게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코를 막는다)
이러니까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듣지...
 
이영:누가 나한테 그런 소리 해? 나 처음 듣는데... (코에 손수건 쑤셔막혀진 채로 코막힌 소리로 웅얼댄다.)
 
나한:제가요.
 
이영:... 으응.. (얌전히 풀에서 나온다. 온통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꼴로 서서 웃는다.) 나 씻어야겠다.
 
나한:...네...그러셔야겠네요. 그냥 와인 묻은 채로 떨어져도 될 걸 그랬어요.
 
이영:으응... 근데 조금 어지러운 것도 같고..? (슬그머니 나한에게 기댄다.)
 
나한:(뇌출혈)
...진짜요?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들여다본다)
 
이영:나 방에 갈래..
피나서 그런거같아..(제법 먹히는 꾀병에 신남)
 
나한:내일 꼭 병원도 가 보세요. 뇌진탕이나... ...떨어지면서 수영장 바닥에 머리를 박았을지도 모르니까...
(이영이 기댄만큼 기울어져서 질질 끌고 방으로 향한다)
 
이영:으으음... 으응.. 이쪽. (슬금슬금 객실쪽으로 안내한다.)
 
이영이 안내해 도착한 객실은 선박에서 가장 넓고 큰 창과 발코니가 달린 스위트 룸입니다.
 
지금은 불꽃놀이도 끝나 어둑한 밤하늘과 밤바다가 구분도 되지 않지만요.
 
나한:진짜 어지러워요? 아직도?
 
이영:...조금?
 
나한:그러게 하지 말랄 때... (잠깐 주먹 쥐었다가)
씻고 빨리 누워서 쉬어요.
 
이영:헤헤..
여기 나한 방이야.
나 여기서 씻고 누워? (고개를 기울인다.)
 
나한:...이영 씨 방은요?
 
이영:옆 방.
 
나한:데려다 줄게요.
 
이영:...
(입 꾹 다문 채로 봄)
 
나한:... ... ...
왜 그렇게 봐요?
 
이영:실내. (허리를 감싸 안아 몸을 당겨붙인다. 축축한 옷이 맞붙으면 마른 천은 금세 습기를 먹는다.)
 
나한:실-... ... (눈이 둥그래졌다가 옷이 차갑게 젖어들면 짧게 이영을 째려본다) 어지럽다는 거 거짓말이죠.
 
이영:아깐 진짜 어지러웠어. (몸을 숙여 가까이 다가간다.)
 
나한:...오늘 누가 와도 이럴 생각이었어요?
 
이영:아니라고 하면 믿어줘? (볼에 입맞춘다.)
 
나한:못 믿겠어요. (엉거주춤하게 내려가 있던 팔이 어깨에 얹힌다)
...다시 당신이 좋다거나...그런 건 아니에요.
 
이영:응, 나한 나 싫어하잖아. (고개를 물려 눈을 맞춘다.) 안 믿어도 돼. (소근대곤 입술을 맞붙인다.)
 
나한:(정말 자는 거면 됐던 거잖아.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마음 한 켠이 미묘하게 무거워지기만 한다. 어차피 하룻밤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눈을 내리감는다.)
 
이영:(몇 년 만인데도 모든 행위가 자연스럽다. 감아올린 팔이 익숙하게 누르는 감각이나 핥아내는 혀의 움직임. 적당한 때에 입술 사이로 새는 숨. 그렇게나 길게 떨어져 있던 것이 거짓인 것처럼 안아올린 다리가 허리를 감는 일련의 동작이 익숙하다.)
(오롯이 내게 맞춰진 것 같은 몸이 부드럽고, 아찔하게 탐나서 성급해지는 마음을 누른다. 밤은 아직 길어. 안아든 몸을 침대에 천천히 뉘이고 손을 끌어다 제 바지 버클에 얹어준다.)
 
나한:(입술 새로 들어오는 혀의 감각이 생소하면서도 기껍고 달다. 목을 감은 팔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다가 침대에 등이 닿으면 고개가 먼저 마중을 나간다. 이런 걸 원했었나? 하지만 오늘 만나고 끝이라면. 날이 밝으면 다시 지옥같은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이 정도는 신세져도 괜찮지 않나. 손이 몇 번 헛나가다가 버클을 풀고, 손가락이 속옷 위를 더듬으며 들어간다.)
 
이영:(길어진 머리를 감아 넘기고 맨 목을 쥐어 받친다. 받친다기보다는 당기는 것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둘 모두에 속한다면 전자로 생각하고 싶었다. 이러나 저러나 미움받고 밀려난다면 키스라도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내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할 반응이었는데, 어쩌면 수영장에서 머리를 박고 꾸는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부족했다. 허나 축축한 바지와 속옷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손길에 숨이 뜨겁게 새면, 머리에 오르는 열에 꿈이 아님을 깨닫는다. 자켓과 셔츠를 밀어올리는 손이 다급하지만 느릿하다. 맨 허리를 손끝으로 더듬어 문질러 오르다 손에 무언가 걸리면 한참 깊이 파고들던 입술을 뗀다.) ... 오늘 무슨 색 입었어?
 
나한:(속옷 바깥으로 손가락을 문지르며 세우는 것에 신경이 쏠려 있다가, 키스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숨이 모자라 조금 머리가 몽롱해질 즈음에 들린 질문에 잠시 생각한다. 오늘...뭐였더라. 그러니까 옷을 고르기 전에 속옷을...하고 회상 끝에 닿은 기억에 갑자기 목을 뒤로 쭉 빼며 몸을 움츠린다.) ... ...그게. (까만 레이스 속옷이다. 착각해서 입었다고 할 수도 없는...삽시간에 이마가 달아올라서 시선을 피한다.)
 
이영:(얼굴이 멀어지면 익은 얼굴에 순간 의아함이 스쳤다가, 시선이 쫓아가며 미소가 피어오른다. 허리로 타고오르던 손이 배로 향한다.) 열심히 골랐어? (천천히 배를 훑어올린 손이 셔츠를 걷어올리면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가려진 가슴이 드러난다. 한숨 비슷한 것을 짧게 내쉬더니) 야한 거 입었네. 무슨 생각이었어? (가슴으로 고개를 파묻는다. 드러난 윗부분을 핥아올리고 깨물며 손은 척추를 따라 내려간다.)
 
나한:(아랫입술을 약간 깨물고 있다가, 익숙하게 가슴을 무는 행동에 숨을 들이킨다.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감각이 온 몸으로 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혹시, 모르니까...읏, (갈 곳을 잃은 손이 시트를 쓸었다가 이영의 팔을 붙잡고 무릎을 세운다. 시선을 내리면 보이는 풍경이 퍽 자극적이라 고개를 비틀어 이영을 내려다보면 머리칼이 시트 위로 이리저리 흩어진다.) ...이영 씨가 나올 줄도 몰랐고...
 
이영:(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코와 입으로 누르고 벌려 속옷 안까지 파고든다. 레이스가 쓸리는 까끌한 느낌이 기껍고 아찔하다. 사과를 베어물듯 턱을 벌려 물었다가 살짝 당겨 놓기를 반복한다. 점점 솟아오르는 돌기를 혀 끝으로 핥고 빤다. 환영하듯 세워둔 무릎 사이로 파고든 손이 작은 천 위로 오간다. 눈을 들어 내려다보는 시선과 마주치면 살짝 웃더니 고개를 든다.) 그래서 실망했어?
 
나한:(그래, 이런 점이! 서툴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집은 것처럼 건드리는 게 문제다. 숨이 차오르는 가슴에 느껴지는 따가운 입질이 기묘한 쾌감이 되어 차근차근 숨을 가쁘게 만든다. 열감이 차오른 눈에 약간 원망이 담긴 것 같기도 하다.) 실망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으응, (옅은 신음이 흐르면 황급히 입을 다물어버린다. 손 끝이 민감한 곳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흘러나오는 신음이 앙다문 입술을 거치며 교태 비슷하게 변질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영:(듣지 못한 답보다 밀려나온 소리가 급했다. 비집고 들어갔던 골짜기가 닫히자 퍽 아쉬운 얼굴이다가, 제 팔을 잡은 손을 그 아래로 비집어 넣어준다. 잠시만 기다려주라, 말하듯 두어번 꾹 문지르더니 몸이 쑥 아래로 내려간다. 신음과 함께 젖어든 천 위로 입술을 묻는다. 벌어진 무릎이 조여들세라 허벅지 안쪽을 눌러 지분댄다. 속에서부터 무언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 성격 나쁜 구석을 속속들이 네게 쏟아내는 것 같은데, 외려 채워지는 이 기분. 이게 좋아.)
 
나한:(이러다가 정신을 놔 버리면 어쩌지. 사실은 그러고 싶었나? 이대로 밤이 지나는 것도 싫다. 한 순간에도 멋대로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추스리다가 젖어들어가는 아래에 입술이 느껴지면 시트에 붙어있던 허리가 약간 뜬다. 거봐, 또 집요하게 괴롭히잖아.) 으응, 앗... (큰 숨이 몸을 잔뜩 채웠다가 신음으로 빠져나간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본 게 얼마만이지?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몸이 익숙한 자리를 찾아간다. 꼭 어제도 서로를 안았던 것 마냥...)
 
이영:(시큰한 향이 가득해지면 혀로 천을 밀어낸다. 탄성에 버거우면 이를 내 물어옮기는데 조심스레 하더라도 마음이 성급한지라 살을 조금은 깨물고 만다. 혀를 내 단번에 안으로 밀어넣으면 바르르 떨리는 게 느껴져 부러 한번씩멈췄다 쓸어담듯 핥아올린다. 자연스레 찾아오는 손에 제 머리를 내맡기고 허공에 흩어지는 신음을 연주라도 하는 것마냥 정확한 자리를 찾아간다. )
 
나한:(순식간에 몸을 타고 올라오는 쾌감에 허리가 떨리다가, 다급히 다리 사이에 위치한 머리를 붙잡는다. 밀어내지도 당기지도 못한 채 속을 두드리는 것에 앓는 소리를 내며 발가락을 옹그린다.) 거기, 응...읏, (안쪽을 경련시키다가, 쾌감이 강해지면 허리를 조금씩 비틀며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듯 몸을 움츠린다.) 안에, ...흣...\
 
이영:(손을 밀어 꾹꾹 눌러 문지르며 혀를 깊숙이 밀어넣는다. 빨아들였다가 핥기를 반복한다. 조여드는 허벅지에 얼굴이 짓눌리면 숨이 짧아지며 턱이 아프도록 파묻은 고개가 움직인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더 깊은 곳을 맛보고싶어, 조금만 더 녹여먹게 해줘, 들썩이는 허리를 버티지 못할 때 쯤에서야 한껏 익고 축축해진 고개를 든다.) 안에..?
(몸을 들어 기어올라간다. 허벅지를 안아들어 아래를 바짝 붙이고 몸을 숙인다.) 안에?
 
나한:(안쪽에 들어차있던 것이 빠지면 허전함과 동시에 간질거리는 기분이 든다. 답을 망설이느라 입을 우물거리는 동안 셔츠 안으로 손이 들어갔다가, 배부터 가슴, 쇄골을 살금살금 짚어 올라가며 눈을 마주친다. 아래에 부풀어 오른 것이 살짝 비벼지면 으응,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가 소곤대듯이 목소리를 낮춘다.) ... ...안에... (셔츠 안으로 들어간 손이 어깨를 살짝 당긴다.) ...넣어주세요.
 
이영:(눈이 마주친 채로 셔츠 안으로 쓸어올라오는 손길에 기대감 어린 숨을 끊어뱉는다. 기대하는 답이, 매번 이렇게 괴롭히고 졸라 들어온 말이 있으니까.) ..읏,(어깨가 눌리자 아래가 꾹 눌려 비벼지며- 바라던 말에 미소가 스친다. 아무리 작게 말해도 놓칠리 없는 말이다. 바라마지않던 그 목소리, 그 말, 그 얼굴과 표정, 몸짓이다. 단번에 입술을 붙이며 허리를 든다. 꺼낸 것은 보지 않아도 익숙하게 입구를 찾아댄다. 기대감에 흔들리는 허리를 눌러쥐고 천천히, 간질이며 밀어넣는다. 충분히 벌어지지 않은 탓에 반도 넣지 못하고 멈추더니 입술 너머로 앓는 소리가 타고 들어간다.) 아, 윽... 좁아..
 
나한:(점점 안을 비집고 밀려드는 감각이 예상과는 달리 빠듯하다. 힉, 하고 숨을 집어삼키며 어깨를 한껏 움츠린다.) 아, 아프... ...아파요...읏, 천천히... (뒷머리가 시트에 비벼지면 침대 위에 흩어졌던 머리카락이 조금 엉켜든다. 허리를 감았던 다리가 허벅지까지 내려오고, 안에서 조이는 힘을 풀려는 듯 가슴에서 큰 숨이 오르내린다.)
 
이영:(허리를 살짝 물렸다가 밀어넣어보지만 빠듯하기는 마찬가지라 숨을 짧게 몰아쉰다. 아프다는 말에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하더니 찡그린 눈가에 입을 맞춘다. 귓가에 소근거리며 가슴을 눌러쥔다.) 그, 동안... 안 했어? 윽, 전보다 한참 좁네... 후우.. (뜨거워진 몸이 끈적해지기 시작하면 허리를 천천히 눌렀다 빼길 반복한다. 뭉근하게 주무르다 서 있는 돌기를 긁어내듯 손톱을 세우기도 한다.) 이렇게, 달아선, 싫다고도, 못, 하겠는데..
 
나한:(차오른 열감에 눈 앞에 흐릿하게 아른거리는 것 같다. 안에 들어찬 것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짜릿한 쾌감이 올라온다.) 아, 아...으응,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온 몸으로 밀려들어는 감각에 온 정신을 쏟는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도, 맨 살을 주무르는 감각도 좋다.) 안...하려고, 한 게 아니라...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돌기를 건드리는 손길에 앗, 하고 등이 조금 튕기며 안을 좁힌다.) 거, 거기...만지는 거, 흐응...
 
이영:흐, 아, 아... (조금씩 넓어 들어가다 꽉 좁혀오는 감각에 숨을 참는다. 온 신경이 아래로 쏠림과 동시에 고개를 치켜든다. 눈 앞이 하얗게 변하려든다. 벌써 이럴 수는 없는데. 너무 좁아, 아찔한 건 어쩔 수 없다 조금만 더 힘이 들어가면 끊어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 바람에 가슴을 문지르고 긁던 손 안의 것을 틀어쥔다.) 아, 읏... 하...... (참았던 숨을 몰아뱉고는 등을 굽혀내려온다. ) 이게 좋구나. (괴롭힐 작정인 게 눈에 선한 얼굴로 올려다보더니 이으로 물고 당긴다. 혀로 간질이며 반응을 살핀다.)
 
나한:(심호흡 같던 숨이 가슴 근처에서 밭게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영이 입에 가슴을 머금고 간질이면 자극을 따라가듯이 허리가 움직이며 아래를 더 깊게 문다. 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손이 힘을 받지 못하고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길 반복한다.) 좋, 좋아요. 아으, 그...그만, 하, 으응, (좋은데 싫어, 갈 것 같아. 열이 오른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는다.)
 
이영:(들리는 허리를 받치며 조금 더 잘근거리듯 깨문다. 찾았다. 끊어쉬는 숨에 맞춰 허리를 꾹꾹 눌러 밀어넣는다. 미끄러지는 손이 어깨를 제대로 쥐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긁어낼 때 마다 몽롱하게 취하던 정신이 들었다 다시 취하길 반복한다. 열과 쾌락에 취해가는 얼굴이 풀어진다.) 좋, 아? 응? 더 얘기해, 줘, 어디가, 좋, 아. 어디, 어디.. (어느새 거의 다 들어간 덕분에 숨이 더 짧아지고 만다. 질끈 감는 눈을 보고 다시 가슴을 찾아 문다. 크게 물었다가 조금씩 줄여물면 자잘하게 잇자국이 남는다. 고개를 돌려가며 남긴 잇자국을 핥고, 다시 깨물어 중심에 다 와서는 온통 붉어진 채로 잡아당겨진다. 그리고 동시에, 허리를 끝까지 밀어넣는다.)
 
나한:(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고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모르겠어. 기분 좋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 팔로 온 목을 감싸 끌어당긴다. 열기 가득한 살갗이 맞붙을 때마다 기분이 둥실 뜨기를 반복한다.) 안에...흐응, 으, 앗, 거기...거기, 좋, 아요. 더... (갈증이라도 난 것처럼 붙잡은 목께를 핥아올렸다가 신음 대신 깨문다. 다 좋아, 계속 안아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안쪽을 가득 채우듯 허리가 들어서면, 순간적으로 눈 앞이 깜박 점멸하며 전기가 오른다. 안이 단단히 좁혀지며 허리가 붙는다.)
 
이영:(끌어당겨진 머리를 그대로 몸에 묻은 채로 허리를 거듭 움직인다. 잔뜩 좁아진 안쪽에 꽉꽉 쑤셔박듯 밀어넣고 비빈다. 시야를 잃은 채로 체향에 취한 채 허리를 흔든다. 걱정했던 것이나 고민했던 것, 후회나 억울한 마음같은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욕망, 욕정, 쾌락과 갈증만이 남아 몸을 움직인다. 더, 더. 좋다는 말과 라는 말만이 입력된 것처럼 허리를 크게 움직인다. 깨물린 목에 신음이 샌 것도 모르고, 저가 헐떡인 숨을 나한의 귓가에 쏟아내는 줄도 모르고, 좋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주어를 포함해 쏟아내는 줄도 모르고.)
 
나한:(혼탁해진 정신 사이로 과거의 이명 같은 것이 비집고 들리는 것 같다. 추락이라도 할 것 같은 감각에 공간을 잔뜩 남기고 뜬 허리 아래를 다급하게 더듬다가 품 안에 파고든 머리를 끌어안는다. 금방이라도 목 뒤로 넘어갈 듯 숨이 까닥이는 사이사이로 정제되지 않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바...방금, 방금 갔, 하윽, 안에, 응, 읏, (안돼요, 하는 말이 숨에 섞여 공중에 흩어지는 것과는 달리 허리에 감긴 다리가 몸을 끌어당겨 맞붙인다.)
 
이영:(듣고싶은 대로만 듣고, 하고싶은 대로만 하는 게 뭐가 나쁠까. 기본적으로 그런 식으로만 살아왔기에 멋대로 밀어붙이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지만, 종종 그런 사람이 있다. 멋대로 구는 대신 바라는 대로 맞춰주고 싶은 사람. 스스로도 외면하는 바를 찾아내서 꼬집어내듯 찾아주고 싶은 사람.) 나한, 나, ...하, 읏.. (제 허리를 단단히 감아붙인 허벅지를 쥔다. 품에 틀어박힌 머리에 피가 쏠리고 어지러워도 좋아, 여기고 저기고 네가 꽉 끌어안아주기에 행복해, 더 안아줘, 더 틀어쥐고 가져줘, 나를 구속하고 내버리지 말아, 더 깊이, 더 가까이, 조금은 폭력적이라도 더 거세게, 더 강하게 너를 안는다.)
 
나한:하, 으응, (살이 비벼지는 곳은 타버리는 것 같고, 숨이 차오른 갈비뼈가 내려앉을 것 같은 기분. 정신을 놓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갑자기 밀려들면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손이 이영의 몸을 밀어낸다. 또 이 기분이다. 쾌감에 뒤덮히는 것 같은 느낌. 안을 쿵쿵 내리찍을 때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튼다. 부서질 것 같아, 갈 것 같아, 한 편으로는 다 내버리고 감각이 이끄는 대로 몸을 내맡기고만 싶다. 잔뜩 수그린 채 어깨에 파묻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 아요. 안에, 앗, 으응, 세, 윽, 세게...하는 거,
 
이영:(더, 조금 더, 갈급하게 바라는 마음에 거세게 쳐올리고 동시에 애절하도록 꽉 쥔다. 살결에 짙게 남는 자욱이 필사적이고 간절하다. 힘없는 손이라도 밀어내는 행위 자체가, 헛손질처럼 미는 대신 흘러내리더라도, 아파서... 더는 밀어낼 수 없게 꽉 쥔다. 더 끌어당기고 더 파고든다. 가지고싶어, 잃어버리고싶지 않아. 이 마음이 그리웠다. 구멍난 마음이 채워도 채워도 비어버리지 않도록. 꽉 틀어막고 채워줘. 어깨에 비벼지는 뜨거운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진심을 받아먹는다. 이럴 때에 새어나오는 말은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사랑,해, 나한... 좋아, 좀, 더, 읏, 하.. (정신이 타들어가는 기분, 새하얗게 비워지고 가득차는 기분...)
 
나한:읏, 아, 좋아...좋아요, (손이 쥐었다 뗀 자리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온다. 어디가 아픈거지? 틈 없게 맞붙은 몸 사이에 끼인 손이 잡히는 살결을 긁어낸다. 움직일 수도 없게 끌어안은 몸이 머리를 때리는 쾌감에 움찔댄다. 이런 걸 좋아했던가? 사랑한다고? 누구를? 중얼거리는 고백이 흘러나올 때마다 견디지 못할 정도로 속이 아프다. 신음 대신 비명을 지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급하게 목을 끌어당겨 입술을 맞붙인다. 숨 사이로 새는 울음이, 눈물 맺힌 시선이 맞닿으면 꼭 상대방을 질타하는 듯한 빛을 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변변찮은 연애조차 못 한 것도.)
 
이영:(좋다는 말, 벅차서 흘러나오는 진심이 반갑다. 온종일 미움받고 혼나기만 하면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쾌감이 아랫배를 꽉 채우고 살냄새에 질식할 때 쯤 풀어진 얼굴이 끌어당겨진다. 맞붙여진 입술 사이로 넘어오는 것이 비명같은 신음뿐이었다면 덜 슬펐을까. 나를 탓하는 네 눈이, 내가 외면해온 것처럼 미안해지는 분노섞인 눈물이 아프다. 하지만 멈추고싶지도 않아. 속도를 늦추는 대신 단단히 잡아먹을듯 움직인다. 이렇게 나를 탓할 거라면 잊지도 말아. 못 잊게 만들어줄래. 다신 나를 지우지 못하게, 네게 나를 깊이 새길래. 내게 네가 깊이 새겨진 것처럼.)
 
나한:(입술 사이로 드나드는 숨이 불규칙적으로 변한다. 쾌감에 못 견뎌 어깨가 바짝 올라간 채, 질타의 눈빛은 곧 다가올 절정을 대비하듯 애달은 것으로 변한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 끝날 거라면, 오늘이 후회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쉬움도 여기서 다 버리고 가는거야.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두 팔이 몸을 끌어안고, 하얗게 번지는 시야에 상대방을 담으며 소리 높인 교성이 흘러나온다. 더, 좋아, 갈 것 같다는 따위의 소리를 하며 상대를 갈망한다.) 이, 영...흐아, 아...
 
이영:(숨 쉬는 걸 잊은 것처럼 묵묵히 움직여 몰아붙인다. 나를, 잊지마. 가장 마지막에도 나를 잊지 마. 잊을 수 없는 밤을 선물해줄게. 그래야만... 내가 조금 덜 슬플 것 같으니까. 바짝 붙인 몸이 뜨겁고 끈적여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귓가에 박힌다. 네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도, 맞붙은 곳의 질척이는 마찰소리도 생생하게 귓가에 남긴다. 힘 없는손으로 당겨안아주는 너.) 사랑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깊이 파정한다. 눈 감은 채 단단히 끌어안은 몸을 느낀다. 거세게 뛰는 심장소리가 몸을 울리고 바르르 떨리는 살결을 어루만진다.)
 
나한:(몸 안으로 삼키는 힉, 하는 소리와 동시에 품 안에 담긴 몸이 파득 떨린다. 머릿속이 하얗게 번지며 원초적인 감정만 남는다. 잔뜩 옹그라든 발 끝이 겨우 시트를 짚으며 여운에 움찔거리고, 단 숨이 어깨를 간질이다가 퍼뜩 정신이 든 것 마냥 고개를 뒤로 물린다.) ...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눈을 굴리다 안에서 밀려나오는 감각에 짧게 신음한다.) -...으응,
 
이영:(작게 떨리는 몸을 안은 채 누워 숨을 몰아쉰다. 몸이 들썩일 때마다 단단히 붙었다가 공간을 만드는 살결 사이가 뜨겁다는 생각을 하다, 귓가를 울리는 신음소리에 퍼뜩 고개를 든다.) ... (시선이 마주치자 안은 몸을 일으켜세워 제 위에 앉힌다. 살짝 빠졌던 이음새가 다시 틀어막히고, 비어져나오는 액체가 몸을 타고 흘러 시트를 적셔도 마주친 시선을 물리지 않는다.) 나한. 나 아직...
 
나한:으, 앗, (빠졌다가 도로 밀려들어오는 감각이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몸에 유난히 예민하게 느껴진다.) ... ...안...돼요.
...이영...읏, 이영 씨는...괜찮겠지만...저는 내일도...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가 가라앉는다)
 
이영:정말? (시선을 맞춘 채로 가슴을 문다. 손은 등허리를 쓸어올린다.)
 
나한:정말로, 으응, (가슴을 무는 입질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몸이 조금 앞으로 쏠린다) 진짜... ...안 돼요...
 
이영:안돼? (눈썹을 늘어트리며 이를 세워 꾹 문다. 손은 아래로 내려간다.) 뒤로 하고 싶어..
 
나한:안, 안되는...앗, (쾌감이 채 가시지 않던 몸에 살살 열기가 올라오는 감각에 입을 다물고 흐르는 소리를 막는다.) 으...응,
(앞으로 기울어진 몸을 지탱하려 뻗어진 손이 이영의 몸을 짚으면, 허리가 조금씩 들렸다가 내려오며 느릿하게 문대기 시작한다.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액체가 내는 젖은 소리가 묘하게 울린다.)
 
이영:(허리에 얹은 손이 알아서 움직이는 걸 보며 살금 웃는다.) 나만 더 하고 싶은 거 아닌 거 같은데. (부러 제 허리는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만을 놀린다. 끈적한 액체가 끼인 마찰소리가 야해서 아래가 금세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네가 움직이도록 둔 채 턱선과 목을 따라 입을 맞추고 깨물고 핥아낸다.) 나 누울까?
 
나한:... (살짝 목을 축이듯 입술 새로 혀가 비집고 나왔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리트린다.) ...안아줘요. (중얼거리듯이 말하곤 다시 열감이 오른 몸을 숙여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조금씩 허릿짓을 한다. 이미 한 번 깊게 들어온 탓에 민감한 곳이 찔리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 양감을 더해가는 감각에 등이 간헐적으로 떨린다.)
 
이영:(살짝 미소지은 입이 촉촉해진 입술 위로 덮인다. 마른 등과 어깨를 안고 허벅지를 당겨 꽉 맞춰 붙인다. 나를 더 바래줘, 더 원해줘. 솔직하게 굴어줘. 말로 내뱉기보다는 더 기다린다. 떨리는 등을 달래듯 쉬이 쓸어내주고 쳐올리기보다는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심호흡은 길게, 관찰은 깊게.)
 
나한:(나른해진 시선이 맞붙었다가 떨어진다.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이면 그새 빳빳하게 선 것이 기분 좋은 곳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간다. 좋아. 뭐가 좋은거지? 윤이영하고 하는 섹스가? 아니면 그냥 모든 게 다 잘 풀리고, 우리가 사귀고 있었던 때가? 정말로 당신이 헤어지자고만 하지 않았으면 모든 게 괜찮았을까?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찬 속을 입맞춤으로 막는다. 다시 쾌감이 등을 타고 올라오면 허리가 꼿꼿하게 서서 조금씩 움직임을 크게 한다.) 으응, 읏,
 
이영:(맞붙은 입술 사이로 흐르는 숨을 놓칠세라 집어삼킨다. 다시금 바짝 선 것은 오롯이 네게 맡기고, 손은 허벅지를 따라 올라간다. 네 멋대로 움직이느라 부드럽게 풀어진 둔부를 꽉 쥐면 조여드는 감각이 익숙하고 짜릿하다. 입술을 문 채 숨을 떨어트리면 무른 시선이 맞붙는다. 이름을 부르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걸 너무 티내는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부르기 전에 했어야지, 바보처럼 이미 가득 담은 마음으로 너를 불러버린 뒤다. 단계를 말아먹었어. 앞뒤가 꼬이고 선후 관계가 무너져. 이내 참지 못한 허리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나한:(부드러운 움직임 사이로 내는 신음은 가느다랗지만 짧다. 기분 좋아. 부드럽게 풀린 시선이 맞닿은 뒤에 들리는 이름도 거슬리지 않는다.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그런 생각을 하며 화답하듯이 상대방의 이름을 부른다.) ...이영... (날 서거나 질책하지 않는, 오직 상대의 시선을 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름이다. 하, 하고 단 숨을 내쉬며 고개가 목을 타고 어깨로 떨어져 잘근거린다.) 아, 안에...응, 깊이, 흐읏, 닿아요...
 
이영:응, 나한... (예전처럼 불러주는 목소리, 나를 찾는 얼굴. 내가 사랑하던, 사랑하는 그 얼굴. 나를 사랑해주는 그 얼굴. 얼마나 반가웠으면 눈물이 고였을까.) 응, 나한, 응.. (어깨에 닿는 숨, 신경을 곤두세우는 입질에 고양감이 금세 차오른다. 허리를 바짝 붙여 올려넣으면 깊숙이 닿는 것들이 있다. 뜨겁고 습하게 조여오는 감각에 잠시 길을 잃지만, 모르는 길이 아니니까, 몸이 기억하는대로 움직여 찾는다.) 응, 여기?
 
나한:아아, 아...거기, 응, 좋아... (고개를 주억이며 등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지만, 한 치도 빼지 않으려는 것처럼 몸을 맞붙이고 허리를 찔끔찔끔 흔든다. 좋아, 좋아해, 부드럽게 간질이는 손길도, 나를 잘 아는 듯한 행동도. 이유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 있을 때 먼저 답을 찾는 모습이 좋아. 조금 울음이 비치는 중얼거림을 내뱉는다.) 좋아요... (금방 다시 하, 하고 숨을 내쉬며 쾌감을 쫓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엉망이 됐으면 좋겠다. 그냥 다 모르는 척 하고 싶다.)
 
이영:좋아? ... 좋아? (좋다는 말을 해주는 게 좋아 거듭 묻는다. 내가 좋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듣고싶어 주어 없이 묻는다. 뭐라도 좋아해주라. 내가 오해하게 해주라. 네가 허리를 흔들면 맞춰 밀어넣는다 네가 찾아가는 길을 따라 간다. 이끌려가듯 찾아가 너를 만족시켜주려 애쓴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져. 이런 식으로는 내가 매달리는 꼴이지만 그래도 좋아. 네가 모르게 네게 단단히 매달려 떨어지지 않을게 지금만, 오늘 밤까지만 그렇게 할게. 열기가 그득한 시선이 너를 쫓는다. 네 반응을 쫓고 기억에 담는다.)
 
나한:으읏, 하, 응...네, 거기... (고개를 주억이며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린다. 불공평해. 비참해. 절대 당신을 다시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마치 나를 위해 뭐라도 할 것처럼 굴면 혼자서 아등바등 올라왔던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 그러니까 당신은 안된다.) 읏, 아-... (뒷목을 타고 올라온 열기가 온 몸을 어지럽히는 것 같아서 안을 좁혔다가 네 팔을 붙잡고 속삭인다.) ...세, 게...으응,
 
이영:(단단히 매달린 너를 안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빠져나가지 않게 골반을 틀어쥐고 밀어올리고 쑤셔박는다. 네가 바란다면, 네가 바라는대로. 거세게 밀어친다. 그 바람에 균형이 무너지고 쓰러지듯 누워도 마땅한 자세를 찾는다. 눈은 너를 찾고 바란다. 끊어쉬는 숨이 네 머리끝을 스치면 내가 네 주위를 감싸는 온 세상이라도 된 것 같아 먹먹하게 뿌듯함까지 든다. 지금 이 순간 네 머리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너를 가득 채우게. 다른 생각이라곤 단 한 톨도 하지 못하게 몰아붙인다.) 나한, 나한, 나, .. 흣, 나한.. (중얼대는 이름만큼 네가 고프다.)
 
나한:(허릿짓에 따라 몸이 툭툭 흔들린다. 안을 뚫기라도 할 것처럼 거센 압박에 발 끝에서부터 찌르르한 쾌감이 타고 올라온다. 그 품을 벗어나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않고 본능이 따르는대로 몸을 이끌면 어른거리는 눈 앞이 몇 겹으로 보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하윽, 으, 앗... (시선 끝에 닿은 상대의 표정이 안 좋다. 손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저런 표정을 지어야하는 건 내 쪽 아닌가?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음성이 머릿속을 채운다.) 왜, 아읏, 당, 신이...흣...
 
이영:(바짝 붙인 얼굴, 이마가 맞닿으면 단 숨을 길게 뱉는다. 나 그렇게나 볼썽사나운 얼굴이었나, 왜 그렇게 안타까운 얼굴이야? 그런 얼굴 하지 마.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건넬 수 없는 말 대신 입술을 맞부딪힌다. 네가 방금 본 건 잊어줘. 쓰레기같아도 섹스 하나는 잘 했지, 그렇게만 기억해. 내가 너를 사랑해서 지독하게 죽어가도 몰라야해. 얽어내는 혀 사이에 네 질문을 녹인다. 내가 나쁘고 못돼처먹은 놈인거야. 넌 그렇게 알고 살아. 그 기억도 전부 날려버려.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성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히 절정을 선사하려든다.)
 
나한:(질문이 더 튀어나오려다 섞이는 숨에 눈 녹듯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더 거세지는 몸짓에 생각이 더 따라붙지 못하고 하얗게 점멸한다. 어깨가 뒤로 젖혀지며 아래에 힘이 바짝 들어가 허리가 들린다. 애원하는 듯한 신음이 섞이는 숨에 말려들어가고, 그 순간까지도 애써 눈을 내리뜨며 네 얼굴을 붙잡는다. 왜 잡았지? 의미 없는 손짓이 잡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너, 너무, 흐읏, 아, 가, 갈 것, 으응, 흐아...-
 
이영:(내리뜬 눈에 비친 얼굴은 어쩐지 슬픈 표정이 서려있다가, 눈이 마추지면 붙은 불을 끄듯 눈을 감는다. 들린 허리를 바짝 안아 배를 붙이고, 밀려난 얼굴은 귓가에 가 붙는다. 귓바퀴를 질겅이듯 물어내며 허리를 흔들면 달랑이는 귀걸이에 턱을 거듭 얻어맞아도 개의치 않는다. 사랑해. 사랑해, 나한.)
 
나한:(맞닿은 몸 사이로 어깨가 바르르 떨린다. 파정과 동시에 머릿속도 하얗게 번지는 것만 같고, 힘이 풀린 몸이 꼭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고르지 못한 숨이 들썩이며 반사적으로 네가 머리를 댄 곳에 기대듯이 고개를 기울인다.)
 
이영:(모든 것을 놓고 뛰어내리는 것 같은 느낌. 힘이 쭉 빠지는 느낌. 노곤해진 몸이 기대어오면 뜨끈한 목덜미에 혀를 가져다 댄다. 아래를 들어 빼내고 나면 함께 밀려나오는 것들이 있지만... 그보다는 다시 몸을 붙여 안는데에 집중한다. 숨을 한참 고르고나더니 입을 뗀다.) 좋았어?
 
나한:읏... (아래에서부터 밀려나오는 느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천천히 숨을 내쉰다. 나른하고 힘이 없어. 고른 숨소리가 이어지다가 문득 느릿느릿 눈을 떠서 고개를 올리더니, 말 없이 몸을 돌려 아주 약간 품으로 들어간다.)
 
이영:(파고드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모를 수 없다. 온 신경이 네게 쏠려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제 품 안에 너를 가둬안고 끌어안은 이마에 입맞춘다.) 좋았다고 생각할게. (내려다보자 마주치는 눈에 가만 미소지어보인다.) 난 좋았어.
 
나한:(뭐라고 대답할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고개만 미약하게 끄덕이면서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는다. 뭐라도 말했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냥 이대로 두자.)
 
무엇 하나 예상할 수 없었던 하루.
 
블라인드라지만 상대는 커녕, 무슨 일이 일어날 지,
 
혹은 내 마음이 어떤 지조차 몰랐던 하루가 집니다.
 
마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굳건하게 미워하던 마음이 흔들렸다는 건 확실해요.
 
이 다음에는 어쩌지, 내도록 하던 것과 같은 고민을 떠올리며 피곤한 몸이 잠으로 빠져듭니다.
 
[ Stroke of Luck ]
 
무슨 꿈이라도 꿨나요?
 
창밖에서 들이치는 햇빛에 부스스 깨어보면, 낯선 장소입니다.
 
낯익은 작은 집, 작은 창문과 침대가 아니에요...
 
나한:... ...? (눈을 천천히 끔벅이며 뻐근한 몸을 움츠린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래요. 간밤에 블라인드 데이트를 위해 유람선의.. 스위트룸에...
 
몸이 부서질듯한 뻐근한 것은...
 
이불 속 헐벗은 몸이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것과...
 
나한:(아...그랬었지...그 생각이 들자마자 후회가 먼저 밀려들어온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씻고 나와 이미 멀쑥하게 차려입은 저 남자와 연관이 있었죠.
 
이영:일어났네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 미소짓는다.)
 
왜 그랬을까, 대체 무슨 정신으로...!
 
나한:(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에 이마를 짚었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제기랄...)
 
이영:(침대로 다가와 귀퉁이에 앉는다.) 많이 피곤했나봐요. 잠들어버려서..
 
나한:(당연히 그랬겠지...)
...아무래도... (비척비척 일어나서 욕실로 향한다) 깨우시지 그랬어요.
 
이영:피곤한 것보단 푹 자두는게 나으니까. (앉은 채로 뒷모습을 가만 지켜본다.) 아침 식사는 룸서비스로 괜찮겠어요?
 
나한:네. 괜찮아요. (샤워가운...안에 있구나. 생각하며 뽀득뽀득 씻는다)
 
간밤의 흔적이 말끔하지는 않아도 얼추 지워내지고 나면, 욕실의 탁 트인 창 밖으로 육지가 가까워진 것이 보입니다.
 
나한:(온 몸에 난 자국을 거울에 비춰보며 한숨을 쉬었다가, 육지가 보이자 샤워가운을 입고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출발했던 곳이랑 같은 곳인가요?
 
이영:(준비된 아침식사 앞에 앉아 창밖을 보다 고개를 돌린다.) 아뇨, 다른 곳이에요.
 
나한:어딘데요? ...런던이기는 하죠?
 
이영:(어깨를 으쓱이며 웃는다.) 웨일즈는 아니에요.
그리 멀리 온 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나한:안 알려주겠다는 뜻이군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테이블 앞에 앉아 아침식사를 살펴본다)
 
베이컨 감자스프와 시저 샐러드,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핫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한:(맛있겠다)
(스프부터 찹찹 떠먹는 중)
 
이영:아, 그리고 어제 내가 지퍼를 망가트려놔서... (한 쪽으로 고갯짓한다.)
 
나한:...에.
 
이영이 고갯짓 한 쪽을 보자 속옷부터 원피스, 자켓에 가방과 신발까지 새 것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한:(자기 옷 본다)
(속옷......)
 
이영이 빼입은 것과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
 
나한:(성의...데이트의 일환...눈을 질끈 감았다가 참는다)
(핫케이크 잘라먹는 중)
 
생각해보면 항상 이런 식이었죠, 섹스하다 옷을 망가트리거나 단추가 뜯어졌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로 사입히고..
 
재수없어
 
나한:(재수없어)
(일부러 망가트리는 거 아냐?)
 
그럴지도?
 
나한:...아끼는 옷이었는데...
 
이영:... 그래요?
(조금 눈치를 보더니) 같은 옷으로 찾아서 보내줄게요. 이사 안 했죠?
 
나한:아니, 사서 보내주실 필요는 없어요. 이미 원피스도 받았고, 자켓도...
 
이영:아끼는 옷이었다면서요..
 
나한:(핫케이크랑 베이컨이랑 스크램블 에그 쌓아서 찍어먹는 중)
 
이영:(잘먹는거 구경)
 
나한:옷을 좀 아껴입는 편이라.
 
이영:아아.
(슬그머니 웃으면서 샐러드 먹음)
 
나한:그래도 미안하다고는 하세요.
 
이영:미안합니다.
옷을..
뜯어버려서?
망가트리지 않고 벗기지 못해서?
 
나한:... ... ... ...
둘 다요!
 
이영:(히죽 웃더니 커피를 홀짝인다.) 미안해요, 둘 다.
 
나한:(뭐라고 더 구시렁거리다가 멈칫하고...그냥 다시 아침식사를 마저 마친다)
(어차피 오늘까지니까.)
 
이영:(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며 아침식사를 마친다. 잘 먹는 것도 구경하고..)
 
나한:(자기 몫의 접시를 비운 뒤에야 배가 좀 찼는지 만족스럽게 식기를 내려놓고...)
 
이영:슬슬 하선할 준비를 할까요? (테이블에 턱을 괸 채로 묻는다.)
 
나한:(새로 마련된 옷으로 갈아입는다) 저 집에 갈 수는 있는거죠?
 
이영:그럼요. 에스코트 해드릴테니 걱정 마세요.
(새 옷으로 갈아입은 걸 가만 보다 만족스레 웃으며 팔을 내민다.) 예쁘네요.
 
나한:(소매를 정리하고, 구두를 신고 팔에 손을 얹는다.) 좋은 옷을 골라주셔서요.
 
이영:잘 맞기도 하고. (노골적인 눈으로 가슴과 엉덩이를 보더니 시선을 맞춘다.)
 
나한:(째려본다)
 
이영:(씩 웃는다.) 사이즈가 그대로시네요.
 
나한:이영 씨는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으신 것 같은데요.
 
이영:없진 않죠.
 
나한:(손 뗀다) 따로 내리죠.
 
이영:(손을 잡아 끌어 제 팔에 얹는다.)
에스코트 한다니까요.
 
나한:에스코트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요? (마지못해 손을 얹은 채 따라간다)
 
수평선 너머로 바라보는 태양은 유독 커다랗게 느껴집니다.
 
강하게 부는 바닷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를 휘날립니다.
 
이영:(바람소리에 목소리를 키운다.) 다른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파란 하늘 아래 짠내가 감돕니다.
 
어느새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며, 이영이 당신을 돌아봅니다.
 
이영:이렇게 만났으니 말인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나한:(완전히 허허벌판인데, 생각하며 육지를 바라보다가...) 뭔데요?
 
이영:혹시.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말을 뱉으면서도 머뭇댄다.)
많은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나랑 함께하고 싶을만큼... 나를 사랑했어요? (이어지는 말의 끝이 희박하다. 숨이 쪼그라든 것처럼 작은 소리로 끝을 맺는다.)
 
나한:... (유독 이런 주제에서만 사람이 움츠러든다. 눈을 내리깔았다가, 이영을 쳐다본다.)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거에요?
당신이 먼저 헤어지자고 했는데.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얼마나 미련이 남았는지 시험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이영:... 이상한가요? 이런 걸 물어봐서. (미간이 찌푸려진다. 눈썹이 처지고 머금는 미소가 애처로이 보인다.)
 
나한:... ...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툭 내뱉는다) 사랑했어요, 그 때는.
당신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서 와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는.
 
이영:(조금 웃더니 낮아진 시선이 돌아오지 못하고 바닥을 맴돈다.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나, 많이 사랑받았네요.
... 고마워요.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올려 마주본다.)
 
나한:별 말씀을요. (한숨처럼 대답하며 가까워지는 육지를 바라본다.)
 
기적소리가 길게 울려퍼집니다.
 
이별을 선고한 사람이 저렇게 말 할 자격이 있나요?
 
저런 얼굴을 할 자격이 있었던 세상이 어디에 있었나요?
 
나한:(한창 놀다보니 본인이 안쓰러워지기라도 했나보지.)
 
선박이 육지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긴 기적소리가 울려 내려가 보면..
 
차도는 커녕 인도조차 깔리지 않은 허허벌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들판 가득 핀 스위트피 꽃과 비석 두 개, 그리고 묶여있는  한 필이 보입니다.
 
나한:...아일랜드까지 올라온 건 아니죠? (스위트피 꽃을 들여다본다)
 
 :교육 또는 자연 판정입니다.
 
나한:
교육
기준치: 60/30/12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피는 이 식물은 비슷하게 생긴 완두와는 다르게 독성이 강합니다.
 
다만 향이 좋아 향수나 화장품 따위의 원료가 되기도 하지요. 절절한 꽃말로도 유명한데, 스위트피의 꽃말은 '기쁨, 가련, 추억, 나를 기억해줘요'입니다.
 
나한:스위트피. (최근에 연인들에게 판매하려고 이런저런 스토리를 붙였었지...)
(게다가 뜬금없이 비석?)
 
비석에 적힌 이름은 나한에게도 익숙합니다.
 
이영의 조부, 조모의 이름입니다.
 
나한:(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이름...)
 
이영:... 그냥 한번 같이 와보고 싶었어. (슬픔이 서린 얼굴로 내려다본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영의 말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한:...조부모님의 묘비에요?
 
이영:... 응.
 
나한:왜 굳이... ...저랑?
 
이영:(가만 웃어보인다.) 그냥..
 
무언가 말하지 않는게 있는 듯 한데, 말 할 생각도 없어보이네요.
 
나한:(꼭 이렇게 말해야 할 때 입을 다물곤 한다.) 무슨 생각해요?
 
이영:별로 안 좋은 생각.
 
나한:...그래보여요.
 
이영:(뺀질한 얼굴로 가만 미소나 짓더니, 묶여있던 말 옆으로 가 익숙하게 간식통에서 잘린 당근 조각을 꺼내 먹인다.)
 
나한:(말해줄 생각은 없나본데, 생각하며 말 쪽으로 따라간다)
이 말은 키우는 거?
 
크고 잘생긴 말은 이곳에 오래 묶여있던 것 같진 않습니다.
 
이영:응.
 
나한:(손을 슬쩍 내밀어서 말을 조심조심 만져본다)
 
말은 푸르릉대더니 손길을 가만히 받습니다.
 
이영:보시다시피 이동 수단이 이 녀석 뿐이라.. 같이 타야할 것 같은데.
 
나한:...말을
 
뻔뻔한 소리를 늘어놓는 낯짝은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나한:말을요?
 
때마침 푸르릉 소리를 내는 말이 마치 제 주인에게 맞장구라도 쳐주는 것 같습니다!
 
나한:...저 안 타봤어요.
 
이영:내가 있잖아.
 
나한:...수작질.
 
이영:하하.
 
나한:(작게 한숨을 쉬며 말에 탈 준비를 한다)
(높아)
 
이영:(나한의 허리를 번쩍 안아들어 말 안장에 앉히곤 저도 올라탄다.)
 
나한:흐악, (덜걱)
 
이영:조심히 쥐어봐. 살짝 당기면 출발할 거야. (뒤에서 안은 채로 고삐를 나한의 손에 쥐어준다.)
 
나한:(급하게 이영을 붙잡고 있다가, 얼결에 고삐를 잡는다)
자, 잠깐만요. 떨어질 것 같아요.
 
 :동물 다루기 판정?
 
나한:
동물 다루기 Roll
기준치: 5/2/1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이영:괜찮아. (허리를 감싸 안더니 살짝 들어 앉은 자세를 고쳐준다.)
 
푸르릉!
 
고삐를 너무 세게 잡아 당긴 걸까요?
 
나한:흐악,
 
불만스런 소리를 낸 말이 질주하며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향합니다.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자칫하면 말 등에서 떨어질 뻔 했어요.
 
이영:아이고.
 
나한:(경직해서 이영 끌어안고 패닉상태 들어가는 중)
 
이영:쉬이, 괜찮아. (나한을 감싸안은 채로 고삐를 모아쥐고, 몸을 낮춰 말을 살살 달랜다.)
 
나한:내, 내, 내, 내려줘요, 모, 못타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꽉 붙들고 몸을 낮추어 말을 달랩니다.
 
이영:지금은 못 내려, 다쳐. 괜찮아. (나한도 달래주는중)
 
나한:(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중)
 
그러길 한참, 말이 드디어 안정을 찾습니다.
 
이영:(고삐를 살살 잡아당기고 말의 등을 쓸어준다. 단단히 겹쳤던 몸을 들더니 조금 웃는다.) 무서웠어?
 
나한:... ... ... ...
갑자기 고삐를 쥐어주면 어떡해요!
 
이영:아하하, 그렇게 대범하게 달릴 줄은 몰랐는거얼..
잘했어. 잘했어. (머리에 제 볼을 괸다.)
 
나한:말 타는 데에 집중해요. (째려본다0
 
이영:응, 응.
(허리를 감싸안은 채로 얌전히 말을 몬다.) 내 손 잡아봐. 이정도로 당기면 돼.
 
나한:...말에서 떨어지면 목이 부러질 거에요.
(계속 멈칫거리다가 겨우 손등에 손을 올려놓는 정도로 용기 낸다)
 
이영:내가 있잖아. 괜찮아. (손등에 손이 얹히면 고삐를 당겨 살짝 속도를 올린다. 스치는 바람이 머리칼을 흐트러트린다.)
 
나한:(속도가 빨라지면 또 흐아, 하고 놀라는 소리를 내며 말머리에 시선을 집중한다.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듯이...)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국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빵빵! 오픈카의 창문 너머로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어요.
 
차에서 내린 남자는 이쪽으로 다가와 대신 고삐를 쥐고, 나한에게 손을 뻗어 말에서 내리도록 돕습니다.
 
나한:(갑자기 다가온 현대문물에 안심한다)
 
이영:데이지는 데리고 돌아가. (말에서 내리며 차갑게 말한다.)
 
나한:감사합니다... (말을 타고 오는 동안 굳었던 몸을 열심히 일으켜 내린다)
 
이영은 비서에게 차키를 받아들더니 나한을 에스코트해 조수석에 태웁니다.
 
이영:이제 갈까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새빨간 오픈카가 햇볕을 받아 과하게 반짝거립니다.
 
나한:처음부터...차를 타고 오는 건 안 됐던 건가요? (겨우겨우 한 숨 돌리며 차에 앉는데..)
...화려하네요.
 
이영:(조금 웃으며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탄다.)
 
태양을 등지고 있는데에도… 이영의 치아마저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이영이 서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습니다.
 
하기사 이런 외모의 억만장자라니…
 
현실감이 없긴 마찬가지지만요.
 
나한:(누구라도 쌍수들고 환영이겠지...)
 
이영:뭐어, 자동차는 같이 앉을 수 없으니까. (선글라스를 꺼내 쓰더니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나한:수작질...
(또 중얼거림)
 
이영:새삼. (웃는다.)
 
나한:얄미운 건 잘 아시네요.
 
뚜껑이 열린 차로 국도를 달리면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 듭니다.
 
이영:내가 그렇게 얄미워요?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던데, 항상 나한은 그런 식이더라. (한 손으로 운전대를 쥔 채로 흘끔 나한을 본다.)
 
나한:... ...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보고 있다가 이영을 쳐다본다) 제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좋겠어요?
 
이영:아뇨. 그래서 좋은건데.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나한:그런 점이 얄미워요.
 
이영:헤헤.
 
나한:얄밉다는 정도에서 끝나는 게 다행일 정도로.
 
이영:얄밉다는 정도면 꽤 귀여운 것 같은데?
 
나한:더 심하게 말하려다 참는 거에요.
 
이영:무서워라.
 
나한:상처받을까봐.
 
이영:...
... 진짜로?
얼마나 심한 소릴 하려고...
 
나한:사고 나면 안되니까 궁금해하지 마세요.
 
이영:...
(구시렁..)
 
나한:...제가 무슨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한 거에요?
 
이영:그래도 귀엽긴 하다고 해주려나... 했지.
 
나한: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이영:그게 다지.
 
나한:그런 걸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3년 전에 끝났어요.
 
이영:으으음..
으음...
음...
 
나한: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말 하지 마요.
 
이영:음..........
 
나한:운전하는 사람 때리고 싶지 않으니까.
 
이영:(슬쩍 보더니 다시 운전한다.) 어젠 좋아하던데.
 
나한:(주먹으로 한 대 친다)
 
이영:아!
아파!
진짜 아파!
 
나한:그러라고 때렸으니 당연하죠.
 
이영:손이 더 매워진 것 같아...
 
나한:(돌아가면 차라리 애인이 아니라 섹파부터 구해야지...궁시렁궁시렁)
 
이영: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뭐라고?
뭐라고!?
 
나한:뭐가요?
 
이영:나보다 잘하는 놈 못 찾을걸
 
나한:그걸 또 들었어요?
 
도로 옆으로 간판이 몇 개쯤 지나친 다음에, 주유소가 나타나자 차가 속도를 늦춰 진입합니다.
 
이영:들리는 걸 어떡해.
 
나한:그건 해 봐야 알죠.
 
이영:없어 내가 알아
 
나한:남자랑 자 봤어요?
 
이영:어.
아 근데 내가 했지.
 
나한:아니... ... ...
알...
알고싶지 않았....
 
이영:(어깨를 으쓱이더니 차에서 내린다.) 주유 하고 올게. 뭘 그렇게 놀라? (차 옆으로 돌아가다 보조석 앞을 지날 때 나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웃는다.)
 
이런 차는 효율이 좋은 편이 아니니 주유가 필요했나봅니다.
 
알고 싶지 않은 걸 들어버렸지만...
 
나한:... ... ...미친놈...
 
이영:조수석의 서랍 안에는 이영의 것으로 보이는 다이어리 하나가 놓여있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콘솔박스 사이에는 영수증이며 수표 등 종이뭉치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네요.
 
 :뭐고
 
나한:(우웅)
 
조수석의 서랍 안에는 이영의 것으로 보이는 다이어리 하나가 놓여있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콘솔박스 사이에는 영수증이며 수표 등 종이뭉치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네요.
 
라디오에서는 적막을 메우기 위해 틀어두었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나한:(힘 없이 등받이에 푹 기댔다가, 콘솔박스 사이에 마구잡이로 놓인 종이뭉치를 빼서 습관적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관찰력 또는 자료조사 판정!
 
나한: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종이뭉치들 사이에서 엊그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복권을 하나 발견합니다.
 
억만장자가 무엇하러 이런걸 구매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심심풀이에 불과하겠지만, 소시민으로서는 기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혹시나 해서 복권을 뒤집어 보자… 괴상한 눈 문양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나 복권 발행처의 도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기에는 지나치게 소름끼치도록 생생한 문양입니다.
 
나한:복권... (기묘한 도장이네. 이런 건 빼놓고...)
 
 :SAN C [0/1]
 
나한:(영수증 순서대로 차곡차곡 모아서 정리했다)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복권에 쓰인 번호는 16, 23, 45, 12, 33, 27, 행운의 숫자는 02와 07입니다.
 
나한:(이따가 맞춰보라고 해야지...)
(다이어리도 집어들어서 뒤집어본다.) 안 어울리는 걸 들고다니네.
 
억만장자라고 해도 매일같이 다이어리를 쓰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대충 뒤집어보면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그의 다이어리 역시 특별한 날에만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네요. 특히 가까운 사람의 사고나 부고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계획한 사업은 전부 큰 성공을 거두었고요.
 
아…? 오늘 날짜를 살펴보니 오늘 데이트의 일정도 이미 모두 계획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크루즈, 승마, 드라이브, 이 다음은 새로 개업한 쇼핑몰에 갈 생각인가 봅니다.
 
나름 귀여운 구석도 있네요.
 
나한:... (긴장했다는 게 사실인가본데...) (일정이 빼곡히 쓰인 캘린더를 보고 고개를 기울인다.)
(부자들은 경조사에 자주 가나.)
(다이어리도 제자리에 두고 나면...차 바깥을 바라보며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이번주의 복권 번호를 추첨하고 있습니다.
 
벌써 몇 주나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이번주의 당첨액은 300만 파운드에 이른다고 합니다.
 
나한:300만 파운드...
그거면 일 관두고 먹고 놀아도 되겠다.
 
그래서 이번주의 당첨 번호는…
 
16,
 
23,
 
45,
 
12,
 
33,
 
27,
 
행운의 숫자는 02와 07입니다.
 
어라?
 
나한:...하?
 
낯익은 번호...
 
나한:(복권 종이를 들여다본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번호는 이영의 복권에 적혀있던 숫자와 동일합니다!
 
이영이 이번주의 당첨자입니다! 무려 300만 파운드를 수령할 당첨자란 말입니다.
 
나한:(말...도 안돼...하는 표정으로 복권 종이를 들여다본다)
(차 바깥으로 몸을 쑥 빼고 이영을 찾아본다)
 
등 뒤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한:(깜짝)
 
굳은 얼굴의 이영이 당첨된 복권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습니다.
 
나한:당첨됐어요! (복권 종이를 내민다)
 
이영:나한, 그거 버려.
 
나한:버리라고요?
당첨 종이인데?
 
이영:(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로 걸어가 종이를 쏙 빼들더니... 찢어 날린다.)
 
나한:...어...
(바람에 휘날리는 복권 종이를 허망하게 본다)
 
이영:하..
(착잡한 얼굴로 운전석에 앉는다.)
 
나한:...왜 버렸어요?
 
안쪽에서 주유소 직원이 나와 이영의 차에 주유를 해주는 동안 이영은 정면만을 바라보고 앉아있습니다.
 
이영:... 불길해서.
 
나한:당첨된 복권인데요?
 
이영:그래.
 
나한:... ... (부자들은 금전감각이 없나?)
300만 파운드인데.
 
300만 파운드... 인데.
 
그게 뭐 어떻냐는듯 표정의 변화조차 없습니다.
 
재수없어
 
나한:(재수없어)
필요 없다 이거죠...
저한테 줘도 잘 받았을텐데.
 
이영:그건 안 돼.
300만 파운드 수표를 주는게 낫지.
 
나한:무슨 차이에요?
 
이영:... 그런게 있어.
 
나한:... (알다가도 모를 사람.) 진짜 주진 마세요.
안 받을거에요.
 
주유소를 빠져나가 도시로 들어가는 톨게이트를 지나면, 퇴근 시간과 겹치는 탓에 제법 많은 차량이 도로를 막고 있습니다.
 
이영:안 받을 거 알아. (안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한:(안 주겠다는 말은 안 하는군...)
 
이영:
자동차 운전
기준치: 70/35/14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나한:(거절할 준비)
 
운전석에 앉은 이영은 마치 보란듯이 나한 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여유롭게 한 팔을 창틀에 걸치고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습니다.
 
요리조리 늘어선 차들 사이를 휘젓고 지나가는 빨간색 스포츠카의 모습은 실로 인상적입니다.
 
나한:으, 아, 여, 옆에 차, 앞에,
 
분명 몇몇 운전자들이 이영의 '대담한' 운전 방식에 놀란 듯 하지만, 아무도 항의하진 않네요.
 
나한:(운전을 이따위로 하면 어떡해!?)
앞에 경찰차!!
 
질주하는 차량, 질색하며 나한과 운전석에 탄 이영을 보는 사람들의 놀란 시선들….
 
이영:(운전대를 꺾어 다른 길로 진입한다.)
 
나한:으, 으아악, (얼결에 안전띠를 잡고 버틴다)
 
그나저나 이영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평소 나한의 집으로 가는 길과는 조금 다른 것도 같은데 말이에요.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장소는 근처에 새로 생긴 대형 백화점입니다.
 
이영:300만파운드어치.
 
나한:(쇼핑몰...써있었지...)
네?
 
이영:가자.
 
나한:...농담이죠?
이 회사를 사도 돼요, 그 정도면.
 
이영:(먼저 차에서 내리더니 조수석으로 돌아가 문을 연다.)
그거보단 비싸.
 
나한:...알아요...?
 
이영:알지.
 
나한:(너무 압도적인 숫자에 눌려서 나온다)
 
이영은 나한의 손을 잡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섭니다.
 
내부의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네요.
 
잠깐, 왜 손님이 아무도 없죠?
 
설마... 또?
 
나한:...오늘...휴점일인가요?
 
이영:아니?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잖아.
 
나한:...그런데 왜 사람이 없죠?
 
이영:(어깨를 으쓱인다.)
 
분명 무언가 손을 쓴 듯이 텅 빈 백화점... 두 사람은 직원을 따라 완전히 다른 통로로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선 라운지는 백화점의 바깥 공간과 비교했을 때도 화려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프라이빗 룸이군요.
 
이영과 사귈 때도 한 번도 못 와본 곳을 이제야 와보네요.
 
벌써부터 짐을 들 준비를 하며 뒤를 따라다니는 짐꾼도 있네요. 솔직히 약간은 위압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1d5 굴려주세요!
 
나한:2
(빌렸어...)
 
이영의 퍼스널 쇼퍼 중 한 사람은 화이트골드톤으로 디자인된 화장품 코너로 두 사람을 안내합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이번 시즌의 신상, 저기부터 여기까지는 모두가 믿고사는 베스트 제품의 컬렉션 상품이라나요.
 
도통 뭐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 뿐입니다만, 열의를 가지고 설명하는 통에 도중에 이야기를 자르기도 좀 어렵네요.
 
직원:손님께는 이런 컬러가 잘 어울리실듯 하네요~ ( 립스틱 몇 개를 꺼내어 나한 앞에 늘어놓는다.)
 
나한:네? 아. 음? (반쯤 못알아듣고 있다가...)
(직원의 시선에 립스틱을 발라본다...)
 
직원:어머~ 어쩜~ 너무 잘어울리세요~
(거울을 대주며 칭찬을 쏟아낸다.)
 
들여다 본 거울 너머로, 나한에게 시선이 고정된 이영이 보입니다.
 
나한:그렇게 잘 어울리는지는... ...
...립스틱 바르실래요?
(이영 본다)
 
이영:(나한의 입술에 시선이 고정되어있다가 화들짝 놀란 듯 웃는다.) 에, 나? 아냐..
 
 :관찰력 또는 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나한: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우아아)
 
귀까지 빨개져선, 나한이 립스틱 바르는 걸 보다 들킨게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했다가도, 눈치를 살피려 당신을 흘끔댑니다.
 
나한:... ... (지금...부끄러워하는거야?)
 
앞뒤 사정은 몰라도 지금 모습은 확실히.. 당신에게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이영:크흠... 잘 어울리는 걸로 다 하죠. (대충 손가락을 휘저어 전부 다 사겠다고 말해버린다.)
 
나한:아니, 이걸 언제 다 발라요.
 
이영:바를 일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나한:(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라서 포장하는 직원을 둔다)
 
 :1d4 해봅시다~~
 
나한:3
 
쇼핑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요!
 
약간 지친 김에, 두 사람은 프라이빗 룸 내부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서 잠시 쉬고 가기로 합니다.
 
VIP들을 위한 카페 시설은 찻집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서재 안에서 음료도 제공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다양한 서적들이 구비되어 있고, 큼지막하고 편안한 가죽 소파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습니다.
 
이영:난... 아이스크림.
 
나한:책.
(관심을 보인다)
아, 아니..전 커피요.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두사람 앞에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놓습니다.
 
이영:(바닐라 선데 냠..) 아까 바른 립스틱 예쁘다.
 
 :책을 보려면.. 자료조사 판정.
 
나한:그런 색은 처음 발라보긴 했는데...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이영:잘 어울려.
 
나한:(책장 못넘겼다)
 
패션 잡지가 잔뜩 놓여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가죽 패션 특집 기사가 잔뜩 실려 있네요!
 
나한:요즘은 가죽 옷이 엄청나네요.
 
이영:(나한 물끄러미... 보다가 위아래로 훑어본다.)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나한:이영 씨가 입으면 카우보이 같을 것 같아요.
 
이영:... 안 어울릴 거라는 얘기지?
(아이스크림 떠서 입에 넣어주려고 들이민다.)
 
나한:재미있기는 할 것 같은데…
(아이스크림을 적처럼 바라보다가 한 입 먹는다)
 
이영:(나한이 먹고 난 스푼을 문다.) 재미...
 
나한:이런 거… (술 달린 자켓을 가리킨다)
 
이영:(들여다보더니 조금 웃는다.) 재밌긴.. 진짜 재미있겠다.
할로윈처럼?
 
나한:할로윈에는 좀 더 파격적인 분장을 해야죠.
죽은 카우보이의 망령…같은 걸로.
 
이영:...
 
나한:(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넘겨본다)
 
이영:나한은 뭐 할건데?
 
 :재판정 해볼까요?
 
나한:(도전)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일해야죠.
(딱 잘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가십 페이지에 이영에 대한 기사가 나 있습니다.
 
나한:(익숙한 이름이 보이자 멈칫한다)
 
이영:에이... 재미없게.. (몸을 물리는 바람에 내용을 못 본 채로 아이스크림이나 마저 먹는다.)
 
나한:(내용을 읽어보자)
할로윈은 말일이에요. 항상 바쁜 시기죠.
 
이영과 이영의 가문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는데, 가문의 각종 사업을 분석한 내용입니다.
 
나한:(휴가를 낸 직원들을 대신할 알바도 뽑는 시기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은 칭찬 일색입니다만..
 
[ 하지만 이 정도의 재력이라도 모든 불행을 막아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가문에서 꾸준히 일어나는 불행한 인명 사고는 모두의 탄식을 불러 일으킨다. 충분한 돈이 있다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한 이들에게, 언제나 '충분한 돈'은 없다. ]
 
나한:(승승장구 하는군…)
(그러다 마지막 문단을 읽고선 조금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영 씨 얘기도 있네요.
 
이영:내 얘기?
난 가죽 자켓 입은 적 없는데.. (미간을 찌푸린다.)
 
나한:사업과 스캔들, 그런 사람들에게 얽힌 불행에 대한 이야기…
 
이영:이런. 가십이군. (뚱한 태도로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는다.)
 
나한:언제나 가십이죠.
 
이영:(어깨를 으쓱인다.)
 
나한:이 사진 잘 나왔네요. (잡지에 실린 이영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영:흠. 실물이 낫지 않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웃어보인다.)
 
나한:(비교해본다)
(외모판정 부탁)
 
이영:
외모
기준치: 80/40/16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반짝)
 
나한:흐으음…
네, 그렇네요.
 
이영:헤헤.
 
나한:생기있어보이고.
 
이영:후후.
(머리를 쓸어올린다.)
 
나한:…아니…취소.
 
이영:왜!?
 
나한:갑자기 잘생긴 척을 해서요.
 
이영:잘생긴거지.
 
나한:조금 달라요.
 
이영:뭐가 다르지...
 
 :1d3!
 
나한:3
 
이제 백화점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귀금속 매장을 볼 차례입니다.
 
물론 더 전문적인 매장에서 둘러볼 수도 있겠지만, 프라이빗 룸에 준비된 상품들은 이미 가치가 충분해요.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설사 질 나쁜 물건을 내놓는다해도 나한에게는 그것을 구분할 재간이 없죠.
 
나한:(이영이 향하는 곳에 놓인 물건들을 보고...)
... ...이건 볼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다이아와 큐빅도 구분 못하는 눈)
 
흰 장갑을 낀 직원들이 준비된 물건들을 테이블에 펼쳐놓습니다.
 
이영:왜? (맨손으로 하나 톡 건드린다. 작은 루비와 사파이어가 섞인 목걸이를 가리키자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나한이 착용하도록 돕는다.)
 
조명 아래 찬란히 빛을 내뿜는 보석들 사이로 가느다란 브로치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한:네? 어어, 아니. (얼결에 있던 귀걸이도 목걸이도 뺏기고 착용하고 있는 모습)
 
이영:원석보다는 금속이 더 잘 어울리긴 해. (갸웃..)
 
나한:... ...눈 옆에서 반짝이는 게 느껴져요.
 
이영:(순서대로 하나씩 짚어내자 직원들이 각기 다른 귀금속을 가져다 댄다.)
예뻐.
 
나한:...이런 건 정말 못 하고 다닐 것 같은데...
 
이영:흠, 그럼... (손짓하자 직원들이 보석류를 물린다. 새로 세팅되는 것들은 원석의 비중이 적은 대신 투명한 보석이 작게 박힌 것들이다.)
 
나한:(마법사처럼 움직이고 있어)
(하지만 이건 좀 괜찮을지도, 하고 보는 중)
 
직원:백금에 다이아 세팅입니다. (케이스에 든 목걸이를 들어 보여준다.)
 
나한:(우뚝)
 
이영:그거 괜찮네요. (고갯짓한다.)
 
나한:(내...연봉보다 비쌀 것 같아.)
잠시만요, 잠시만요.
 
직원:(목에 걸어주려 다가가다 말고 멈춘다.)
 
나한:(정말로 목에 다이아가 걸리기 전에 급하게 손짓을 하며 눈에 띄던 브로치로 다가간다) 이건 뭔가요?
 
이영:(다시 고갯짓.)
 
안타깝게도...
 
나한:(걸려버렸어?)
 
목걸이를 걸어주던 직원은 다시 제 할 일로 돌아가 나한의 목에 목걸이를 얹고, 다른 직원이 나서서 브로치를 꺼내 들고 옵니다.
 
나한:(걸렸어)
 
직원:유래가 깊은 브로치인데, 안목이 좋으시네요. 세팅된 루비는 아프리카 산으로, 재앙에서 사람을 보호해준다는 이야기가 얽혀있습니다.
 
나한:(스토리가...마음에 든다.)
(재앙...)
 
직원:이전 소유자 분께서 피습사건에서 살아남으셨던 것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반짝반짝 웃어보인다.) 착용해 보시겠어요?
 
나한:(잠깐 고민하다가...) 아뇨, 저 말고 이 사람한테. (이영을 가리킨다)
 
이영:(갸웃..) 나?
 
나한:사업가잖아요.
 
이영:(가만히 미소짓는다.) 나한테는 항상 행운이 따르는데.
나보다는 나한한테 필요한 물건 아닐까..
 
나한:운전하는 꼴을 보니 사고나서 죽겠던데.
 
이영:(풋 웃는다.) 그러고도 아직 멀쩡해.
 
나한: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부분이 불길해요.
 
이영:(손을 내밀어 받은 브로치를 내려다본다.) 루비인 점에서 합격이야. (나한에게 다가가 브로치를 달아준다.) 네가 가져줘.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응? (고개를 기울여 시선을 맞추며 웃어보인다.)
 
나한:(빨간 보석... ...하고 가만히 브로치를 들여다보다가)
효험이 없으면 반품해도 되나요?
 
이영:이런... (직원을 돌아본다.)
 
직원:(곤란한 미소~)
 
나한:(불만...)
 
이영:반품은 나한테 해야겠는데?
 
나한:그럴게요.
 
이영:그래. (가만 내려다보다 한 걸음 물러선다.) 예쁘다.
 
나한:(목에 걸린 목걸이를 어색하게 매만진다.)
... (전에 받은 건 전부 처분했는데...)
 
이영:... 이제 정말 돌아갈까? (에스코트하려는 듯 팔을 내민다.)
 
나한:아, 네. 시간도 늦었을 것 같은데. )
 
이런 선물 받는 건 좋아하지 않는 거 알면서, 굳이 애써 쥐어주는 모습이 이상합니다.
 
나한:(팔에 손을 얹는다)
 
채워주려는 것처럼 다양한 선물이 배송 예약되고, 나한에게 걸쳐졌습니다.
 
나한:(빈 옷장을 다시 가득 채우려는 것처럼 말이야.)
 
쇼핑몰에서 나오면 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습니다.
 
오늘 산 물건들은 내일 나한의 집 앞으로 배송될 예정입니다.
 
다시 나한을 차에 태운 이영은 유독 말이 없습니다.
 
나한:(마찬가지로 차 바깥만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다. 이제 진짜 끝. 내일부터는 다시 평범한 일과를 수행해야 한다.)
 
느리게 지는 해의 움직임을 셀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말은 하지 않지만 당신도, 그도 알고 있는 겁니다.
 
이 소개팅에 애프터는 없습니다.
 
헤어진 연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차는 해를 쫓아 도로를 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한의 집 앞에 도착합니다.
 
차를 멈춰세운 이영은 주행을 계속하기라도 하려는 듯 앞만을 보고 앉아있습니다.
 
나한:(우연이라기엔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었지. 마침내 차가 익숙한 동네로 들어서고, 집 앞에 멈춰서면 가방을 챙겨 내린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난폭운전은 삼가시고요.
 
이영:(조금 늦게 돌아본다. 말을 찾는듯 입을 달싹이다가, 이어진 말에 웃는다.) ... 잘 지내. 나한.
 
나한:(이어진 인사에는 약간의 미소로 화답한다.) 이영 씨도요.
(더 시간을 끌면 어색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목례를 하곤 건물로 들어간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인 거겠죠.
 
마지막의 마지막 이별에도 그는 당신을 잡지 않습니다.
 
당신의 익숙한- 낡은 문이 닫히고, 문 밖에서 자동차 배기음이 들렸다 멀어집니다.
 
나한:(삐걱이는 문을 열고, 미묘하게 쿰쿰한 냄새가 남아있는 듯한 집에 들어서면...그제야 꿈에서 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틀간 그에게 얼마나 시달렸던가요!
 
나한:(피곤...) (가방을 소파에 툭 던져놓고, 침대에 엎어져 몸을 묻는다.)
 
익숙한 곳에 돌아오자 현실감이 몰아닥칩니다.
 
미뤄두었던 피로가 쏟아집니다.
 
나한:(항상 어깨에 지고 있던 짐이 우수수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과 함께...끔벅이며 눈을 감는다.)
(정리는 내일 하자. 그래, 내일...)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온 몸을 짓누르는 피로에 눈이 감깁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죠. 일단은 .. 전부 다 내일..
 
[ Close to You ]
 
눈을 뜨면 그곳에는 익숙한 천장이 있습니다.
 
곰팡이가 핀, 누수로 얼룩지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허름한 당신의 집입니다.
 
하지만 문을 열어보면 그곳에는 어제 이영이 선물한 물건들이 복도를 채우고 있고, 창문 틈으로는 햇살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 번 일어났던 일은 그렇게 흔적을 남깁니다.
 
나한:으어... ... ... (이렇게 많았었나? 별 것도 안 본 것 같은데.)
 
한 번 채워졌던 감정도 그래요.
 
나한:(우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전에 급하게 상자를 집 안으로 마구 밀어넣는다)
 
우리 누구나 아무런 일 없었던 듯이 행동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런 심란함 속에, 나한은 이틀이나 확인하지 않아 울려대는 음성사서함의 수신음을 듣습니다.
 
나한:아, 전화.
(수화기를 들고 사서함 버튼을 누른다.)
 
세 개의 메시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발신인은 전부...
 
광장에 매달아버려야할 주선자입니다!
 
나한:(죽여버려)
 
[ 나야, 누군지 알지? 그게, 사실은 내가 오늘에야 너희 둘이 사귀었단 이야기를 들었어. 이영씨도 참! 실은 내가 이영씨한테 상대가 누군지 얘기를 해줬거든? 그런데도 걔는 한 마디도 싫다는 얘기를 안 했다니까? 정말 미안해… 나도 이런 줄은 몰랐지. 일단은 잘 다녀오고, 너무 화내지는 마. ]
 
나한:거짓말...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빠드득)
...알았다고?
(귀를 의심하듯 수화기를 쳐다본다)
 
- 삐이 --
 
[ 연락이 없어서 걱정돼서 전화했어. 이영씨한테도 연락해봤는데, 걔는 휴대폰도 있는 애가 대답이 없더라?! 설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오죽하면 내가 걔 친구한테까지 전화를 다 했겠어! 이건 좀 재밌는 얘긴데, 너랑 헤어졌을 때 걔 꼴이 말이 아니었다더라. 자세한 건 돌아오면 이야기해줄게… ]
 
- 삐이 --
 
나한:(들리는 소리가 전부 믿기지 않는 말 뿐이라서, 아예 협탁 옆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수화기를 내려두고 듣는다)
 
[ 이영씨한테 연락은 받았어. 지금쯤 피곤해서 자고 있으려나? 시간될 때 전화 줘! 다시 사귀지는 않기로 했다면서? 윤이영 걔는 누가 봐도 너를 좋아하는 거 같던데, 내가 다시 연락해 보라니까 정색하더라. 이상하지? 걔는 아마 네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나 봐. 그래서 이건 내 생각인데, 너도 괜찮으면 걔를 한 번 찾아가 봐. 혹시 너도 괜찮았다면 말이야.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소는 말야…. ]
 
세번째 메시지가 끝납니다.
 
나한: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은 누구한테나... ...
 
어쩐지 전부 이해 가지 않는 내용입니다.
 
나한:(반사적으로 주소를 필기한 메모패드를 노려본다)
... ... ... (그러더니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좁은 집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다시 애꿎은 메모패드만 노려본다.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찾아가라고? 염치나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는...)
(금방 몸을 일으켜서 찬물로 세수를 해 내고, 나갈 준비를 한다. 이영이 선물한 옷은 아니고, 원래 있던 수수한 옷으로...)
손수건만 받고 오는거야.
 
맞아. 손수건을 돌려받지 못했다구요.
 
나한:세탁비도.
 
세탁비도!
 
생각해보면 청구할 게 하나 둘이 아닙니다.
 
나한:(메모패드의 주소를 죽 찢어 뚜벅뚜벅 집을 나선다.)
 
이영의 집 주소는 런던 시내 중심가입니다.
 
... 이사도 하지 않았는지 살던 곳 그대로네요.
 
붉은 벽돌로 쌓아올리고 장미 화단이 아름답게 가꿔진 고급 맨션.
 
나한:(막상 길을 나서고 보니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정말로 택시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뚜벅뚜벅 걸어갔음)
 
뚜벅뚜벅 걸어 가는 길이 익숙합니다.
 
그렇게 정원 앞에 서면...
 
초인종이 나한의 눈 앞에 버젓이 붙어 있습니다.
 
이 초인종을 누르려면 역시 용기가 좀 필요할 것 같군요.
 
나한:... ... ...
(멈칫)
...
(하루아침만에 다시 찾아왔어...)
(초인종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눈을 꾹 감고 누른다)
 
초인종을 누르려면 바로 그 때.
 
이영의 집 문이 열립니다.
 
나한:(우뚝... ...)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미모의 여성으로...
 
가운 차림의 이영이 그의 마중을 나왔습니다.
 
피곤해보이는 얼굴로 문가에 기댄 그에게 여성이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박힐듯 선명하게 들립니다.
 
여자:옷 빌려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돌려줄게.
 
따라 붙는 웃음 소리는 어찌 환한지.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그의 셔츠는 누가 봐도 품이 넉넉해 보입니다.
 
나한:(괜히...왔나? 하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온다)
 
집을 빠져나온 여성은 입구에서 나한을 맞닥뜨리고,
 
여자:아, 혹시 그 청소하시는 분인가? 죄송해요, 제가 길을 막았죠.
 
하며 빠르게 문에서 멀어집니다.
 
나한:... ...아뇨, 별 말씀을. (하고 저절로 문간에서 비켜난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이영은 여인의 목소리에 비로소 뒤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이영과 나한의 눈이 딱 마주칩니다.
 
이영:... 나한?
 
나한:(순식간에 자신이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머쓱해져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한 발 물러난다.) 어-...음.
 
이영:자, 잠시만, 방금은 오, 오해.. (뛰쳐나와 손목을 잡는다.)
 
나한:아뇨, 오해랄 것도...
 
이영:아니, 정말로, 오해야... 진짜로,
 
어쩐지 필사적으로 변명합니다. 왜?
 
나한:(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왜?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다른 여자가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이영:그, .. 들어와서 얘기하면 안될까. (우물쭈물대다 손목을 잡아 이끈다.)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냐..?
 
나한:(입을 달싹거리다가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손수건만 받으면 돼요.
 
이영:손..손수건.
 
나한:어제 빌려드린거요.
 
이영:응, 내 코피 막은거, 알아..
 
나한:... ...버리셨어요?
 
이영:일단 들어와, 나한..
아니, 세탁해서..
잠시만..
(황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이영이 열어둔 문 안쪽은 낯익습니다.
 
사귀던 시절 매일같이 들락거리던 곳이니까요.
 
나한:(이 동네에 오는 게 익숙하던 시절도 있었지...)
 
입구 근처 응접실에는 비워진 커피잔이 둘 놓여있고, 이영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나한:(현관에 멀뚱하게 서 있다가...이영이 나오는 게 늦어지면 한 발씩 들어간다)
없으면 그냥 갈게요. 나중에 주셔도...
 
들어서 보면, 집 안은 변한 게 거의 없습니다.
 
나한:버리셨으면 어쩔 수 없고요... (하고 중얼거리기도 함)
 
낮은 신발장 위에 놓인 두 사람의 사진 액자마저 그대로입니다.
 
안쪽에서는 뭔가 덜걱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영이 드레스 룸에서 나와 서재로 들어갑니다.
 
이영:안 버렸어, 어디 넣어 뒀는지가.. (후다닥 사라짐)
 
나한:...곧장 어제 일인데요? (사진 액자를 보고 잠시 멈춘다. 이게 아직도 여기에 있다고?)
 
이영:(서재 안쪽에서 크게 대답한다.) 배에 두고 온 짐을 비서가 그냥 정리해버려서 그래!
 
나한:(이거...하고 물어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네에, 하고 대답한다)
 
웨일즈에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타이머를 맞춰 세워둔 카메라가 찍히자마자 뒤로 넘어가서 망가졌던 그 때요.
 
나한:(커피잔은 애써 외면하며...응접실 소파에 가지런히 앉았다)
 
이영:찾았다... (깨끗하게 세탁된 손수건을 들고 온다.)
 
응접실 테이블에는 사진 앨범이 펼쳐져 있습니다.
 
표지 모서리에 손때가 묻은, 익숙한 것입니다.
 
나한:아, 찾으셨나요. (도로 일어나...다가 눈을 끔벅이며 앨범으로 시선이 향한다)
... ... ...
(특이취향?)
 
이영:(입술을 꾹 깨물며 손수건을 쥐었다가,) ... 커피 마실래? 심리상담가가 다녀가서 난 마셨는데.. (슬쩍 몸으로 가리며 앨범을 덮는다.)
 
나한:사진...안 치우셨더라고요.
그것도 비서 분이?
 
이영:...아.
(짧게 고개를 젓더니 의자에 앉는다.)
 
나한:(이상한 사람이다...)
 
이영:...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3년 전 그날에도, 그 이후로도, 난 단 한 순간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 없어.
 
나한:... ...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가늘어진다.)
헤어지자고 한 건 이영 씨인데요.
전 그 길로 집에 갔고요.
 
이영:그땐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 지금도 여전히 틀린 결정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 옆에 있으면 위험해져.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어.
 
나한:그게 무슨...?
 
이영:(눈썹을 늘어트린채 마주본다.)
말 해도 안 믿기겠지만, 내 행운과 재력은 산 거야.
말 그대로 거래된 거야.
 
나한:(문득 캘린더에 적혀있던 각종 경조사를 떠올린다.) 그 리스크를 다른 사람이 지게 되나요?
 
이영:그에 따른 부수적인... 부작용이지. (시선이 잠시 너를 떠난다. 옮겨간 곳에는 이영의 조모부가 담긴 사진 액자가 있다.)
 
나한:(시선을 따라간다.) 하지만 매번 결혼은 하시잖아요.
조부모님도, 이영 씨의 부모님도...
 
이영:내가 겪게 될 불행한 죽음에 주변사람들까지 휘말려. 내가 제물로 바쳐질 때 까지 내게는 행운이 따르지만, 주변 사람들은 보장할 수 없어.
(고개를 젓는다.) 우리 부모님은 해당되지 않아.
나, 그리고 조부님.
나는 네가... 그런 일은 겪지 않았으면 했어. 조모님은 조부님의 곁에 남기를 선택하셨지만..
 
나한:불행한 죽음. (기묘하게도 멀게 느껴지는 단어를 되뇌여본다.)
 
이영:3년 전 그 날까지는 나도 몰랐어. 우습지. (헛웃음이 흩어진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것 하나만은 오해하지 말아줘. 그리고 너는 네 운명대로 살아. 덜 불행한 끝을..
 
나한:그거 이상하네요. 저는 이영 씨랑 헤어진 뒤부터 점점 불행해졌는데요.
 
이영:...
그것도 나 때문일까.. (미간이 좁혀진다.)
 
나한:그건...오만한데요.
영국 벤처 시장이 축소된 게 본인 탓이라는 거에요?
 
이영:(조금 웃는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한:(눈을 느릿하게 끔벅이다가) 저랑 헤어진 날 꼴이 말이 아니셨다는데, 정말인가요?
 
이영:... 별 얘길 다 했나보네. (제 얼굴을 쓸어올린다.)
주에 두 번씩 심리치료가 필요했어. 지금은 달에 두 번.
괜찮아졌어.
(애꿎은 제 손만 만지작거리며 내려다 본다.)
 
나한:...그럼 제가 이영 씨를 불행하게 한 건가요?
 
이영:(말문이 막힌듯 당황한 얼굴로 본다.)
그렇, 그렇게 말 할 수는..
내 선택이었는데..
 
나한:(그 말에 슬쩍 한 쪽 입꼬리를 올린다.)
저 다음 달 월세 못 내요.
 
이영:응?
 
나한:그럼 아마 이번엔 정말 방을 빼야 할 거고, 그렇게 되면 변변하게 머무를 공간도 없어서 런던의 홈리스로 전락하겠죠. 아마 한 달 안에 죽을 거에요.
 
이영:그, 그건..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든..
 
나한:한 달 보다는 오래 살게 해주실거죠?
 
이영:...
(얼굴이 일그러진다. 울상이된 얼굴을 제 양 손에 묻는다.)
 
나한:... ... ...우, 울어요?
왜 울어요? 제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토닥인다)
 
이영:(토닥여주는 팔에 매달린다. 고개를 그 어깨에 묻고 숨을 연거푸 몰아내쉰다.) 내가, 내.. 내가 너무..
내가 너무, 멍청이처럼..
얼간이처럼, 굴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푹푹 내쉰다. 단단히 쥔 팔을 놓고 허리로 파고든다.)
 
나한:(애처럼 운다.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여 기대고 머리를 버석버석 쓸어준다.)
... ... ...
아, 아니. 잠깐. 그만 울어요. 저도 할 말 있어요.
아직 할 말 안 끝났어요!
 
이영:(축축한 얼굴을 든다.) 응..?
 
나한:... ...제가 정말로 월세는 커녕 집까지 부를 택시도 못 잡는 처지이긴 하지만.
당신을... ...그러니까 이영 씨의 재산이나...권력 같은 거랑은 상관 없어요.
 
이영:(훌쩍..)
그 말은..
 
나한:...그런 거랑 관계없이...당신을 좋아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유람선이랑 백화점 같은 건 빌리지 마세요.
 
이영:날... 사랑해? 내가.. 그렇게 개자식처럼 굴었는데도..
 
나한:사랑하는 거랑 증오하는 거랑 다른 항목으로 분류했어요.
 
이영:...
그래도 날 사랑한다는 거지. (결국은 헤쭉 웃는다.)
 
나한:... ... ...
...네.
 
이영:사랑해, 나한.
 
나한:당신 울기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어요.
심리상담사는 계속 필요할지도...
 
이영:(허리를 안은 그대로 당긴다.) 이제 없어도 괜찮아.
내가 얼간이에 개자식이어도 나한이 사랑해주는데... 굳이?
 
나한:... ... (어깨에 고개를 반만 묻은 채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다가 입을 연다.) ...절 왜 사랑해요?
 
이영:나를 힘들게 해서. (어깨에 묻은 고개 사이로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래도 좋아서..
 
나한:(문득 이쪽은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것 같아서 느릿느릿 입을 뗀다.)
저는... ...당신이 조금 바보같아서 좋아요.
...일을 잘하고, 자신감이 있고, 제가 멋대로 구는 걸 두고 봐서요.
그런 사람 중에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당신 뿐이라서 좋아요.
 
이영:나 얼간이이길 잘 했네... (어깨에 묻은 고개를 비비적거린다.)
(한숨처럼 뱉은 숨에 웃음기가 묻어난다. 이렇게 말해주는 게 기뻐서 눈물이 조금 나.)
.. 사랑해.
 
나한:(비비적거리는 모습이 꼭 강아지 비슷해 보여서 작게 웃는 소리를 내며 다시 턱을 올린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됐잖아요.
 
이영:그땐...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조금 후회되긴 하지만... 그때는.. 내가 없어도 잘 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웅얼댄다.)
 
나한:잘 살긴 했어요.
 
이영:네가 나 아니면 안되는줄 몰랐지..
잘 살았어? (고개 번쩍 든다.)
 
나한:네. 집안이 몰락해서 연애같은 걸 할 겨를이 없었죠.
 
이영:아니잖아...
 
나한:(눈을 조금 옆으로 굴린다.) ...당신만한 남자가 없기도 했고요.
 
이영:...(히죽)
(허리를 감싼 팔을 당겨 무릎에 앉힌다.)
 
나한:...어제...
그렇게 헤어지고서 제가 안 왔으면, 영영 이렇게 살려고 했어요?
앨범도 펼쳐두고, 사진도 올려두고?
 
이영:... 어쩔 수 없잖아.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만 보고싶었던 거였는데..
욕심은... 낼 만큼 냈으니까.
 
나한:수작질. (씩 웃으며 코 끝을 툭 친다)
 
이영:(입꼬리를 올려웃더니 손가락을 앙 문다.)
 
나한:...안돼요.
오늘은 정말로 일이 있어요.
 
이영:므슨?
 
나한:아르바이트.
 
이영:(혀로 손가락을 핥아올린다.)
 
나한:안돼.
(손가락을 쑥 빼서 볼에 슥 문지른다)
 
이영:엣.
(눈을 살짝 찡그렸다 뜬다.) 진짜 안돼..?
 
나한:... ...
일은 8시에 끝나요. (문지른 자리에 가볍게 입맞춘다)
 
이영:(입 맞춰준 쪽으로 고개가 기운다.) 집에 있을게.
 
나한:...아, 아니. 안돼요.
 
이영:응?
 
나한:... ... ...
...방음이...잘 안돼서.
 
이영:...
데리러 갈게.
 
나한:난폭운전은 하지 마세요.
아마 그걸로 일찍 죽을테니까.
 
이영:(슬쩍 웃는다.) 말 잘 듣잖아 나.
 
Gladly Blind.
 
END 3
 
붉은 담벼락까지 장미 덩굴이 타고 올랐습니다.
 
얼마전 입양한 강아지는 나무 뿌리 근처를 헤집어 놓았어요.
 
퇴근을 마치고 집안에 돌아왔더니 이 양반은 또 아무데나 양말을 벗어 두었습니다.
 
한마디 잔소리를 해주려는데, 안경을 쓴 이영이 설렁설렁 문앞에 강아지와 함께 마중을 나와 멋쩍게 웃으며 입을 맞춥니다.
 
이영:왔어? 미안, 못 들었어.. 얘가 놀아달라고 조르고 있었거든.
 
그런데 안경은 왜 쓰고 있냐고 물으니, 일이 끝나지 않아 집까지 들고 왔다지 뭐에요.
 
이러니 오늘도 혼내기는 글렀습니다. 이영은 영문도 모르고 마냥 좋다며 곁의 강아지와 함께 나한에게 치대기 바쁩니다.
 
이제 이 넓은 집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사정을 듣고 이 이야기의 종말이 곧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당신을,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입니다.
 
천국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고, 두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함께 살아가는 매일 눈을 가리고 끝나지 않을 데이트를 이어갈 테니 말입니다.
 
당신과 나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당장의 행복을 아낄 정도로 현명하지 못해 천만다행입니다.
 
파란 벽지 위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의 나한과 사진 밖의 나한은 모두 이영이 선물한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이영의 어머니가 물려준 반지를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인생은 그렇지 않던가요?
 
당신도, 이영도, 기꺼이 서로를 위해 눈 앞을 가릴 각오가 되었습니다.
 
 :KPC ?, PC ?
생존 보상 이성치 1D4, 동반 생존 보상 이성치 1D3
두 사람 주변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이어집니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것보다는 자주, 심하게요.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일들을 견뎌냅니다. 어쩌면 모든 동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수 있었던 건, 왕자와 공주가 남들보다 조금 더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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