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1분 중 20분
2022
시즌 4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1화 “연상녀에게 혼쭐나는 어이없는 삶”
출연: 어의, 최일, 이조판서
장르: 실험극
프로그램 특징: 어이없음

하이웨이 패스파인더

 

 

더보기

 

 
CoC 시나리오
 
<하이웨이 패스파인더>
 
Written by. 헤르츠
 
ver. NOTICE
 
----------------------------------
 
날씨가 유난히 화창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는 소소한 점을 제외하면 어제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날입니다.
 
오늘도 라티나는 평소처럼 등교했습니다. 도로시의 배웅을 받으면서요.
 
라티나의 자리는 교실 맨 뒤, 두 명씩 이루어진 분단에서 유일하게 혼자 앉는... ...
 
라티나:(손바닥에 묻은 익숙한 색의 털을 톡톡 털며 교실로 들어선다.)
 
어라? 라티나의 자리 옆에 난데없이 책상 하나가 생겼습니다.
 
라티나:...?
(그 주변을 탐색하듯 빙글 돈다.)
전학생이라도 오는 건가.
 
라티나가 빙글 도는 순간,
 
위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들리더니...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형광등이 라티나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반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고, 우당탕 소리가 들리는 순간...
 
라티나:...!
 
--번째는 안돼.
 
누군가가 라티나를 잡아채 뒤로 끌어당깁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목소리만이 명징하게 라티나의 귀에 꽂힙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면, 바로 조금 전까지 라티나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유리창이 완전히 박살나 있습니다.
 
놀란 반 아이들이 라티나에게 괜찮냐며 안부를 묻기 시작하네요.
 
라티나:(반사적으로 머리를 가리려고 했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제 앞의 광경을 본다.)
(괜찮다고 중얼거리는 것은 뒤로 하고, 어리둥절하게 제 뒤를 바라본다.)
분명 누가... 당겨준 것 같았는데.
 
라티나가 뒤를 돌아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서 있습니다.
 
교복 명찰에는 [노아 양]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네요.
 
라티나:...?
 
그는 라티나와 마주치자 씩 웃어보입니다.
 
라티나:누구...세요?
전학생?
 
질문을 던지는 순간,
 
라티나는 아찔한 두통, 그리고 어떤...저림을 겪습니다.
 
라티나:아, ....
 
가슴을, 심장을 할퀴고 가는 듯한 고통. 목이 먹먹한 감각...
 
이성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노아:얼마 전부터 달랑거리긴 하던데, 큰일날 뻔 했네요.
 
라티나:... ...(눈을 꿈뻑거린다. 제 앞의 이 사람은 몹시도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노아:...? (어라? 하는 듯한 미소를 짓더니 라티나의 눈 앞에 손을 흔든다)
...헉, 혹시 너무 놀라서 일시적인 실어증이... ...
1
 
라티나:...말 할 줄 압니다. (놀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쑥 반말을 건넬 뻔했다.)
 
노아:그거 다행이네요. 혹시 당기는 게 늦었나 했어요.
 
라티나:어떻게 아셨습니까?
저거. (콕 잔해를 가리킨다.)
 
노아:안 건 아니고...보여서요. 환기를 시켜놔서 그런지 계속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움직일 생각을 않길래. (잔해를 한 번, 라티나를 한 번 본다.)
 
라티나:...(꿈뻑꿈뻑)
 
노아:다친 데가 없다니 다행이에요. 곧 조례시간이니까, (앉을까요? 하며 태연하게 라티나의 옆자리에 앉는다)
 
라티나:...네, 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앉는다. 앉았다가..고개를 퍼뜩 들어 옆을 본다.)
(뭐가 이렇게 자연스럽지?)
오늘 전학오신 겁니까?
 
뭘 자연스럽게 앉고 있어, 이 사람?
 
라티나:(멀뚱히 본다.)
 
그러나 라티나 이후로 등교한 친구들도, 교실에 있던 친구들도...
 
이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전혀 이상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라티나:...?
 
노아:전학...이요? (되려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되묻는다)
 
라티나:네. (덩달아 아리송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어제까지 제 옆엔 책상이 없었으니까요.
 
노아:저...노아에요, 라티나.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눈썹을 비튼다)
농담도. (그러더니 금방 웃으면서 손을 내젓는다)
 
라티나:...................................(농담을 해도 농담으로 안 받아들여진 경험이 3282398번이라 이 상황을 뿌듯하게 느껴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무표정)
 
드디어 신기술 <농담>을 익힌건가?
 
라티나:(나중에 써먹어야지.)
...전 진심인데요.
절...알고 계십니까?
 
노아:... ... (라티나의 이어진 말에 조금 심각해진다.) 이 반응... ...
진짜로 저 모르세요?
정말...정말정말로?
 
라티나:네. 처음 봅니다만.
(명찰을 흘끔 읽는다.) 이름이 노아라는 건 알겠네요.
 
노아:...혹시 단기기억상실증?
 
라티나:...단기어이상실증 정도는 진단받을 것 같습니다.
 
라티나는 정말로 이 사람을 처음 보는데 말이죠.
 
상대방이 뭐라고 답을 하려는 순간,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조례를 시작합니다.
 
노아:농담 연습한 거라면 재밌었어요. (하고 소곤거리더니 금방 앞을 본다)
 
라티나:(표정이 뚱해진다. 그렇게 농담하려고 할 때는 안 되더니...)
(조례 중에도 눈을 도록 굴려 제 옆의 묘한 전학생(멋대로 명명했다!)을 관찰한다.)
 
농담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게 진짜라더니...그런건가?
 
관찰을 판정해볼까요?
 
라티나:(빠안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는 커녕 길에서도 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전학생이라기엔 아무도 이 사람을 소개해주지 않고,
 
태연하게 책상 서랍에서 노트와 교과서를 꺼내기까지...
 
라티나:.............
(머릿속 반듯한 노트에 척척 글자를 쓴다.)
(결론!)
(완벽하게 처음 보는 사람!)
 
<완벽하게 처음 보는 사람!>
 
라티나:(※그런데...다들 뭐가 이렇게 태연해?)
 
<특징 : 동년배에 비해 키가 크다. 눈이 녹색.>
 
라티나:(슥슥, 머릿속 노트가 채워진다.)
 
노트에 반듯반듯하게 생각을 정리해놓고 나니...
 
라티나 그레이. 이제야 알겠습니다...그래...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이야.
 
라티나:(주먹 꽉.)
(끄덕.)
 
세상이 라티나에게 거대한 구라를 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라티나:...다들 날 속이고 있나 봐. (중얼)
아니면...
(손을 들어 오른쪽 뺨을 작게 쳐 본다.)
 
쉬는시간에 틈을 봐서 저 사람을 추궁하는 게 좋겠어요.
 
 
노아:(눈 동그랗게 뜨고 본다)
 
감각이 있습니다.
 
아프진 않았지만.
 
라티나:(뺨에 옅은 손자국을 붙인 채로 동그란 녹색 눈을 본다.)
쉬는 시간에 가만두지 않을 테다. (혼잣말)
 
쉬는시간에...가만두지 않을테다.
 
쉬는 시간에...
 
라티나:(<감각은 있음. 꿈은 아닌 듯?> 항목도 노트에 적는다.)
 
쉬는시간에... ...
 
라티나:(쉬는 시간에...)
 
마침내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라티나:(꿈뻑...잠시 졸았다가 종소리에 눈을 확 뜬다.)
 
학생:(뒷문으로 다른 반 학생이 고개를 빼끔 내민다) 노아, 문학 선생님이 찾아! 뭐 도와드린다고 했다며?
 
라티나:...(다들 뭐가 이렇게 자연스러워? 할 셈도 없이 '노아'를 뺏길 위기인 것 같다.)
 
누군가가 선수를 치는 것 같습니다.
 
노아:아, 맞아요. 바로 갈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일어난다)
 
라티나:...!
(갑자기 자리에서 따라 일어난다.)
문...학 선생님께 가십니까?
 
노아:(깜짝) 네...에. 도서관에 비치할 책이 왔다고 해서. 옮기는 거 도와드리기로 했거든요.
 
라티나:저도 같이 가죠. 마침 볼일이 있었습니다.(방금 꾸며낸 거짓말을 뚝딱이며 말한다.)
 
농담에는 재능이 없어도 거짓말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노아:아, 그럴까요? 손이 좀 부족할 것 같긴 했는데.
 
라티나:(끄덕끄덕) 저 잘 듭니다.
(뭐부터...취조하지? 라는 물음은 마음에 숨긴 채다.)
 
그렇게 두 사람(과 몇몇 학생)들은 문학 선생님의 부탁으로 책을 옮기기로 합니다.
 
라티나:(반듯하게 복도 걷는 중.)
 
일단 같이 가면 물어볼 틈이 생기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라티나:(호시탐탐)
 
웬걸. 문학선생님이 순서대로 책을 나누어주는 바람에 라티나는 완전히 다른 구역의 책을 채우고 있습니다.
 
라티나:......윽.
 
같은 반 학생 두 명과 함께요.
 
라티나:(분한 소리를 내며 책을 채우고 있다. 책 틈으로 이글이글 노아를 바라본다.)
 
이글이글이글... ... ...
 
학생:저기...티나.
 
라티나:네. (시선을 이글이글 노아에게 고정한 채다.)
 
학생:둘이...싸웠어?
왜 그렇게 노려보는...?
 
라티나:.......................(넣던 책을 삐끗한다.)
(홱 고개를 돌려 제게 말을 건 학생을 본다.)
(본인 취조가 불가능하다면 주변인을...........)
 
학생:(움찔)
난 잘못한 거 없어.
 
라티나:잘못했다고 안 했습니다.
...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학생:으응. 뭔데? (조금 긴장 푼다)
 
라티나:...(힐끗 노아 쪽을 보고 몸을 숙이라고 작게 손짓한다.)
(입 옆에 두 손을 대고 소근소근 묻는다.)
 
학생:(몸을 납작하게 숙인다)
 
라티나:...(내가 저 수상이(멋대로 명명했다!2)랑 싸울 정도의 친분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간 제자리겠지.)
 
수상이
 
라티나:노아가 저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가요?
평소에 말입니다.
 
학생:노아가? (잠시 곰곰 생각하더니) 특별히 뭐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둘은 소꿉친구잖아.
 
라티나:아하. (정보 습득 중이다.)
 
학생:뒷담 같은 거 한 적도 없어. 진짜야.
 
라티나:그런 성격이시군...(고개 끄덕인다.)
언제부터 소꿉친구였는지 기억하십니까?
 
학생:그런 성격...? (어쩐지 취조받는 기분에 자세가 공손해진다)
아마도 초등학생 때... ...맞나? 초등학생 때 만났다고 했던 것 같아.
 
같은 반 학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맞아맞아,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라티나:..............뭐가 이렇게 오래 됐지? (중얼거린다.)
 
학생:... ...두 사람 간에 역시 감정의 골이 생긴거니!?
싸웠어?! 대체 뭐 때문에?
 
라티나:...................................아니. 알아야 감정의 골이...(마른세수를 한다.)
...좀 싸웠습니다.
(이러면 당분간은 내가 이상해보이지 않겠지.)
 
학생:세상에... ...절대 그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둘이 원만하게 해결 봐.
 
라티나:... ...네, 뭐... ...(황당함을 담은 눈썹이 까딱 움직인다.)
...노아는 보통 어떤 이미지입니까?
싸우지는 않을 것 같나요.
 
학생:노아? 무던하지, 뭐. 조용하고...착하고...
 
학생2:약간 모범생 느낌인데 공부는 잘 못하지.
 
라티나:(끄덕끄덕 습득 중.)
 
학생:공부 열심히 할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지. (맞장구 친다)
 
라티나:흐음.
 
학생:...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보는거야?
혹시 걔가 보기와는 다르게 무지막지한 쓰레기였니?
 
라티나:...
(오해를 풀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학생:(입 떡 벌린다) 진짜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쓰레기자식이야...?
 
학생2:와...착한 줄 알았더니 뒤에선 아닌가보네...
 
라티나:...뭐. 그건 앞으로 알아봐야겠죠... (뚜둑.)
(책장 사이로 이글이글 푸른 눈을 빛낸다.)
 
학생:...티나...
이런 상황에 미안하지만...
 
라티나:...네?
 
학생:사람을 죽이는 건 불법이야...
 
라티나:... ...압니다. (뚱)
 
학생:다행이다.
 
라티나:(ㅉㅐ릿.)
 
학생3:저기...얘들아.
나도 이런 상황에 미안하지만...
책 정리 좀 해.
 
라티나:.............................예.
(묵묵히 슥슥 꽂는다.)
 
학생:아차; (묵묵히 같이 책 정리한다_
 
다행히 의심은 받지 않고 넘어간 것 같습니다.
 
휴, 들키는 줄 알았네.
 
라티나:(묵묵히 꽂으며 곱씹는다. 머릿속 노트는 꽤 페이지를 채운 셈이다.)
 
배경설정(?)도 어느 정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네요. 만약 저 사람이 정말 소꿉친구라면...
 
왜 라티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라티나:(갸우뚱...)
정말 단기기억상실증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단체 구라? (어머니가 들었으면 기함했을 단어 사용)
아무튼, 본인 취조도 필요하겠어.
 
라티나는 우선 세상의 섭리에 따라 수업을 듣기로 합니다.
 
두고보자.
 
라티나:두고 보자.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이렇게 중요한 날에만 쉬는시간에도 틈 없이 바쁜 것은...
 
2교시가 끝난 후에는 상담부에 불려가서 도움 친구들의 명단을 정리했고,
 
3교시가 끝난 후에는 명찰을 만들었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또...
 
이번엔 진짜 할 일 없다! 라고 생각했을 즈음에는
 
이미 모든 수업이 끝난 후입니다.
 
라티나:노ㅇ.. (까지 말하다가 끌려가는 것이 몇 번째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수업이 끝나 있다.)
 
노아:갈까요? 오늘 남아서 할 일 있어요? (가방을 들며 묻는다)
 
라티나:.........................있었는데...있었는데....(분에 차 있다.)
(고개를 확 들어 수상이를 본다.)
 
노아:? (멀뚱한 얼굴로 쳐다본다)
있었는데...?
 
라티나:... ...크윽...(주먹 꽉)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 기횐가.)
이제 집에 가시는 겁니까?
 
노아:네. 그래서 할 일 없으면 같이 가려고요.
 
라티나:.................좋습니다.
(우당탕 일어나다가 무릎을 책상 모서리에 찧는다.)
...............................~!!.........
 
꽝!
 
노아:우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덩달아 놀라서 멈췄다가) 괜찮아요!?
오늘... ...꽤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라티나:(일? 많다! 정신? 팔렸다! 그리고 그 두 가지에 깊게 연관되었던 녹색 눈의 수상이를 본다. 끙끙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번에는 조심히.)
...일이 많았다면.
협조해 주실 의향은 있습니까?
 
노아:무릎 빨개졌어요... ...멍 들겠다... (딴 소리 하다가)
어-음, 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요?
상담부 일인가요?
 
라티나:(이것까지 알잖아. 떡 벌어지려던 입을 안 들키고 갈무리한다.)
...네, 뭐.
(가방을 챙겨 들고 나란히 복도를 걷는다.)
 
노아:곧 시험기간인데도 바쁘네요. 오늘도 쉬는시간 내내 불려갔었죠.
 
두 사람은 나란히 학교를 나섭니다.
 
라티나:네. 그래서 기회를 몇 번이고 놓쳤죠. (크윽...)
(나란히 교문을 나서며 얄팍한 은신이 담긴 말을 건넨다.)
익명 상담이 하나 들어왔거든요. 제 얘기는 저얼대 아니고요.
 
노아:아하, 그렇군요. 그럼 저도 익명을 지킬게요. (뭔가 결의를 다진 얼굴로 끄덕인다) 무슨 내용인데요?
 
라티나:(흘끗 눈을 굴린다. 너무 티 날까? ...포커페이스의 장점을 믿어보자.)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알고 자신만 모르는 소꿉친구가 생겼다던데요.
 
표정이 없는 게 이럴 때는 꽤 도움이 됩니다.
 
긴장 같은 건 라티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죠.
 
라티나:(포커페이스!)
 
노아:(에...하고 이야기를 듣더니) 그거 혹시 티나랑 제 얘기에요?
 
라티나:........................................아닌데요?
 
노아:(맞구나...)
 
라티나:(걸음 조금 빨리 한다.)
 
노아:(같이 보폭 넓히며) 그거 농담이 아니고 진짜였어요?
 
여름이라 해가 깁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 중에선 바삭한 햇볕 냄새가 나고...
 
정말로 라티나가 이상한 걸까요? 괘씸하게도 소꿉친구를 잊은 게...정말 라티나 쪽인 걸까요?
 
라티나:(열심히 빨리 걷는다. 물감을 쏟은 것 같은 하늘을 괜히 올려다보는 채다.)
... (기억력은 좋다고 자부하는데.)
진짜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노아:진짜면... ...
조금 슬플 것 같지만...
그래도 저랑 같이 하교한다는 건 싫지는 않다는 뜻이죠?
 
라티나:... ...
1분만 대답 고민해보겠습니다.
 
노아:... ... ... (꿀꺽)
... ...제가...싫으...신가요?
 
라티나:딱히 싫어할 이유는 없죠.
딱히 좋아할 이유도 없는 것 같지만.
(그야 처음 봤으니까.)
 
노아:... ...매몰차지만... ...
그 정도면 제법 호평이네요...
(조금 기가 죽는다)
 
라티나:...
(볼을 긁적인다.)
 
노아:아까까진 좋았는데 이제 아닙니다. 는 아니니까요. (다시 기 산다)
 
라티나:.....................(긍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툭 묻는다.) 공부는 즐기지 않으신다면서요?
 
노아:(뜨끔)
그건... ...
어릴 때부터... ...
아무래도 학과 공부가 적성에 안 맞아서... (얼버무린다)
그래도 매번 티나가 도와주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라티나:...티나. (그렇게 부르는 건가. 뒷목을 주무른다.)
제가 어떻게 도와주던가요?
...
때렸습니까? (설마.)
 
노아:아주 세게는 아니고... (설마의 설마.)
잠을 깨우는 정도만...
 
라티나:... ...
저랑 왜 노신 겁니까?
(진지하다)
 
노아:네?
그야... ... (이런 질문이 올 줄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끔벅인다) 오래 봐 왔으니까요?
 
라티나:... 흐음. 초등학교 때부터요.
 
노아:어릴 땐 티나 체육부 같은 데에 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라티나:고민하기는 했죠. 그래도 역시 상담부가 좋았ㅅ...
(고개를 홱 돌려 얼굴을 본다.) ...원래 이렇게 대화를 잘 이끄십니까?
(이 수상이. 제법 태연하고 자연스럽다!)
 
노아:상담부에 있으면 좀 더 사람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이어진 질문에 또 에? 한다.)
앗, 그래보이나요? 이건 또 처음 듣는 칭찬이네요. (머슥하게 기뻐한다)
 
라티나:...그랬죠. 처음부터 그런 고민을 했으니까. (경계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대화가 너무 편하다.)
... ... ...
근데, 놀라지도 않으십니까?
오래된 소꿉친구가 갑자기 노아를 기억 못 한다는 건데요.
 
노아:놀라기는 했는데, 책 같은 거 보면 이런 얘기 자주 나오잖아요. 형제를 잊거나 부모를 잊거나... ...
너무 놀라는 것도 티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아서요.
지금도 잔잔하게 놀라는 중이니까 걱정 마세요.
 
라티나:... ...(수상이는...제법 사려깊은 사람이군.)
그럼... 책에 기억을 찾는 방법도 나와 있었습니까?
저는 잔잔보다 많이 놀라있는 상태거든요.
 
노아:보통은 아주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기억이 돌아오곤 하는데, 육교에서 굴러떨어지거나... ...
헉, 혹시라도 진짜로 하진 마세요.
소설은 소설이니까요.
 
라티나:(가까운 육교로 달려가려던 자세 그대로 굳는다.)
 
노아:...달려가려고 했죠?! (금방이라도 다리 붙잡고 늘어질 것 같은 자세로 멈춘다)
 
라티나:...아닌데요? 아닙니다. 딱히. (대충 헛기침 하며 바로 선다.)
충격적인 사건.
 
노아:너무 충격을 여러 번 받는 것도 안 좋을 거에요.
...형광등 때문인가?
 
라티나:(곰곰)
(찰나의 이해할 수 없던 커다란 고통을 떠올렸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럼, 안 되겠습니다.
 
노아:무슨 일을 꾸미시는 거에요!?
 
라티나:(심각하게 턱을 매만진다.)
이름하야 기억찾기 프로젝트입니다.
상황을 보면 정말로...제가 뭔가 잊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노아:네. 확실히... ...학교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농담인 줄 알았지만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
 
라티나:(양 허리춤에 손까지 짚은 채로 제법 심각한 얼굴이다.)
일단.
저와 노아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장소가 있습니까?
그런 곳에 간다면 무언가 떠오를지도 모르죠.
 
노아:흠... ... ...
젤라또 가게?
아, 서브웨이.
으음...파스타 집...
라티나네 집... ... (곰곰...) 이 정도네요.
 
라티나:...집도요? (어리둥절하다.)
일단 세 가지부터 접수입니다. (머릿속에 슥슥 적는다.)
 
노아:도로시를 봐 주느라고요.
 
라티나:... ...
(가만.)
도로시와도 친한 거군요?
그럼...도로시마저 기억하는 건가...
 
노아:... ...라티나가 도로시한테 졌다는 게 아니니까요?
 
라티나:아무리 생각해도 하루종일 세상이 제게 거짓말을 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노아:...괜한 소릴 했네요. (입 다문다)
 
라티나: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먹 꽉 쥔다.)
그럼...젤라또 가게부터겠군요.
오늘 따로 예정이 있으십니까?
 
노아:(고개를 젓는다.) 한가해요.
그럼, 오늘 젤라또 가게랑 서브웨이를 가 보고...또 생각나는 장소가 있으면 적어둘게요. 나머지는 다음주 주말에도 한 번 가는 거 어때요?
 
라티나:(나열되는 이름들은 맛있고 귀여운데, 표정만은 전투지에 가는 것처럼 비장하다.) 그렇게 하죠. 또 뭔가 떠오른다면 추가해 보고요.
흐음...
 
노아:이렇게 다니면 기억은 안 돌아와도 확실히 추억은 생기겠어요.
 
라티나:(어디부터 취조할지 눈을 빛내던 표정 위로 어딘가 콕 찔린듯 머쓱한 눈빛이 떠오른다.)
...네에.
공교롭게도 모두 좋아하던 장소고요.
...
 
확실히. 평소에도 라티나가 즐겨 가던 장소입니다.
 
라티나:(뒷짐을 지고 노아의 주변을 빙글 돈다. 아침의 예정에 없던 책상을 보았을 때처럼.)
 
당장 저번주만 해도 몇 번씩 갔었는걸요.
 
다만...그 때 노아가 있었나? 그것만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혼자 간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라티나:(떠올려 보아도 노아가 곁에 있던 기억은 없는데.)
 
노아:(라티나를 따라서 제자리에서 돈다.)
 
라티나:뭡니까. 이 장단 맞추기는. (우뚝 멈춘다.)
 
노아:(딱 멈춘다) 왜 도나 하고요.
 
라티나:...(빤히 보다가 다시 돈다.)
 
노아:(또 같이 돈다...)
 
라티나:... ...
 
노아:가...가만히 있을까요?
 
라티나:눈치가 빠르군요.
 
노아:(얌전...)
 
라티나:(수학 문제였다면 알맞은 공식을 대입해 풀면 될 터였다. 하지만 눈앞의 수상이는 제법 막막한 상태다. 또래보다 큰 키, 녹색 눈. 유순한 태도. 이것 말고도 더 알아내야 해. 대체 난 언제부터 이런 소꿉친구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탐색하는 눈빛이 제법 끈질기다.)
(교복의 옷깃도 당겨본다.)
(앞에 쭈그려 앉아 발목 부근의 교복 바지도 툭툭 건드려 본다.)
 
노아:(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는다)
 
흠, 확실히 학교 교복이 맞습니다.
 
라티나:다리가 왜 이렇게 길지. (조금 질투섞인 혼잣말)
 
노아:네?
 
라티나:아닙니다. 쳇.
 
노아:... ... ...
그래서 제가 우유 먹자고 했을 때...
아니에요. (입 다문다.)
 
라티나:.................이미 너무 많이 말했습니다. (쭈그려앉은채로 주먹 쥐어 종아리 퍽 친다.)
 
근력과 건강 대항 판정을 합니다
 
과연 그의 다리는 무사할지?
 
근력을 판정해봅시다
 
라티나:
근력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노아: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빠각
 
하는 소리가...난 것 같습니다.
 
노아:(순간 헉...하더니 그대로 무릎 꿇고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라티나:.............그렇게 세게 안 때렸습니다. (소리를 외면하며 시선 피한다...)
...걸요?
... ...
 
노아:뼈...뼈가 나간 것 같은... (바들바들)
(종아리 만져본다...)
멀쩡하네요...
근데 아픈 건 진짜에요.
 
라티나:... ...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세게 때렸는지 길바닥에서 초록색 나뭇잎을 하나 줍는다.)
(종아리에 대강 얹어준다.)
 
노아:... ...반창고 대신인가요...
(소중하게 나뭇잎 품는다)
 
라티나:...네. 귀한 겁니다.
아무튼, 교복은 학교 것이 맞는 것 같군요.
아파하는 걸 보면 유령같은 건 아니겠고요.
 
노아:(주섬주섬 나뭇잎을 챙겨 일어나더니) 제가 아파하는 동안 많은 걸 알아내셨군요...
 
라티나:...(시선 슥 피한다.)
그러게 왜 우유 얘기를...(꿍얼)
 
노아:사과의 의미로 샌드위치 사 드릴게요.
 
라티나:흥.
...오렌지 주스도.
(절찬 말려들고 있지만, 배고프다.)
 
노아:할라피뇨 많이 넣은 이탈리안비엠티랑 오렌지 주스를요.
 
라티나:................................................................................................
 
두 사람은 샌드위치 가게로 향합니다. 마침 딱 저녁먹기 좋은 시간이죠.
 
라티나:(너무나도 완벽한 취향에 되려 말을 잃었다.)
(정말로 소꿉친구였다고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데.)
(샌드위치 가게 앞에 설 때까지도 심각한 표정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 알지?
 
라티나:(..............................엄마가 둔갑한 거 아냐? 라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한다.)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고 받아들이기로 한 라티나지만...놀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엄마?
 
라티나:(하지만 엄마라기엔 역시. 너무 크다.)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야.)
(초등학교 때 무슨 창피한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가 20센치 정도 큰다면...
 
혹시 라티나의 흑역사를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걸까요?
 
라티나:(...)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노아:(태연하게 줄을 서서 메뉴 고르는 중)
 
처리한다면 지금?
 
라티나:...아냐. 샌드위치 사 주잖아.
(일단은 먹고 생각하자.)
(옆에 선 채로 힐끗 올려다본다.)
 
그래. 일단 돈을 뺏고...
 
노아:저는 페퍼치킨 슈니첼로... (시선이 느껴지자 돌아본다)
메뉴 바꾸려고요?
 
라티나:... (키가 커서 처리하기 힘들 것 같다.라는 생각 중.)
아닙니다. 세상에 그보다 완벽한 메뉴는 없죠.
(고소한 샌드위치 냄새에 미세하게 들뜬 표정으로 앞을 본다.)
 
목을 조르기엔 너무 높죠...
 
라티나:(그놈의 우유.)
 
이게 다 우유 때문이다.
 
세상에 우유급식이라는 것만 없었더라면...
 
노아:이탈리안비엠티는 허니오트로, 그리고 페퍼치킨 슈니첼은 위트로 주세요. (무슨 계략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주문하는 중)
 
라티나:(평소에도 자주 왔단 말이지 여기. 깔끔히 주문하는 노아를 뒤로 하고 일일 탐정이 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항상 주문을 하고 중간의 긴 탁자에 앉았죠.
 
라티나가 일일 탐정 자격증을 따는 동안, 노아가 나온 메뉴를 들고 라티나의 눈 앞에 손을 휘적입니다.
 
라티나:(수사 중간에 쏙 들어온 손에 그제야 눈을 깜빡인다.)
 
노아:...딴 생각하셨나요?
(또 괜히 말했다 싶어져서 도망치듯이 탁자로 가 쟁반을 올려놓는다)
(못 차게 앉았다.)
 
라티나:안 때립니다. 안 때려요. (툴툴대며 함께 앉는다.)
...
(그건 그렇고,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쥐니 역시 조금 들뜬다.)
 
노아:(라티나의 표정이 조금 풀린 것을 보고나서야 안심한다.) 맛있게 드세요.
 
할라피뇨가 가득 담긴 샌드위치.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죠.
 
라티나:(포장지 반을 뜯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상ㅇ...
(아차.) 노아도요.
 
노아:수상... ...?
 
라티나:..............
저 지금부터 말을 하지 못할 계획입니다. (입에 샌드위치 넣는다.)
 
노아:뭔가 찔리는 게 있었군요. 방금 찔렸던거죠.
(하지만 더 추궁할 생각은 없는지 이쪽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한다.)
 
수상한 녀석이지만...
 
라티나:(입에 샌드위치 넣은채로 열심히 도리도리한다.)
 
수상한 녀석이 사 준 샌드위치는 맛있습니다.
 
라티나:...........
(제법 괜찮은 수상이인가?)
(하지만 어디사는 어른이 먹을거 사준다고 다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그쵸 맞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고작 샌드위치 하나로 나를 홀리려고 하다니?
 
괘씸합니다.
 
라티나:(옳다.)
(그래도 일단 맛있다.)
 
샌드위치 가게를 인수한다면 모를까...
 
라티나:(노아가 먹는 모습을 흘긋 본다.)
 
수상한 녀석은 깔끔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습니다.
 
흐음...노트 필기. <식사예절 : 나쁘진 않음>
 
라티나:(머릿속 노트가 슥슥 채워진다. 아랫줄에 <페퍼치킨 슈니첼, 위트. 제법 먹을 줄 아는 녀석이다.> 도 적는다.)
여기서 자주 식사를 했던 겁니까?
 
노아:(우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동아리가 늦게 끝나면 라티나랑 같이 왔었죠.
 
라티나:흠. 동아리는 어떤? (우물우물. 맛있는 음식 덕에 질문이 유해진다.)
 
노아:저는 영화감상부에요. 동아리라고 해도 영화를 보는 게 다지만...
그래서 바쁠 땐 그냥 다른 동아리를 도와주러 가요.
 
라티나:(이렇게 앉아있자니 새로운 친구라도 생긴 느낌이다. 조금은 나쁘지 않을지도.)
...
혹시 거절 잘 못 하십니까?
 
그래, 소꿉친구라고 하지만...기억을 잃었다면 새 친구가 될 수도 있죠.
 
노아:(뜨끔한다)
그런 편이죠...
 
라티나:...(눈을 가늘게 뜬다. 내가 잔소리 좀 했겠군.)
 
노아:그래서 라티나가 거절하는 멘트 연습을 시켜줬었어요.
 
라티나:호오.
뭡니까? 상황극이라도 해 볼까요.
 
노아:아, 좋아요. 자신있어요. (제법 연습한 느낌으로 바르게 앉는다)
 
라티나:흠흠.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아주아주 삐딱한 자세로 앉더니, 앞머리를 넘겨 헝클어트린다.)
(미간도 확 구긴 채로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볼을 질겅질겅 움직인다...)
 
노아:(긴장)
 
라티나:노아.
 
노아:네...넵.
 
라티나:반포자이 사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 27만 9천원만 주라. (어디선가 들은 불량배 말투 따라한다.)
 
노아:27만 9천원이요?
아, 제가 당장은 현금이 없는데...계좌 알려주시면 그 쪽으로는 보내드릴 수 있어요.
 
라티나:타임.
이게 대체 뭐가 거절입니까.
두 개도 사줄 것 같은데요?
 
노아:이, 일단 현금은 안 줬으니까?
그리고 반포자이를 사려고 했을 노력을 생각하면...
 
라티나:................
혹시 제가 이런 상황에서
환장하겠네. 라고 하지는 않던가요?
 
노아:아, (활짝 웃는다) 돌겠네.라고 했어요.
기억이 좀 나신 건가요
기억이 좀 나신 건가요?
 
라티나:돌겠네.
환장이 좀 난 것 같습니다.
 
노아:(남의 속도 모르고 박수친다) 제가 기억하는 티나 그대로에요.
 
라티나:(그 박수소리가 환장파티를 향한 축하와도 같다...)
아니. 제가 그렇게 알려주던가요.
 
노아:... ... ...그러진 않았던 것 같은?
 
라티나:계좌이체 가능 따위를 알려줬을리가.
뭐라고 하던가요?
 
노아:... ... (라티나 이입하는 중.)
제가 그걸 드리면, 저한테도 반포 자이 나눠주시는 겁니까?
 
라티나:역시 저는 훌륭했군요.
 
노아:똑같죠? (뿌듯)(
 
라티나:근데 그게 왜 계좌이체가 된 겁니까.
 
노아:하지만 저는 반포자이 필요 없어서...
너무 넓은 집은 청소하기 힘들잖아요.
 
라티나:... ... ...
............
(속터져서 오렌지 주스 들이킨다.)
 
노아:(자기 음료수 밀어준다)
 
라티나:(그것도 들이키려다 멈칫한다. 이러다가 다 받겠다.)
뭐, 됐습니다. 계좌이체 멘트만 알기는 해도...
이제부터 다시 배우면 되죠.
일단 자세가 너무 바릅니다.
의자 광고 같잖아요.
 
노아:에.
(라티나 앉은 자세 따라한다)
... ...부, 불편한데요.
 
라티나:기선제압용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너무 가지런해요.
(대충 머리 헝클인다.)
 
노아:(헝클어진다.)
 
아아...
 
제법 노는 놈 같습니다.
 
라티나:흐으음..............(그리고 얼굴을 살펴본다.)
 
노아:(눈 끔벅끔벅)
 
라티나:너무 착해 보입니다.
 
노아:...티나 같은 상처가 필요할까요?
 
라티나:흠.
(서브웨이 포장지 길다랗게 뜯는다.)
 
지이익.
 
라티나:(뺨에 톡 붙인다.)
 
오...
 
그냥 칠칠맞은 사람 같습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서브웨이 포장지를 붙이고 다니는지 안타까워집니다.
 
라티나:....쳇....
 
이 사람은 스타일링에 한계가 있네요.
 
노아:쳇?!
혀를 찰 정도로 별로인가요!?
 
라티나:인상이 좋아도 문제입니다.
이래서야 어디 가서 환불 하겠습니까? (머리 샥샥 되돌린다.)
 
노아:저는 환불 잘 안해서... (다시 가지런해진다)
다 가지고 노셨나요. (바르게 앉으며)
 
라티나:.......(못 하는 거라는 것에 오렌지 주스 한 잔 걸었다.)
네에. 상품이 너무 순해서 별점은 좀 깎겠습니다.
 
오렌지주스 한 잔을 얻었습니다...
 
노아:...4.5점 정도?
 
라티나:...
4....
-3 점입니다.
 
노아:1점?!
 
라티나:(대답없이 어느새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은채 오렌지주스를 쭉 들이킨다.)
비밀입니다.
소꿉친구라도 모르는 것 정도는 있어야죠?
뭐...
그런 대로 재미는 있더군요.
 
재미는 있지만 활용범위가 좁습니다.
 
별점 1.5점.
 
쉽사리 바이럴에 넘어가주지 않는 소비자입니다.
 
두 사람은 왁자지껄하게 샌드위치를 해치우고, 다시 귀갓길에 오릅니다.
 
라티나:(만족스러운 식사.)
 
소꿉친구가 맞긴 맞나봅니다.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라티나:(오늘의 수확을 머릿속으로 헤아려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기억을 잃은 게 맞다고 가정 중이고...)
(일단은 나쁜 사람으론 보이지 않아.)
 
다시 친해져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좀 속터지겠지만.
 
라티나:...뭐.
노아네 집은 어디입니까?
 
노아:티나네 집에서 두 블럭 더 가서에요.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바래다 주려고요.
 
라티나:흐음. 하교길에는 보통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노아:항상 이런 식으로 놀았어요. 보통은 학교 얘길 하기도 했고...
 
어느덧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샌드위치 집에서 라티나네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서, 두 사람은 금방 집 앞에 도착합니다.
 
라티나:(걸음 위로 지는 그림자를 툭툭 움직여본다. 어느새 제 집 앞이다.)
(울타리 앞에 섰다가, 빙글 뒤를 돈다.)
이랬는데 내일 확, 하고 기억이 난다거나 하진 않겠죠.
 
노아: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긴 셈이잖아요.
(씩 웃어보이더니, 가볍게 손을 흔든다.) 저도 그러길 바라면서 기도할게요.
 
라티나:...(무뚝뚝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가 가볍게 손을 흔든다.)
(오늘 사귄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내일 뵙겠습니다.
 
노아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길을 가려다가...
 
몸을 돌려 라티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미소를 짓습니다.
 
노아:제가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실 거에요.
 
그렇게 내뱉는 목소리는, 미소와는 다르게 조금 떨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아니, 저게 미소인가?
 
어쩌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같기도 하고...
 
라티나:... ...
노아...?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의 표정을 이렇게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순간, 라티나는 오늘 아침에도 겪었던 아찔한 통증을 다시 한 번 맞이합니다.
 
라티나:...아!
 
눈꺼풀 안에서 빛이 부풀어 터지는 듯한 잔상이 동공을 핥습니다.
 
당신의 기억에 없는 장면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초능력 어때요?"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뭐...나쁘지 않네요. 초능력."
 
정신을 차린 뒤에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날 밤, 라티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형상이 어릿하고 시점조차 흐린,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꿈이지만...
 
분명히 '그 사람'을 봤습니다.
 
라티나는 꿈을 꾸는 내내 아팠다가, 가슴 벅찬 떨림을 느꼈다가, 어떤 순간에는 처음 겪는 떨림에 심장을 부여잡기도 했습니다.
 
공기로 자은 실처럼 연약한 슬픔이, 구름으로 빚은 구슬처럼 희미한 기쁨이 거기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쩐지 뒤숭숭한 기분으로 일어난 라티나.
 
정신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나는 어떤 그물을 헤아리고 있었을까? 공기로 빚은 것 같은 연약한 슬픔이, 흩어질 구름으로 뭉쳐둔 희미한 기쁨이...실과 구슬로 엮인 세상을 더듬는다. 꿈 속을 몽롱하고도 아프게, 벅차고도 떨리게 유영하던 몸짓이 멈췄을 때 반짝 눈이 떠 진다.)
정신
기준치: 60/30/12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라티나는 지난 꿈에서 본 희미한 기억의 잔재를 하나 건져올립니다.
 
아주 지친 듯한 표정의 노아는 한참 말이 없다가,
 
이내 결의를 띈 말을 내뱉습니다.
 
"다음이 마지막일 거에요. 곧 때가 오니까..."
 
"그 때도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게요. 이번보다 빨리."
 
"당신을 휘말리게 하지 않을테니, 안심하세요. ...쉬어도 좋아요."
 
그런 날이 열흘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라티나는 매일 밤 기묘한 꿈에 시달리면서도 의도치 않게 노아와 붙어다녔습니다.
 
어쩌면 의도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이 붙어다니는 것에 그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았고, 라티나 또한 그가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윽고 약속한 주말이 도래합니다.
 
아침부터 노아에게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군요.
 
[ 오늘 11시에 젤라또 가게 앞, 괜찮죠? ]
 
라티나:(벌써 노아와 시간을 보낸 지도 2주. 오늘은 약속한 주말이다.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가볍게 침대 위에 앉는다.)
 
그 동안 라티나는...노아와 제법 친해졌나요?
 
라티나:[네.]
(메시지 답장이 몇 시간을 넘나드는 자신 치고는 꽤 친근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죠.
 
라티나:(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하니 젤라또를 먹을 날도 꽤 기다렸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올려 묶는다.)
 
나갈 준비를 하는 라티나.
 
라티나:워낙 붙어 다녀서 그런 꿈까지 꾸나...(중얼)
 
행운 혹은 민첩 판정을 해봅시다.
 
라티나:
기준치: 60/30/12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wow
 
어라? 머리를 대충 올려묶었을 뿐인데...
 
무진장 잘 어울립니다.
 
이거 잡지에서 본 머리 아냐?
 
오늘따라 피부도 반짝반짝하고...
 
라티나:오.......?
 
옷도 다림질이 아주 빳빳하게 된 게...핏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이건...'왠지 모르지만 반짝반짝거리는 날'입니다!
 
라티나:오.......(제법 흐뭇하게 거울 안의 제 모습을 본다.)
노아를 보자마자 칭찬 좀 하라고 해야겠군.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작은 가방을 멘다.)
가 볼까?
 
라티나는 오늘 무슨 옷을 입었나요?
 
라티나:(머리를 높이 묶고 하늘색 크롭 가디건을 입었다. 흑청치마에 흰 양말, 파란색 스니커즈 차림.)
(흰색 파니니백 안에 휴대폰을 챙겨 넣는 중)
 
하...
 
오늘 무신사에서 사진 한 방 찍히겠는걸...
 
포토스냅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찢었다 찢었어
 
어쨌든 라티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합니다.
 
제법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노아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네요.
 
라티나:(먼저 기다리던 노아를 발견하고 척척 다가온다.) 저도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노아:저도 막 도착했어요. 좀 아슬아슬하게 나왔는데, 오는 길에 신호등에 한 번도 안걸렸거든요.
 
노아양은...
 
베이지색 린넨 와이셔츠에 아가일 니트 조끼를 입었습니다. 통이 널널한 카키색 8부 바지에 워커를 신었군요.
 
라티나:운이 좋으셨군요. (새삼스레 사복이 신기한지 노아 주변을 한 바퀴 빙글 돈다.)
(소꿉친구라고는 했지만 제게는 2주간의 기억이 전부니까. 교복이 아닌 옷을 관찰하다가 옷깃을 만져보기도 한다.)
 
노아:...? (이번에는 라티나가 빙글 도는 것을 가만히 서서 고개로만 좇다가) 아, 밖에서 따로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죠. 형광등 떨어진 날 이후로는.
 
라티나:(이제는 따라 돌지 않는 것이 관계에 있어 쌓인 데이터베이스를 말해주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제 기억에서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양 허리춤에 손을 짚고 선다.)
 
노아:... (라티나가 뭐라고 평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가...) ... ...옷이 마음에 안드시나요!? (갑자기 급발진한다)
 
라티나:...제가 그렇게 못된 친구였습니까!?
니트 조끼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요.
사복으로 보니 보다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요.
 
노아:아, 그런거라면 다행이에요. (다시 급속도로 안심한다.) 라티나도 잘 어울려요. 저는 종종 봤지만.
머리는 오랜만에 묶었잖아요.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린다)
 
라티나:........(2주 가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역시 이럴 땐 기분이 묘하다. 오랫동안 날 지켜봐온 내가 모르는 친구가 있었던 것 같고.)
네. 노아 앞에서 뭔가 숨기기는 어렵겠군요.
갈까요? 젤라또 먹으러.
 
노아:(그 말에 그냥 씩 웃어보이더니 젤라또 가게의 문을 연다) 오늘 여름 시즌 신메뉴가 올라왔대요. 레몬 셔벳 맛이라는데,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라티나:신경 쓰이는 신예의 등장이군요. 그걸로 먹어보실 겁니까? (시원한 매장 안으로 들어서 익숙하고 귀여운 인테리어를 새삼스레 둘러본다.)
 
노아:네, 그거랑 역시 리조 젤라또를...
 
라티나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지면 오는 젤라또 가게입니다.
 
재료 본연의 맛이 잘 살기도 하고, 매 시즌 새로운 맛이 출시되어서 구경하러 오는 재미도 있죠.
 
노아:(진열대 앞에 붙어서 구경하는 중) 블루베리랑 코코넛 밀크를 같이 담으면 10퍼센트 할인이래요.
 
라티나:(진열대 앞에 바싹 붙어서 젤라또를 향해 눈 빛내고 있다.)
하지만 초코칩도 포기하기 힘든데. 흐음.................
(리조와 블루베리를 담으면 초코칩 쿠키를 준다는 스티커를 꾹꾹 매만진다.)
...
왕창 시키면 탈이 날까요?
 
노아:... ...하지만 젤라또는 한 스쿱씩 밖에 안 주니까.
 
라티나:.......................누구일까요. 그런 졸렬한 양을 정한 사람은.
만나면 종아리 좀 때려줘야지.
...........(세상 심각하게 메뉴를 들여다보다가)
노아는 정했습니까? (진열대에 너무 붙은 탓에 발음이 좀 뭉개진다.)
 
노아:(진열대랑 눈싸움하는 라티나 본다)
 
라티나:(이거 다 입에 넣고 싶음)
 
노아:저는 체리크럼블이랑 넛츠밤...리조랑 레몬셔벗... ...
그리고 호지치 라떼 차가운 걸 같이...
역시 4가지 맛 이하로는 못 줄이겠어요.
 
라티나:배신입니다. 먼저 그렇게 멋지게 정해버리다니. (웅얼웅얼 말하는 채로 메뉴를 여전히 들여다본다.)
[소꿉친구]의 조언 없습니까?
 
노아:(그렇게 스킬처럼 쓰다니)
그럼 제 추천은...블루베리랑 리조, 가을 배랑 코코넛 밀크에요.
역시 4가지 이하로는 못 줄이겠어요.
 
라티나:(버프라도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10퍼센트 할인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할래요.
 
직원은 약간...
 
어라, 두 분 다 4가지 맛이요? 하듯이 봤지만...
 
여러 맛을 고른 덕분에 제법 큰 컵에 만족스러운 양의 젤라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라티나:(보물 네 스쿱 받은 얼굴.)
 
가게 옆면의 큰 창을 전부 밀어 열어두어서 산들산들한 바람이 느껴지는 반 야외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노아:역시 이 정도는 담아야 아쉬움이 없어요. (젤라또 한 입, 라떼 한 입 먹느낟)
 
라티나:(스푼 가득 젤라또를 떠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불룩해진 볼 위로 산들바람이 보들보들 닿자, 눈을 깜빡이며 거리의 풍경을 응시한다.)
 
음 , 역시. 여러가지 맛을 한 번에 먹어야 돼.
 
라티나:(지긋 눈을 감았다가 뜬다. 평화롭고 달다.)
(분명 기억 찾기 프로젝트였는데, 맛집 순회를 돌고 있는 것 같지만.)
...노아.
 
노아:(마찬가지로 젤라또를 만끽하다가 고개를 든다.) 네?
 
라티나:(젤라또를 한 스푼 더 뜨며 담백하게 묻는다.)
2주 쯤 전인가, 묘한 말을 하셨던 게 기억나서요.
제가 당신을 기다리게 하기라도 했나요. (냠, 다시 입 속으로 스푼이 들어간다.)
 
노아:제가요? (고개를 갸우뚱 하고 기울인다)
... ...그랬던가...? (눈썹을 비틀며 젤라또를 한 입 더 먹는다.)
 
라티나:기억 안 나십니까?
제가 잘못 본 걸까요.
 
노아:혹시 생생한 꿈을 꾼 건 아니고요?
왜, 요새 잠을 깊게 못 잔다면서요.
 
라티나:그랬죠. 이상한 꿈 때문에.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엎드린다. 팔뚝 위에 뺨을 괸 채로 눈을 깜빡거린다.)
 
노아:(라떼를 쫍 마시며) 요즘 스트레스 받아요?
 
라티나:(그 상태로 젤라또를 한 스푼 더 입에 넣는다. 불룩해졌던 볼이 꺼지고 나서야 느릿한 답이 나온다.)
그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는데, 도통 까닭을 모르겠거든요.
연극 위에 올려졌는데 제 배역을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요?
 
노아:(고개를 기우뚱, 하면서 젤라또도 한 입 먹는다) 그 원인 중에는 저도 있는거죠?
 
라티나:(눈을 가늘게 뜬다.) 말할 것도 없죠. 모든 것의 시작 아니십니까?
그 날은 형광등부터 뭔가 이상했지만요.
노아가 보기에 지금의 저는 노아가 기억하는 저와 다릅니까?
 
노아:아뇨, 한결같아요. (고개를 작게 젓는다)
티나는 쉽게 변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 (잠시 고민하듯이 입을 다물고 가게 구석을 바라보다가) 즉흥 연극인걸로 괜찮지 않을까요?
100% 애드리브.
 
라티나:...(100% 애드리브. 그 말에 흥미가 생긴 듯 허리를 바로 해 앉는다.)
영화나 극에서 나오는 애드리브는 보통 일부가 아닙니까?
즉흥 연극이어도 괜찮을까요.
무대가 엉망이 되면요?
 
노아:영화가 아니라 장기자랑을 한다고 생각하죠, 뭐. 아니면 어릴 적에 하던 학예회라도요.
관객도 우리 둘 밖에 없으니까, 조금 실수해도 아무도 안 웃을거에요.
 
라티나:...(어느새 고개를 괴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늘 이런 식으로 상담해줬나 봅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다 털어놨던 모양이지.
 
노아:(씩 웃어보인다) 털어놓는다는 게 더 대단한 거에요.
 
라티나:...네에. (못 말리겠다는 듯 그 웃음 앞에서 어깨를 으쓱인다.)
헌데, 맛있다는 생각만 들고...
딱히 뭐가 떠오르진 않는군요. (젤라또를 한 입 더 먹는다.)
 
노아:아무래도 우리는... ... (냠)
평소에도 맛있다는 말 밖에는... (냠냠)
 
라티나:... ...어라.
(냠)
... ...그냥 한결같은 거였습니까? (냠)
 
노아:말했잖아요. 쉽게 변하지 않는다니까요. (끄덕인다)
다 먹으면 광장으로 산책할까요?
주말이고 하니까 이것저것 있을지도 몰라요. 날도 좋고.
 
라티나:(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입 안에 든 달콤한 것이 몽글몽글 기분을 녹인다.)
재미있는 게 있으면 좋겠네요.
한 두 달 전에 왔을 땐 강아지 인형탈을 쓴 사람이 있던데요.
 
노아:강아지 인형탈?
제가 본 건 고양이 인형탈이었는데.
가게 홍보 피켓을 돌리고 있는...
 
라티나: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게 홍보 피켓을 들고...
 
노아:...같은 사람일까요?
 
라티나:...만약 그렇다면 직업 정신이 투철하시군요.
 
두 사람은 고양이...혹은 강아지...탈을 쓴 사람을 떠올리며 광장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노점과 가게가 줄지어 선 거리를 지나다 보면, 만남의 광장이라고 부르는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라티나:(산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온다. 푸른 하늘은 시리다는 말이 더없이 어울린다.)
 
눈이 아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따뜻한 햇빛.
 
라티나:(노점과 가게가 재미있는 선로를 만드는 거리를 지나, 작은 공원 앞에 선다.)
 
바짝 마른 초여름 공기에 도심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녹음 냄새가 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오늘은 피켓 돌리는 사람은 없군요.
 
라티나:(조금 아쉬운지 돌부리 하나를 발로 톡 친다.)
 
대신 공연 중인 버스커가 있는가 하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있고...
 
거리 화가도 한 명 있습니다.
 
라티나가 돌부리 하나를 툭 차는 순간, 고개를 든 거리화가와 눈이 마주칩니다.
 
라티나:...(깜빡.)
 
그리고 마치 이쪽으로 와보라는 듯이 활짝 웃으며 손짓을 하네요.
 
라티나:(눈을 꿈뻑이다가 노아를 한 번, 거리화가를 한 번 본다.)
 
노아:? (버스킹 쪽을 바라보다가, 라티나의 시선이 느껴지면 라티나를 한 번, 거리화가를 한 번 본다.)
그림도 좋죠. (활짝!)
 
라티나:(활짝 웃는 거리화가와, 활짝 웃는 노아. 그 사이에 선 표지판처럼 눈을 꿈뻑이다가 어깨를 으쓱인다. 노아와 나란히 거리화가 앞으로 다가간다.)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화가는, 라티나가 다가오자 활기차게 인사를 건넵니다.
 
화가:고등학생? 데이트 중?
초상화 하나 그려줄까요?
 
라티나:저희 데이트 중인 겁니까? (되려 꿈뻑꿈뻑 묻는다.)
초상화는 흥미가 있습니다.
 
노아:(고개를 끄덕인다) 놀러나왔어요. (초상화에 관심이 생겼는지 슬쩍 화가의 캔버스를 본다)
 
화가:으흠, 좋아요. 그러면 저기 간이의자 보이죠? 저기 앉아볼래요?
금방 그려줄게요.
 
라티나:저부터입니까? (고개를 기울인다.)
 
화가:(고개를 끄덕인다) 손이 두 개 뿐이라, 한 번에 한 명 밖에 못그리거든요.
 
라티나:(활기찬 농담을 건네는 화가를 뒤로 하고, 간이의자로 가 반듯하게 앉는다.)
(무뚝뚝한 얼굴 위로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라티나가 반듯하게 앉아있으면, 화가는 라티나와 캔버스를 번갈아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화가:오늘 아주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와서 그런가, 그리는 재미가 있네요.
 
라티나:그렇습니까? (의기양양)
 
화가:어디 고치고 싶은 부분 있어요? 사진은 프로그램을 돌려야 한다지만 그림은 그리는 동안 바로 수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거든요.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내가 보기엔 너무 완벽해서 이대로가 좋긴 해요.
 
라티나:(간이의자에서 일어나 화가의 앞으로 다가간다. 캔버스 안을 들여다 본다.)
 
연필 스케치와 간단한 수채화 터치로 이루어진 그림입니다.
 
흠...이거 어쩌면 사진보다 좋을지도?
 
초상화만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네요.
 
라티나:...
마음에 듭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그리시다니 신기하군요.
 
화가:하하, 나는 이게 직업인걸! 이건 선물이니까 그대로 가져가요. (초상화가 그려진 종이를 캔버스에서 빼 라티나에게 내민다)
 
라티나:(얼결에 선물을 받고 눈을 꿈뻑인다.)
돈은 안 받으시는 겁니까?
 
화가:여기에 나오는 건 취미거든요. 돈은 안 받아도 돼요.
 
라티나:...(정말로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걸까. 활기찬 얼굴을 보며 짧게 고개를 까딱인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이제 저 친구도 그려주실 겁니까?
 
화가:물론이지, 거기 청년도 앉아봐요.
 
노아가 자리에 앉으면, 화가는 새로운 종이에 노아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선 몇 번에 형태가 잡히고, 디테일을 살리고...
 
옆에서 보고있으면 신기한 작업이네요.
 
노아의 그림도 금방 완성됩니다.
 
노아:(궁금하기는 했는지 완성되었다는 말이 들리면 와서 들여다본다.) 와, 신기해요. 눈으로 보고 그려서 그런가 사진보다 잘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티나 것도 잘 됐어요?
 
라티나:(뒷짐을 지고 옆에서 기웃대며 캔버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과 비슷하지만 사진은 아닌 그림 속, 수채화로 물들인 녹색 눈동자를 본다.)
끝내주게요. (등 뒤로 쥐고 있던 그림을 보여준다.)
선물 같습니다.
 
노아는 라티나의 그림을 받아들어보더니... ...
 
한참동안 말이 없이 물끄러미 종이를 들여다보기만 합니다.
 
라티나:... ...
 
...약간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라티나:...노아?
 
잠깐 감탄을 하는 듯 했다가, 또 몇 가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라티나가 노아를 부른 뒤에야 무언가를 참듯이 간신히 종이를 다시 라티나에게 내밉니다.
 
노아:...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보인다)
혹시 이거, 집까지 가져가서 잘 간직해 줄 수 있나요?
 
라티나:...네, 뭐. 그럴 예정이었으니까요.
...노아, 어디 아프신 것 아닙니까?
표정이 뭔가...
 
노아: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게요. 정말로. (제법 진지한 얼굴로 당부하듯 바라본다.)
 
라티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에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았다. 어려운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기에 반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듯 곧은 눈을 깜빡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게, 잘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노아:(확답을 받고서야 안심했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네. 꼭이에요. ...아. 약속 도장도 찍어요.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민다)
 
라티나:... (불쑥 내밀어진 손가락을 보며 눈을 깜빡인다. 이게 무엇이 그렇게도 소중하길래. 아이처럼 내민 손가락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곧 망설이지 않고 제 새끼 손가락을 건다.)
그럼, 노아도 간직해줄 수 있으십니까?
 
노아:(새끼손가락이 걸리면 엄지를 맞대고, 새끼손가락을 풀고 손바닥을 대고, 도장을 찍는 시늉까지 하고서야 놓는다.)
저는... ...자신 없는데. (안 잃어버리기요...하면서 중얼거리다가)
그럼 티나가 맡아줄래요? 제 그림도요.
 
라티나:(그간 보아온 모습과 친구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볼 때...어딘가로 홀랑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도장이 콩 찍힌 손이 흔쾌히 내밀어진다.)
그럼, 제가 잘 맡아 두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지시면 가져다 드리죠.
 
집에 가는 길에 흘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티나:잃어버리나 망가지지 않게, 잘 간직해 뒀다가.
(가능성 있다.)
 
노아는 흔쾌히 자신의 초상화를 라티나에게 맡깁니다. 그래, 이게 훨씬 안전하죠.
 
노아:제 건 잃어버려도 돼요.
 
라티나:왜입니까?
 
노아:... ... ...제 얼굴이니까...?
 
라티나:(눈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옆구리 쿡 찌른다.)
모처럼 멋지게 그려주셨는데, 같이 간직해야죠.
 
노아:아야. (아픈 척 하면서 살짝 비켜선다)
알겠어요. 그럼 제 것까지...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게.
 
라티나:(덤덤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만 믿으십시오. (무표정한 얼굴이면서도 브이를 만들어 작게 흔든다.)
 
왜 이렇게까지 초상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라티나는 노아와 깰 수 없는 약속을 했습니다.
 
새끼손가락 걸기란 것이 으레 그렇잖아요.
 
두 사람은 광장을 둘러보고 반대편 길로 빠져나옵니다.
 
그러고보니 이 근처에는 서점도 있습니다.
 
젤라또 가게처럼 자주 가던 곳은 아니지만...라티나가 종종 들르던 장소라고 할 수 있죠.
 
노아:어때요, 또 가보고 싶은 곳 있어요?
 
라티나:(눈 위로 손그늘을 만들어 근처의 서점을 보는 채다. 듣지 못한 건지 대답이 없다.)
 
노아:(라티나가 보는 곳을 확인하려는 듯 스으윽...시선을 내려서 얼굴을 나란히 두고) 서점?
 
라티나:(내려온 녹색 눈동자를 보고서야 대답이 나온다.) 저 읽기 쉬운 타입입니까?
 
노아:제가 방금 질문 했는데 못들은 것 같아서요. 어딜 보나 하고.
(따라서 손그늘을 만든다)
 
라티나:(나란한 손그늘을 만든 모습은 어딘가의 탐정단 같기도 하다.)
저 장소도 저와 가 보셨나요? 서점이요.
 
노아:네, 종종. 저는 혼자서도 자주 가는 곳이지만요.
 
라티나:(고개를 기울인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기억이 안 날 수가 있지.
 
노아:해리성 기억상실이라고 들어봤어요?
특정 기억만 잊거나, 자신의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그런 증상도 있대요.
그래도 지금 정도면 티나랑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걱정은 안 돼요.
 
라티나:(배트맨처럼 그늘이 진 얼굴이 슥, 노아를 본다.)
제법 자신감 있는 멘트네요.
확실한 겁니까? (눈을 가늘게 뜬다.)
 
노아:(그늘 사이로 선명한 파란 눈만 보면서) ...아마도? (확신 없는 말투)
 
라티나:(동그란 녹색 눈을 마주하다가 다시 목표물 <서점>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대답은 쏙 빼먹은 채다.)
서점에서 해리성 기억상실이란 것에 대해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출동할까요?
 
노아:(숙였던 허리를 펴며) 좋아요. 이거 왠지 소년탐정단같네요~
 
두 사람은 길 모퉁이를 돌아 서점으로 향합니다.
 
그러고서 몇 발자국이나 더 걸었을까요...?
 
라티나:(성큼성큼)
 
노아가 갑자기 라티나의 팔을 붙잡습니다.
 
라티나:...?
 
팔을 잡은 손에 약한 떨림이 전해집니다.
 
라티나:노아?
 
라티나는 뒤를 돌아볼까요?
 
라티나:(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정면을 보며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미약한 떨림이 전해진다는 걸 인식한 순간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면, 노아의 시선 또한 뒤쪽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라티나:... ...
 
얼핏 보이는 옆얼굴의 표정은 침착을 요지하려 애쓰지만, 그 너머로 공포가 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아까 막 두 사람이 돌아왔던 모퉁이입니다.
 
노아가 고개를 홱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는 사이,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어떤 형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이글거리는 눈, 박동하는 푸른 피부를 가진 이계의 공포.
 
불쾌한 역관절이 삐그덕거리며 땅을 딛고, 미끈거리는 표면, 뒤틀려 굽은 등뼈...
 
원시적인 공포가 전신을 훑고 지나갑니다.
 
라티나:(입을 벙긋거린다. 저건 대체 뭐지? 달아나야 하는 건가? 어디로? 어디로? 제 팔을 잡은 채로 떨리는 손을 다급히 맞잡는다.)
 
그것이 숨을 쉴 때마다 기괴하게 울컥이는 소리가 납니다.
 
마치 개를 닮은 듯 하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물.
 
이성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을 2 잃습니다.
 
노아:(라티나를 바라보더니, 떨리는 숨을 천천히 내쉰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세요, 티나.
숨 크게 들이쉬어요.
 
라티나:(피가 날 만큼 꽉 깨물었던 입술이 그제야 막힌 숨을 뱉는다.)
(크게 들이쉰 숨 끝에는 의문과 공포가 담긴 눈동자가 자리한다. 푸른 눈동자가 흔들린다.)
 
라티나가 숨을 크게 들이쉬면, 노아는 한 손으로 라티나의 입을 막습니다.
 
노아:(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린다) 저게 지나갈 때까지, 숨을 쉬면 안돼요.
(길 한 쪽에 비켜서서 가까이 붙더니 다른 한 팔로는 라티나의 어깨를 감싸고 끌어안듯 붙는다.)
 
두 사람이 길 한 켠으로 비켜나는 동안,
 
그륵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검은 형체가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옵니다.
 
라티나:(안기듯 붙은 채로 눈조차 깜빡이지 못한다. 덜덜 떠는 몸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그저 숨을 참는다. 그 말대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것의 숨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할큅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바로 근처에 멈춰서서 천천히 대가리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10초나 지났을까요, 그제서야 괴물은 다시 천천히 두 사람을 스쳐지나갔다가...
 
몇 발자국 뒤에 공기중에 흩어지듯 사라져버립니다.
 
노아:(시선으로 그것을 좇다가, 공기 중으로 비치는 검은 가루가 사라질 즈음에야 손을 뗀다.)
 
라티나:(그것의 잔상이 아직도 시선 안 쪽에 붙은 것처럼,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뱉는 몸이 떨린다.)
(무릎에 힘이 풀린 것처럼 작게 휘청인다.)
 
노아:이제 괜찮아요. (어깨를 감쌌던 손으로 라티나의 등을 토닥인다.)
 
라티나:... (충격으로 물든 눈동자가 흔들리며 노아를 본다.)
... ...노아.
(이상한 일 투성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 그 중앙에 서서 자신을 토닥이는, <소꿉친구>를 본다. 머릿속 노트의 한 페이지가 구겨진다.)
당신은... 누구인 겁니까?
 
노아:... ... (천천히 눈을 굴린다.) 노아에요.
저건 그냥...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서요.
 
라티나:... ...(떨리는 손이 노아가 했던 것처럼, 그의 팔을 잡는다. 떨림이 전해질 터였다.)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연기가 어떤 형체를 갖출 것인지 아는 것처럼.
 
노아:(이쪽은 진즉에 떨림이 잦아들었다. 네 말이 이어지다보면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겁이 좀...많아서 그래요.
(등에서 슬쩍 손을 떼며 가던 방향을 보고) ...서점 갈거죠?
 
라티나:... ...
(느리게 심호흡을 한다. 천천히 바로 서지만, 손끝의 떨림은 여전하다.)
제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저는 알 길이 없겠지만.
노아는 두 번이나 저를 구했습니다. (올곧은 푸른 시선이 너를 본다.)
그러니 어떻게든...
 
노아:(약간 시선을 내리깔고 뒷말을 기다린다.)
 
라티나:저도 당신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할 수 없는 일입니까.
 
노아:... ... (뭐라고 할 말을 고르는 듯 입을 벌렸다 다물기를 여러번 한다)
(단어를 거르고 걸러 내뱉기를) 안그랬으면 좋겠어요.
 
라티나:노아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두 걸음 내딛는다. 본래 두 사람이 향하던 서점 쪽으로. 그리고 돌아본다.)
저는 웬만해서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요.
제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 노아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노아:...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할게요. (라티나가 향하는 쪽으로 서서 따라 걷는다.)
아마도 자기 일처럼 도와줄테니까요.
 
라티나:...
(머릿속 노트의 구겨진 페이지 귀퉁이에 무언가를 적는다.)
 
제법 가지런히 정리를 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글씨가 흐릿해집니다.
 
라티나:생각대로일 겁니다. (흐릿해진 글씨의 아래, 작은 공간에.)
(<그는 위험에 처해 있다.> 라고.)
(<어쩌면 나. 혹은 그로 인해.>)
...
 
당장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티나:가죠.
 
하지만 알게 되겠죠. 지금까지 그에 대해 알아냈듯이.
 
두 사람은 서점으로 향합니다.
 
음반과 문구까지 취급하는 대형 서점입니다.
 
베스트셀러 코너, 신간 코너에도 다양한 서적이 있습니다.
 
소설 서가에는 '추리 특별전'이 진행 중이고, 역사 서가에는 '한국의 역사서 특별 코너'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찾는 책이 있다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겠어요.
 
라티나:(고민에 빠져서 뚱해진 얼굴로 서점을 둘러보고 있다.)
 
뚱... ...
 
노아:아, 저는 이쪽으로... (이쪽도 어쩐지 머슥한 표정으로 추리소설 서가를 가리킨다)
 
라티나:(째릿)
어딜 혼자 가십니까?
 
노아:...따, 따라다닐게요.
 
라티나:흥.
추리소설 코너는 왜 보려고 하셨습니까?
 
노아:그냥, 신간이 있는 것 같아서요. 라티나는 뭘 보려고 했는데요?
역시...뇌 과학?
 
라티나:네. 아까 말씀하신 것 위주로.
(가방 끝의 스트랩을 가리킨다.)
이거 잡으십시오.
 
노아:(얌전히 복슬복슬 스트랩을 잡으며) 계속 이러고 따라다녀요?
 
라티나:눈치가 빠르군요. (복슬복슬 강아지 스트랩이다.)
놓치면... ...
(빤히 본다.)
 
노아:(꿀꺽) 절교...인가요?
 
라티나:네. 두 번.
(꼭 잡고 계십시오. 덧붙이고 과학 코너로 걸음을 옮긴다.)
 
라티나+노아는 과학코너로 향합니다.
 
어디 한 번 해리성 기억 상실에 관한 책을 찾아볼까요.
 
라티나:(몇 걸음마다 뒤 돌아서 잘 잡고 있는지 확인했다.)
여기인가... (반팔이지만 팔 걷는 시늉 함.)
 
노아:(얌전히 잘 잡고 있다.)
 
원하는 책을 찾아보려면 자료조사 판정입니다!
 
라티나: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라티나는 을 찾아냅니다.
 
?
 
[MSD매뉴얼 일반인용 - 2052년 개정판] 을 찾아냅니다...
 
해리성 기억 상실은 외상 또는 스트레스에 의한 기억 상실로, 중요한 개인적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의 상실을 초래합니다.
 
몇 분에서 몇 십년간의 기억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라티나:(띠지가 삐딱하게 올라가 있어서 잠깐 제목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용을 집중해 읽어내려간다.)
 
최면 및 약물 유도 상담을 포함한 기억력 복구 기법이 기억 속의 공백을 메우는 데 활용됩니다.
 
기억 상실이 일반적인 의학적 장애가 아닌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경우, 해리성 기억상실이라고 합니다.
 
라티나:심리적 요인...
 
잃어버린 기억에는 대개 일상적으로 자각하는 의식이나 자전적 기억의 일부에 해당되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포함됩니다.
 
라티나:(책에 빨려들어갈 기세)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갔었는지, 누구와 이야기했는지, 무엇을 했고-말했고-생각했고-느꼈는지.
 
해리성 기억상실은 다음 중 어떠한 기억이라도 상실할 수 있습니다.
 
라티나:... ...
 
어떤 사건의 특정 측면이나 일정 기간 중의 특정 사건만 (선택적 기억상실)
 
개인의 정체성과 인생 이야기 전체, 간혹 숙달된 기술과 세상에 대한 정보 포함(전반적 기억상실)
 
특정 인물이나 그 가족에 대한 모든 정보 등 특정 범주의 정보(체계적 기억상실)
 
라티나:(페이지 위의 글씨를 만지작거린다.)
 
기억 상실을 회복하는 데에는 약물, 상담 등 여러가지 치료 기법이 동반되지만, 역시 확답할 수 있는 완치 방법은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라티나:...정말 해리성 기억 상실인 걸까? 나...
 
노아: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많다고 써 있으니까... (옆에서 같이 들여다보는 중)
역시 이렇게 다니는 것도 도움이 되는 걸까요?
 
라티나: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조그만 책 앞에서 함께 열심히 들여다보는 중.)
그리고...
아깝잖아요.
어떤 소중한 걸 잊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그래.
 
노아:재산을 잃은 기분이에요? (작게 웃는다)
 
라티나:...네.
제게 할라피뇨 밭이 있었는데 이제 없다고 들은 기분입니다.
말해주질 말던가.
 
노아:(그 말에 눈을 끔벅인다) 그 말은... ...
제가 안 나타났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라티나:(눈을 가늘게 뜨고 흘끗 본다. 장난 전의 표정이다.)
 
노아:농담도.
...농담 맞죠?
 
라티나:할라피뇨 밭은 어디 있으려나... (콧노래 부르며 다시 책장 넘긴다.)
 
노아:... ...못 찾으면 사드릴게요... (옆에서 약간 안절부절하면서 같이 책 본다.)
 
나머지 뒤쪽에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관한 유의미한 연구 기록과 사례가 자세히 나와있었습니다.
 
아내를 잊은 전직 군인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나,
 
라티나:또 계좌이체 해 주신다고요? (가볍게 대꾸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자발적으로 실종되었던 사회인들이 갑작스럽게 증상이 회복되며 새롭게 주민신고를 하는 등의 내용이네요.
 
노아:반포자이 사실 거라면요...
 
라티나:참 나...
...그래도 이 사람들은 결국 기억을 찾게 되어 다행입니다.
 
노아:티나도 그럴 거에요.
이렇게나 열심히 찾고 있는데...아, 이거 사 갈 거면 들어드릴게요.
 
라티나:(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늘 이런 모습으로 책을 사 갔을까.)
(책을 건네고 나서 문득 멈칫한다.)
노아.
제가 잊어버린 게 괘씸해서 꿀밤 한 대 때리고 싶은 기억은 없습니까?
나중에 한 대 정돈 맞아도 되는데요.
 
노아:(그 말에 잠시 생각하듯이 눈을 위로 굴린다.) 그 정도로 괘씸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보통은 티나가 저를 답답해했고요.
왠지 항상 도움만 받았던 것 같은 기억이...? (나...무능한가? 하고 잠깐 생각한다)
 
라티나:책도 들어주겠다는 분이 그런 말을 하십니다. (어깨를 으쓱인다.)
 
노아:이 정돈 어렵지 않아요. 제가 도움 받은데에 비하면요.
 
라티나:...
너무 후하시다니까.
(짧게 기지개를 켠다.)
뭐... 그래도.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가 조금 작아진다.)
...못 들으셨으면 됐고요.
 
라티나:(계산대로 먼저 걸어가버린다.)
 
노아:진짜요?! (눈 크게 뜬다) 한 번만 더 말해주시면 안돼요?!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주세요. (질질 쫓아간다)
 
계산대로 향하는 라티나는...관찰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열심히 도망간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엥? 여기가 어디지?
 
서가 사이로 정신없이 도망치다보니...
 
원래 가려고 했던 계산대로 가는 길이 막힌 서가에 우뚝 도착합니다.
 
라티나:...........어떻게 이런.
(막힌 길 주먹으로 괜히 한 대 친다.)
 
'역사특별서가' 라고 써 있는데...
 
책: 아야
 
라티나가 때린 책은 [세계야담집]이라는 녀석입니다.
 
라티나:(주먹을 떼 보니 '역사특별서가'라는 글씨가 보인다.)
때린 것도 인연인데. ([세계야담집]을 꺼내본다.)
 
이 책은 세계 각지의 야사나 구전 따위를 모은 책으로 보입니다.
 
총 열 두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책장을 후루룩 넘기다 보니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네요.
 
2챕터 [녹색 눈의 사내] 입니다.
 
라티나:...녹색 눈.
(2챕터를 읽어본다.)
 
라티나는 해당 챕터를 펼쳐봅니다.
 
라티나:...'어쩌면 이 인물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혹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마지막 문장을 중얼거리고는 잠시 말이 없다.)
 
야담집이란 세계 각국의 기록을 엮어 그럴듯하게 만드는 전래동화라고 하지만요.
 
라티나:이런 게 현실에 존재할 리 없지. (짧게 숨을 뱉는다.)
그래도...
(꼭 누군가 떠오르잖아. 신기한 일이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노아를 따돌리는데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라티나:(조금 뿌듯.)
 
다른 쪽 서가에서 머리 끄트머리만 나온 채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라티나:([세계야담집] 한 권을 든 채로 서가에서 고개만 살짝 내민다. 검은색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발견한다.)
추리소설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그런 걸까요? 하긴, 아까부터 추리소설 서가를 보고 있긴 했었죠.
 
라티나:(설마 아직도 또 말해달라고 하진 않겠지.)
(시침 뚝 뗀 얼굴로 척척 다가간다.)
 
이 쯤 되면 포기할 때도 됐죠.
 
노아:(라티나의 예상대로...추리소설 서가에 비스듬히 기대서 베스트셀러를 읽는 중이다)
 
라티나:(자신을 발견하지 못 한 걸까? 뭔가 치고 싶은 장난이 있는 듯 슬그머니 옆에 선다.)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전화번호 좀... (음성변조 목소리)
 
과연...음성변조를 얼마나 잘 했을까요?
 
원하는 기능치로 비벼봅시다.
 
라티나: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wow
 
라티나는 거의 다른 사람 목소리를 냈습니다...
 
노아: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
 
아 ㅋ
 
아 ㅋㅋ
 
노아는...너무 책에 집중한 나머지...
 
라티나의 기막힌 음성변조를 듣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책을 집어넣으려고 했던 걸까요?
 
노아가 휙, 몸을 돌리는 사이...
 
들고 있던 책이 라티나의 이마에 명중합니다.
 
노아:(화들짝 놀라서 책을 위로 확 뺀다) 으악, 죄송...티나?!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어요?!
 
라티나:...!!~...!(이마 싸매고 있다.)
 
노아:으악, 죄송해요. 죄송해요!
 
라티나:(끙끙대다가 손가락 틈새로 째려본다.) 제가 얼마나 명연기를 펼쳤는지 아십니까?
평생 모르실 겁니다......
 
노아:명연기요!? 어떤...?
(조금 쪼그라든다)
 
라티나:쳇. 그런 게 있습니다. (이마 끙끙 매만지다가 앞머리를 대강 쓸어넘긴 채로 이마를 보여준다.)
빨개졌습니까? (그 상태에 따라 복수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의도하지 않은 것 같다.)
 
노아:(그렇게 듣는 바람에 긴장하고 본다)
...앗, 약간 빨간 것 같기도... (이마 문질거려주며)
(앞머리 삭삭 내려준다)
이제 안 빨개요.
 
라티나:...........거짓말 같은데.(미심쩍게 보지만 일단 꽉 쥐었던 주먹은 내려둔다.)
뭘 읽고 계셨던 겁니까?
 
노아:추리소설 베스트셀러요. 이름이 특이해서...
[어쩌면 그 육회비빔밥도 사실은]?
 
라티나:...........................................?
범인이 전주 출신이기라도 합니까?
 
노아:...아뇨, 주인공들이 가는 육회비빔밥 집 사장님이 전주 출신... (책을 뒤적인다)
그래도 재밌어요.
(그러나 살 생각은 없는지 책을 내려둔다)
 
라티나:(....육회비빔밥에 독이라도 들어 있었나? 추리소설의 세계란 독특하다고 생각 중이다.)
([세계야담집] 한 권을 슥 들어올린다.)
전 이것도 사려고 합니다.
 
노아:세계야담집...역사에도 흥미가 있었어요? 꽤 두껍네요.
 
라티나:사실 다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2 챕터가 재미있었거든요.
(목차 부분을 펼쳐 톡톡 두드린다.)
[녹색 눈의 사내]. 이거요.
 
노아:녹색 눈의 사내? (고개를 기울이고 라티나가 펼쳐준 페이지를 훑어본다.) 아, 이런 얘기 많죠.
저도 지난번에 봤어요. 150년 전 사진에 DSLR을 들고 찍힌 사람이 있다던가...현대식 옷을 입은 사람이 찍힌 이야기라던가...
 
라티나:(고개를 기울인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이야기 아닙니까? 노아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아: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신기한 오컬트도 많으니까... ...진짜일지도 몰라요.
그런 미스테리한 일이 몇 개 쯤은 있다고 생각하면 재밌잖아요. (씩 웃어보인다)
 
노아의 반응은 꽤 무던하네요.
 
라티나:(씩 웃는 얼굴을 빤히 보다가 왼쪽 턱 근처의 점을 꾹 누른다.)
(꾹)
 
노아:(꾹 눌린다)
... ...?
 
라티나:미스테리한 일도 나름대로 재미있겠지만.
전 노아가 항상 이렇게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게요.
계좌이체 상습범 같으니. (눈을 가늘게 뜬다.)
어디 가서 고생이나 하고 오는 거 아닌가 몰라.
 
노아:(눈을 깜박거리다가)
저는 괜찮은데. (의아한 표정이 금세 거둬지고 웃는다)
아직도 계속 걱정 중이에요? 스트레스 받으면 머리 빠진대요.
 
라티나:전 가진 게 많아서 빠져도 티 안납니다. (삐쭉포니테일 가리킨다.)
괜찮다의 기준이 너무 후한 분이니까. (적어도 제가 본 시간동안은 그랬다. 야담집의 모서리로 아가일니트 끝자락을 꾹 찌른다.)
그럼, 더 살 건 없을까요?
 
노아:아야. (또 아픈 척 하면서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가 다시 스트랩을 잡고 따라간다)
 
라티나와 노아는 책을 계산하고 서점 밖으로 나섭니다.
 
어느새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네요.
 
라티나:(손그늘이 필요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노아:서점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꽤 밝았는데...
책을 좀 오래 보긴 했나봐요.
 
라티나:도망도 좀 다녔고요.
 
두 사람은 선선한 밤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향합니다.
 
라티나:(초여름의 풀벌레 소리였을까. 발걸음 사이로 섞이는 작은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
 
시간이 지나며 낮에는 활기를 띄었던 공원도 적막해지고, 서정적인 연주가 광장을 울립니다.
 
언제나 그렇듯 돌아가는 길은 짧게 느껴집니다.
 
노아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것 마냥 반응이 느렸습니다.
 
라티나를 배웅해주는 순간까지도 말이죠.
 
라티나:(집 앞에 도착해, 멈춘 채로 돌부리를 툭 친다.)
뭡니까? 뭐라도 두고 온 것처럼.
 
노아:(약간 찔린 것처럼 머슥하게 웃는다.) 아니에요. 그냥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지쳐서 그런가봐요.
 
라티나:(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품 안에 들고 있던 노아의 초상화를 펼친다.)
네 주인은 어디에 정신이 팔린 건지 모르겠어. (장난이라도 치듯 초상화를 향해 중얼거린다.)
뭐가 걱정인지...
뭔가 무섭기라도 한 건지. (고개를 들어 살아있는 그를 본다.)
 
노아:(자신을 향하지만 자신을 향한 것 아닌 불만에 작게 웃는다) 그래도 오늘 즐거웠어요. 혹시 저만 그렇게 생각했나요?
 
라티나:(초상화를 돌돌 말아 노아의 어깨를 톡 친다.)
이번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석연치 않은 것도 있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노아:다행이에요. (어깨를 살짝 털어내듯 으쓱이더니) 그럼 초상화도 잘 부탁해요, 티나.
(그대로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듯 했다가, 몸을 돌려서 양 손을 크게 흔든다) 내일 학교에서 봐요.
 
라티나:... ...(조금 뚱해졌다가, 작게 한숨을 쉰다.)
(그대로 고개를 까딱, 끄덕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가, 몸을 돌린다. 노아의 앞으로 성큼 다가와 선다.)
 
노아:(라티나가 불쑥 다가와 서면 살짝 몸을 빳빳하게 펴고 바라본다.)
 
라티나:바보.
 
노아:저요?
 
라티나:네.
(바보. 한 번 더 입모양을 벙긋거리곤 주먹으로 툭, 어깨를 친다.)
 
노아:... (눈을 살짝 굴리더니, 입모양으로 미안해요, 하고 벙긋거리며 씩 웃는다.)
 
라티나:웃지 마십시오.
 
노아:(입 다문다)
 
라티나:(순하기도 하다. 그렇게 중얼거리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내일도 보는 겁니다.
그 다음 날도요.
아무 일 없이.
 
노아:...네. 그렇게 해요. 아무 일 없이. (약속하듯 새끼손가락을 슬쩍 내민다) 이것도 약속?
 
라티나:(아집을 부리는 아이라도 된 것 같다. 분명 당연한 일일 텐데. 초여름의 어두운 연주 사이로 녹색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 번 더 새끼손가락을 건다.)
(그리고 천천히 놓으며) 오늘은 노아가 돌아가는 걸 보고 들어가겠습니다.
 
노아:으음, 좋아요. 제가 항상 집에 제대로 들어가긴 하는 건지 궁금했던거죠?
 
라티나:(허리춤에 양 손 얹은 채로 끄덕끄덕)
 
노아:그럼 저도 진짜 들어갈게요. 가는 것만 보고 쉬세요.
 
노아는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라티나의 집을 지나가는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라티나:두 블록이라고 했던가.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서 있다.)
 
걸어서 두 블록.
 
아무렇게나 찾아가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고, 작정하고 가기에는 가까운 거리죠.
 
라티나:(그것이 꼭 노아가 건네온 다정함의 거리와도 같이 느껴져서.)
 
친하다곤 하지만 긴밀하지는 않은 정도랄까요.
 
라티나:(괜히 돌부리를 한 번 더 툭, 찬다. 신발 앞코가 툭툭 바닥에 닿는 소리를 듣다가 작게 한숨을 쉰다.)
나 믿음직하지 못한가.
 
어느새 노아는 골목 저 쪽으로 사라지고 없습니다.
 
라티나:.........한 번도 그런 말 들어본 적 없는데. (조금 심각하게 덧붙인다.)
 
지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어느새 저 멀리 사라진 인영의 잔재를 찾는 듯 눈을 깜빡인다.)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라티나는 문득, 걸핏하면 역사의 비밀이나 미스테리 따위를 이야기하던 세계사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오컬트에도 정통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도요.
 
그리고 뒤이어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무언가 찜찜합니다.
 
라티나:...(그 생각이 떠오르자 품 안에 들린 책이 눈에 들어온다.)
 
나...서점에서 계산하고 나서 지갑을 챙겨왔던가?
 
라티나:...?
?
(가방 안을 열어본다.)
 
립밤...있고, 핸드폰...있고, 카드지갑...있는데...
 
라티나의 반지갑만 쏠랑 사라졌습니다.
 
라티나:(대원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다가 제일 중요한 구성원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쿠폰을 찍겠다고 지갑을 잠깐 꺼냈던 게 패인이었겠네요!
 
라티나:(눈을 꾹 감고 앓는 소리를 낸다.)
 
반지갑-!! 널 두고 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하지만 지금 시간은 이미 10시 반이 지나가는 시점.
 
서점이 열었을 리 만무하겠죠.
 
라티나:(핸드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10시가 훌쩍 넘었다. 어쩌지?)
 
내일이라도 가져오는 수 밖에 없겠어요.
 
라티나:내일 하교한 뒤에 다녀와야겠네. (지갑...잘 있겠지. 앞코로 바닥을 한 번 더 찬다.)
그리고, 내일 세계사 선생님을 한 번 찾아가봐야겠어.
 
이제는 조금 더 시야를 넓힐 때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주변에서 맴돌 수는 없어...
 
라티나:말해주지 않는다면, 알아내서 다가갈 때야.
 
그런 다짐과 함께 라티나의 하루도 저물어갑니다.
 
----------------------------
 
다음 날, 평소와 같이 등교한 라티나는...
 
노아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조례시간이 지나고, 1교시가 지나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는군요.
 
결국 라티나는 먼저 세계사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라티나:(뚱한 표정을 하고 옆자리를 노려보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일어난다.)
(어제 산 책을 한 손에 들고 세계사 선생님을 찾아 복도를 걷는다.)
 
라티나가 교무실에서 세계사 선생님을 찾으면, 선생님은 활짝 웃는 얼굴로 라티나를 맞이합니다.
 
선생님:무슨 일이야, 그레이? 나를 다 찾아오고.
혹시 시험 범위 공지 때문에?
 
라티나:(꾸벅, 고개를 숙이고도 잠시간 말이 없다. 도통 허무맹랑한 소리라고는 입에 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당연히 공부에 관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 중인 웃는 얼굴에 대고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조금 손을 꼼지락거린다.)
...
선생님.
 
선생님:(어쩐지 라티나의 태도가 평소같지 않아서 덩달아 심각해진다) 왜,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라티나:(고민이라면 많다. 하지만...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선생님의 옷깃을 쥔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고민... 있습니다.
상담실에 함께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정말 무슨 고민이 있는 거구나! 하고 섣불리 판단하고는) 물론이지. 마침 3교시는 수업이 없거든. 내가 노트랑 펜만 좀 가져가도 괜찮겠지?
 
라티나:(머릿속에서 고민이 신나게 담을 넘는 중이다. 고개를 주억거린다.) 네...
 
세계사 선생님과 라티나는 함께 상담실로 향합니다.
 
조용하고, 자리도 넓고...말을 꺼내기에는 딱이네요.
 
선생님:그래... (자리에 앉으며) 무슨 고민인데? 말할 수 있는데까지만 말해봐.
 
라티나:...
(조용히 가져온 책을 책상 위로 꺼내, 2챕터의 페이지를 펼친 채로 선생님의 앞에 책을 슥 밀어놓는다.)
이런 이야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선생님:으음, (라티나가 내민 책의 내용을 팔락이며 넘긴다. 천천히 내용을 훑더니 고개를 들고 바라보며) 네가 아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거야?
 
라티나:... ...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게 맞다면...
무언가에 위협받고 있는 것 같은 그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선생님:(천천히 턱을 매만진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혹시 를 봤니?
 
라티나:... ...(선생님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걸까. ...그것을 개라고 명명하자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끔찍하던 그것을 상기하며 짧게 숨을 들이킨다.)
...네.
검은 연기 속에서...형체를 갖추던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그 말에 이번에는 천천히 자기 얼굴을 문지른다.) 만약 네가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중간에 말을 뚝 끊더니 손을 내젓는다) 으음, 아냐. 이건 됐다. 그 사람을 왜 돕고 싶은거야?
 
라티나:(도울 수 있을까. 그 때의 나는 무력하기만 했는데. 숨을 참고 노아에게 기댄 채로... 교복 치마 위에 올려둔 손에 꾸욱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 ...두 번이나 저를 구했고,
늘 베풀고 있는 주제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제 쪽이라고 하는 데다가.
장난에 화 한 번 안 내고.
...그리고...
 
선생님:그리고? (턱을 괸 채 듣는다)
 
라티나:...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요.
그냥...그래서입니다.
 
선생님: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학생 시절에는 이런 무모함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고 하지만... (중얼거리면서 노트에 뭔가 써 내민다.)
그래도 길 정도는 알려주는 게 선생 된 도리려나 싶어.
 
라티나:... (숙였던 고개를 든다.)
(내밀어진 노트를 향해 눈을 깜빡인다.)
 
노트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괴물들과 그 일족들>
 
224페이지.
 
선생님:도움이 될 거야.
만약 조금이라도 무섭다면, 이건 버리도록 해.
 
라티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던 움직임. 뒤틀린 관절과 이글거리는 눈의 괴물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지킨 이를 알고 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노트를 쥔다.)
하지만 버릴 생각도, 도망칠 생각도 없습니다.
길을 알려주셨으니까요.
 
라티나:(노트를 안은 채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라티나는 도서관에 가서 선생님이 알려준 책을 찾아볼까요?
 
아직 점심시간 종료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습니다.
 
라티나:(아직 종이 치려면 시간이 남았어. 걸음을 빨리 해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으려면, 자료조사를 판정합니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보너스 주사위로 굴려주세요!
 
라티나: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3439100
+2: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0: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2: 대실패
 
라티나는 어렵지 않게 책을 찾아냅니다.
 
선생님이 지정한 페이지를 펼쳐보면, 이런 내용이 써 있습니다.
 
라티나:... ... (말도 안 된다고 넘겨버리고 싶지만, 자신이 본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문장들이 거기에 있었다. 심호흡을 한다.)
'목표로 정한 시간 여행자의 숨결'...
 
라티나가 겪었던 내용과 책의 내용이 묘하게 겹쳐집니다.
 
선생님이 단숨에 '개'에 관한 내용을 물어보았던 것이나,
 
서점에서 샀던 책의 내용은... ..
 
라티나:... ...
 
어쩌면 노아는 정말로, 라티나와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체 그는 어디로 간 걸까요?
 
라티나:(입술을 꽉 깨문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내일도 보자고 약속한 주제에.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언가 떠오른 듯 책장에 손길이 머문다.)
 
자기 입으로 학교에서 보자고 해놓고 말이죠.
 
라티나:(노아가 제게 숨을 참으라고 말했던 그 때. 노아 또한 숨을 참고 있었던가?)
 
잘 생각해보면... ...
 
라티나:...
 
그렇네요. 노아 역시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라티나:...찾아야 해.
찾아야 해.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노아는 아직도 쫓기고 있는 거야.
 
우선 추궁을 하더라도 그를 찾아야만 하겠죠.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는 감각이 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라티나:... ...
(책을 쥔 손에 꾹 힘이 들어간다.)
(종이 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5분 뒤면 점심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이 칩니다.
 
라티나:.........................................
땡땡이 칠까? (평생 처음 말해본다.)
 
"땡땡이."
 
라티나의 인생에 처음 있는 단어입니다.
 
라티나:...
 
땡땡이?
 
라티나:...
....................
 
물론 나간다고 한들 아무도 잡지 않겠지만.
 
집으로 한 통 연락이 가는 정도겠지만...
 
라티나:...
어차피 서점에도 들려야 하니까. (하교하고 들려도 늦지 않겠지만.)
어디서 뭐한테 쫓기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한 번쯤은.
 
뭐 어때.
 
라티나:분명 노아였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줬을 거야.
 
티나가 옳다고 믿는 게 맞는 거에요, 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인 것 같기도 하고...
 
라티나: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대로 <괴물들과 일족들>을 대여하고, 복도를 걸어가 도착한 교실에서 가방을 챙긴다.)
 
라티나는 그래도 가방을 놓고가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고, 제대로 가방까지 맸습니다.
 
라티나:(아주 당당히 학교를 빠져나온다.)
일단 서점부터.
그리고 하나씩, 노아가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는 거야.
 
라티나는 우선 서점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라티나:(빠른걸음!)
 
'개'를 목격했던 장소를 지나, 서점으로 가는 길에... ...
 
뚜벅뚜벅 걷던 라티나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들어옵니다.
 
라티나:...
 
검은 꽁지머리에 조금 큰 키...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걷고 있네요.
 
라티나:... ...
노아!
(그 특징을 확인하자마자 달려간다.)
 
노아:(이름이 불리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티나?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에요?
 
라티나:누가 할 말입니까, 대체?
(짧게 숨을 고르며 뚱하게 쳐다본다.)
갑자기 학교를 안 오시니 걱정했잖아요.
 
노아:아, 그게...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요.
혹시 기다리다가 나온 거에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바라본다.) ...티나가 무단 조퇴를?
 
라티나:..................................(완전째려보고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덕분에.
(팔짱을 낀 채로) ...급한 일은 뭡니까?
 
노아:(아...하고 잠시 말 끝을 흐리더니) 서점에 좀 갈 일이 있어요.
오늘 무슨...흠, 중요한 이벤트가 있거든요.
 
라티나:이벤트?
 
그렇게 말하는 노아의 휴대폰에는 기묘한 장치 같은 것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 저걸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나봐요.
 
라티나:...뭡니까? 휴대폰에 붙어있는 것.
 
노아:그냥 보조장치 같은 거에요. (핸드폰을 뒤로 삭 넣더니) ...정말 저 찾으러 온 거에요?
다른 용건은?
 
라티나:(이것저것 숨길 뿐인 제 앞의 구 수상이, 현 노아를 빤히 노려본다.)
찾아서 추궁하려고 왔습니다.
나름대로 알아봤거든요.
 
노아:추궁이라 함은? (구 수상이, 현 노아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라티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노아는...
시간 여행자입니까?
 
노아:(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주변을 둘러보더니 앞장서서 걸음을 서점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재밌네요,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라티나:(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열심히 살핀다. 이번에는 자신이 졸졸 그 뒤를 쫓는다.)
조력자를 통해 제가 얻어낸 결론입니다.
...그 날 봤던 괴물의 이름도 알아냈고요.
(몇 걸음 앞서 탁탁, 뛰어가 빙글 앞을 막고 선다.)
맞습니까?
 
노아:티나가 이 정도로 확신하는 건 오랜만에 봐요. (의외의 반응인지, 아니면 라티나가 예상했던 반응인지. 작게 웃으며 서점 방향을 가리킨다) 그럼 시간여행자라고 치고...저랑 서점 좀 같이 가 줄 수 있어요?
정말 중요한 일이 있는 건 사실이거든요.
 
라티나:(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뚱하게 몸을 돌린다.)
일단은 알았습니다.
저도 놓고 온 물건이 있으니까요.
 
노아:물건을 놓고 왔어요? 어떤 거?
 
두 사람은 서점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라티나:지갑요. 아마도 저기 놓고 온 것 같습니다.
(머릿속 노트를 다시 넘겨보는 중이다.)
 
노아:계속 같이 다녔더니 저를 닮아가는 거 아니에요?
 
라티나:(눈을 가늘게 뜬다.)
...좀 멀어져야겠습니다.
이런 것도 옮나?
 
노아는 서점으로 향하는 내내 흘끔흘끔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라티나의 대답에 얼버무리는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집중하는 일은 흔치 않긴 하죠.
 
노아:에... (너무해요, 하는 표정 한다)
 
라티나:핸드폰만 신경이 쏠려 있으시면서 뭘.
그 이벤트라는 게 대체 뭐길래...
 
서점으로 들어서면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중앙 무대에서 공개 라디오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군요.
 
평소에 작가 사인회나 토크 콘서트 따위가 열리던 자리입니다.
 
라티나:...(이것 때문이었냐는 얼굴로 노아를 올려다 본다.)
 
라티나의 지갑은 안내데스크에 한 번 물어보면 되겠네요.
 
노아:4분... ... (다시 한 번 핸드폰을 봤다가 중얼거리더니, 뒤늦게 라티나를 보고) 아, 저는 이것 좀 보고 있을게요.
지갑 찾아오는 거 맞죠?
 
라티나:미리 이것 때문에 안 갈 거라고 말씀 좀 하시지. (꿍얼대고 고개를 끄덕인다.)
(시작하기까지의 시간을 세는 걸까? 작은 의문을 안고 안내 데스크로 향한다.)
 
라티나가 안내데스크로 향하면, 데스크 직원이 고개를 듭니다.
 
직원: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티나:반지갑 하나가 분실물로 들어오지 않았나 해서요.
 
직원:반지갑...혹시 회색에 파란색 포인트가 있는 반지갑 맞으세요?
 
라티나:네. (반갑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 놓고 간 것 같았는데...여기 있습니까?
 
직원:네, 어제 분실물이 들어와서 맡아놓고 있었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지갑을 내어준다.) 찾으셔서 다행이에요.
 
라티나:(다행이다. 작게 중얼거리고 지갑을 받아든다.) 감사합니다
아...그리고.
오늘 서점에서 무슨 이벤트를 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직원:오늘 중앙 무대에서는 팟캐스트 이벤트를 진행 중입니다. 평소에 북 라디오를 진행하시던 라디오 DJ를 특별 초청했어요.
시간이 나시면 한 번 참여하고 가세요.
 
라티나:(그랬구나...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서 노아가 있는 쪽을 향해 걷는다.) 북 라디오라...
학교도 빠질 만큼 좋아하는 DJ인가.
 
원래 라디오 팬이었던가...
 
노아는 코너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제법 초조해보이네요.
 
라티나:(그 옆에 서서 작게 손을 흔들어보인다.)
...노아?
왜 그러십니까?
 
라디오 부스에서는 진행자들이 서점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이에요.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나.
 
노아:아, 티나. 지갑 찾았어요? (라티나가 오면 잠깐 라티나를 바라봤다가 금세 또 주변을 둘러보듯 고개를 돌린다.)
 
라티나:네. 지갑은 찾았는데...
...
(노아의 양 팔을 확 잡더니 몸을 돌리게 해 제 쪽을 보게 한다.)
뭔가 찾으십니까?
 
노아:(라티나가 양 팔을 잡고 몸을 돌리면 앗,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가) 찾는게 있기는 있는... ...데...
 
순간, 노아의 눈이 크게 뜨입니다.
 
라티나:...?
 
그는 라티나를 봤다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부스를 한 번 보고, 다시 라티나를 바라봅니다.
 
라티나:노아?
 
안색이 타오르는 휴지 조각처럼 새하얘졌다가 시퍼래졌다가, 별안간 숨을 참고 있던 것처럼 크게 들이쉽니다.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혹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노아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명백히 떨리고 있습니다.
 
노아:티나.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정말... (눈을 감았다가, 뭐라고 단어를 형용할 수 없는지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눈을 뜬다.) 정말 절실하게, 당신 도움이 필요해요.
 
라티나:(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무언가를 깨달은 것도 같고, 혹은 커다랗게 충격받은 사람처럼. 아니면. 이름붙일 감정을 찾지 못 한 사람처럼...)
... ...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아:(긍정을 뜻하는 대답에 환한 미소를 짓더니, 곧장 라디오 부스를 가리킨다.) 저기에 가서 인터뷰를 해 주세요.
그리고... ... 나를 만나러 와.라고 말해주세요.
정말 그거면 돼요.
 
라티나:(예상하지 못한 말에 잠시 입을 벙긋인다. 라디오 부스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노아를 본다.)
그러면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까?
 
노아:(고개를 크게 주억인다. 뜻 모를 기대를 바라는 눈빛이 선명하게 빛나며) 네. 정말...큰 도움이 될거에요.
 
라티나:...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노아는요?
저를 보고 있을 건가요.
 
노아:네, 물론이죠. 보고 있을게요. 정말...정말 기대하고 있던 순간이거든요.
티나가 아니면 안돼요.
 
라티나:...
(왜 이렇게도 빛나는 눈을 하고 있을까. 이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라디오 부스 앞으로 걸어간다.)
(그러다 잠시 멈춰 그를 돌아본다.)
 
부스 앞으로 향하면, 진행자가 반갑게 라티나를 맞이합니다.
 
노아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네요.
 
진행자:아, 어서오세요. 학생 참여자 분이신가요? 이 시간에 흔치 않은데...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라티나:...네.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진행자:오늘의 주제는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 인데요. 참가자 분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라티나:...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하고 싶은 말을 길게 늘어놓아도 될까요.
 
진행자:네, 물론이죠. 120분만 아니면 됩니다. (농담처럼 말하곤 웃는다.)
이쪽 마이크에 대고 말해주세요.
 
라티나:(농당 한마디를 뒤로 하고 천천히 마이크를 쥔다.)
아, 아. (작게 중얼거려본다.)
 
이제 한 번 그를 도와줘볼까요?
 
라티나:정말이지. 숨기는 것 투성이에...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일의 반복이어서. 솔직히 제법 분한데요.
당신이 정말 제 잊어버린 친구인지. 어딘가를 넘어온 사람인지.언제부터 나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틈만 나면 계좌이체로 해결해준다고 하고, 손해보고만 살 것 같은 답답할 만큼 착한 당신이지만.
꽤 즐거웠거든요.
그러니까...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어디로 가 버리든...
 
라티나:반드시.
나를 만나러 와, 이 바보야.
 
그 순간 당신이 바라본 수상한 소꿉친구는,
 
어떤 어휘로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저항하지 못할 재해에 휩쓸린 부표처럼 떨면서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소실점을 바라보듯 꼿꼿합니다.
 
두려움과 희열이 뒤섞인 어떤 감정에 새롭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당신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듯이.
 
그러나 그 까닭 모를 환희 너머로,
 
라티나의 눈에는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책장 구석.
 
검게 뭉쳐 거꾸로 흐르는 듯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등진 그는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라티나:(그 광경에 멍하니 경탄하는 것도 잠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노아!
 
그것은 이미 거의 뚜렷하게 대가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라티나:(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마자 그에게 달려간다. 들이쉰 숨을 참은 채로.)
 
당신은 그에게로 달려갑니다.
 
더 늦기 전에 말이죠.
 
노아:(달려오는 것을 받아주는 것 마냥 활짝 미소지은 채 라티나를 맞이한다) 티나!
 
라티나:...웃지 말라니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입을 꾹 다문다. 달려가서, 그가 했던 것처럼 그가 숨을 참게 하고. 그러면. 들키지 않을 거야. 반드시 그럴 것이다.)
 
라티나가 확인했고, 노아가 쓴 방법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라티나:(자신은 그의 앞에 섰을까? 무사히 달음박질을 해 냈을까? 찰나 보았던 그의 표정에 아직도 잡혀있는 것은 아닐까.)
 
라티나는 '그것'보다 빠르게 노아에게 도착합니다.
 
라티나:숨 참으십시오. 와 있습니다...! (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노아의 입을 손으로 막는다.)
 
라티나가 노아의 숨을 막으면, 그는 잠시 멈춰있다가 금세 상황을 파악한 듯 당신을 밀어냅니다.
 
노아:안-...
 
그러나 당신이 조금 더 빨랐습니다.
 
노아가 입을 떼기 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연기는 공중으로 흩어졌고, 그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며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라티나:... ...하아...
 
노아:(그것을 도로 찾듯이 고개를 돌리다가, 다시 라티나를 바라본다.) 왜...어째서... (영문 모를 말이 짧게 내뱉어지더니, 한 손을 안경 안쪽으로 집어넣어 천천히 마른세수를 한다.)
어떻게... ... (앓는 듯한 침음이 잠시 이어지다가) 그것까지 알았어요?
 
라티나:... ...(덜덜 떨리는 손을 등 뒤로 숨기며 숨을 뱉는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름대로 알아봤다고요.
덕분에 노아를 구했으니 잘 된 것 아닌가요.
 
노아:... ...그런 게 아니고. (잠시 말을 끊고 고민하는 듯 하다가)
...여기 옥상이 경치가 좋아요. 그쪽으로 가 볼래요?
제가 할 말이 있기도 하고요.
 
라티나:...(일단 얌전히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
 
저 멀리 뉘엿하게 해가 지고 있습니다.
 
라티나:...
 
거리에 늘어선 가로등이 천천히 켜지기 시작합니다.
 
도시의 전경이 단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라티나:화나셨습니까?
 
노아:(잠시 그 풍경을 보고 서 있다가, 고개를 젓고서야 뒤를 돌아본다.) 제가 왜 티나한테 화가 나겠어요.
어떻게 하면 당신이 화내지 않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천천히 눈을 깐다.)
일단은... ...거짓말 해서 미안해요, 라티나 그레이.
 
라티나:(천천히 켜지는 가로등을 바라보다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
(그의 말을 기다리듯 눈을 깜빡인다.)
 
노아:...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하겠죠. 당신은 저를 처음 만나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듯이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다가 눈을 마주치고 별안간 우뚝 멈춘다.)
(그러더니 식은땀이 나는지 양 손을 맞대고 깍지를 꼈다가) 당신과 나는 아주 오래 전에 만났어요.
아마도 기원전. (고개를 옆으로 까닥인다.) 정말 오래 전이었으니까요. 달력 같은 것도 없었고.
 
라티나:... ...
 
노아:그 다음은 아마도 기원 후... ...몇 년 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계속 당신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웃어보인다.) 뜬금없죠, 이런 말은. 좀...
 
라티나:...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는다.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말씀하십시오.
계속.
 
노아:... ... (되려 손을 잡아주는 것에 다시 고개를 떨궜다가 중얼거린다.) 당신 초상화를 봤어요.
삶이 지루해 질 때 즈음에... ...
그래서 생각했죠. 지구는 어떤 곳이었을까, 하고요.
인간들이 본디 자리를 잡았다는 모행성. 우리가 이 은하를 떠나온 뒤로 다시는 찾지 않았던 땅 말이죠.
지구의 유물 같은 것들을 만지다 보면 가끔 신기한 일을 겪어요.
몇 만년 전에 출발한 주파수에 담긴 목소리를 듣는다던가, 그런 식이죠.
 
노아:그래서... ... (잠깐 마른 침을 삼키더니) 당신을 만나고 싶어져서... ...
몇 천 년 정도는 정말 미세한 조정이거든요. 저는 조작이 좀 미숙했고,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멀리 떨어지게 돼서...네.
 
라티나:...
 
노아:지금까지 태어난 당신을 만나고... ...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뜬다.) 본인 앞에서 얘기하려니까 너무 부끄러워요.
 
라티나:... ...(심각하게 듣고 있다가 그 말에 삐끗한다.)
지금이 부끄러워 할 때입니까? (손을 올려 볼을 쭉 잡았다가 놓는다.)
 
노아:아야. (저항없이 볼이 당겨지더니 한 손으로 제 볼을 문지른다)
... ...
 
라티나:...
 
노아:다, 당신한테 털어놓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래요.
 
라티나:당신. (새삼스레 신기한 듯 중얼거린다.)
 
노아:...일방적으로 친근하게 굴면 조금 기분 나쁘잖아요.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라티나:...
(그가 말한 것을 조용히 곱씹듯 눈을 깜빡인다.)
그렇다면.
 
노아:...그렇다면?
 
라티나:... ...(한 번에 다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짧게 앓는 소리를 낸다.)
 
그렇습니다.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가 어디있나요.
 
라티나:(머릿 속 노트가 날개치듯 넘어간다. 그러다가, 탁 닫혀버린다.)
...반 정도는 이해했습니다.
...
반의 반?
 
자신이 아주 먼 미래에서 온 사람이고, 오직 당신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노아:... ...그래서 이번에도 얘기 안 하려고 했었어요.
왜냐면... ...
...사냥개들은 여행자를 도와준 사람도 쫓아요.
 
라티나:...
 
노아:여태까지 그렇게 당신을 잃은 게 대체 몇 번인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잠들어있다. 몇 겹이나 쌓여서 그것이 그늘인지 양지인지조차 구분가지 않는.)
 
라티나:(그제야 무언가 머릿 속에서 아귀를 맞춰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주 먼 미래에서 온 노아. 나를 몇 번이나 잃는 노아. 아주 오래전에 만난 우리...)
...
이번에도?
 
노아:...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저를 도우려고 할 줄은 몰랐어요.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발을 들이기 전에 떠나려고 했죠.
...사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저는 몇 십년만 기다리면 되니까요. 그럼 어디에선가 당신은 다시 태어날테고, 저는 당신을 만나러 가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죠. 당신은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순전히 제 욕심으로 당신의 여생을 뺏은 거나 다름 없다는 사실을요.
 
노아:그 다음부터는 최대한 먼 곳에서 머물렀어요. 때론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즐겁더군요.
 
라티나:(그의 고해를 그저 듣고 있었다. '나'는 이 고백을 몇 번째로 듣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이었다.)
 
노아:... (이쯤 되니 슬쩍 눈을 들어 라티나를 바라본다.)
...화 내거나 때리셔도 괜찮아요.
 
라티나:... ...
제가 기억하지 못한 수많은 생이 스러진 이유는...
시간 여행자인 당신이 제 곁에 있기를 원했고,
그로 인해 사냥개가 저를 노렸기 때문입니까?
 
노아:... (고개를 주억인다.) 반 정도는요.
 
라티나:...
그렇게 몇 번이나 저와 다시 만나셨습니까?
 
노아:...이번으로 144번째요. (고해하듯 내뱉는다)
 
라티나:....하. (...짧게 휘청인다.)
 
노아:(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는 자세로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있는다)
 
라티나:(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넘긴다.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뭐라고 이름붙여야 할까.)
... ...
제 곁에 있으면 제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요?
 
노아:(그 말에 잠시 대답을 망설인다.) ...언젠간 저도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는...
그냥...빛이 나는 것에 끌리듯이요.
그런데 아무래도 당신은 저랑 얽히면 불행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이제는 여행을 끝내려고 해요.
 
라티나:...
잠깐만.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무슨 소리입니까?
 
노아:저는 사냥개들에게 먹히러 가요, 라티나.
그게 바로 여행을 끝내는 방법이죠.
 
라티나:노아!
 
노아:저를 한 번 더 구한 탓에, 이제 당신도 위험해졌거든요.
(이쪽도 이번에는 제법 결연한 표정을 짓고 바라본다.)
 
라티나:...(이를 악문다. 모든 게 일방적이었다. ...분할 만큼.)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생들을 제가 기억하고 있기라도 합니까?
지나버린 생에 제가 상처를 안고 있기라도 한가요?
 
노아:... ... (눈을 도록 굴린다. 작게 중얼거리듯이 대답한다) ...아니요.
 
라티나:죽어버린 제가, 이건 다 너 때문이니 죗값을 치르라고 하던가요?
 
노아:...아뇨, 그런 적은...
 
라티나:...(쏘아붙이던 말 끝에 맥이 풀린 듯 중얼거린다.)
지금 노아의 앞에 살아있는 것은 144번째 라티나 그레이겠지만.
제겐, 첫 번째 생입니다.
제가 바라지 않아요. 당신이 그렇게 되는 것을.
어려운 이야기같은 건 잘 모르겠습니다.
노아는 현자에 가까운 존재이니 알지 몰라도.
 
라티나:전 그냥 평범한 학생이고,
블루베리 젤라또를 좋아하고,
할라피뇨 샌드위치 하나에도 행복해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도망칠 방법을 찾아요. 같이.
 
라티나:...지나간 생의 죗값같은 거 필요 없다고.
 
노아:...나도 다 해 봤어요. 당신이 몇 번이나 살아있으라 말했고, 그러겠다고 했어요.
560년 전에도. 그때도 하필이면 이 자리였어요. 그 때는 이곳에 도시 따윈 없었고 여긴 야트막한 동산이었죠.
(되려 이쪽이 손에 힘을 더 주며 씹어내리듯이 목소리를 낮춘다.) 이제 정말 그만 해야돼요, 티나.
내가 여행을 끝낸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에요. 실은 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죠.
제가 태어나려면 몇 천년이 더 지나야 해요. 온 인류가 지구를 떠나고, 화성을 떠나고, 태양계와 이 은하를 떠날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해요.
...당신이 오늘 그랬죠. 만나러 오라고.
 
노아:이 자리에서 제 여행이 끝나더라도, 저는 그 목소리를 듣고 다시 여기로 올 거에요. 제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듯이.
(천천히 눈썹을 늘어트리고 눈을 마주한다.) ...저를 믿어요?
 
라티나:... ...(어렵고 어려운 이야기 속에서도 하나만이 명확하게 전해졌다. 그는 굽힐 생각이 없다. 자신이 알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몇 겹이고 몇 겹이고 반복된 사건이 그에게 딱딱한 껍질을 씌운 것처럼.)
... ...
(입술을 꽉 깨물고 그를 마주본다. 짙은 눈썹이 늘어진 아래로 자리한 녹색 눈동자를.)
...
제게도 이전에 물은 적 있습니까. 그 질문.
 
노아:...매번요.
 
라티나:뭐라고 하던가요, 매번.
 
노아:...믿겠다고 했어요. 설령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도 믿어보겠다고요.
 
라티나:그들도 지금의 제 기분이었나 봅니다.
분하고, 초조하고, 불안한데...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노아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나 보죠.
...믿겠습니다.
144번째 말 같은 게 아니에요.
온전히 저의 첫 번째 말입니다.
 
노아:(그 말에 마침내 느슨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부터는 저한테도 처음이에요.
(맞잡았던 손을 놓고, 제 목에 걸려있던 로켓 목걸이를 푼다. 기묘하게 새 것 같은 모습의 회중시계 로켓을 그대로 라티나의 목에 걸어준다.)
...여행을 끝내면 모두가 저를 잊게 될 거에요.
원래 존재해선 안될 사람이었으니, 세상이 섭리에 맞게 짜맞춰지는 거죠.
 
라티나:...
 
노아:이걸 걸고 있으면, ...당신만은 저를 기억할 수 있을 거에요.
그래야 우리가 다시 만나도 서로를 알아보겠죠.
 
라티나:(그 목걸이를 조용히 들여다보다가, 꽉 쥔다.)
 
노아:초상화도, 꼭 소중하게 간직해주세요.
 
라티나:...누구처럼 잃어버리지 말고요?
 
노아:(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네. 자꾸 흘리지 말고요.
 
라티나:(그 웃음을 얄밉다는 듯 빤히 본다.)
...
 
노아:...제가 정말 오랫동안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만날 사람들은 반드시 만난다는 거에요.
 
라티나:...
 
노아:...당신이 나를 구해줄 날이 올 거에요. 반드시.
당신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나를 잊지 말아요.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집니다.
 
라티나:(목이 꽉 막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무언가 막힌 것처럼.)
 
옥상의 구석에서, 천천히 반짝이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라티나:(반사적으로 떨리는 몸을 억누른다.)
 
노아:이제 가까이 오면 안돼요.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이 말한다. 이전과는 달리 떨림이나 두려움 따위는 묻지 않은 평이한 목소리다. 어쩌면 달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옥상 끄트머리를 향해 뒷걸음질하기 시작한다.)
 
라티나:... ...(떨리는 눈동자가 그를 본다. 이건, 분명 그에게도 처음인 일일 터였다. 달려갈 것처럼 발끝이 움찔 떨린다.)
...노아...
(그것을 억누르듯 목걸이를 꽉 쥔다.)
 
마치 그를 기다리듯, 개들은 난간 너머의 공중을 밟고 서 있습니다.
 
라티나:... ...
 
사냥개들이 그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립니다.
 
라티나:(아, 울며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심하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숨을 고른다. 어떻게든.)
 
그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난간에 올라섭니다. 도시에서 휘몰아쳐 올라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낭만을 그렸고, 이곳까지 도달하는 데에 어떤 이해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 미래인을 보세요.
 
라티나:...가지 마.
 
그의 걸음마다, 한 세기를 겨우 살아가는 인간은 공감하지 못할 세월의 더께가 흩어져 나립니다.
 
라티나:(혼잣말은 허공에 형편없이 흩어진다.)
 
어째서 음성은 흩어져 소멸하는지.
 
그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갑니다.
 
라티나:(시야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고, 그 아래로 넘어가는 그가 보인다.)
 
매 초마다, 검은 연기가 그의 몸을 휘감더니... ...
 
신체가 떨어지기도 전에 완전히 사라집니다.
 
라티나:... ...노아!
 
가장 확실하기 짝이 없는 무존재로, 사라짐을 극복한 사라짐으로.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어 온전히 자신만의 안식을 찾은 그가 녹아 사라집니다.
 
라티나:(그 대답을 들을 존재는 사라진 후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는다.)
 
늪처럼 고여있던 고독이 맑은 피의 온도로 흘러나가고, 세계는 틈을 관찰할 새도 없이 짜맞추어집니다.
 
라티나:... ...
 
검은 연기 나부낀 재 하늘로 흩어져
 
사람 손으로 빚어 역시 사람에게만은 아름다운 밤의 환함 속에
 
단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유적에 가라앉은 먼지처럼.
 
그러나 FM은 하늘로 쏘아 올려졌고,
 
당신은 아까 '나를 만나러 와'라고 분명하게 말했지요.
 
시간은 당연하게 흘러갑니다.
 
1초에는 1초의 시간이,
 
1년에는 1년의 시간이.
 
수천 년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당신이 쏘아올린 빛이 저 은하 너머까지 닿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머나먼 어떤 행성에서 누군가 반드시 그 전파를 받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겠죠.
 
누가 보낸 메시지일까?
 
라디오 전파는 끝없이 우주를 돕니다.
 
---------------------------------
 
<하이웨이 패스파인더>
 
END 1. THE pathfinder
 
----------------------------- 
NOTICE 211120_하이웨이 패스파인더_노티스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
낮음 보통 다소높음 높음 매우높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