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1분 중 20분
2022
시즌 4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1화 “연상녀에게 혼쭐나는 어이없는 삶”
출연: 어의, 최일, 이조판서
장르: 실험극
프로그램 특징: 어이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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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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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간질이는 바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
 
심상 정도의 선명함을 가진 녹음의 냄새...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눈을 뜨며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라티나가 이곳으로 자꾸만 돌아오는 것인지,
 
또는 자주 방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풀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라티나:... ...(꿈이다. 어쩌면 익숙한. 코끝에 닿는 녹음의 냄새가 현실과는 동떨어져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 ...소리가 나. (풀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응시한다. 눈 앞에는 또 어떤 풍경이 보일까?)
 
이곳은 고요합니다. 적막과는 다르죠.
 
눈 앞에는 라티나가 '실제로는' 본 적 조차 없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라티나:... ...(그 풍경에 조용히 눈을 깜빡인다. 버려진 책 속에서만 보았던...) 나무?
 
그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듯한 길이 좁게 나 있습니다.
 
라티나:... ...
(걸음을 옮겨 나무 사이의 길 앞으로 다가간다.)
 
라티나는 발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맨 발가락 사이사이로 닿는 낮은 풀과 흙은 폭신한 것 같기도 하고, 이따금 날카로운 것 같기도 합니다.
 
서서히 풍경이 걷히듯이, 나무들이 에워싼 호수가 드러납니다.
 
라티나:(발끝의 감각이 어색한지 조금 더디게 걸어간다. 곧, 호수를 마주한다.)
 
호수에는 잔잔하게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라티나:...어디서부터 오고 있는 거지?
(호숫가로 다가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상한 꿈이야.)
 
라티나가 호숫가로 다가가자
 
물이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라티나:...!
 
주변의 나무들에 파장이 일듯 시들더니
 
점점 재가 되어 바스라지며,
 
호숫물은 금세 라티나의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오릅니다.
 
아차, 할 새도 없이 어깨까지 차오른 물은
 
금세 라티나를 뒤덮습니다.
 
라티나:(움찔하며 뒷걸음질치다가, 주변의 풍경을 채 눈에 담을 새도 없이 허우적거린다.) ...!!
 
숨이 물에 먹히는 고통이 덮칩니다.
 
이성치를 체크합니다.
 
라티나:(손끝을 허우적거린다. 이 고통은 정말 꿈이 주는 것이 맞는 거야?)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을 1 잃습니다.
 
이 고통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라티나의 정신이 만들어 낸 환상일까요?
 
정말로 물에 빠지면 이런 기분이 들까요?
 
라티나:(숨, 막혀... 무심코 벌어진 입으로 물이 들어온다.)
 
라티나의 몸 위로, 햇살이 보내는 푸른 빛이 일렁입니다.
 
.
 
.
 
.
 
.
 
당신은 눈을 뜹니다.
 
엉성한 흰 침대 위.
 
꿈결이 가시는 동안 이곳이 어딘지 떠올려보면...
 
당신이 머무는 병동의 1인실입니다.
 
라티나:(반짝 눈을 뜨고, 천천히 숨을 고른다.) 하아, 하....
...좋은 꿈은 아니네. (호수의 물을 씻어내듯 천천히 이 장소를 떠올린다.)
(익숙한 천장. 구겨진 흰 시트.)
 
매번 꾸는 꿈인데도, 고통은 매번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라티나:한 번쯤은 다른 결말로 끝나도 좋을 텐데.
어쩐지 매번 꼭 처음 겪는 것처럼...
(목을 매만지며 상체를 일으킨다. 1인실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곳에는 닫힌 창문이 하나 있고, 창가에는 철제 라디오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침대 옆에는 협탁이 있습니다만,
 
하루에 세 번 찾아오는 식사의 받침대 정도로만 사용됩니다.
 
라티나:(협탁에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고, 침대에 앉아 철제 라디오를 집어든다.)
... (뭔가 주파수를 맞춰볼 수 있을까?)
 
철제 라디오를 집기 위해 다리를 내리면, 찰그랑 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긁습니다.
 
라티나:... (고개를 기울인다.)
 
바닥에 고정된 침대의 다리와 라티나의 다리를 연결해 묶어 둔 쇠사슬 소리입니다.
 
라티나:... ...
 
이 쇠사슬 덕분에 라티나는 1인실의 문까지도 갈 수 없고,
 
닫힌 창문을 겨우 열 정도의 거리밖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죠.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춰보면, 잡음과 함께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라티나:(못마땅하게 사슬을 바라보다가, 귀를 기울인다.)
 
모든 식물종의 멸종 이후, 인간종에게 남은 산소는 천 년을, 정확히는 1014년을 겨우 남길 양으로 이는 동물종의 개체수를 생각한다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며...
 
시시껄렁한 뉴스였군요.
 
라티나:... ...
모두가 아는 내용을 언제나 떠들고 있구나.
 
문득, 라티나의 시선 사이에 있는 쇠사슬의 틈새에서 무언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라티나:...?
(찰그랑, 다리를 들어올리고 쇠사슬의 틈새로 고개를 숙여 살펴본다.)
 
쇠사슬의 틈새에서 이끼가 자라고 있습니다.
 
라티나:... ...?
...잠에서 덜 깼나...
(눈을 부벼본다. 열심히.)
(다시 본다.)
 
눈을 부벼보아도...이끼는 천천히 사슬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라티나:... ... ...
 
이것도 라티나의 '병증' 중 하나입니다.
 
'식물이 보인다' 라고 말할 때마다 의사들은 "차도가 없군." 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요.
 
라티나:...정말 잠에서 덜 깬 모양이네... 하루이틀 보였던 것도 아닌데.
...정말 보이는데...
(손을 뻗어 사슬 위의 이끼를 만져본다.)
 
이끼를 손으로 건드리면 그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재처럼 바스라져 사라집니다.
 
라티나:... ...(꿈 속 풍경 같아. 조용히 중얼거린다.)
 
어쩌면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라티나:동화책 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잖아.
(쇠사슬을 한 번 내려다보곤)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지만.
(닫힌 창문을 바라본다. 열 수 있을까?)
 
해피엔딩인지도 모르고요.
 
닫힌 창문은 잠겨있지 않아 쉽게 열 수 있습니다.
 
라티나:(손을 뻗어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면, 거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힘든 사람들과 홀로그램들...
 
멀리 보이는 시계탑을 보면, 지금이 정오 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티나:(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있는 시계탑까지를 눈에 담는다.)
 
아무리 시야를 넓혀 보아도 무채색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지만요.
 
그러는 동안, 1인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라티나:(언제나처럼 잿빛이구나.)
...누가 온 건가?
 
듣기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간호사일까요?
 
라티나:...간호사? 아니면 식사? (빈 협탁을 톡톡 두드려본다.)
 
그러는 동안, 1인실의 문이 열립니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라티나를 담당하는 간호사와, 처음 보는 남자입니다.
 
라티나:... ...
 
남자는 짙은 색의 부스스한 흑발을 하고, 꿈에서나 보던 숲과 같은 녹색 눈을 가졌습니다.
 
흰 가운을 입고 있어 의사와 비슷해 보이지만, 작고 검은 크로스백을 옆으로 맸습니다.
 
사무적인 표정의 간호사와는 달리 제법 우호적인 미소를 짓고 있네요.
 
라티나:(...온통 잿빛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이 있잖아.)
 
간호사:라티나 그레이입니다. 이건 부탁하신 파일이고요. (남자에게 '환자 차트-29번' 이라고 적힌 파일철을 넘겨주곤 자리를 뜬다.)
 
라티나:(꿈뻑꿈뻑)
 
이윽고 간호사가 방을 나섭니다.
 
노아:(파일철을 몇 번 넘기는 듯 하다가, 이내 덮고는 병실을 둘러본다.) 의자도 없네요... (결국 침대 앞까지 다가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민다.) 안녕하세요, 라티나 그레이.
 
라티나:... ...(관찰에 익숙한 눈이 남자를 찬찬히 뜯어본다. 작고 검은 가방과 흰 가운, 부스스한 흑발 사이의 녹색 눈까지 들여다본 후에야 그의 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또한, 초면의 누군가에게 경계는 익숙한 것이었다.) ...누구십니까?
 
노아:제 이름은 노아 양이에요. 세계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음, 하고 눈을 한 번 굴린다.) 식물학자죠.
 
라티나:(그가 내민 손이 처음 보는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빤히 바라본다.) 제게는 무슨 볼일이시고요?
(식물학자? 고개를 기울인다.)
 
노아:(손이 거두어질 듯, 말 듯 하게 허공에서 머무르다가 다시 가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에서 사라진 식물들을 다시 복원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당신이 이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라티나:... (덤덤히 눈을 깜빡인다. 사납지 않은 태도, 행색. 확실히... 거리의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제 병증 때문입니까?
 
노아:병증, (그 단어를 정정하고 싶은 것처럼 성급하게 내뱉었다가, 마땅한 대체재를 찾지 못했는지 다시 입을 다물었다가.) 어젯밤은 편히 주무셨나요?
 
라티나:...다들 그렇게 부르더군요. 그러니 저도 쓸 뿐입니다. (자조적이지만 덤덤한 투로 뱉고는.) ...
아뇨. 이상한 꿈 때문에...
 
노아:(약간 반색하며) 나쁜 꿈이었나요?
 
라티나:도입부는 좋았지만, 결말이 나빴다고 할까요.
 
노아:반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왔나봐요.
 
라티나:(꿈의 내용을 가늠해보듯 눈을 감았다가 뜬다.) 반갑지 않은 장면일지도 모르죠.
 
상대방이 그 말에 반응하려는 순간, 병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간호사:양 박사님, 잠시.
 
노아:(문을 돌아봤다가, 라티나를 한 번 봤다가,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잠깐 나갔다 올게요. 이따 그 꿈 얘기 좀 더 해주세요.
 
라티나:...(꿈뻑꿈뻑)
 
-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섭니다.
 
아까 전 받았던 파일철을 그대로 협탁에 내버려 둔 채로요.
 
라티나:...나도 모르게 왜 털어놓고 있었지.
(협탁 위의 파일철으로 시선이 흐른다.)
.... (파일을 집어들어 펼쳐본다.)
 
환자 차트를 펼치면, 왼쪽 면에 라티나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신상 정보들이 쓰여 있습니다.
 
오른쪽 면에는 '경과 노트'라는 제목이 적힌 메모가 붙어 있네요.
 
라티나:... (남이 서술한 내 정보는 이렇군.)
(경과 노트 부분을 들여다본다.)
 
경과 노트에 적힌 내용을 축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환자는 여전히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식물이 보인다는 주장인데, 이는 진실일 리 없으므로 환자의 상태는 차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라티나:... ...
 
라티나가 경과 노트를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다시 병실의 문이 열리더니 노아가 안으로 들어섭니다.
 
노아:아, 앗... 아. (뭐라고 말을 붙이려다가, 라티나가 환자 차트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으로 차트를 휙 가져간다)
...노...놓고 간 줄 몰랐어요.
 
라티나:... ...(덤덤히 눈을 깜빡인다.)
당당히 흘리고 가시기에 읽으라고 두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읽으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있나요.
 
노아:아뇨...그건 아닌데...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머쓱하게 환자 차트를 크로스백에 집어넣더니 곧 침대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걷거나 뛰는 데에는 문제가 없죠?
 
라티나:... ...거기까지 헤아려주시다니 이상한 사람이군요. (가만히 중얼거리다가 제 앞으로 낮아진 눈높이를 마주한다.)
네. 멀리 갈 수는 없지만요. (다리를 한 번 흔들어보인다. 쇠사슬 소리가 나도록.)
 
노아:괜찮아요. 방금 퇴원 수속을 밟았거든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발을 받치더니, 아까 전 받아왔는지 열쇠를 들어 쇠사슬을 풀어낸다.)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몇 번 제자리 걸음이라도 해 봐요.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난다)
 
라티나:... ...(쉽게 풀리는 사슬에 드물게 눈을 조금 크게 뜬다.)
 
노아:제가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연구에 며칠만 협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뒤에는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고요. (어때요? 하고 되묻듯이 바라본다)
 
라티나:(자유로워진 다리가 신기한지 어느새 그의 주변을 느리게 빙글빙글 돌고 있다.)
 
노아:(라티나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고개로만 따라간다)
 
라티나:(우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춘다.)
...뭐, 그러죠.
목숨에 지장이 가는 것이 아니라면요.
 
노아: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요.
 
라티나:그건 약속입니까?
 
노아:네, 약속이에요. 새끼손가락 걸까요?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인다)
 
라티나:... (새끼손가락을 빤히 보다가 마주 손가락을 건다.)
 
노아:새끼손가락 걸고, 흔들고, 복사하는 거에요. (건 손가락을 몇 번 흔들더니 손바닥을 펼친다) 지익, 하고요.
 
라티나:...이상한 사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손바닥 위에 꽤나 진지한 낯으로 시늉을 한다.)
 
노아:그런 말 많이 들어요. (작게 웃더니) 복사했으면 사인도 해야 해요. (라티나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적는 시늉을 하더니 제 손바닥을 내민다)
 
라티나:...물건은 꽤 흘리시는 것 같던데, 나름대로 철저하십니다? (묘하게 마음에 든다는 투다.)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적는다. 라티나 그레이.)
 
노아:...잠깐 깜박한 것 뿐이에요.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가) 좋아요, 그럼 약속 성립.
갑시다. (문 쪽으로 살짝 고갯짓을 하더니, 앞장서서 병실을 나서 기다린다)
 
라티나:...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멈춰 그간 머물렀던 병실을 돌아본다.)
 
병실은 희고 깨끗합니다.
 
어떤 가구도 없는, 라티나의 작은 성.
 
라티나:(이 작은 성에 정이라도 든 걸까. 그런 생각은 사치일텐데.)
...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제 뒤에 자리한 무채색과는 다른 녹음을 닮은 눈을 보며 멈췄던 걸음을 내딛는다.)
...네.
 
노아:여기에서 지내는 동안 정이 들었어요?
 
라티나:...(뒷목을 느릿하게 주무른다.)
 
병실 바깥으로 나오면, 갑작스레 세상이 넓어진 듯 합니다.
 
라티나:처음 가져본 혼자만의 공간이었으니까요.
... ...
 
복도 곳곳에 홀로그램으로 고정 된 간호사들이 길을 안내하고 있고, 깔끔한 복도는 제법 넓으며, 큰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벽면은 병원 주변의 풍경을 비추고 있습니다.
 
라티나:(대놓고 구경한다.)
 
노아:라티나가 지낼 만한 곳을 따로 마련해 두긴 했는데... ...마음에 들 지 모르겠네요. 저는 좀 더 작은 어린아이 일 줄... (모른 채로 앞서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창가에 붙박이가 된 라티나를 본다)
(눈을 몇 번 끔벅이더니) 그래요, 천천히 가요.
 
라티나:...(창가에 찰싹 붙어있다가 힐끗 돌아보고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노아:건물이랑 홀로그램 밖에 없어서 구경할 게 별로 없을텐데. (라티나의 옆에 선다)
 
라티나:(벽면 너머의 잿빛 풍경을 바라보며) 시야가 넓어지니 볼 것이 많은데요.
그러니까...(명칭을 고심하듯 고개를 기울이다가.) 당신은 익숙하십니까?
 
노아:(마찬가지로 창문을 보며 뭐라도 구경할 거리를 찾다가 고개를 돌린다) 사람들은 보통 양 박사라고 불러요. 아니면 편하게 노아라고 불러도 괜찮고요.
 
라티나:(홀로그램을 향해 의미없이 손을 흔들어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양 박사...
...노아.
후자가 더 부르기 편해 보입니다.
 
노아:이름이 이겼네요. 다행이다. (씩 웃어보인다) 뭐 하나 알려드릴까요?
 
라티나:(웃는 얼굴을 덤덤히 보다가) 무엇입니까?
 
노아:홀로그램 찔러보셔도 돼요.
 
라티나:........................................................................................
 
노아:(콕, 하고 찌르는 시늉을 한다)
 
라티나:...............!!..................
(아무튼지금까지사슬길이모자라서못만져본얼굴)
....
(꾸욱......가까이 선 홀로그램 찔러본다.)
 
홀로그램 간호사를 찔러보면...
 
이럴수가!
 
라티나가 찌른 자리부터 파문이 일며 홀로그램이 한 번 지직입니다.
 
이거이거 제법 만족스러운데
 
라티나:.................................................
(꾹꾹콕콕콕콕콕콕꾹)
 
라티나의 찌름에 맞춰 홀로그램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입니다.
 
망가진 패널처럼...아니...
 
웨이브를 추는 간호사처럼 보여요.
 
라티나:(진짜만족)
..................이걸 저만 모르고 .....
 
그 때,
 
"거기 홀로그램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노아:앗. (들킨 눈)
 
라티나:...
 
노아:도망가요.
 
라티나:...잘 뛰십니까?
 
노아:음...아뇨. 그래도 뛰는 법은 알아요.
 
라티나:잘 됐네요. 끌고 뛰면 되겠군요.
제가이겻어요 후훗
 
노아:잘 뛰세요?
 
라티나:잡힐 생각은 없죠. (손을 뻗어 손목을 잡는다.)
 
노아:...지금까지 병원에서 안 도망친 게 대단하네요! (얼결에 끌려간다)
 
라티나는 노아를 붙잡고 뛰어 엘리베이터에 도착합니다.
 
엘리베이터는 무슨 소재로 만들어진 건지, 반투명한 무광의 형태네요.
 
노아:아...아무도 안 쫓아오니까...천천히 가도 돼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벽면을 누른다)
 
라티나:... ...
숨 차십니까? (얼굴 본다.)
 
노아가 아무것도 없는 벽면을 누르자, 1이라고 쓰인 불빛이 반짝이며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합니다.
 
노아:(숨 고르는 중) ㄴ...네...
 
라티나:...(별 요령없이 퍽퍽 등 두드린다.)
 
건강과 근력의 대항 판정을 합니다
 
근력 굴려봅시다
 
라티나:(아)
근력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노아:
건강
기준치: 45/22/9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간신히 정신차림)
 
라티나:(튼튼한데..?)
 
라티나의 처방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곧 1층에 도착합니다.
 
라티나:...
 
엘리베이터 문을 나서다 곧장 거리가 드러나는군요.
 
거리에는 홀로그램으로 된 사람들과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까 전 세계정부 이야기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 지역은 부촌인 것 같습니다.
 
라티나:(제가 태어난 곳과는 다른 거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다른 세상 같군요.
 
노아:병실 안에서 보는 거랑은 많이 다르죠.
 
라티나:(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노아 덕분이네요. 병실 밖의 풍경을 보게 된 건.
 
보도블럭이 깔린 길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고층 빌딩의 벽들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세계정부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라티나:(그 중 하나의 스크린을 바라본다.)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최근 임기를 시작한 세계정부의 수장이 발표를 하던 중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자막에 써 있거든요.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서는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가장 유망한 과학자들을 세계정부의 과학실로 초대했으며, 현재 인공 식물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스크린에는 이어서 사람들의 얼굴이 죽 뜹니다.
 
이게 그 과학자들인가보군요.
 
라티나:...
 
화려한 효과로 빠르게 넘어가는 얼굴들 사이에, 노아도 끼어있습니다.
 
노아:이쪽 길로 쭉 내려가면 연구실이 있는 세계정부 본부가 있어요.
 
라티나:실물이 낫네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앞의 길을 본다.)
제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인가 봅니다.
바로 그 본부라는 곳으로 가는 건가요?
 
노아:(라티나의 말에 스크린을 봤다가, 민망한 기색으로 금방 고개를 돌린다) 그냥 띄워주는 거에요.
네, 곧 해가 지기도 하고...우선 연구는 푹 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라티나:(얼굴에 바로 드러나시는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거긴 어떤 곳입니까?
 
노아:겉보기에는 그냥 큰 건물이에요. 안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마주칠 일은 많지 않아요.
동료라고는 해도 각자 다른 연구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저는 햇빛에 반응이 있는 물질들을 선별해서 인공 엽록소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 이전에도 여러가지 연구를 했었고...
 
그렇게 걷는 도중,
 
노아의 목을 타고 얇은 담쟁이 덩굴이 자라나는 것이 보입니다.
 
라티나:... ...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노아:네, 얼마든지요. (걸음을 느리게 하며 돌아본다)
 
라티나:(그의 목 언저리에 자란 덩굴을 바라본다.)
제가 보는 것을 '병증'이 아닌 무엇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아:(그 말에 잠시 멈춰서서 고민을 시작한다. 아무래도 멀티태스킹은 잘 안되는 타입인 듯.)
실재하지 않는 거니까 환상 정도로 부르는 게 맞겠지만, 그럼 너무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라서...
아, 초능력 어때요?
 
라티나:... (그렇겠지. 덤덤히 깜빡이던 눈이 잠시 멈춘다.)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눈을 가늘게 뜬다.)
뭐... 나쁘지 않네요. 초능력.
 
노아: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하고 한 번 더 허탈하게 웃는다) 가장 자주 보는 식물은 어떤 거에요?
나무 종류인가요? 아니면 풀? 그것도 아니면 이끼...헉, 혹시 물이 있으면 조류도 보이는 건가요?
 
라티나:들떠 보이십니다.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다가)
...글쎄요.
배고파서 생각이 안 나는데요.
초능력도 완벽하진 않은가 보죠.
 
노아:배... ... (눈을 끔벅이다가, 시간을 떠올리고) ...아! 미안해요. 정말 뭐라도 먹어야겠네요. 원래는 점심이 지나고 찾아오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떠서... (그 말에 깨달은 듯이 말이 빨라지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좋아하는 거 있어요?
 
라티나:(배고픔은 익숙한데도. 돌아오는 반응을 가만히 본다. 음. 놀리기 좋군.) 가리지 않습니다.
...
(시선을 한 바퀴 돌렸다가)
...할라피뇨...도 좋아하고요.
 
노아:할라피뇨... ... ... (머릿속에서 몇 가지 메뉴를 떠올린다)
통조림이라면 남아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생 할라피뇨는 5년 2개월 전에 멸종됐지만, 아마도...그럼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이탈리안 식당에 가죠.
다행히 파스타 면은 금세 합성식품으로 대체됐거든요. 쌀보다 빨랐죠.
 
라티나:...............(아주 미세한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노아는요?
좋아하는 게 있으십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거의 없겠지만요.
 
노아:평소에 가장 자주 먹는 건 간단한 즉석식품인데, 샌드위치나 딤섬을 좋아해요.
어릴 땐 양상추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를 자주 먹었죠.
 
라티나:그럼, 양상추도 복원하고 싶으십니까?
 
노아:물론이죠. 모든 종류의 식물과 채소를...
말린 음식으로 식감을 비슷하게 낸다 한들 실제로 먹는 것만큼 만족감을 주진 못하니까요.
 
라티나:...(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노아:엄청나게요.
그리고 만약 결과가 따라주지 않더라도, 라티나가 병원 밖으로 나온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윽고 두 사람은 한 식당 앞에 도착합니다.
 
노아:(얖서서 문을 열어주며 고갯짓을 해 보인다)
 
라티나:(그런 그를 보다가 조금 어색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선다.)
(주변을 둘러본다.)
 
식당 내부는 굉장히 깔끔합니다.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테이블이 차 있고, 곧 홀로그램 로봇이 다가와 멀뚱히 서 있는 라티나를 자리로 안내해 줍니다.
 
라티나:... ...(찌를까 말까. 하는 얼굴로 보다가 손을 거둔다.)
 
찌르면 일렁~ 하겠지만...
 
자리에 앉으면 전자 패널에 메뉴판이 떠오릅니다.
 
라티나:(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패널으로 시선을 돌린다.)
 
으음.
 
라티나의 기대와는 달리...채소가 들어간 메뉴는 하나도 없군요. 심지어 유사채소조차도요.
 
노아:...와, 채소 통조림 메뉴가... ...사라졌네요.
1년 전에 올 때까진 있었는데...
 
라티나:................(아주아주잠깐 메뉴판 바라보다가)
 
노아:... (살짝 눈치를 본다) ...가장 비슷한 식감이 나는 건 이 오일파스타인데...
최근에 올리브향 첨가물이 나왔거든요. 동물성 기름이지만 조리할 때 쓰면 제법 올리브오일 같은 향도 나고...
 
라티나:저를 속였군요. (진지한 목소리다.)
 
노아:...여기 안 온 지 오래돼서...아직 있는 줄 알았어요.
...시, 식물 재생이 성공하면 그 때는 꼭...
 
라티나:거짓말쟁이.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오일파스타 메뉴를 본다.)
 
노아:죄송합니다... (거의 식탁에 머리 박을 기세로 수그러든다)
 
오일 파스타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마늘향, 올리브향 첨가물을 사용한 알리오올리오
 
라티나:(설명 열심히 읽는 중.)
(메뉴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 드십시오. 식사 하셔야죠?
 
노아:(울적함이 가득 묻은 표정으로 베이컨 파스타를 고른다)
네...먹고 힘내야죠...
 
라티나:(이렇게 고르는 건가? 노아를 따라 오일파스타 패널을 누른다.)
그리고 이런 식당은 거의 처음입니다.
정말 다른 세상 같네요.
 
두 사람이 각자 메뉴를 선택하면, 주문이 접수되었다는 알람과 함께 패널이 꺼집니다.
 
노아:...그래요? 원래는 어디에서 지냈었어요?
 
라티나:여기저기요. 무너진 담 아래일 수도 있었고, 폐건물 안일 수도 있었고. 더 어릴 때를 제외한다면 거리를 배회하며 지냈습니다.
여기처럼 깨끗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노아:도시 바깥이군요. (연고가 없다고는 들었지만, 잠시 표정이 굳었다가)
식물종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전보다 빈부격차가 심해졌어요. 1차 산업 규모는 8% 수준으로 감소했고 반대로 현대화 된 기술들에 수요가 몰렸고요.
(뭐라고 할 말을 찾는 듯이 잠시 라티나를 바라본다.) 좋아질 거에요.
 
라티나:...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간의 생활을 가늠해 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자신은 분명 흙 위를 걸어왔겠지. 특별한 억울함은 없었다. 당연한 생활이었으니까. 보다 묘한 것은 이 사람의 반응일뿐.)
더 넓고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거나,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말대로 좋아질 수 있다면, 신세진 사람에게 언젠가 감사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노아:연구가 끝나면 수소문을 해 봐도 좋겠어요. (그랬다가 눈을 한 번 굴리더니) ... ...꼭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데...
엄청난 해결방안은 아니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열심히 하겠다는... ...그런 얘기였어요.
 
홀로그램 로봇이 다가와 두 사람 앞에 접시를 놓아줍니다.
 
요리는 오랜만에
 
이렇게 제대로 된 요리는 정말 오랜만이군요.
 
라티나:(요리를 빤히 구경하며) 뭐 어떤가요? 저도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요.
더욱이 지금 제 눈에는...
병실에서 저를 빼내주고, 근사한 요리를 소개해준 노아는 꽤 대단한 사람같아 보이는데요.
.........(꼬르륵.)
 
노아:...먼저 드셔도 돼요. (물과 포크를 동시에 밀어준다)
앞으로는 라티나한테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이런 호의를 베풀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까...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해요.
 
라티나:...
(이상한 사람. 세번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포크를 집어든다.) 안 드십니까?
 
노아:라티나의 맛 평가를 듣고 싶어서요.
 
라티나:... ... 표현이 풍부한 편은 아닌데. 괜찮으십니까?
 
노아:그럼요. 세 글자여도 돼요.
 
라티나:흠.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만다. 진지하게...)
(이윽고 쏙 입에 집어넣는다.)
 
냠냠냠...
 
이거...합성물이지만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네요.
 
라티나:..................
................................
 
아주 쫄깃합니다. 들어간 것은 많지 않아도 마늘이나 올리브향이 들어갔다는 건 진짜인가봐요.
 
라티나:.........
세 글자보다 네 글자 더 말해야겠군요.
 
노아:... (꿀꺽)
...준비됐어요.
 
라티나:...
거짓말쟁이 취소.
드십시오. 식기 전에.
 
노아:정말요? (울적하던 얼굴이 확 핀다)
 
노아는 그제서야 식사를 시작합니다.
 
라티나:(힐끗 본다.)
 
노아:누구랑 같이 식사를 하는 것도 오랜만이에요. 아, 이거 드셔보셔도 돼요.
 
라티나:... (궁금하긴 했는지 포크를 가져가 돌돌 파스타를 말아, 입에 쏙 넣는다.)
.......................................(만족)
 
음, 바삭한 베이컨.
 
라티나:....................
(냠냠냠)
 
매콤한 기운도 올라오고...
 
라티나:(이런..이런 맛이 있단 말이냐 표정)
 
여긴 맛집이군요.
 
노아:(구경하다가...) 내일은 샌드위치 먹으러 가죠!
 
라티나:.........................협조도 꽤 괜찮은 것이군요?
 
노아:식사를 사 준다고 해서 모든 협조에 응하면 안돼요...
 
라티나:.................딱히 그럴 거라고 안 했는데요. (하나도 안 찔렸다는 얼굴.)
 
노아:저보다 사회생활을 잘 하시는군요...
 
라티나:.........(칭찬인가? 얼굴)
(제 접시를 노아 쪽으로 밀어준다.) 1년 전에는 혼자 오셨습니까?
 
노아:(라티나의 파스타를 조금 떠서 돌돌 말아먹는다) 네. 저는 혼자 연구하거든요.
수시로 실험을 하다보니 보조 연구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라티나:흠. 연구를 한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어느새 깨끗하게 접시가 비면,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듭니다.
 
노아:세계정부에서 일한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그 전에는 출신 대학 연구소에 있었고요.
저도 이런 대도시는 처음이라 신기해했었어요.
 
라티나:(2년 전이라...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부른 배도 함께.)
 
연구에 협조하겠다고 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라티나:(...맛있었다...)
 
두 사람은 곧 세계정부 건물 앞에 도착합니다.
 
창문조차 없는 짙은 회색 빌딩.
 
병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노아:(크로스백에서 연구원 가운과 검은색 방독면을 꺼낸다.) 이걸 쓰고 들어갈 거에요.
 
라티나:... ...(눈을 꿈뻑이며 그것과 노아를 번갈아 본다.)
왜입니까?
 
노아:... ... (눈을 슥 굴린다)
그게...
아무 보고도 안 했거든요. 라티나를 데려오는 건에 대해서...
 
라티나:... ...
... ... ...
 
노아:...비밀 프로젝트라... ... ...잠깐,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라티나:..............................(두 걸음 물러나 있다.)
 
노아:한 번만 믿어주세요!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가운을 내민다)
 
라티나:.................(눈을 가늘게 뜬다.)
여차하면 기절시키고 도망을...(중얼거리며 일단 받아든다.)
 
연구원 가운은 조금 크지만...그래도 제법 폼이 납니다.
 
노아:(이제 방독면을 들고 대기하는 중)
 
라티나:... ...(정말 수상해보인다고 생각하며 손을 내민다.)
믿겠습니다.
약속했으니까요.
 
노아:아, 이거. 씌워드릴게요. 쓰는 방법이 복잡해서요. 한 번 보고 기억해두시면 다음엔 혼자 쓸 수 있을 거에요.
 
방독면까지 쓰자... ...
 
음, 꽤 연구원 같습니다.
 
라티나:(얌전히 씌워졌다.)
들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
 
노아:들킬 일 없을 거에요. 저 얼버무리는 거 잘 하거든요.
 
노아는 건물 벽에 있는 버튼을 누릅니다.
 
라티나:(신뢰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아무튼 반듯하게 걸어간다.)
 
한 홀로그램의 모습이 지직대며 나타나더니, 노아의 신원을 묻는군요.
 
노아:식물학자 노아 양입니다. 옆은 동료 과학자인데, 실험 중에 잠시 외출한 거라서요.
출입증은 연구소에 두고 온 것 같아요. 아마 잃어버렸거나...
 
홀로그램은 잠시 멈추어 있다가 입장이 승인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게이트를 열어줍니다.
 
노아:출입증은 정말 잃어버렸어요. (소곤거리며 들어선다)
 
라티나:철저한 고증... (덤덤히 대답한다.)
(내부를 둘러본다. 최대한...티 안나게!)
 
내부는 라티나가 본 그 무엇보다도 발달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순환되고 있는 듯한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건물이군요.
 
용도도 알 수 없는 온갖 기계가 즐비합니다.
 
노아:(아무래도 불안한 지 라티나의 옆에 딱 붙어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정부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나 연구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노아는 멋쩍게 목례를 합니다.
 
라티나:(아무튼 뻔뻔한 태도로 걷고 있다. 대충 따라 목례도 한다.)
 
곧 반투명한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둘은 서서히 올라갑니다.
 
라티나가 노아보다 연기를 더 잘 하는 것 같은데...
 
라티나:여기까진 성공한 것 같군요.
 
'29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음이 들리고, 바깥으로 나와보면 1층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집니다.
 
호텔을 연상시키는 방들이 복도를 따라 나열되어 있는데, 문패에는 번호 대신 영어로 된 이름들이 붙어 있네요.
 
노아:저기 맨 끝 방이에요.
 
라티나:(늘어선 방을 쭉 본다.)
(따라 맨 끝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 안에는 모두 노아같은 사람이 있는 겁니까?
 
노아:'저 같은'?
 
맨 끝 방에 도착하면 노아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있습니다.
 
[Noah Yang :: BOTANIST]
 
라티나:뭐, 어떤 의미로든요.
(손을 뻗어 명패를 만져본다.)
 
노아:다들 훌륭한 과학자죠. 저보다 유명한 사람도 많고요.
 
명패는 매끈하고 차갑습니다.
 
노아가 지문을 대면 방 문이 열리네요.
 
노아:여기 들어가서는 방독면은 벗어도 돼요.
 
라티나:...(내심 신기했는지 지문 인식 장치를 보다가)
네.
그러니까 이렇게...?
(손을 뻗어 요령없이 방독면을 콱 잡아당긴다.)
...안 벗겨집니다.
 
나무와 비슷한 색으로 칠해진 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은 넓고 깔끔합니다.
 
한 면은 책으로 가득 차 있고, 한 면에는 거대한 컴퓨터가 얹어져 있는 책상이 자리합니다.
 
라티나:(깜빡깜빡. 손을 멈추고 방 안을 바라본다.)
 
이런저런 실험 도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네요.
 
간소한 사이즈의 치대는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고, 다른 면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노아:아, 아. 그렇게 잡아당기면 목이 졸려요!
턱 밑에 있는 끈을 먼저 잡아당겨서 느슨하게 하고, 이쪽 체인을 돌리고... (중얼중얼 설명을 하며 방독면 벗는 것을 돕는다)
 
라티나:(설명을 들으며 방 안의 풍경을 보는 채다.)
 
노아:라티나가 여기에 온 건 비밀이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갈 때는 저랑 동행해야 해요. 나갈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라티나:알겠습니다.
책이 많네요.
 
노아:집에 있던 걸 조금만 가져왔어요. 대부분 전공서적이라... ...심심할 때 읽어도 돼요.
아, 그리고 라티나가 머물 곳을 따로 준비했어요.
 
라티나:그러고보니 아까 그런 말을 하셨었죠.
어디입니까? 바닥에서도 잘 잡니다. 저는.
 
노아:아무리 그래도 바닥은 좀...
(책장으로 다가가서 아무 제목도 쓰이지 않은 초록색 책을 살짝 잡아당긴다)
 
라티나:...
 
순간 책장 하나가 일렁이더니, 홀로그램처럼 지직이며 사라집니다.
 
책장 너머의 작은 공간에는 침대 하나와 전등, 그리고 책 몇 권이 있습니다.
 
라티나:... ...
 
노아:(공간을 들여다보더니) ... ...적당히 꾸며놨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작은 것 같기도 하고... ...
아무래도 같은 공간을 쓰는 건 불편할 것 같았거든요. 들어갈 때는 이 책을 잡아당기고, 나올 때는 벽을 없는 셈 치고 통과하면 돼요. 아까 전에 홀로그램 찔렀던 것처럼요.
 
라티나:... (가만히 작은 둥지같은 공간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
마음에 듭니다.
 
노아:(그 말에 씩 웃어보인다) 잘 됐네요.
아,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이 더 있는데... ...
식물이 나오는 꿈을 꾸고 있죠?
 
라티나:...
그걸 어떻게.
 
노아:여러가지 조사를 했거든요.
원래는 정식으로 연구 요청을 하고 라티나를 데리러 오려고 했는데...사실 세계정부에서는 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연구의 방향성이 맞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라티나의 존재를 알리면 일이 더 꼬일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이렇게 몰래 들어오게 됐어요.
혹시 지금도 식물이 보이나요?
 
라티나:(그의 말을 경청하며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보일까? 지금도 내 눈에는...)
 
여전히 노아의 목을 타고 올라온 덩굴이 보입니다.
 
라티나:...
네. 당신의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벽 사이나 책장 근처에도 이끼나 나무 줄기 비슷한 것들이 자라나고 있네요.
 
라티나:...그 뒤의 벽과 책장 사이에서도요.
 
노아:(그 말에 제 목을 한 번 만져본다) ...정말 신기하네요.
어떤 종이에요?
 
라티나:... 덩굴 같습니다.
아마도, 담쟁이 같은...
 
노아:담쟁이덩굴... (그 말에 눈을 크게 뜬다.) 이대로 계속 두면 제가 식물에 뒤덮힌 것처럼 보이기도 할까요? 그럼 재밌을텐데.
 
라티나:...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요.
 
노아:당신을 믿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거에요.
저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잖아요.
 
라티나:...
(보다 편안히 눈을 깜빡인다.)
예사 조합은 아니네요.
 
노아:상상도 못한 걸 해낼 수 있는 조합이죠.
우선 오늘은 푹 쉬는 게 과제에요.
연구는 내일부터.
아, 그리고 옷은... ... ... (잠깐 환자복을 보다가) 일단 아무거나 빌려가서 입으셔도 돼요. 몇 살인지 몰라서 개인용품을 하나도 준비 못했거든요.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주문해 놓을게요.
 
라티나:(가운 안의 환자복을 내려다보다가) 알겠습니다. 이젠 병원도 벗어났으니.
필요한 것...
내일의 샌드위치 정도일까요.
(가운을 벗어 접어두고, 가볍게 두리번거린다. 옷장이 있을까?)
 
옷장은 침대 옆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책장이 벽 한 면을 차지한 것 치고는 작네요.
 
라티나:(작은 공간 안의 옷장을 열어 가운을 걸어둔다.)
(검은 강아지가 그려진 적당한 티셔츠 하나를 꺼내들고) 노아.
 
노아:(나에게 그런 옷이 있는 줄은)
 
라티나:꽤 깜찍한 옷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노아:... ... ... ...선물받은 건데...
새 거에요. 거의...
 
라티나:... ... 왜 안 입으셨습니까?
 
노아:... ... ...검은 강아지가 그려져 있잖아요...
 
라티나:... ... ...그게 포인트 같은데요. 제가 입겠습니다.
...뭐...
 
노아:가지셔도 돼요...
 
라티나:...그럴 수는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주인이 명확하고...
...
오늘은 덕분에 흥미로운 하루였습니다.
 
노아:샌드위치 가게는 가장 괜찮은 곳으로 알아봐 놓을게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라티나:1년 전의 데이터베이스로 작은 혼동이 일어나도 이해하죠.
...
이럴 때는 어떻게 인사를 하는 거였는지, 너무 오래 전이라 잊었습니다. (눈을 깜빡인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일까요?
 
노아:(그 말에 짧게 웃더니) 적절한 인사네요. 잘 자요, 라티나.
 
라티나:...네, 노아.
 
라티나가 책장 안의 방으로 들어오면, 병원과는 또 다른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라티나:...
 
책 몇 권이 마련되어 있는 작은 방. 병실보다는 작지만 쇠사슬은 없군요.
 
라티나:(침대 위로 폭 엎드린다.)
 
폭삭.
 
라티나:...(이거 무너진 건 아니겠지.)
(아무튼 침대에 누워 눈을 깜빡인다.)
 
아 다행히 침대는 멀쩡합니다
 
라티나:(후우)
...
(이상한 사람. 이상한 하루. 맛있는 음식. 처음 보는 풍경. 거리. 사람들...)
초능력...(조용히 중얼거린다.)
 
초능력을 가진 라티나.
 
천장에 군데군데 잎사귀가 돋아납니다.
 
라티나:...(올려다본 천장에 푸르게 돋아나는 잎을 본다.)
(이대로 바라보면 천장을 다 뒤덮을까. 노아의 말처럼, 식물로 온통...)
 
생소한 풍경이지만, 아름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꿈 속의 그곳처럼요.
 
라티나:(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워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이대로 잠들면 또 그 꿈을 꾸는 걸까...)
(어느새 갈아입은 티셔츠를 만지작거린다.)
 
새 티셔츠에서는 포근한 향이 올라옵니다.
 
라티나:(노곤...)
 
노곤노곤...
 
라티나는 잠에 들까요?
 
라티나:... ...(책장을 살펴보고 싶었는데...잠이 몰려온다.)
(깜빡...)
 
책을 읽고 싶다면...
 
잠을 참고 읽어볼 수 있습니다.
 
라티나:(의.지로 눈에 힘을 주고 비척비척 일어난다.)
 
눈에 힘 빢.
 
라티나:(책장 앞에 서서 눈에 띌 만한 책을 찾는다.)
 
얇은 파일철과 두꺼운 하드커버 책, 그리고 맨 밑에 깔린 작은 수첩이 눈에 띕니다.
 
라티나:(눈에 힘을 주고 책을 노려보다가...맨 밑의 작은 수첩을 꺼내본다.)
 
이것도 노아가 놓고 간 걸까요?
 
구석에 노아의 이름이 작게 쓰여 있습니다.
 
라티나:...
(내용을 봐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일단 펼친다.)
 
수첩은 사용한 지 얼마 안된 것처럼 보입니다. 첫 장에만 메모가 몇 줄 적혀있거든요.
 
라티나:(첫 장의 메모를 읽어본다.)
 
라티나는 메모를 읽습니다.
 
[실험/정부지시 > 불가능]
 
[왜???] (주변으로 동그라미가 엄청나게 쳐져있다)
 
라티나:...
 
[식물의 꿈을 꾸는 사람]
 
[식물 씨앗 > 어떻게? 기억으로?]
 
라티나:... ...
 
[그들 > 선물 > 사용방법...] (주변으로 의미없는 낙서가 그려져 있다)
 
줄도 맞추지 않은 채로 어지럽게 적힌 메모는 이게 전부인 듯 합니다.
 
라티나:식물의 꿈을 꾸는 사람...
(결을 알 것 같은 한 줄을 중얼거려보곤, 수첩을 든 채로 침대에 눕는다.)
 
아마도 이 장을 쓴 후에 바로 잃어버린 게 틀림 없네요.
 
라티나:... ...나도 어디 흘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여기에 라티나를 둔 건 잊지 않겠죠...
 
라티나:... ... ...(조금...가능성 있다)
 
너무해...
 
라티나:아침에 잘 주워가라고 해야겠어.
 
존재를 잊지 않게 말이죠.
 
라티나:그리고 약속도 잊지 않게...
그리고, 샌드위치랑...
티셔츠도...(깜빡 깜빡 눈이 감긴다.)
...
 
깜빡...
 
깜빡...
 
라티나:... ...
 
라티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듭니다.
 
---------
 
다시 한 번 꿈이 펼쳐집니다.
 
거대한 나무들의 미로처럼 얽힌 잎사귀들 사이로 초록 햇빛이 들어와,
 
라티나를 영묘하게 비춥니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간질입니다.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항상 같은 모습의 꿈이었는데. 오늘은 어딘가 다릅니다.
 
조금 더 그리운 듯한...
 
라티나에게는 생소한 숲의 모습이 자꾸만 온 몸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신체 말단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라티나:...(어딘가 달라. 왜...)
 
아니, 공기가 예민하게 몸을 간지럽히는 것 같기도 하고...
 
라티나:...이상해.
 
이 기분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속이 울렁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옅은 흙길이 라티나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라티나:(알 수 없는 감각에 비틀거리다가, 바로 선다. 혹시, 이번은 결말까지 다른 걸까.)
(흙길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라티나가 조금 걷고 있으면, 발에 무언가가 채입니다.
 
라티나:...(발 밑을 내려다본다.)
 
검은색 큐브가 발 근처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빛을 반사하지도 않는 큐브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군요.
 
라티나:... ...(이질적인 그 큐브를 집어든다.)
 
라티나가 큐브를 집자, 그곳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지직대며 연기를 스크린 삼아 그 위로 어떤 영상이 떠오릅니다.
 
아, 라티나가 봤던 방송입니다.
 
라티나:... ...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서는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가장 유망한 과학자들을 세계정부의 연구실로 초대했으며, 현재 인공 식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순간, 세계정부 수장의 모습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타오르듯 녹아내린 살 안에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맨들거리는 젤리.
 
아니, 그것보다 질척거리고 끔찍한... ...
 
라티나가 그 모습을 자세히 확인하기도 전에, 연기가 흩어져버립니다.
 
이성치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무슨,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을 1 잃습니다.
 
그리고 라티나는 곧 발이 차갑다는 것을 의식합니다.
 
호수의 물입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호수의 물이 급격하게 차오릅니다.
 
무릎을 지나 몸을 적시고, 어깨를 넘어 발을 디딜 틈도 없이 온 몸을 뒤덮는...
 
라티나:(무엇을 본 거지? 단지 꿈 속의 환상에 불과한 걸까? 하지만 왜, 늘 반복되던 꿈 안에서...그 생각을 채 갈무리할 새도 없이 차오르는 물을 느낀다.) 윽...
 
흩어진 식물들의 재가 물 속에서 어지러이 뒤섞입니다.
 
초록색 햇빛이 재와 뒤섞인 라티나를 비춥니다.
 
라티나:... ...(정말 초능력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무력한 초능력자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라티나:... ...(그 초록색 햇빛이 누군가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성치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을 1 잃습니다.
 
라티나:(싫어. 이렇게 무력하게, 또...)
 
천천히 눈 앞이 아득해집니다. 물이 당신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만 같습니다.
 
라티나:(또... ...)
 
어둠이 라티나를 잠식합니다.
 
.
 
.
 
.
 
눈을 뜨자, 푸른 잎사귀가 흔들거리는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병실은?
 
그렇죠. 어제 병원을 빠져나와서...이곳으로 왔었죠.
 
라티나:... ...(침대에서 떨어진 채로 깜빡깜빡 천장을 본다.)
 
분명 제대로 누워서 잤는데...
 
라티나:(제법 절박했던 모양.)
 
한 쪽 다리만 애매하게 침대에 걸친 채로 이불과 함께 풀썩 떨어져 있습니다.
 
일어났을 땐 이렇게나 개운한데 말이죠.
 
왜 꿈 속에서는 그토록 절박한건지...
 
라티나:... (부스스한 고개를 확 들어보인다.)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까딱여본다. 사슬은 없다.)
 
까닥까닥.
 
다리는 자유롭습니다.
 
라티나:...(만족.)
(아무튼 꾸물꾸물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는다.)
 
흐아암...
 
라티나:(부스스)
 
아마도 아침이겠죠. 창문이 없으니... ...
 
여유로운 아침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라티나:(여유를 느끼며 기지개를 켜다가, 티셔츠 안의 강아지를 내려다본다.)
좋은 아침입니다, 노아.
 
강아지 : 왈
 
라티나:네네. 침대에서 떨어진 건 불가항력입니다.
(대강 부스스한 머리를 빗어넘긴다.)
 
왈왈.
 
아무래도 검은 강아지는 밤새 바닥에 깔려 있던게 불만스러운 모양입니다.
 
우선 사자같아진 머리를 정리하고...
 
뭐...이쯤이면 됐겠지...
 
난 귀여우니까...
 
라티나:네에,네. (대충 티셔츠 위의 강아지를 툭툭 쓰다듬는다.)
음..
음?
...(이상한 상념을 무시하고 덜 사자같은 머리로 일어난다.)
 
라티나는 머릿속의 작은 악마를 무시했습니다.
 
몸도 가뿐하고, 피로도 싹 풀린 모양이에요.
 
라티나:(가뿐한 걸음!) 통과하듯 나가면 된다고 했던가.
 
홀로그램을 찌르듯이!
 
벽을 뚫어볼까요.
 
라티나:...................예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 들떴다.)
(...슬금슬금 벽 앞에 선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주변 두리번거리곤)
 
후...
 
벽을 뚫는 건 처음이라
 
긴장됩니다
 
라티나:포크레인으로 자랄 줄은 몰랐는데.
 
아주머니 잘 지내시죠?
 
저는 포크레인이 되었습니다...
 
라티나:잘 자랐죠. (암. 고개 끄덕인다.)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반듯한 주먹으로 벽을 쾅 뚫며 한 걸음 뛰어나간다.)
 
쾅!!!!!
 
이라고 상상한 것과는 다르게
 
홀로그램은 라티나를 너무 가볍게 통과시켜줍니다.
 
초딩에게도 최선을 다한 라티나는...
 
그만 앞구르기를 하며 벽을 뚫고 나와버립니다.
 
영화 고증이 잘 됐네요.
 
노아:(화들짝)
이...일어나셨어요...? (환자 차트에 '다소 폭력적인 기질'이라고 적혀있던 것을 떠올리며 좀 다소곳해진다)
좋은 아침입니다...
 
라티나:...................................................(앞구르기 마친 따란! 자세로 깜빡깜빡 본다.)
 
노아:... (급하게 종이에 10이라고 써서 든다)
 
라티나:...흠. (묘하게 만족하며 일어난다.)
좋은 아침입니다. 큰 노아.
 
노아:큰 노아요?
 
라티나:큰 노아. (제 앞의 노아 본다.)
 
노아:...작은 사이즈도 있는 건가요?
 
라티나:네. 작은 노아. (고개를 내려 티셔츠 위의 강아지 본다.)
 
노아:... ... ...
꼭 다른 티셔츠를 주문해 둘게요.
 
라티나:...강아지가 그려진 다른 디자인으로 부탁드립니다.
 
노아:고양이나 토끼 같은 것도 사랑해주세요.
늑대도 있고...
전부 멸종위기종이라구요.
 
라티나:흠. (심각하게 턱을 매만진다.)
강아지보다 다른 동물을 좋아하십니까?
 
노아:저는... ...
(뭔가 손을 동그랗게 모은다) 고슴도치...
귀엽잖아요.
 
라티나:... ...(뭔가 손을 동그랗게 모은다.)
 
노아:동글동글.
 
라티나:동글동글.
하지만 찔리면 아프지 않나요.
 
노아:결대로 쓰다듬으면 괜찮아요.
화났을 땐 찌르지만...
사실 물리는 게 더 아프거든요.
 
라티나:이것저것 많이 공격받으셨나봅니다.
뭐. 고슴도치 티셔츠도 좋을 것 같네요.
 
노아:그럼 고슴도치 티셔츠로 할게요.
그리고...배고프죠?
 
라티나:(끄덕끄덕.)
 
노아:좋아요. 갑시다. (비장의 샌드위치 가게를 준비해 놓은 듯이 주먹 쥔다)
아, 그 전에 가운 입고...방독면 쓰고...
 
라티나:(덤덤한 표정으로 비장하게 같이 주먹 쥔다.)
흠. 그랬었죠.
(가운을 꺼내와 주섬주섬 입는다.)
(방독면을 쓰고...아무튼 노아가 알려줬던 대로 이것저것 해본다.)
 
어디...방독면을 혼자 쓸 수 있었을지...
 
손재주를 판정해봅니다!
 
라티나:
손놀림
기준치: 50/25/10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wow
 
라티나는 노아보다 더 잘 썼습니다...
 
라티나:(아주 당당한 포오즈)
 
노아:... ... ...이...이제 하산하셔도 되겠어요
 
라티나:스승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노아:(끄덕인다) 이따가 제대로 벗는 것도 연습해볼게요.
 
두 사람은 오늘도 완벽한? 위장으로 세계정부 건물을 빠져나갑니다.
 
라티나:(어제보다 더 뻔뻔하게 목례한다.)
(샌드위치...)
 
조금은 흐린 잿빛 하늘이지만, 그래도 해가 드는 날씨입니다.
 
노아와 라티나는 곧 샌드위치 가게에 도착합니다.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
 
라고 적힌 가게네요.
 
라티나:오...
(기대.)
 
노아:제가 자주 오는 곳인데, 꽤 맛이 괜찮아요.
요즘 샌드위치는 채소가 안 들어가서 기름지기 일쑤거든요.
 
샌드위치의 선택 폭은 간단합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오리고기.
 
라티나:(진짜신중한얼굴)
 
노아:저는 오리고기. (빠르게 정했다)
 
라티나:...저는 돼지고기로요. (신중)
 
홀로그램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마치기가 무섭게 샌드위치가 포장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빈 컵도요.
 
노아:여기에서 원하는 음료수를 골라가면 돼요.
 
라티나:...........................(좋다)
노아는 어떤 음료를 고르실 건가요.
 
탄산수, 환타, 콜라, 제로콜라, 스프라이트, 물, 석류주스...
 
노아:저는 제로콜라요. 왠지 샌드위치를 먹을 때에는 항상 찾게 되더라고요. (항상 먹는 메뉴인 듯 익숙하게 얼음을 담고 음료를 받아간다)
 
라티나:....(그대로 제로콜라와 얼음 담기를 따라해본다.)
 
라티나도 옆에서 시원한 제로콜라를 담아갑니다.
 
창가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꽤 연구원들의 식사 같은걸요.
 
라티나:(테이블 위를 만족스레 본다.)
새삼스럽지만, 계속 사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노아:(샌드위치를 한 입 물었다가, 잠깐 라티나를 바라본다)
네, 괜찮은데요?
 
라티나:(따라 한 입 베어물고 우물우물)
손해보고 살 것 같은 타입이십니다.
 
노아:(약간 정곡을 찔린 표정)
... ... ...식사 사드리는 정도로 지갑이 비지는 않으니까...
이건 괜찮아요.
 
라티나:(우물우물. 맛있다.)
어디 이상한 계약서에 도장찍고 다니는 건 아니시죠?
 
노아:어제 약속 하나 하긴 했는데...
그것도 이상한 계약서인가요?
 
라티나:아뇨. 훌륭한 계약서죠.
작은 노아도 보증하는.
(우물우물)
어제 말하는 걸 잊었는데 말입니다.
저도 오랜만인 것 같더군요.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 말이에요.
 
노아:전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나요?
아, 그러니까...병원에 가기 전이요.
 
라티나:거리에서 잠깐씩 방향이 맞아 어울리는 이들은 있었어도...이해 관계에 따른 거였으니 오래 가지는 않았고요. 어릴 때 돌봐준 사람과는 마른 빵을 나눠 먹었죠.
 
노아:그 사람을 찾는 거군요.
 
라티나:... (단어를 고르듯 눈을 굴린다.) 단서가 많지 않으니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노아:(콜라를 한 입 먹고 당연하다는 듯 뱉는다) 반가워 할 거에요.
같이 이 가게에 오면 더 좋을 거고요.
 
라티나:(당연하다는 듯한 어투에 괜히 컵을 매만진다.) ...말은.
...뭐, 그래도.
 
노아:정말로요. 어쩌면 그 사람도 라티나를 찾아다닐지 몰라요.
 
라티나:... ...(손가락이 뚝 멈춘다.)
꼭 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덤덤히 중얼거린다.)
 
노아:제가 그 사람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요.
라티나도 여전히 그 사람을 좋아하죠?
 
라티나:... ...
모르겠습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노아:그럼 꼭 찾아야겠네요.
만약 그 사람이 라티나를 찾지 않았고, 라티나가 더 이상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는 찜찜하잖아요.
엔딩이 어떻게 나건 책은 끝까지 보는 편이 더 좋죠.
 
라티나:...(녹음을 닮은 확신이 진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조금은 바래고 구겨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럴까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말입니다. 할 이야기도 더 많아졌으니까. (가볍게 컵을 톡 두드린다.)
더불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노아:새 책을 들고 가야죠.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라티나:식물학자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양상추만큼의 이유는 아닐 것 같아서요.
 
노아:(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땐 집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거든요.
아는 게 그것 뿐이기도 했고.
...생각보다 시시한 이유죠?
지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라티나:어린 날의 소망을 훌쩍 자란 지금까지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대단하게 보이는걸요.
집 주변의 풍경은... 어땠습니까? 기억나시는 것이 있나요.
 
노아:(기억을 떠올리듯 눈을 천천히 굴린다) 집 뒷마당으로 나가는 큰 문이 있었어요. 성을 떠올릴 정도로 큰 문이라 그걸 열고 나가는 걸 좋아했죠.
다락방에 올라가면 별도 볼 수 있었고요.
낮에는 마당에, 밤에는 다락방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어요. 학교에 갈 때 빼고는.
 
라티나:(어느새 고개를 괴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노아:대학을 멀리 가서 그 집에서 오래 살진 못했지만...아마 지금은 없을 거에요.
식물종을 재생하는데에 성공하면 꼭 다시 만들어보고 싶네요.
 
라티나: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식물종의 재생이 생각처럼 되지 않고, 다시 그 집을 만들기 힘들어진다고는 해도.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는 찜찜하다고 했거든요. 어디 사는 누군가가.
 
노아:누가 그런 얘길 했죠?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이네요...
 
라티나:있습니다. 시시한 이유라면서도 별보다도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사람.
기회되면 소개시켜드리죠.
 
노아:기대하고 있을게요. (작게 웃는 소리를 낸다) 기왕이면 제가 아는 사람들하고 같이 만나면 좋겠네요.
 
라티나:흠. 예를 들면요?
 
노아:작은 빵집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는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모험담이 장난 아니니까 전 날에 잘 자고 오셔야 할 거에요.
 
라티나:(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괸다.) 말은.
 
노아:말은 잘하는 게 장점이에요.
단점이기도 하고...
 
라티나:인정은 하죠.
...뭐. 후자도?
그래서 오늘의 연구 계획은 어떠십니까?
 
노아:오늘은 우선 돌아가서 꿈에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해요. 거기에 사는 식물종도 확인을 해야 하고...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더니) 슬슬 출발할까요?
 
라티나:꿈...(고개를 끄덕인다.)
잘 먹었습니다.
 
노아:편하게 얘기해주세요. 그림이 상세하게 나와있는 식물사전이 있으니까 그걸 펼쳐놓고...
 
두 사람은 샌드위치 가게를 나서서, 세계정부로 돌아갑니다.
 
노아:이제 방독면 혼자 쓸 수 있죠?
 
라티나:아마도요?
 
한 번 해볼까요?
 
라티나:(두주먹 꽉쥔다.)
손놀림
기준치: 50/25/10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wow
 
라티나:(당 당.)
 
역시. 이번에도 완벽하게 썼습니다.
 
노아:정말 빨리 배우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박수를 친다) 연구원 연기도 잘 하고...
 
라티나:살아남기의 일환이죠. (뻔뻔하게 머리..넘기려다가 방독면 아래로 넘기는 시늉만 한다.)
 
노아:(시늉에 소리내 웃는다) 어디에 혼자 내놔도 걱정은 없겠어요.
 
두 사람이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노아가 식물사전과 책 몇 권을 들고 옵니다.
 
그리고, 방 밖의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듣기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투두두두... ...
 
이건...총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노아는 벌떡 일어나 초록색 책을 잡아당깁니다.
 
노아:라티나, 들어가요. 빨리.
 
라티나:...이거, 분명...잠시만요.
총소리 아닙니까? (나타난 공간과 노아를 번갈아 본다.)
 
노아:출입 기록이 있으니까 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거에요. 당신은 여기 몰래 들어왔으니까 들키면 안돼요.
상황이 끝나면 부를게요. 그 때까지만 안에 있어요.
 
라티나:... ...괜찮으신 것, 맞습니까?
 
노아:(미소를 지어보인다.) 네, 그럴거에요.
 
라티나:...
 
누군가가 노아의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노아가 급히 라티나를 벽장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떠밀려 들어가며 본 것은 문으로 향하는 노아 양의 모습이었고...
 
잠깐, 지금 내가 어딜 디딘거야?
 
라티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집니다.
 
라티나:...!
 
쿵,
 
침대인지, 벽인지...머리를 세게 부딪힌 라티나는
 
순간적으로 시야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체력을 2 잃습니다.
 
라티나:... ... ...윽.
 
.
 
.
 
.
 
.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햇빛이 느껴집니다.
 
긴 풀들이 라티나의 사지를 간질입니다.
 
라티나:... ...
...!
 
...기절한 걸까요?
 
정글은 여전히 고요하고 따스합니다.
 
...하지만 어딘가 스산하기도 합니다.
 
라티나:(또...그 꿈인가?)
 
자꾸 어디에선가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라티나:... ...
 
정글의 나무들이 스스로 몸을 비틀며 우는 것도 같습니다.
 
발에 닿는 흙은 습기가 가득하고, 비린내가 올라옵니다.
 
라티나:... ...(이상하다. 이상해. 변하고 있어. 꿈이...)
 
축축하게 젖은 흙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라티나:... ...
(주먹을 쥔다. 이 차가운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거지? 나무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그리고, 이 비린내는...)
... ...(그럼에도 나아갈 수밖에 없다.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는...)
(찜찜한 법이잖아. 젖은 흙길을 따라 반듯하게 걷는다.)
 
라티나는 책의 끝을 확인하기 위해 걷기 시작합니다.
 
걸을 수록 흙은 점점 진득하게 젖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가 둘러싼 호수가 나타납니다.
 
...붉은...
 
핏빛의 호수입니다.
 
라티나:... ...(입을 틀어막는다.)
왜, 왜...
 
불쾌한 비린내가 코를 찌르듯 올라옵니다.
 
그러나 진행은 다르지 않습니다.
 
핏빛 호수는 빠른 속도로 불어납니다.
 
기괴하게 몸을 비틀던 나무들이 한 순간에 재로 흩어집니다.
 
라티나:(의미없이 어디로든 달려 도망치려 한다.)
 
호숫물이 발목까지 찬 순간, 라티나는 호수 위에 떠 있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합니다.
 
라티나:... ...(그것이 책임을 확인하기도 전에 다급히 손을 뻗는다.)
 
라티나는 차오르는 물을 헤치고 책을 향해 나아갑니다.
 
물이 무릎을 지나 허리로 차오르는 순간, 책을 집을 수 있었습니다.
 
라티나:(제발, 제발! 절박한 손길이 드디어 닿는다.)
(허리로 차오르는 물을 느끼며 다급히 책을 펼친다.)
 
책의 모든 페이지는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다만, 딱 한 페이지.
 
딱 한 페이지만은 괴상할 정도로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라티나:(미친듯이 젖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 우뚝 멈춘다. 괴상할정도로 깨끗한 페이지 위의 알 수 없는 글자를 읽는다.)
... ...이게 무슨...
 
라티나는 주문 [납의 방벽]을 습득합니다.
 
호수는 대답 없이, 이번에도 라티나를 뒤덮습니다.
 
.
 
.
 
.
 
.
 
라티나는 눈을 뜹니다.
 
책장 뒤의 작은 공간.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하아, 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올라옵니다.
 
꿈의 잔향일까,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질 뿐.
 
라티나:... ...꿈이 아니야...
어디서 나는 냄새지?
... ... ...(꿈 속의 핏빛 호수를 떠올린다.)
 
아까 전의 소란이 무색하게 바깥은 고요합니다.
 
상황이 끝나면 부르겠다고 했는데.
 
라티나:(그 고요함이 기묘할 정도였다.)
(나가도 되는 걸까?)
 
...책장 바깥으로 나가볼까요?
 
라티나:... ...
(책장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귀를 대 본다. 달리 들리는 소리는 없을까?)
 
바깥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인기척조차도요.
 
라티나:... ...
노아. (작게 이름을 불러본다.)
 
... ... ...
 
대답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라티나:... ...
(심호흡을 한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책장 바깥으로 나가본다.)
 
라티나는 책장 바깥으로 나갑니다.
 
누군가가 불을 끈 것인지 방 안은 어둡습니다.
 
그리고 책상 옆에 기대어 앉아있는 노아가 눈에 들어옵니다.
 
라티나:... ...(어두운 방 안을 조심스레 살피다가, 책상 옆의 그를 발견하고 다급히 다가간다.)
... ...(그를 살핀다.)
 
...
 
그는 이상할 정도로 미동이 없습니다.
 
시선을 내려보면, 피로 물든 가운과 아래로 고인 피웅덩이가 보입니다.
 
비린내의 원인은 이곳이었군요.
 
라티나:... ... ...
(차갑게 내려앉는 감각을 느낀다. 무딘 심장을 가진 것은 장점일까, 단점일까. 과열된 로봇처럼 조금씩 떨리는 손이 그의 어깨를 잡는다.)
노아.
 
이성을 1 잃습니다.
 
라티나:노아. (덤덤한 표정 위로 반복되는 명령어를 말하듯 이름을 부른다.)
 
그 순간, 창백한 안색을 비추는 푸른 빛이 켜집니다.
 
라티나:... ...
 
책상 위의 컴퓨터입니다.
 
라티나:(떨리는 고개가 푸른 빛의 근원지를 향한다.)
 
컴퓨터의 화면에는 패스워드를 입력할 수 있는 흰색 박스와 BLUE라는 단어가 뜹니다.
 
그 옆에는 작은 힌트 창이 있습니다.
 
라티나:... ...(그것은,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무언가의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처럼 보여서.)
 
HET UMBREN
 
라티나:(천천히 일어서서 컴퓨터 화면 앞에 선다.)
... ...
 
...
 
이것이 지표일까요?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단서가 되어 줄까요?
 
라티나:... ...
(숨을 고른다.)
 
흰 박스에 놓인 커서가 천천히 깜박입니다.
 
라티나:... ... ...
(흰색 박스를 가만히 바라본다. 빈 책장 같은.)
 
아이디어를 판정할 수 있습니다.
 
라티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라티나는 천천히 알파벳을 읽습니다.
 
그리고 이내, 기묘한 순서를 짜맞추어보면...
 
THE NUMBER.
 
그와 동시에 아른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라티나:... ...
 
라티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신을 29번 환자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라티나:...
29...
(숨을 가다듬는다. 손을 뻗어 29를 입력한다.)
...
(엔터를 누른다.)
 
29.
 
화면에서 입체의 푸른 구체가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이내 구체는 폴더의 모양으로 바뀝니다.
 
폴더의 이름은 [BLUE29]
 
그것을 클릭해보면, 영상 파일이 4개 뜹니다.
 
[Log 1]
 
라티나:... ...
 
[Log 2]
 
[Log 3]
 
[Log 4]
 
라티나:(첫 번째 파일을 연다.)
 
[Log 1]
 
화면이 지직거립니다.
 
순간 커다란 손 두 개가 화면에 뜹니다.
 
화면이 정신없이 흔들리다가, 멈춥니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노아의 목소리입니다.
 
아...켜진 건가?
 
빨간 불이...들어오면...됐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안녕하세요, 29번.
 
이름으로 못 불러줘서 미안해요. 아직 환자 차트를 못 받았거든요.
 
제가 직접 설명하지 못할 일이 생겼겠죠.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됐다면,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넵니다.
 
힘들다면 방독면을 써도 돼요. 아마 제가 가르쳐줬겠죠.
 
갑작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그 순간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라티나:... ...
... ...(말없이 두 번째 파일을 연다.)
 
[Log 2]
 
화면이 지직거립니다.
 
같은 배경, 같은 사람이군요.
 
왜 맘대로 꺼지는...아,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정지. 아하.
 
무거운 짐...거기까지 말했나요?
 
그러니까 원래 하려던 말은...이 잿빛 행성을 구하려면 당신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어요.
 
매일 밤 당신이 숲이나 정글 같은 것이 나오는 꿈을 꾼다는 건 알고 있어요. 조사를 좀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 프로젝트 이름을 고민 중이에요.
 
지금 후보는 '노아의 방주' 랑 'BLUE 29'인데...
 
...말하다 보니까 정해지네요. 아무래도 제 이름이 들어가는 건 민망하니까 후자로 합시다.
 
잠깐 이야기를 좀 더 진행시키자면...
 
저는 시간을 멈추는 장치와, 꿈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장치를 입수했어요.
 
어디에서 입수했는지는 물어보지 말아주세요. 그냥...천재들은 저런 것도 들고 오는구나...하는 셈 치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용당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
 
라티나:... ...
 
하지만 저는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게, 정말...절실하게 필요해요. 당신이 제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닻이에요.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라티나:(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모든 말을 보는 것이 먼저였다.)
...닻.
(세 번째 파일을 연다.)
 
[Log 3]
 
조금 초췌해 보이는 모습의 노아가 나타납니다.
 
어두컴컴한 배경, 아무래도 새벽인 것 같네요.
 
눈에는 짙게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습니다.
 
그는 비스듬히 앉아 카메라를 짧게 응시하더니 곧 목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합니다.
 
조금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29번.
 
나중엔 이름으로 많이 부를게요. 지금은 정말 아는 게 없어서...
 
당신의 꿈에 대해서 조사를 했어요.
 
아마도 당신이 보는 건...식물의 고대종인 것 같아요. 좋은 징조죠.
 
거기서 파생되는 수 많은 식물종들이... ...
 
그는 잠시 의자에 기댄 채 말이 없다가, 곧 다시 눈을 뜹니다.
 
당신은 독특해요. 매일같이 시간여행을 하는 패스파인더 같죠.
 
저는 우주에 대해선 전혀 모르지만...
 
낭만적이지 않나요.
 
아마도, 지금쯤이면...
 
제가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어요. 그랬겠죠.
 
세계정부가 저명한 과학자들을 모아놓은 건 싹을 자르기 위함이었을 거에요.
 
그들은 이 행성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울 지 몰라요. 그저 짧은... ... ...
 
라티나:... ...
 
그래서 저는 한 가지 대책을 세우기로 했어요.
 
죽는 순간, 제 정신을 아득한 과거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당신같은 능력을 가지지 못했으니까, 인공적인 방법으로 찾아가는 수 밖에 없겠죠.
 
제가 이 일을 성공시켰을 거라고 믿고 싶군요.
 
라티나:... ...(주먹을 꽉 쥔다.)
 
노아는 천천히 안경 안으로 마른세수를 합니다.
 
피곤함과 절망, 공포 같은 것들이 섞인 표정이 잠시 스쳐지나갑니다.
 
...거기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내킨다면 그곳으로 와 주세요.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라티나:(다음 파일을 열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네 번째 파일을 연다.)
 
[Log 4]
 
이번에는 비디오 밑에 작게 날짜가 찍혀 있습니다.
 
...오늘 날짜네요.
 
시간은 오늘 새벽입니다.
 
라티나:... ...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입모양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잘 자요, 라티나.'
 
'그리고 침대 밑을 확인해요.'
 
비디오가 끝납니다.
 
라티나:... ... ...(검게 물든 화면 앞에서 한참이나 말이 없다.)
(영화같은, 소설같은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시간을 멈추는 장치. 꿈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장치. 아득한 과거로 보내진 그의 정신...)
 
이 이야기도 끝이 날까요?
 
라티나:(비디오는 끝난 채였다. 불이 꺼진 극장 안의 산 관객도 한 사람뿐이었다.)
... ...(컴퓨터에서 몸을 돌려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간다.)
 
창백한 몸에서 온기가 가시고 있습니다.
 
라티나:(책상에 기대앉은 그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굽혀 앉는다. 첫만남이 그러했으니까. 손을 뻗어 만져본 그의 뺨에서 온기가 가시는 것을 느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 또한 일방적으로 노아가 남긴 긴 이야기를 경청했으니, 어느 정도는 들어주셨으면 좋겠군요. 대답은 할 수 없으시겠지만요.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노아 양. 모두가 미쳤다고 말하며 병원에 가둬놓았던 사람에게 지금처럼 한 쪽 무릎을 꿇고, 병증이라는 말에 본인이 더 반응하기나 하고.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식사를 연달아 사주질 않나. 지낼 공간을 꾸며주질 않나... 오래도록 꺼내지 못했던 먼지 쌓인 소망에 힘을 실어주질 않나.
제가 당신의 절실한 닻이었기에 보인 행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 행성에서 그런 다정함을 만난 지가 아주 오래 되었거든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에게 받은 흰 가운을 벗는다.)
 
라티나:(그것을 펼쳐 그의 피로 물든 몸 위로 덮어준다.)
함께 보낸 짧은 시간에도 그렇게 다 내어주셨으면서, '내킨다면' 와 달라는 소심한 발언 하고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입니다. 저는.
엔딩은 아직이기도 하고요. (몸을 일으킨다.)
만나러 간 다음 놀라게 한 만큼 응징해드리죠.
(이내 몸을 돌려 침대 밑으로 걸어간다. 그는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다.)
 
라티나:(그는 무엇을 남기고 간 걸까?)
 
침대 밑에는 작은 흰색 상자가 있습니다.
 
라티나:... (손을 뻗어 상자를 꺼낸다. 천천히 열어본다.)
 
그 안에는 작은 약병 하나와, 알처럼 생긴 노란 장치가 하나 있습니다.
 
약병에는 [수면제]라는 테이프 레이블이 붙어 있습니다.
 
라티나:...
(노란 장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노란 장치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몸에 지니고 있어요.]
 
라티나:...
(볼 사람도 없는데, 괜히 고개를 끄덕인다.)
(수면제가 든 약병을 본다.)
(침대에 걸터앉아 노란 장치를 품 안에 넣고, 약병을 연다.)
 
다시 한 번, 그곳으로 가야겠죠.
 
라티나:...
안녕히 주무십시오.
노아.
(그대로 약병에 든 것을 망설임없이 들이킨다.)
 
라티나는 천천히
 
꿈 속으로 떨어집니다.
 
...
 
정글은 익숙한 눅눅함이 아니라, 차가운 푸른 빛을 띄고 있습니다.
 
그저...
 
차갑습니다.
 
라티나:... ...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요.
 
라티나:(천천히 숨을 쉰다.)
 
라티나가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 아래에서 풀들이 빠르게 자라납니다.
 
그리고, 조금씩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 정글 전체가 라티나를 감싸안고 있는 듯이.
 
라티나:(발 아래를 간질이는 풀을 느끼는 것도 잠시, 따뜻해지는 공기가 감각으로 전해진다.)
... ...
(정글의 품 안으로 걸어간다.)
 
점점 나아가면
 
저 멀리, 커다란 회색 물체가 보입니다.
 
조금 더 다가가면, 사람 형태의 모습이 보입니다.
 
라티나:... ...
(조용히 다가간다.)
 
익숙한 얼굴입니다.
 
노아 양이군요.
 
라티나:... ...
노아.
 
라티나가 그를 인식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면, 노아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노아:라티나!
(환한 미소를 올리며 몸을 돌린다) 오래 기다렸어요.
 
라티나:(환히 웃는 얼굴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제가 무슨 말부터 할 것 같습니까?
 
노아:여긴 정말 대단해요. 각종 식물들의 고대조... ...옹... ... (그 말에 약간 긴장한 것처럼 몸이 굳었다가) ...미안해요.
당신에게 처음부터 말할까 생각했는데, 설득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했고...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서...
 
라티나:...................................(그냥 빤히 본다.)
제가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노아:... ...모르겠어요. 계속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고개를 들어 숲을 바라보는 얼굴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정지된 숲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걸까요?
 
라티나:... (문득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노아:하지만 언젠간 올 거라고 생각했죠.
 
라티나:지금까지는...얼마나 기다리신 겁니까?
 
노아:(다시 라티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살짝 으쓱인다)
이곳은 시간이 멈춰 있어서 세어 본 적은 없어요.
 
라티나:지루하지는 않으셨고요.
 
노아:전혀요.
돌아가서 할 일이 정말 많다는 것만 알았죠.
...정말 미안해요, 라티나.
다시 와 줘서 고마워요.
 
라티나:... (녹음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그를 본다.)
...네.
만나자마자 등이라도 칠까 했는데. 나중으로 미뤄두죠.
 
노아:...라티나가 때리면 기절할지도 몰라요.
 
라티나:멋진 풀 가운데에 눕혀 드리죠.
 
노아:지구에서 말이죠?
 
라티나:...네.
 
라티나의 발치에 새로운 싹이 틉니다.
 
라티나:...
(몸을 굽혀 발치에 새로이 피어난 생명을 본다.)
 
라티나가 그것을 바라보면
 
싹은 가지가 되고,
 
가지는 기둥이 되어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라티나:... ...!
 
두 사람이 아무리 물러나도 멈추지 않던 성장은
 
한 품에 껴안을 수도 없는 두께의 나무가 되어 멈춰섭니다.
 
라티나:...굉장하군요.
 
마치 물푸레나무 같은 모습입니다.
 
가지 끝에 늘어진 잎사귀는 모든 초록을 섞어 놓은 듯 반짝입니다.
 
노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무를 바라보다가, 환한 미소가 번진다.) 정말...멋져요.
정말 초능력자 같아요, 라티나.
(가장 아래로 늘어진 잎사귀를 매만지다가) 이걸 따서 가져가죠.
 
라티나:(함께 그 잎사귀를 매만진다.) ...사라지지 않는군요. 손을 대도.
지구에선 늘 재처럼 사라져버리곤 했는데.
 
노아:진짜 식물이니까요.
 
라티나:... ...
(부드러운 잎사귀 위로 드는 반짝임을 바라본다.)
(더불어 환히 웃는 그의 눈동자도.)
...이런 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겠죠.
... (제대로 느껴본 적 없는 단어를 처음 말해보듯 목을 가다듬는다.)
예쁘다.
 
노아:(그 말에 잠깐 생경한 표정을 지었다가, 파문이 일듯이 미소가 번진다.) 예쁘죠.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에요.
 
노아 옆에 놓인 커다란 회색 물체에는 동그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습니다.
 
노아:아, 맞다. '그거'.
 
라티나:품에 지니고 있으라던 것 말이십니까?
 
노아:맞아요, 가지고 오셨나요? 저보다는 라티나가 훨씬 잘 챙길 것 같았는데.
 
라티나:노아가 흘리기 딱 좋은 크기더군요. (품 안에서 노란 장치를 꺼내 보여준다.)
 
노아:다행히 라티나도 장치도 흘리지 않았죠. (웃는 소리를 내며 물체 앞으로 다가선다) 자, 가요.
 
라티나:두 개나 챙기다니 대견합니다. (진지한 목소리를 내며 나란히 물체 앞에 선다.)
...
 
노란 장치는 구멍에 딱 맞는 크기군요.
 
아마도 이게 열쇠인 것 같습니다.
 
라티나:(꼭 맞는 크기의 구멍과 열쇠를 번갈아 본다.)
...
(따뜻한 정글을 돌아본다.)
지구에서도 이런 따스한 초록을 느낄 수 있게 될까요.
 
노아:그렇게 만들 거에요.
분명 라티나도 좋아할 거고요.
 
라티나:...말은.
 
노아:장점이죠?
 
라티나:단점일 수도 있고요.
... ...(노란 장치를 구멍 앞에 가져다 댄다.)
갈까요.
 
장치를 구멍에 넣자,
 
물체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열립니다.
 
내부는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텅 비었고, 두 사람 정도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네요.
 
라티나:...(먼저 그 안으로 들어간다.)
 
뒤이어 노아가 물체에 올라타면
 
천천히 문이 닫힙니다.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으로 점차 호수의 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노아:항상 이런 엔딩이었어요?
 
라티나:지금까지는요.
이번은 여러 차이점이 있고요.
 
노아:이 꿈도 그리워지겠어요.
 
두 사람이 물체에 타고나면
 
자욱하게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찹니다.
 
라티나:현실로 찾아올테니 만나러 가면 되겠죠.
아니면, 자신 없습니까? 양 박사님.
 
이번만은 물 속에서 헤엄치지 않아도 괜찮겠군요.
 
노아:설마요. 나름 명성이 있는데요.
 
라티나:믿겠습니다. 이번에도요.
 
눈 앞이 하얗게 번집니다.
 
.
 
.
 
.
 
...
 
라티나가 눈을 뜨면, 갈색 천장이 보입니다.
 
노아의 방이군요.
 
라티나:... ...
 
라티나가 자던 책장 뒤가 아니라, 노아의 침대 위입니다.
 
라티나:(깜빡, 깜빡.)
 
방 안은 평소와 달리 자잘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딸각이며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종이 소리...
 
책상 앞에 앉아있는 노아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라티나:(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 ...
 
노아:(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다) 좋은 아침이에요, 라티나.
 
라티나:...네...
 
노아:(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표정이 왜 그래요?
 
라티나:...어떤 표정인데요? (부스스한 뺨을 매만진다.)
 
노아:죽었다가 살아돌아온 사람이라도 보는 표정?
 
라티나:...좀 짖궃으십니다?
...아니면, 혹시... (눈을 깜빡인다. 혹 자신만 기억하는 것일까.)
 
노아:그래도 잘 돌아왔잖아요. (눈짓으로 시계를 가리킨다)
 
라티나:...(눈 가늘게 뜬다.)
(느릿하게 일으켜 책상 옆으로 다가선다.)
어떻게 되어 갑니까?
 
노아:다 됐어요. 작동하는 방식을 조금 재미있게 만들었는데... ...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눈 부빔)
 
책상 꼴이 이게 뭐죠?
 
종이 하며 장치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노아:(책상에서 회색 금속으로 이루어진 모습의 리볼버 같이 생긴 물체를 집어든다.) 이걸 쓸 거에요.
제가 개발한 건 촉진제에요. 지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식물을 심을 순 없으니, 가장 멀리 보내는 방법을 고안했어요.
 
라티나:(권총같은 형태에 표정이 묘해진다.) 가장 멀리... 이를 테면요?
 
노아:하늘이죠.
그리고...그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는데.
 
라티나:(하늘 대신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그를 본다.) 무엇입니까?
 
노아:...뛰는 거 잘 한다고 했죠?
(책상 옆에서 야구배트를 든다) 사람 패는 것도 잘 해요?
 
라티나:잡힐 생각도 없고...
주먹을 참을 성정도 아니죠.
 
노아:(만족스럽게 웃는다) 좋아요.
(라티나의 손에 야구배트를 들려주더니, 자신은 책상 서랍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든다)
곧 그들이 와요.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는 거에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라티나:거슬리면, 패고요?
 
라티나와 노아가 들었던 그 소리입니다.
 
노아:... ...팬다는 건 너무 과격하니까...
치워버리고요.
지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야죠.
(그랬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지구를 위해? 우리의 안전을 위해.
 
라티나:네, 지구 속 우리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가 노아의 방문을 거세게 두드립니다.
 
노아:(소리를 듣자마자 장치를 챙겨넣고 일어서서 문 옆의 벽에 붙는다)
셋 하면 여는 거에요.
 
라티나:하나. (배트를 고쳐쥔다.)
 
노아:둘... (가방끈을 꾹 쥔 채 충격기의 작동을 확인한다.)
 
라티나:(눈을 느릿하게 감는다. 곧, 눈을 뜬다.) ...
셋. (빠르게 문을 연다.)
 
문을 열자, 무장한 두 군인이 들이닥칩니다.
 
그들이 비어있는 듯 보이는 방 내부를 보고 주변을 둘러보는 짧은 찰나,
 
준비 됐나요?
 
라티나:(그럼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벽에 붙어 있다가, 내부를 둘러보는 군인 한 명의 머리를 야구배트를 휘둘러 세게 가격한다.)
 
라티나가 오른쪽에 있는 군인의 머리를 가격합니다.
 
까앙!
 
동시에, 노아가 왼쪽에 있는 군인의 목에 전기충격기를 가져다댑니다.
 
노아:뛰어요!
 
라티나:자신 있죠. (도주로가 확보되자마자 그와 함께 방 밖으로 뛰쳐나간다.)
 
두 사람은 군데군데 피가 튄 복도를 질주합니다.
 
노아:반대쪽 끝에 비상구가 있어요! 계단으로 내려가요!
 
라티나:(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긴 복도를 내달린다. 복도에 낭자한 피의 주인을 향해 애도할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복도는 조용했지만 비상구에서 무장한 몇몇 사람을 더 마주쳤고,
 
두 사람은 신속하게 그들을 '치웠'습니다.
 
설마 연구자가 반격할 줄은 몰랐겠죠.
 
라티나:(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중얼거린다.) 재능 있으시네요.
 
노아:(달리느라 숨차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처...처음이에요!!
 
이윽고 두 사람은 로비를 내달려 바깥에 도착합니다.
 
거의 쓰러질 듯이 뛰어나온 노아가 라티나에게 회색 빛의 리볼버를 건넵니다.
 
노아:헉...하늘에 대고... ...헉, 쏴...쏴요!
 
라티나:(그에게서 회색 리볼버를 건네받는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먹구름이 잔뜩 껴 있습니다.
 
라티나:(그 먹구름 아래에서 역설적이게도 지구의 초록빛 희망을 본다.)
... ...(그가 건넨 리볼버를 하늘에 조준하고 숨을 고른다.)
말하는 걸 잊었는데.
우리의 결말은 역시 해피엔딩이 좋겠습니다.
(높이 들어올린 팔 끝이 먹구름 한가운데를 조준한다.)
(이 행성이 잃어버린 초록을 향한 탄환을 기도하듯 쏘아올린다.)
 
라티나의 총구 끝에서 짧은 빛이 비춥니다.
 
총구에서 발사된 초록 빛이 레일건처럼 한 없이 위로 뻗어나갑니다.
 
어느 순간 그것이 하늘에 닿았는지,
 
먹구름 안에서 초록빛이 반짝이다 사라집니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선명한 초록빛을 보고 걸음을 멈춥니다.
 
이내 천둥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한 줄기의 비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빗방울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적시기 시작합니다.
 
비는 세상을 씻어내릴 것처럼 세차게 내립니다.
 
차가운 빗물이 시원하게 뺨을 훑고 지나갑니다.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쏟아지는 빗줄기를 올려다본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노아가 라티나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노아:라티나, 봐요.
 
라티나:... ...
 
그는 보도블럭 틈새를 가리킵니다.
 
라티나:....아.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라티나:... ...
 
초록빛 싹이었던 것은 금새 가지가 되고, 기둥이 됩니다.
 
인조 공원 사이사이로 잔디가 자라납니다.
 
라티나:(환상이었던 것은 소망이 되고, 현실이 되었다.)
 
세계정부 빌딩의 한 면을 휘감고 담쟁이덩굴이 감깁니다.
 
비를 피하던 사람들은 홀린 듯 처마 밖으로 나와 눈을 크게 뜨고 있습니다.
 
라티나:(비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이 행성에 돌아온 푸르른 씨앗들을 응시한다.)
 
노아:(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마워요, 라티나.
당신 덕분이에요.
 
라티나:...당신이 없었다면 전 병실 안에서 잿빛 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겠죠.
고맙습니다. 노아.
(손을 뻗어 그의 눈가를 요령없이 문지른다.)
비라고 모른척 해드릴까요?
 
노아:(머쓱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린다) 비가 많이 내리네요...
 
라티나:네에, 강아지는 털이 다 젖겠군요.
 
노아:...당신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동시에 좋지 않은 것들을 보여준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해요.
 
라티나:... ...
해피엔딩을 향한 돌부리였다고 생각하죠, 뭐.
 
노아:(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만약 이것들을 잊을 수 있다면...어때요?
 
라티나:...
그럼, 책의 중간 페이지가 우스꽝스럽게 뜯겨 버릴텐데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아는 그런 당신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 ...
 
라티나:...노아?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쩐지 아주 조금씩,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라티나:... ...잠깐.
 
그리고 동시에 당신은 젖어서 잉크가 번져가는 책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페이지를 발견합니다.
 
라티나:...
 
라티나는 [납의 방벽] 주문을 떠올립니다.
 
라티나:... (분명, 그 때 그 페이지에서...)
... ...(잊고 싶지 않아.)
 
라티나는 주문을 사용할까요?
 
라티나:... ... ...
(흐릿해져가는 기억 속에서 입술을 깨문다.)
(잊고 싶지 않다.)
(혀끝으로, 혹은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왼다.)
 
라티나는 주문을 욉니다.
 
따스한 햇살이 책장에 방점을 찍습니다.
 
----------------------------------------
 
...
 
그 일이 있고 난 뒤, 3개월이 지났습니다.
 
정글의 꿈은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노아 양은 정식으로 정부의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지구는 다시 푸른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정부의 수장이 홀연히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그 무리들도 와해되었습니다.
 
식사 거리를 사기 위해 길을 걷던 중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찾기 위한 여행에서 잠시 쉬는 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텔리비전에 익숙한 얼굴이 드러납니다.
 
질문을 받은 그는 작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라티나:... ...
 
노아: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저를 도와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그는 잠시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합니다.
 
노아:BLUE29는 성공했습니다.
 
라티나:(고소한 향기가 나는 노란 종이봉투를 안은 채로 쇼윈도 안의 화면을 응시한다.)
말할 것도 없이 성공적으로요.
당신이 내게, 좋아질 거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꽃다발을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미로, 자운영으로, 안개꽃으로, 해바라기로, 백합으로, 리시안셔스로...
 
당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약속을 지켰는지,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요.
 
--------------------------------
 
END. 노아의 방주
 
CoC 7th Scenario
 
BLUE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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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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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7th Scenario
 
<녹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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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하고 소름돋는 냄새.
 
모든 것을 씻어내릴 듯이 내리는 빗소리.
 
무언가의 잔해 같은 쇳덩이들이 발에 채입니다.
 
라티나:...
(천천히 눈을 뜬다. 바다빛 눈동자가 발밑을 확인한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에는 회색 뿐입니다.
 
사람도, 빛도...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비가 그치더니, 천천히 내려오는 빗방울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집니다.
 
라티나:(발치도, 그 어떤 풍경도 모두 회색 뿐. 홀로 선 이방인같은 자신 앞으로 보이는 느릿한 빗방울을 마주한다.)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몽글몽글,
 
느리게 낙하하는 물방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티나는 문득 깨닫습니다.
 
아, 이곳은 꿈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우뢰는 멎고,
 
물방울들은 순식간에 허술하게 뭉쳐진 재가 되어 천천히 몸 위에 얹히기 시작합니다.
 
라티나:...
(손을 들어올려 손바닥 위에 재를 담아본다.)
 
그것들은 닿는 곳에 싹을 틔워 잿빛 식물로 자라납니다.
 
저 멀리에서 반복적으로 번개가 치고 있습니다.
 
잿빛 식물들이 희게 번쩍입니다.
 
라티나:... ...(잿빛 식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번개가 내리치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저 곳으로 가 볼까...
 
라는 의식을 깨닫기도 전에
 
번개가 먼저 다가옵니다.
 
산발적으로 치는 번개의 중앙에 작은 아이가 한 명 서 있습니다.
 
라티나:... ...
(그 인영에 시선을 집중한다.)
 
번쩍,
 
번개가 한 번 더 치면 아이와의 거리가 반절로 좁혀집니다.
 
그리고 암전.
 
그랬다가 다시 실루엣이 번쩍입니다.
 
라티나:(내리치는 번개. 귀를 막을 생각도 없이 시선을 빼앗긴다. 좁혀진 거리에선 무엇이 보였을까.)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아이는 천천히 뒤를 돌아봅니다.
 
두 눈이 맞닿습니다.
 
바닷물과 같은 파란 빛과, 깊은 숲을 떠다 놓은 듯한 초록빛 눈.
 
...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라티나:...허억. (그 빨려들어갈듯한 눈에 짧게 멎었던 숨을 뱉으며 눈을 반짝 뜬다.)
 
아차, 깜박 졸았던가요?
 
라티나:...요즘 피곤했던 건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더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들어 모든 지역에 폭우주의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오늘의 날짜는 10년 전 천문학 역사상 기록적인 조화파수렴이 관측된 지 정확히 2일 전의 날짜로...]\
 
카운터 너머에서 울려퍼지는 텔레비전 소리에 라티나는 눈을 뜹니다.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저 소리에 잠에서 깬 모양이지.)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초록색...뭔가를...봤던 것 같은데?
 
라티나:꿈 속에서...분명.
 
아직도 식물의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걸까요.
 
그래도 이전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빵집 유리창에 익숙한 모습이 보입니다.
 
라티나:(무언가를 잊은 것처럼 몽롱하다. 반복되는 꿈이라면 익숙하지만...뭔가 달랐어.)
(대충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시야에 비추는 인영에 고개를 내민다.)
 
아, 하긴. 수요일 이 시간이면 노아 양이 지친 표정으로 들어오곤 했죠.
 
노아:(보랏빛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상쾌한 얼굴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라티나. 오늘은 가게 혼자 보시네요.
 
라티나:(카운터를 톡톡 두드리며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 즈음 오실 거라고 생각해 기다리고 있었죠.
웬 꽃입니까?
 
노아:선물이에요. 요즘은 꽃을 연구하고 있어서요.
 
노아 양이 내민 꽃다발에서 좋은 향이 풍겨옵니다.
 
노아:로벨리아에요.
 
라티나:... (얼결에 꽃다발을 받아든다. 요령없이 얼굴을 푹. 파묻어 향을 맡아본다.)
꽃다발은 처음 받아봅니다. (꽃잎 사이에서 웅얼웅얼 말한다.)
 
노아: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노아가 천천히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향을 맡으면...
 
온 몸이 마비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손 끝부터 발 끝까지,
 
상대방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빵집을 둘러봅니다. 깊게 침잠한 눈이 늪의 빛을 띕니다.
 
노아?:내 계획을 망치고 이런 꼴로 지내고 있었군.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시선이 라티나에게 가 닿는다.)
그래, 물론 놀랐겠지. 이해해.
(제 귀에 손을 다물었다 폈다 하며 고개를 기울이다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녹색은 지긋지긋하니까.
아니...아니지...너희가 지긋지긋한거야.
하지만 문제 해결. (코트 안주머니에서 작은 스프레이를 꺼내 라티나의 눈 앞에 가져다댄다.) 없던 일이 될 테니까.
 
노아 양이 씩 웃자, 그의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아, 저건.
 
인간이 아닌 무엇입니다. 저런 건... ...
 
라티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굳어버린 온 신경 사이로 부릅뜬 눈이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본다.)
(분명 인간이 아닌, 노아가 아닌 어떤 것...)
 
노아?:Tempus solvendi pretium venit. Homines.
 
이성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
 
치익,
 
당신은 곧 정신을 잃습니다.
 
.
 
.
 
.
 
.
 
눈을 뜨면, 주변은 어둠 속입니다.
 
마비는 풀렸지만,
 
주변을 더듬어보면 사방이 벽인 아주 좁은 공간입니다.
 
라티나:...! (눈을 떠 몸에 감각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당황하지 않고 주변을 더듬는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아주 좁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심호흡을 한다.)
...막혀 있지만, 누군가 날 여기 넣을 수 있었다면 나갈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눈 앞에 글자가 떠오릅니다.
 
315360000.
 
순식간에 해가 뜹니다.
 
아니, 진 건가?
 
숫자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떠오른 해가 길을 비추다가 다시 집니다.
 
사람들이 라티나의 곁을 스쳐지나갑니다.
 
라티나:(자신을 안심시키듯 중얼거리다가, 눈 앞에 떠오른 글자에 시선을 뺏긴다. 곧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까지!)
이게, 무슨...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뒤로 걸어와 라티나의 몸통을 통과하듯 스쳐지나갑니다.
 
숫자는 점점 더 빠르게 줄어듭니다.
 
식물이 시들고 건물이 낮아집니다.
 
라티나:(놀라 제 몸을 내려다본다. 아랑곳않고 자신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들. 지는 해? 뜨는 해? 줄어드는 숫자...!)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다시 식물이 자라고,
 
낮은 건물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숫자의 카운트다운이 천천히 떨어집니다.
 
5,
 
4,
 
3,
 
2,
 
1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투명한 입방체의 문이 열립니다.
 
공중에 안내음이 울려펴졌다가 흩어집니다.
 
[2044년 8월 27일에 도착하였습니다.]
 
라티나:하아, 하...?... (자신도 모르게 몰아쉬던 숨을 길게 뱉는다.)
 
이 곳은...
 
얕은 길이 나 있는 숲입니다.
 
2044년?
 
라티나:...2044년이라고?
(입방체의 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뭐야. 꼭...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같잖아. (자신이 말하고도 퍽 영화같았는지 뒷목을 주무른다.)
 
...타임머신.
 
이전에도 한 번 탄 적이 있었죠.
 
정말로 이곳이 10년 뒤라면... ...
 
하지만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풀벌레 소리, 새가 낮게 지저귀는 소리, 매미 소리...
 
라티나:그리고 일반인이었다면 이쯤에서 영화도 아니고, 라며 덧붙였겠지만... (적어도 자신과 자신이 아는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 ...
(천천히 입방체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 것을 믿고 살아온 사람들이니까요.
 
라티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다보면, 멀지 않은 곳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라티나:(생생한 숲의 소리 사이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든다.)
...누구일까?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쪽으로 향해보면, 숲이 점점 걷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 학교...
 
학교가 있군요. 그리고 그 앞에 넓은 운동장이 자리해 있습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몇 명의 아이들이 뭉쳐서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있습니다.
 
왁자지껄한 소리는 저기서 들리는 거군요.
 
라티나:(얕은 길을 따라 나타난 풍경이 천천히 시야를 채운다. 누군가를 두고 손가락질하는 아이들... 소리죽여 그들의 뒤로 다가간다.)
 
그들의 앞에는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는,
 
약간 왜소한 체구의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괴짜!"
 
"산에서 사는 부적응자!"
 
"귀가 들리기는 하냐!?"
 
다분히 악의가 가득한 소음.
 
그럼에도 아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책을 읽을 뿐이네요.
 
라티나:...
(낮게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낸다.)
 
큼큼,
 
소리를 지르던 아이들이 뒤를 돌아본 순간,
 
시간이 멈춥니다.
 
하늘을 날아가던 새마저 허공에 멈춰 있습니다.
 
라티나:...!
 
그리고, 발 밑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마치 모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
 
라티나:(하늘까지 바라본 고개가 천천히 내려오기도 전에, 발밑의 구멍을 인지한다.)
 
구멍 아래로 별빛을 닮은 반짝이는 글자들이 떠오릅니다.
 
라티나:... ...글자?
 
The end of the world, is nigh.
 
종말이 가까이 다가왔어.
 
...
 
아이디어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라티나가 머릿속으로 글자들을 재배치하면,
 
빛나는 글자들이 조합됩니다.
 
Down this hole, Frightened
 
두려운 자, 이 구멍 아래로.
 
"제법이구나."
 
얇게 떨리는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며...
 
라티나는 천천히 구멍 속으로 잠깁니다.
 
그리고 마침내 발바닥이 땅에 닿았을 때 있는 곳은...
 
가정집의 주방?
 
라티나:(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인다.)
(...주방?)
(두리번거린다.)
 
작은 식사용 탁상, 귀엽게 싱크대 위에 걸려 있는 두 짝의 오븐 장갑.
 
따뜻한 열기를 내고 있는 오븐...
 
오븐 속에서 부푸는 쿠키가 타닥이며 구워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라티나:...아, 저 소리가 나면 온도를 좀 낮춰야...(아니, 이게 아니지.)
 
저러다...타는 거 아냐!?
 
라티나:... (신경쓰임.........)
(게걸음으로 슬쩍....오븐 옆으로 다가간다.)
 
슬쩍...
 
어디어디...오븐 안으로 보이는 쿠키가 어떤 상태인지 볼까요.
 
적절한 판정을 선언해도 좋습니다
 
라티나:(슬쩍 허리를 숙여 오븐 안을 확인한다. 제과제빵을...굴려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라티나:
제과제빵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아...하얗네...
 
아직 안 익은건가...
 
라티나:...(내가 실수를?)
 
무엇보다 이거, 오븐이 아니라 화덕 느낌이라서 제대로 구별을 못하겠어요!
 
라티나:(맞아. 고개 끄덕끄덕)
탈 걱정은 없어보이네.
 
노인:탈 것 같은데. (라티나의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다.)
 
라티나:와. (놀랐다는 무표정.)
...누구십니까? 저도 딱히 집주인은 아닌데요.
 
노인:이런, 좀 놀라는 척이라도 해주지.
 
라티나:이 정도면 꽤 놀란 겁니다.
 
노인:그런가? 나도 사람 얼굴 구분을 잘 못해서.
불 끄지. (라티나의 옆으로 쑥 손을 디밀더니, 괴상한 쇠 막대기로 화덕 아래의 장작을 팍팍 부셔서 끈다.
 
라티나:...오... (화덕이 퍽 마음에 드는지 구경하고 있다.)
...늦은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노인:물론이지, 뭔가?
 
라티나:저를 여기로 데려온 것은... 당신이십니까?
 
노인:오우. 대답도 늦었군.
이 집의 주인이 나니까 그런 셈이지.
쿠키 먹겠나?
(오븐 장갑을 끼고 잘 구워진 쿠키를 하나 내민다)
 
라티나:...
(킁킁.)
다 익은 것 맞습니까?
 
고소한 마카다미아 냄새...
 
향만 맡아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라티나:(평화...)
(미세하게 편안해진 눈썹 각도와 함께 쿠키를 받아든다.)
잘 먹겠습니다.
 
눈썹이 10시 10분으로 돌아왔습니다.
 
라티나:(10시 10분 눈썹이 된 채 쿠키 들여다보는 중)
 
노인:(마찬가지로 라티나를 유심히 본다.) 겉모양은 합격인가?
 
라티나:집주인이 내어주신 선물인데 아무렴요.
저도 합격입니까? (자신을 보는 시선을 덤덤히 마주한다.)
겉모양이든, 무엇이든지요.
 
노인:물론이지. 특히나 삶의 방식이. (쿠키를 접시에 담더니, 테이블 너머의 의자를 꺼내 앉는다.)
먼 길을 왔어. 박스가 고장난 건 내 짓이 아니니까, 그렇게 관찰할 필요 없다네.
나는 좋은 마음에서 선물한 거거든.
 
라티나:... (자연스럽게 맞은 편의 의자에 앉는다.)
저를 다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더 보지 않고 쿠키를 와삭 깨문다.)
 
와사삭.
 
따뜻한 쿠키는 맛있습니다.
 
라티나:(악의라곤 담겨있지 않은 것처럼.)
(우물우물.)
 
정말로 믿어도 되는...사람? 인 걸까요?
 
노인:전부 다는 아니고, 보고 들은 것만 알지.
어떻게, 수리를 해야 할 텐데...기계는 좀 다루나?
 
라티나:(박스의 고장에 대해 생각하듯 눈을 깜빡이다가) 조금요.
쿠키의 값어치가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더 맛이 좋아서요.
 
쿠키의 맛이 머리까지 차분하게 식혀주는 것 같습니다.
 
노인:괜찮아. 그건 이미 준 거니까.
문제는 자네지. 돌아갈 길이 막막하잖아.
 
라티나:...
쿠키 구울 알바생 하나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덤덤한 농담조다.)
 
노인:안 팔아. (단호하게 대답한다.)
 
라티나:쳇.
그럼 방법은 하나군요.
장비는 좀 있습니까?
 
노인: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한시름 덜었다는 듯이 작은 서랍에서 작은 목걸이를 꺼내 내민다)
 
목걸이 끝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녹빛 수정이 걸려있습니다.
 
라티나:심상치 않아 보이는 장비군요. (평범한 도구를 쓸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목걸이를 받아들어 가볍게 들어올려보인다.)
사용법은요?
 
노인:그건 하늘이 알려 줄 거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씩 웃는다)
쿠키 하나 더 먹을텐가? 아니면 이제 배는 안 고파?
 
라티나:하늘까지 내달려야겠군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가늘게 뜬다.)
...
하나만 더 먹어도 되겠습니까? (맛있었다.)
 
노인:물론이지. 싸 가는 건 안되지만 양껏 먹어도 돼.
손님이 오는 일이 드무니까, 내 실력이 발전하고 있는 지 영 알 수가 있어야지?
 
라티나:(고개를 까딱이고 하나를 더 집어 와삭와삭 먹는다.)
후기를 남기려면 만든 사람의 성함을 알아야 할 텐데요.
당신을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노인:(흐음, 하고 침음을 내다가) 할머니.
 
라티나:할머니.
(또박또박 발음해본다.)
 
노인:옳지
옳지!
(박수를 탁, 치고는) 다음 번에 왔을 때도 그렇게 부르도록 해. 다음이 없는 게 제일 좋지만.
 
라티나:(덤덤히 따라 박수를 치고는) 의미심장한 이야기 투성이군요.
 
노인:할머니는 좀 미스테리 해야 돼. 그래야 인기가 있거든.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다, 라티나 그레이.
집요한 과학자를 만나거든 안부 전해주게. (가볍게 웃은 후, 손을 뻗어 라티나의 어깨를 살짝 민다.)
 
라티나:... ...이름, (분명 말씀드린 적 없는데. 가벼운 웃음을 멍하니 바라본다.)
 
분명 가볍게 밀었던 것 같은데...
 
라티나의 몸이 뒤로 넘어갑니다.
 
라티나:(...!)
 
마치 중력이 강해진 것처럼.
 
그리고 바닥도 없이...
 
낙하합니다.
 
.
 
.
 
.
 
.
 
눈 앞의 광경이 바뀝니다.
 
한 소년이 작은 나무 의자에 앉은 채, 놀란 눈으로 라티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라티나:(깜빡,깜빡.)
 
소년의 두 눈은 깊은 숲처럼 녹빛으로 빛나며, 부스스한 흑발이 누군가를 연상시킵니다.
 
라티나:(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가?)
 
???:우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티나를 바라보다가) ...괜찮으세요...?
 
라티나는...
 
이상하게도 침대에서 깨어났습니다.
 
라티나:(...데자뷰가.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인다. 눈 앞에 있는 소년은 꼭...)
...
노...아?
 
???:어...제 이름을...아세요?
 
라티나:...정말 노아입니까? (지금 모습은 꼭...)
 
노아:네... ...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박이다가) 혹시 선생님이세요?
학교 운동장에 있는 숲에서 튀어나오더니 갑자기 쓰러지셔서...
급한대로 저희 집으로 모셔왔어요.
 
라티나:... (열심히 머리를 돌린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아마도. 티셔츠 속 노아보다도 작은 노아를 마주하게 된 건 아마도...)
 
큰 노아, 작은 노아...그러니까...
 
더 작은 노아?
 
라티나:...(쪼끄매.)
... ...(어쩐다. 뭔지 몰라도 일단 맞다고 해 볼까.)
...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쓰러진 모양입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빤히 소년을 바라본다.)
 
노아:(어색한 미소를 미소를 지었다가 배가 고프다는 말에, 아, 하고 벌떡 일어난다.)
뭐라도 가져다 드릴게요.
혹시 호밀빵 드세요? 아니면 옥수수는? 치아바타도 있고 밥도 있는데 반찬이 하나도 없어서...고기 스튜랑...
 
라티나:(배가 고프다는 말에 보이는 반응은 어릴 때도 똑같았군.)
...(줄줄이 나열되는 재료에 고개를 기울이다가) 노아는 식사 하셨습니까? 아직이면 같이 먹죠.
 
노아:그럼...제 것도 같이 가지고 올게요! 선생님은 조금 더 누워서 쉬세요. 배고플 때 움직이면 혈당치가 떨어져서 위험하니까요.
 
노아는 금세 방을 호로록 나갑니다.
 
포근한 나무 침대.
 
가벼운 여름 이불...
 
식물학과 천문학 서적을이 쌓인 선반이 많습니다.
 
그리고 바깥과 바로 연결된 채 방 한 면을 전부 채운, 한 뼘 정도 열린 여닫이 문을 통해 정갈한 저택의 뒤뜰이 보입니다.
 
라티나:...(침대 위에서 무릎을 끌어모아 앉아 그 위에 비스듬히 뺨을 얹은 채로 선반과 뒤뜰을 바라본다.)
이야기만 들었지, 이렇게 초대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노아가 말한 그대로네요.
 
라티나:정말 성 같습니다. (작게 혼잣말을 한다.)
 
곧, 노아가 큰 쟁반을 들고 들어옵니다.
 
노아:(약간 위태롭게 쟁반을 들고 오다가, 겨우겨우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책을 싹 팔로 쓸어버리고 쟁반을 내려놓습니다.)
휴.
양이 얼마나 되실 지 몰라서... (냄비 째로 가져옴)
 
라티나:... ... ...
숲에서 만난 곰에게 하는 식사 대접 같습니다. (냄비를 바라본다.)
 
노아:곰... ...
... (잠시 라티나를 바라본다)
...곰보다는...늑대 같아요...
 
라티나:...
크앙. (무뚝뚝하게 중얼거린다.)
 
노아:...와아... (놀라는 척)
 
라티나:...착하다는 말 자주 듣습니까?
 
노아:어...아뇨, 자주는...
선생님들한테는 종종 들어요.
(씩 웃으며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치아바타와, 스튜를 나눠담은 그릇을 내민다)
토마토랑 페페론치노를 넣었어요. 그러면 매콤새콤해서...
 
라티나:(그릇 위에 담긴 먹음직한 음식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여기에 와서도 든든히 챙김받고 있군요...
 
노아:여기에 와서도?
 
라티나:(느릿하게 눈을 깜빡인다. 일단은...)
네. 종종 숲 속에 쓰러져있을 때 다람쥐 몇 마리에게 도토리를 얻어먹곤 했거든요.
 
노아:자주 쓰러지세요!?
숲도 좋아하시고요!?
 
라티나:......................................................
...............그럴 걸요?
 
노아:(와아...하고 입을 벌린다.) 저도 식물을 좋아해요. 그래서 대학은 꼭 그 쪽으로 가려고요.
 
라티나:(치아바타 하나를 집어들다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
아마 잘 될 것 같네요.
 
노아:그래 보여요? (안심한 표정으로 웃더니 치아바타에 스튜를 올려서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빵을 몇 조각 즈음 먹었을까요? 노아는 라티나의 목에 걸린 수정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봅니다.
 
라티나:(우물우물. 음식을 삼키던 중 시선이 닿은 곳을 눈치챈다.)
 
노아:그거...
색이 예쁘네요.
 
라티나:마음에 드십니까?
 
노아:네. 선생님한테 잘 어울려요.
 
라티나:그렇게 말하는 노아에게도 잘 어울립니다.
눈동자 색 같아서요. 숲을 닮은.
 
노아:(칭찬이 어색한 듯 고개를 숙이고 볼을 갉작이다가 아야,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손을 내린다.) 그런 말은 오랜만에 들어요.
그...숲으로 돌아가셨을 때 쓰러지지 않게...많이 드세여ㅛ.
 
라티나:...네. 그런데...
...(빵을 집던 손을 내려두고 손을 뻗어 앳된 턱끝을 잡는다.)
상처가 많지 않습니까?
어디서 온 건가요.
 
노아:(질문에 머쓱하게 볼을 문지르더니) 그냥...넘어졌어요.
이 맘 때 애들은 많이 넘어지니까...
 
라티나:...꼭 이 맘 때 애들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흠...
(요리조리 돌려본다.)
(이쪽저쪽.)
 
노아:아아, (빙글빙글 돌려진다)
 
얼굴이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적절한 판정을 선언하면 더 자세히 볼 수도 있겠어요.
 
라티나:...(눈이 가늘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노아의 입으로 듣고 싶습니다.
정말 넘어져 생긴 것이 맞습니까?
선생님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만. (덤덤히 덧붙인다.)
 
노아:... ...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냥...학교에서 친구들하고 다퉈서요.
심하진 않아요.
 
라티나:...
더 많이 때려줬습니까? (거리의 습관이 배어나온 말투.)
 
노아:네?
(상상도 못해봤다는 얼굴)
 
라티나:다퉜다면서요?
(빤히 본다.)
 
노아:... ... ...
때리지는 않았...는데...
아프잖아요.
 
라티나:................................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작게 숨을 내쉰다.)
손해보고 살 타입이라니까, 정말.
 
노아:소, 손해... ...
 
라티나:네. 손해.
흠...
노아.
 
노아:네...?
 
라티나:(마지막 치아바타를 하나 물고 허공에 주먹을 들어보인다.)
 
노아:... (따라서 주먹 든다)
 
라티나:옳지.(뭉개진 발음)
자. (앞으로 정권찌르기하듯 콱 내민다.)
해보십시오.
 
노아:(콱, 내밀어지는 손을 보고 잠시 움찔 했다가)
(어설프게 주먹을 살짝 앞으로 내민다)
 
라티나:그런 주먹으로는 스튜 맛있게 만들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노아:저는 스튜 맛있게 만드는 게 더 좋은데요?!
(힘차게...내질러본다)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휘적)
 
라티나:........................................(솜사탕 주먹 보다가)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죠.
주먹이 모자라다면 말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도 좋습니다.
(빵 우물우물 삼키고)
이를 테면...
 
노아:이를 테면...? (어느새 정좌하고 집중한 자세로 듣는다)
 
라티나:▒▒▒▒▒▒를 ▒▒▒▒해서 ▒▒▒▒해버리기 전에 꺼져.
...같은 거요.
 
노아:.................................. (입을 떡 벌린다)
처...
처음 듣는 말이에요...
▒▒▒▒▒▒를... ...▒▒▒▒해서...?
 
라티나:네. 보다 세게 발음하면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노아:하지만 인체공학적으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라티나:....되던데요?
 
노아:네에에?!?
 
라티나:농답입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호신용 칼 정도는 품고 있으면 좋잖아요?
뭐...아주아주 오래 노아를 지켜봤다고는 못 하겠지만.
좋은 사람인 만큼 이것저것 걱정되거든요.
 
그 때, 노아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긴 흑발을 늘어트린...노아와 닮았지만, 묘하게 더 신비한 분위기를 내는 사람입니다.
 
양 박사:손님이 깼니?
 
노아:아, 박사님.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돌아본다)
그러고보니까 선생님 성함도... ...
 
라티나:...(가만히 노아를 닮은 그 사람을 바라본 채로) 라티나. 라티나 그레이입니다.
신세를 졌군요.
 
노아:라티나 그레이 선생님이에요.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노아에게 잠시 무언가를 부탁하고는, 노아가 앉았던 의자에 앉습니다.
 
라티나:...
 
그도 라티나의 목에 걸린 수정을 흘금 바라보더니, 미소를 짓습니다.
 
양 박사:선물을 받았군.
 
라티나:네, 이것 말고도요. 먹어 버렸지만.
(길게 늘어트린 흑발을 가만히 바라본다.)
 
양 박사:그게 낙이라고 하니까. (조용히 웃더니 라티나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댄다)
열은 없군, 다행이야.
그래...그럼.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라티나를 관찰하듯 바라본다) 어디에서 왔지?
 
라티나:...(스치고 간 앞머리를 천천히 정리하곤)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더군요.
...
밖으로 나간 아이가 소망해왔던 꿈을 이룬 시간선에서 왔죠.
당신은 노아의 가족이십니까?
 
양 박사:나는 아주 잘 지내지, 보다시피. 전할 길은 없지만 그쪽이 잘 있다는 걸 아니까 됐어.
(으음, 하고 잠시 침음을 낸다.) 보호자라고 하면 더 잘 어울리겠군.
노아에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내가 저 애를 맡기로 했지. 인사가 좀 늦었나? (일어나서 라티나에게 손을 내민다) 노아 양의 숙모, 로이 양이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양 박사라고 부르지.
 
라티나:(그의 보호자. 그 단어에 일어나 내밀어진 손을 긴 고민 없이 맞잡는다.) 제가 아는 양 박사는 둘이 된 셈이네요.
최적의 환경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양 박사:식물학자가 되나? 그럼 내가 잘 하고 있는거네.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지. 평범한 생활은 너무 느리게 느껴질 테니까.
본인이 그걸 원하기도 했고.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어때, 당신이 본 소감은? 잘 자랐나?
 
라티나:반반일까요? 주먹은 좀 모자랐던 것 같지만, 달리기 하나는 일품이었죠.
이상한 사람이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새삼스럽지만 제 말을 다 믿으시는 겁니까?
미래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는 것 치고는 차분하셔서요.
 
양 박사:(첫 문장에 크게 웃는다.) 나도 주먹질은 젬병이야. 눈에 흙 뿌리는 건 자신 있지만, 그런 건 타고나야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당신이 마카다미아 쿠키를 먹었다면 뭐든 믿어.
할 일이 있어서 왔겠지. 그 동안은 여기서 뭘 해도 좋아. 노아에게는 잘 얼버무려줄테니까.
 
마침, 타이밍 좋게 노아가 고개를 쑥 내밉니다.
 
노아:박사님, 불 다 켰어요.
 
라티나:(불?)
 
양 박사:시기가 딱 좋네. (라티나를 향해 고개를 까닥인다) 집 구경 좀 해. 볼 게 꽤 많거든.
 
라티나:... (사실 보고 싶었다.) 사양 않겠습니다.
(방안을 다시금 천천히 둘러본다.)
 
이 방은 손님용으로 쓰는 건지, 개인물품보다는 책이 훨씬 더 많습니다.
 
노아:(라티나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보고 부리나케 다가온다) 혹시...책 좋아하세요?
 
라티나:(빠른 강아지처럼 다가온 노아 깜빡깜빡 본다.)
네.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노아:서재를 보여드리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책은 거기 다 있어서...진짜 책 밖에 없지만...멋지거든요. (말은 소극적으로 해도 기대는 되는지 라티나의 팔을 끌어당긴다)
 
라티나:(말보다도 적극적으로 끌어당기는 손짓에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다. 구할 수 없었던 오래된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 이러할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초대를 받았으니 감사히 가 볼까요?
 
노아와 라티나는 서재로 향합니다.
 
서재는 동그란 방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곳처럼 거대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공기 중에 적당히 떠다니는 먼지와 햇빛이 방 안을 따스하게 밝혀줍니다.
 
라티나:꼭 아늑한 둥지 같습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책도 많고,
 
영어로 되어 있는 책도 있습니다.
 
그 중 한 켠에는 식물학에 대한 책이 가득 꽂혀 있군요.
 
라티나:(영화 속에서 나올 것처럼 웅장한 모습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꿈을 보듬고 키우는 둥지처럼 따뜻한 공간이었다. 이 안에서 소년은 어떤 소망을 읽어내려갔을까?)
 
노아:(라티나의 근처에서 돌아다니다가, 슬쩍 옆에서 고개를 내민다) 저는 주말엔 여기서 책을 자주 읽어요.
낮잠을 자기도 좋고... ...책 먼지를 터는 것도 좋아해서...
 
마치 그 말을 증명하듯이, 식물학에 관련된 책이 꽂힌 서가는 딱 노아의 눈높이에 있습니다.
 
다른 책들보다 손때가 많이 탄 것이 드러나네요.
 
라티나:(누군가의 눈높이에 딱 맞게 꽃혀있는 식물학 서적들은 부드럽게 바래져 있다. 그 흔적을 손으로 훑으며 조곤히 대답한다.)
네. 손은 탄 것 같지만 누군가가 열심히 관리한 것처럼 보이네요.
(비스듬히 돌아보고) 높은 곳에 있는 책은 어떻게 보곤 하셨습니까?
 
노아:아, 높이 있는 것들은. (책장 옆에 달린 레버를 살짝 당기자, 멀리 자리해 있던 사다리가 드르륵, 하고 당겨진다.) 이걸 올라가서 꺼내요.
높은 곳에는 주로 저도 못 읽는 책들이 많아서... ...
다른 나라 언어로 쓰인 논문 같은 거요. 숙모가 젊었을 때 읽던 책들이래요.
 
라티나:(드르륵 당겨진 사다리를 올려다보다가) 노아도 읽지 못하는 책이라...
여기, 한 번 올라가 보시겠습니까?
 
노아:지금요? 무슨 책을 골라야할지... ... (이리저리 사다리를 움직이다가, 제법 익숙하게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다)
 
라티나:네, 딱 거기까지요. (익숙하게 사다리를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멈춰보라는듯 사다리를 손끝으로 톡톡 친다.)
 
노아:여기? (우뚝 멈춰선다)
 
라티나:네, 그 쯤.
(제 머리 위로 손을 올려 키를 가늠하듯 가볍게 흔든다. 훌쩍 자란 그가 만약, 아주 만약에 이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더라면 꼭 이만한 높이였겠지.)
아이들은 금방 큽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을 거예요.
노아는 머지 않아 사다리를 오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훌쩍 자랄 거고,
그 때 즈음이면 저기에 꽂혀있는 책 정돈 어렵지 않게 읽게 되겠죠.
지금 말고 그 때 즈음에, 저 위에 있는 책도 한 권 추천해주십시오.
 
노아:꼭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작게 웃는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도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어른... ...
...-이 되고 싶었거든요.
(몸을 돌려서 사다리에 걸터앉는다.) 꼭 그럴게요. 라티나 선생님은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라티나:(고개를 짧게 끄덕였을까. 사다리에 가볍게 고개를 기댄 채로 비스듬하게 서 있다.) 음, 보통 동화였습니다.
오즈의 마법사. 아십니까?
 
노아:오즈의 마법사...아, 알아요.
도로시가 폭풍을 타고 떨어져서...맞죠?
 
라티나:네. 제일 처음 읽었던 책이었거든요. (토네이도라도 따라하듯 작게 손가락을 돌려보인다.)
 
노아:양철나무꾼하고, 겁쟁이 사자하고, 허수아비를 만나서 서쪽마녀를 찾아가고요.
... (고개를 갸우뚱한다) 서쪽마녀가 어떻게 됐더라. 마지막엔 다들 행복했다는 것만 기억나요.
 
라티나:흠. 서쪽마녀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 위해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상황에 비유한다면...
에메랄드 시티는 멀리 있는 것 같지 않지만요. (나지막하게 말하며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본다.)
 
노아:(에메랄드 시티, 나직하게 속삭이면 눈이 반짝인다.) 선생님도 선생님만의 에메랄드 시티를 찾으셨어요?
 
라티나:글쎄요? 마지막 장을 미리 읽으면 재미 없죠.
노아는요?
 
노아:그 마지막 장을 제가 볼 수 있을까요? (눈썹을 축 내린다)
 
라티나:(그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발을 뻗어 사다리의 아랫칸에 걸터앉는다.)
누군가의 도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지 못 해서요?
 
노아:(앉은 상태로 납작하게 상체를 숙이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꼴이 된다.) 그 때까지 제가 선생님을 볼 수 있을 지 모르니까요.
물론 멋진 어른이 된다면 더 좋겠지만... ...
사실은 멋진 어른까지는 안 돼도 괜찮아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으면.
 
라티나:(무릎 사이로 사라진 녹빛을 찾아 노크하듯 무릎 언저리를 톡톡 두드린다.)
 
노아:(고개를 쏙 든다)
 
라티나:(축 처진 눈썹 끝을 꾹 누른다.)
 
노아:(끔벅...끔벅...)
 
라티나:자신이 없으십니까?
 
노아:...네, 솔직하게는요.
멋진 어른들은 다들 도시로 나가서 사람들하고 섞여 살잖아요.
저는 도시에 익숙하지 않아서...좀 무섭기도 하고요.
선생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거에요.
선생님들한테 하는 상담은 다들 비밀을 지켜 주신대서.
 
라티나:말할 것도 없죠. (입모양으로만 벙긋댄다.)
...
도시로 나가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이 자신이 없다라...
(정말로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턱끝을 매만지며 제법 진지하게 눈을 깜빡인다.)
 
노아:... (침을 꿀꺽 삼킨다.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라티나:(눈까지 감고 중대한 표정으로 생각 중이다.)
 
노아:역시 저는 허벌어른이 되는 건가요!?
 
라티나:어디서 그런 말을 배우신 겁니까
...양 박사님?
 
노아:박사님이 가끔.
 
라티나:...(언어 기선제압은 역시 그쪽에게 맡기는게...)
...뭐.
(손끝으로 판결을 내리듯 사다리의 바닥을 통통 두드린다.)
판결을 내려드리죠.
 
노아:...저 각오 됐어요.
 
라티나:...
도시로 나가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을 두려워 하는 노아 양.
동그란 서재 안에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책 먼지를 터는 것도 좋아하는 노아 양.
누군가의 도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는 노아 양.
(판결을 내리던 손끝이 다가간다.)
판결.
 
라티나:지극히 정상.
(그대로 고민을 차곡차곡 쌓아둔 머리를 쓰다듬는다.)
 
노아:와아,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친다)
선생님은...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저를 꿰뚫어 보시는 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기뻐요.
 
라티나:(말없이 머리를 더 북슬북슬 쓰다듬는다.)
얼굴에 써 있는 편이시거든요. 노아는.
 
노아:아아, 머리... ... (그렇지만 딱히 손을 피하지는 않고) 그런 말은 많이 들어요. 표정에 잘 드러난다고... ...
(어색하게 먼지가 떠다니는 허공과 책장을 돌아봤다가) 밖으로도 나가 보실래요? 이 집은 뒤뜰도 있거든요.
박사님이 직접 설계한 집인데, 숲에 둘러싸인 느낌이 나게 지으셨어요.
 
라티나:(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손길이 어색한 듯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 더 쓰다듬다가 손을 거둔다.)
성을 떠올릴 만한 큰 문이 있던가요.
 
노아:(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 맞아요. 오면서 보셨나요...?
(사다리를 겅중겅중 내려와서 서재 바깥으로 향한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여기는 1층하고 2층 그리고 옥상이 있는데, 1층에는 주방이랑 거실이랑 손님 방...그리고 박사님 방이랑 연구실이 넓게 붙어있고요. 2층에는 제 방하고 서재, 베란다가 있어요.
옥상에는 작은 천문대가 있어서 밤에 별도 볼 수 있고요.
박사님은 유명한 천문학자시거든요.
 
라티나:(재잘대며 이어지는 말을 가만히 경청한다. 서재 바깥으로 나란히 걷는 걸음 사이로 섞이는 목소리에 간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노아도 자연히 옥상에서 자주 별을 보셨겠군요.
탐험할 곳이 꽤 많네요. (성을 탐색하는 용사의 무리라도 된 것처럼 눈가 위로 손그늘을 만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노아:멀리서 보면 덩굴에 뒤덮힌 것 같이 생겼어요. 산이 아니고 숲인데..산이랑 숲은 완전히 다른 건데... (중얼중얼)
 
뒤뜰은 라티나가 본 여닫이 문 너머에 있습니다.
 
문이 꽤 무거웠지만, 힘을 주면 무리 없이 열리네요.
 
라티나:흠. 누가 계속해서 산이라고 하면 아까 가르쳐드린 말이라도 해보십시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뒤뜰을 바라본다.)
 
뒤뜰의 너머에는 놀랍게도 인공호수가 자리해 있습니다.
 
부서진 보석의 파편처럼 노을의 빛을 잔잔하게 반사하고 있군요.
 
작은 원통형 물레방아가 일정한 리듬에 맞춰 또각이는 소리를 냅니다.
 
라티나도 본 적이 많지 않은 희귀한 식물들도 자리해 있군요.
 
어두운 나뭇빛의 집과 짙은 초록색이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노아:수영을 할 정도의 깊이는 아니지만, 발을 담그고 구경하기에는 좋아요.
그리고 역시 남의 오장육부를 제 마음대로 뽑아버리는 건 조금...
 
라티나:뭐 어떻습니까? 제 것도 노아 것도 아닌데요. (그림같은 풍경 앞에서 덤덤히 말한다.)
누가 그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네요.
 
노아:선생님은...표현이 낭만적이시네요.
시인 같아요. 문학 선생님이세요?
 
라티나:...(뒷목을 주무른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음...그건 아니지만...(고른다면 주먹 선생님이 아닌가?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주먹 선생님이 맞죠...
 
아니면 전기총 선생님이라거나...
 
비속어 선생님...
 
라티나:(어감이 폭력적이라는 자각은 있는지 뒷짐지고 호수를 바라본다...)
... (몸을 숙여 호수 안을 들여다본다.)
 
반짝이는 호수에 라티나의 모습이 비칩니다.
 
외모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외모
기준치: 65/32/13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해보자고
 
아...
 
호수는 라티나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수질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노아:(옆에서 같이 수면을 들여다본다) 여기 물고기는 안 살아요.
인공 호수기도 하고, 저도 박사님도 물고기 키우는 법은 잘 몰라서...
 
라티나:그렇군요. 물고기가 없어 반짝이는 수면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발 한 번 본다.)
(호수 한 번 본다.)
...
...
 
노아:... ...
양말 벗고 들어가셔도 돼요.
깊지 않거든요.
 
라티나:...사실 해 보고 싶었습니다.
노아는 같이 안 하십니까?
 
노아:(잠깐 망설이다가) 선생님이 들어가시면 같이 들어갈게요.
 
라티나:좋습니다. (스니커즈를 벗어두고 발목에 검은 강아지 자수가 그려진 양말을 벗는다.)
(조금..기대중)
 
강아지 자수
 
강아지는 깔끔하게 풀밭에 누웠습니다.
 
라티나:(기다리고 있으렴)
 
노아:(주섬주섬 단화와 양말을 잘 접어서 호숫가에 두고, 바지를 돌돌 말아 걷는다)
 
라티나가 호수에 발을 살짝 담궈보면...
 
차갑다!
 
차갑지만 딱이에요!
 
라티나:...오...
 
더운 열대야를 나게 해 줄 하나의 방책이 될 것만 같네요.
 
라티나:(살짝 담궜던 발을 슥 밀어넣고 호숫가에 적당히 걸터앉는다.)
시원한데요.
 
노아:(퐁당. 마찬가지로 발을 담궜다가 호숫가에 얌전히 앉는다. 발을 휘적이며) 그쵸. 겨울에는 얼어버리는데, 봄이랑 여름에는 놀기 좋아요.
가끔 박사님이 장난감 오리를 띄워두기도 하시거든요.
 
라티나:꽤 아기자기한 풍경이겠습니다. (상상하듯 반짝이는 수면 위에 투명한 오리를 띄워본다.)
겨울은 아니니...
 
노아:진짜 오리가 물어가기 전까지는 아름다웠죠.
 
라티나:...
.................행복하길 바라야겠군요..........
흠. (손을 등 뒤로 짚고 느슨하게 앉아 발을 휘적이다가 노아 쪽을 슥 본다.)
 
노아:(발로 퐁당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시선에 라티나를 돌아본다.)
흠,은 뭔가 할 말이 있을 때 쓰는 말이죠?
 
라티나:똑똑하군요.
이를테면...
(허리를 당겨 반듯하게 앉더니, 호수로 퐁당 손을 넣어 물 반 줌을 노아에게 튀긴다.)
발만 넣기에는 덥지 않냐거나?
 
노아:으악, (갑자기 튀겨진 물에 펄쩍 뛰었다가 그대로 벌떡 일어난다) 카운트 안 하고 시작하는 건 반칙이에요!
(그러더니 질세라 팔을 걷고 손을 휘저어 물을 튀긴다)
 
라티나는...
 
물을 피했을까요?
 
민첩 대항 판정 합니다
 
노아: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라티나: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아 ㅋㅋ
 
다시 한 번!
 
노아: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라티나: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촤악
 
라티나:(촤아)
 
노아가 튀긴 물이 라티나의 얼굴에 명중합니다.
 
라티나:.............................(흠뻑 젖은 앞머리부터 비장하게 쓸어넘긴다.)
주먹은 약하지만 물싸움은 꽤 하시는군요? (팔을 걷는다.)
 
노아:저 손으로 물총 쏘는 것도 할 수 있어요. (양 주먹을 꽉 쥔다)
 
라티나:.........................호?
오랜만에 적수를 만난 것 같군요. (양 주먹도 꽉 쥔다.)
 
라티나도 한 번 거하게 물을 튀겨 볼까요?
 
먼저 흠뻑 젖는 사람이 지는 겁니다.
 
라티나:(주먹 꽈악.)
(바다에라도 온 사람처럼 호수 속으로 손을 넣어 물총알을 장전한다.)
 
얼마나 재빠르게 물을 튀겼을까?!
 
민첩 판정합니다!
 
라티나: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어라
 
나, 라티나 그레이...
 
한 때 코스모스 시티의 쌍물총이라고 불렸던 자...
 
과거의 영광을 되찾습니다.
 
난데없이 물을 뒤집어 쓴 노아가 눈을 땡그랗게 뜬 채 푹 젖었습니다...
 
노아:... ... ... ... (땡글)
야...양동이로 부은 것 같아요...
에잇. (손으로 물을 떠서 주르륵 붓는다)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한 번 피해볼까요!?
 
라티나: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라티나도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피하기는 쉽지 않죠!
 
주르륵...
 
라티나도 물을 뒤집어 쓴 꼴이 되었습니다.
 
노아:이제 무승부죠!
 
라티나:...(꿈뻑.)
스승에게 도달한 제자라니.
(머리를 탈탈 턴다.) 뭐.
더위라곤 잊어버렸네요, 덕분에.
 
축축하게 젖은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면...
 
거실에서 책을 읽던 양 박사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듭니다.
 
양 박사:이야.
생쥐가 두 마리나 들어왔잖아.
 
라티나:(물에 빠진 생쥐 1.)
 
노아:(물에 빠진 생쥐 2.)
 
양 박사:갉아먹을 게 없는데 이상하다. (큭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커다란 수건 두 개를 가져다가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얹어준다.)
생쥐들, 털 정리 하고 와.
꿀 탄 우유? 아니면 홍차?
 
라티나:(커다란 수건 머리 위에 얹은 채로 노아쥐 머리 탈탈 털어주는 중.)
노아는 무엇이 좋으십니까?
 
노아:저는 둘 다 좋은데... ...밀크티요!
 
라티나:저도 같은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제 머리를 탈탈 턴다.) 이젠 머리가 길지 않으니 금방 마르겠습니다.
 
노아:전에는 머리가 길었어요? 그것도 잘 어울렸을 것 같아요.
 
라티나:(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존경하는 사람을 따라 잘라봤습니다. 뭐...
(장난스레 없는 머리카락을 넘기는 시늉을 한다.) 완벽했죠.
 
노아:완벽했군요...!
나중에 머리 다시 기르면 그것도 보여주세요.
 
곧 노아가 먼저 욕실로 들어가자, 양 박사가 라티나에게 손짓합니다.
 
양 박사:생쥐대장은 이쪽으로.
 
라티나:네. (장난스레 호두까기 인형처럼 걷는다.)
 
그러더니, 양 박사는 읽던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여줍니다.
 
글씨는 라티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라 읽을 수 없었지만...
 
그곳에 있는 그림만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라티나가 걸고 있는 목걸이와 똑같이 생겼거든요.
 
라티나:...이건...
 
양 박사:처음에 당신이 왔을 땐 걱정을 많이 했어.
그런데... ...이게 모두 순환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 우주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것처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어.
일렬로 서는 별이 당신에게 힘을 줄 테니까... ...혹시 괴짜 할머니가 그 말도 해 줬나?
하늘이 답을 알려줄 거라고.
 
라티나:(일렬로 서는 별. 천문학자다운 근사한 비유가 아닌가. 이것이 순환하는 운명이라면 그 곳에서 길을 찾아 돌아가야 하는 패스파인더가 된 셈일까? 단단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경청한다.)
...네. 그렇게 말하더군요.
 
양 박사:그렇다면 더더욱 걱정 없어.
물놀이를 했으니 피곤할 것 같은데. 오늘은 씻고, 차 마시고 눈 좀 붙여놔. 내일은 별 보기 좋은 날이거든.
 
라티나:...
제게 힘을 줄 '일렬로 서는 별' 중에는 당신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답을 알려줄 내일의 하늘을요.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이 라티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뽀송하게 씻어 사람 꼴을 갖추고, 손님 방에 누우면...
 
노아가 쟁반을 올려놓으며 바닥에 마구 밀어놓았던 책들이 흐트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라티나:(뽀송해진채로 노곤하게 침대에 누웠다가, 협탁 아래로 흐트러진 책에 시선이 닿는다.)
정리해둬야겠는데. (훌쩍 몸을 일으켜 흐트러진 책들에게로 고개를 기울인다.)
 
낡은 수첩 한 권과, '마야 문명 속의 천체들' 이라는 책,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리지아'라는 소설이 보이는군요.
 
라티나:(가만히 제목을 훑다가 낡은 수첩 한 권을 집어든다.)
 
수첩은 아무래도 로이 양의 것 같습니다. 정갈하게 관리된 것 같네요.
 
첫 장을 제외하면 모두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적혀있습니다.
 
라티나:(천천히 종이를 넘겨보다가, 다시 맨 앞 장을 들여다본다. 무엇이 적혀 있을까?)
 
'양 박사의 수첩' 핸드아웃을 공개합니다.
 
라티나:(잘 보이지 않는 글자 위를 가만히 더듬으며 읽을 수 있는 부분을 머릿속에 담아둔다.)
달빛에 신화의 힘이 스며든다... ...
(조용히 몇 구절을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정말 물놀이를 했더니 몸이 지친 걸까요.
 
수첩을 전부 읽고 나면 눈꺼풀이 좀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른 책을 더 읽으려면 정신력으로 버텨야겠어요.
 
라티나:(글자를 더듬던 눈이 천천히 깜빡여진다.)
하암... ...
다른 책도 궁금한데...(정신에 힘을 빡! 줘본다.)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에 힘을 빡! 주고...
 
한 권 정도는!
 
뭘 읽어볼까요?
 
라티나:(잠이 쏟아지는 눈을 비비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리지아'라는 책을 집어든다.)
 
라티나는 리지아를 집어듭니다.
 
어라...이거...불량인가?
 
책에는 텅 빈 페이지들만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인쇄가 된 페이지를 딱 한 장 발견합니다.
 
핸드아웃 '리지아'를 공개합니다.
 
라티나:(텅 빈 페이지들만 반복되는 책을 어리둥절하게 넘기다가, 눈에 들어온 활자에 뚝 멈춘다.)
...
결국 인간은 그 의지로 살게 될 것이다.
...좋은 구절이네.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의지로 사는 인간.
 
의지로 절망하며 의지로 살아가는 인간.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구절이네요.
 
라티나:하지만 결국 살아가게 되겠지. 지금의 누구나처럼...
(천천히 책을 덮는다.)
 
라티나는 천천히 책을 덮고, 침대에 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봅니다.
 
이상한 일이 휘몰아쳐도 라티나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모두 의지 때문일까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운명이 라티나를 선택한 걸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드는 밤입니다.
 
.
 
.
 
.
 
.
 
깜빡, 깜빡.
 
잠깐 정신이 몽롱한 듯 했다가, 눈 앞이 환해집니다.
 
듣기를 판정합니다.
 
라티나: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서는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가장 유망한 과학자들을..."
 
"...현재 인공 식물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풍경입니다.
 
그리고 시선 한 구석에 보인 스크린에, 여러 사람의 얼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갑니다.
 
...누군가가 보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익숙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라티나를 향해 걸어오는 또 다른 자신, 그리고 노아 양.
 
라티나:... ...
 
"다른 세상 같군요."
 
"병실 안에서 보는 거랑은 많이 다르죠."
 
...라티나는 이 풍경을 알고 있습니다...
 
라티나:... (모를 리가 없어.)
 
노아가 라티나에게 방독면을 씌워주려는 찰나,
 
또 다른 라티나는 재가 되어 사라집니다.
 
하늘에서 나풀거리는 회색 재가 휘날리기 시작합니다.
 
건물들이 느리게 재가 되며 무너지고...
 
라티나의 발목을 덮을 정도로 쌓입니다.
 
홀로 남은 노아가 고개를 돌립니다.
 
"당신"을 향해서.
 
두 눈이 맞닿습니다.
 
바닷물과 같은 파란 빛과, 깊은 숲을 떠다 놓은 듯한 초록빛 눈.
 
그가 천천히 입을 뗍니다.
 
노아:라티나, 돌아와요.
 
라티나:(휘날리고 쌓이는 회색 재 속에서 아주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 당신은 이내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뜨자, 식은땀으로 젖은 뒷목이 느껴집니다.
 
어쩐지 더운 기운이 든 바람이 여닫이 문 너머로 불고 있습니다.
 
상쾌하지만 빛이 눈부시지는 않은 것이...제법 늦게 일어난 모양이에요.
 
라티나:(반짝, 숨을 들이키며 눈을 뜬다.) 하아...
 
숲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가 정적을 채우고, 여름 바람이 집 안을 감돕니다.
 
라티나:(제법 여문 것 같은 낮의 빛과, 매미 소리...꿈의 목소리. ) ...얼마나 잠든 거지?
(부스스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노아:(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다가 표정이 핀다) 일어나셨네요!
너무 오래 주무셔서...죽은 줄 알았어요.
 
라티나:(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물총싸움의 2차전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죽으면 안 되죠.
 
노아:다행이에요...앗, 들어가도 되나요?
(문 앞에 발 댄 채로 멈춘다)
 
라티나:(기다려.를 들은 강아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기다리라고 하면 계속 기다리실 겁니까?
 
노아:어... ... (중심을 좀 잃기 시작해서 문고리를 잡고 버틴다) 앞으로 한 2분 정도...
 
라티나:(1분 40초 정도 두고 본다.)
계속 기다리실 겁니까?
 
노아:... ... ... ... ... (잠자코 기다리다가)
쥐 났는데 넘어져도 되나요?
 
라티나:(조금 웃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뜬다.) 들어오세요. 착한 노아.
이미 상처가 많으니 넘어지진 말고요?
 
노아:감사합니다... (후들거리면서 겨우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어제 집 구경... ...
방이 어질러져 있어서 제 방은 못 보여드렸는데, 음...오늘 아침에 치웠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되시면... (조심스럽게 문간을 가리킨다)
 
라티나:(어느새 침대 옆의 의자를 하나 끌어 앉힌 채로 가볍게 허벅지를 두드려주며 이어지는 말을 경청하고 있다.)
초대입니까?
 
노아:넵, 초대에요.
...치우긴 치웠는데 아직 좀 어질러져 있을 수도 있어요.
제가 깔끔하게...정리정돈을 잘 못해서...
 
라티나:(허벅지를 두드려주던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킨다.) 괜찮습니다.
(앉은 노아의 뒤를 눈짓한다. 정확히는...) 여기서 노아의 방까지...
(그가 온 경로에 줄줄이 늘어서 빵조각처럼 떨어져있는 작은 물건 몇 개를 바라보며.) 헨젤이 흘린 것 같은 물건부터 정리하기 시작하면 되겠네요.
같이요.
 
노아:(라티나의 시선을 따라 제 등 뒤를 스르륵...바라보다가) ...어!?
어, 엇. 어라. 분명 지퍼백에...어라. (일단 의자 근처에 떨어진 씨앗부터 주섬주섬 주워담는다.)
...제가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흘리고 다니진 않는데요...
아무래도 방을 정리하면서 아무렇게나...아니, 일단 급한대로 주머니에...어쨌든...
 
라티나:네에. (따라 허리를 굽혀 동그란 씨앗 하나를 줍는다.)
 
노아:계절이 바뀌면 정원에 새로 옮겨 심을 식물을 고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쭈그려앉은 채로 이동하면서 안경닦이도 줍고, 왠지 모를 티백도 줍고, 단추도 줍는다.)
 
라티나:예고편을 주섬주섬 남겨 두셨네요. (마찬가지로 허리를 굽혀 단추 두어 개와 연필 하나도 줍는다.)
식물 후보 목록은 어떻습니까? (걸음을 옮기며 묻는다.)
 
노아:겨울을 날 수 있는 식물들이요. 동백도 있고...
정원에 심는 건 어렵지만 오렌지 레몬이나 오렌지 자스민, 거실에는 마지나타 화분을 둘 거고요...
호수 옆에는 진백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요. (겨우 물건들을 다 줍고 계단을 오른다)
 
라티나:(아끼는 것을 말하며 보다 막힘없이 흘러가는 말을 배경 삼아 뒷짐을 지고 걷는다. 짧게 눈을 감고 그 풍경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계단을 오르는 것을 올려다보며 계단 위에 한 걸음을 딛는다.) 방에 누군가를 초대해본 적, 많으십니까?
 
노아:... (그 말에 고개를 한 번 갸우뚱 했다가) 아뇨, 박사님 말고는 없어요.
이 집에 오는 손님이 많지 않거든요. 가끔씩 박사님의 조언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손님방을 마련하긴 했지만,
그래도 항상 관리는 깨끗하게 해요!
 
라티나:(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영광스럽게도 첫 손님인 셈이군요?
그렇다면 초대해주신 선물을 하나 할까요.
 
노아:선물이요? 어떤 건데요?
 
라티나:(한 계단을 더 올라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잠시 눈을 감아보시겠습니까?
 
노아:(제법 기대하는 눈으로 눈을 딱 감고 선다)
...계단에서 미는 건 아니죠...?
 
라티나:... ...그런 상상을 하도록 만든 동급생은 어떤 녀석이죠? (조금 서늘하게 묻는다.)
(뚜둑)
 
노아:앗, 그런 짓을 당했다는 게 아니고요.
진짜아무도안그랬어요!사람을죽이는건안돼요!
 
라티나:아직 안 죽였습니다
흠.(헛기침을 두어 번 한다.)
 
노아:(꿀꺽...)
 
라티나:(조금 바스락대는 소리가 이어졌을까.) 눈 떠보십시오. (눈을 뜬 시야는 온통 초록빛일 것이다. 얼굴 바로 앞에 댄 포플러 나뭇잎을 살짝 흔든다.)
어제 뒤뜰에서 주워둔 겁니다.
누군가의 눈 색과 닮아서요.
 
노아:(눈을 반짝 떴다가, 온 눈 앞에 가득한 이파리를 살피듯 눈이 좌우로 이리저리 굴러간다. 포플러 잎사귀가 얼굴을 간질이고서야 파안하며 양 손으로 나뭇잎을 받아든다) 포플러 나무 이파리군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식물이에요. 포플러는 생장이 굉장히 빨라서 비전문가가 키우기에도 적절하고, 형질전환에 최적화 되어 있어서 신 교배종을 만들 때 그 뿌리가 되는 일이 많은... (중얼중얼)
고맙습니다. 멋진 식물을 고르셨네요...라티나 선생님은 센스가 있으신 것 같아요. (문득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 민망했는지 수첩 사이에 포플러 이파리를 끼워넣고 손에 쥔다.)
 
라티나:선물은 받는 이가 가치를 알아주는 만큼 빛나는 법이죠. (활짝 웃으며 재잘재잘 흐르는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편안히 눈을 깜빡인다.)
선물이 마음에 드셨다면 더욱 기쁘게 방문할 수 있겠습니다. (수첩 사이에 들어가지 않을 눈 앞의 포플러 한 쌍을 보며 고개를 까딱인다.)
 
노아:식물을 좋아하시게 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책갈피로 만들어서 쓸게요.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어보이더니 계단을 척척 앞장서서 걸어간다.)
 
노아는 방문 앞에 도착해서도 조금 망설이다가, 너저분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문을 엽니다.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녹빛.
 
이건...마치 식물의 요람 같군요.
 
벽을 타고 자란, 깔끔하게 다듬어진 담쟁이.
 
창가에 일렬로 세워진 난색 식물들의 화분,
 
책상 옆의 커다란 난초.
 
형형색색의 꽃들과 식충식물들, 책상 위에 놓인 각종 씨앗...
 
이런 방은 생전 본 적이 없습니다.
 
노아:(방문 옆으로 살짝 비켜서서 라티나의 반응을 관찰하듯 시선을 흘끔거린다)
 
라티나:(이 풍경 앞에서 무감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순간만큼은 자신 또한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으니까. 눈에 띄는 커다란 반응이 아니더라도.) ...여기군요. 노아의 또 다른 둥지. (바깥의 어느 누군가도 보지 못한 성벽 안쪽의 녹빛 보금자리. 바다빛 눈동자에 거대한 녹빛 감탄이 섞인다.) ...
이런 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놀랍네요. 직접 꾸미신 겁니까?
 
노아:...이상하진...않나요?
아, 네.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들을 골라서...담쟁이는 방을 증축할 때 벽에 있던 것들을 옮겨 타게 했어요. 벽이랑 바닥 사이에 인공재배시설을 설치해서...
가끔씩 바닥을 뜯고 정비를 하고 있어요. (손님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안심한다.)
 
라티나:(한 걸음 다가가 벽을 타고 자란 담쟁이를 천천히 어루만진다.) 이상하다기보단, 누군가의 이상(理想)이라고 느껴지는데요. (어쩌면 그는 소년이었을 적 자신이 가진 꿈의 축소판을 미리 이뤄뒀을지도 모르겠다. 자란 그와 함께 서있었던 거대한 정글을 옮겨놓은 듯한 풍경을 보며 짧은 감상에 잠긴다.)
 
노아:식물들 사이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자고 일어나면 숲 속에 있는 것 같아서...나중엔 집 전체를 이렇게 꾸며보고 싶어요.
(잠시 잊었다는 듯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책상 옆에 있는 꽃들을 가리킨다)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하나 가지고 가셔도 돼요. 선물로 드릴게요.
 
라티나:...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네요. (창가의 화분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짚어 바라본다. 어느 것 하나도 싱그럽지 않은 것이 없다.)
...저 꽃 말입니까? 아끼는 것 아니신가요.
 
노아:저는 또 꽃을 피우면 되니까요.
식물은 한 번 피고나면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걸 가져가주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셈이니까...
 
라티나:...한 수 배웠군요.
그렇다면...
어떤 꽃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까요. (책상 옆에 놓인 형형색색의 꽃들 앞에 선다.)
좋은 꽃말을 가진 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천해주시겠습니까?
 
노아:으음, 꽃말 말이죠. 그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듯이 꽃들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그럼 저는 이걸 드리고 싶어요. (용담꽃 화분을 들어보인다.) 숲에선 난 용담을 조금 옮겨심은 거에요.
용담꽃은 한 꽃대 위에 여러 송이의 꽃이 피거든요. 하지만 너무 무거워지면 스스로 몸을 숙여 시들고 말죠.
그리고 시든 잎사귀 사이에서 다시 새로운 꽃이 돋아나요. 그래서 용담에는 당신이 힘들 때, 나는 사랑한다는 꽃말이 붙었어요.
저는 지금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분명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으실 거에요. 용담처럼요.
푸른색이라 선생님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고...
 
라티나:(화분 안에 소담히 담겨있으나 푸른 색만은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꽃을 받아든다.) ...시들면서도, 생도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 꽃이군요.
(잠시 말을 멈추고 손가락을 들어 꽃잎을 어루만진다. 잎사귀 사이의 초록은 숲 속의 바다처럼 보였다.) 당신이 힘들 때, 나는 사랑한다...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어째 제가 더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농조로 중얼거린다.)
...고맙습니다.
 
노아:...마음에 드세요? 다행이다. (제 볼을 문지르며 푸른 꽃을 바라봤다가, 푸른 눈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 또 보여드릴게 있었는데. 박사님이 별을 보여주라고 하셨거든요.
오늘은 별이 잘 보이는 날이라면서... (그랬다가 덜렁 들린 화분을 보고 급히 다시 손을 내민다) 이건 포장해드릴게요. 역시 그냥 들고가는 건 힘들겠죠?
 
라티나:(고개를 끄덕인다.) 옥상에 작은 천문대가 있다고 하셨죠.
(고개를 기울이며 화분을 다시 쥐어준다.) 포장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노아:들고 가기 편하도록요. 관리방법도 쓰고... (화분을 책상에 올려두고, 작은 메모지를 꺼내더니 그 안에 정갈한 글씨로 관리방법을 쓴다.)
 
라티나:(빤히 구경한다.)
 
노아:흙은 건조해지지 않는 정도로...실내에서 키우면 충분, 10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도록 주의... (중얼거리며 카드를 다 쓰고나면 화분 겉에 테이프로 붙이고, 종이신문지로 화분을 감싸 끝을 묶는다.
음, 봉지도 드릴게요. (책상 밑에 납작하게 들어가 작은 장을 뒤져서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이봉투를 찾아내 화분을 담고 만족스럽게 내민다) 여기요. 이러면 좀 흔들면서 가져가도 괜찮을거에요.
 
라티나:(군더더기 없는 방식에 소리없는 박수를 몇 번 친다. 곧 받아든 종이봉투를 안고 눈을 깜빡이다가) 돌아가면 이 용담에 이름을 붙여줘야겠습니다.
별을 보며 이름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하늘을 볼 수 없도록 막혀있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노아:앗, 반려식물로 삼으시는 건가요? 좋은 이름이 떠오르면 알려주세요.
 
라티나:좋은 말과 함께 선물받았으니까요. (가볍게 봉투 위를 두드린다.)
 
그러더니, 노아는 라티나를 이끌고 저택 2층의 한 구석으로 향합니다.
 
벽과 같은 색으로 솟아나온 작은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정교하게 틈이 맞춰져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립니다.
 
딱 한 사람 정도가 드나들 수 있는 좁은 분이네요. 안쪽에는 위로 향하는 계단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노아:원래는 옥상이 없는 집이었는데, 박사님이 나중에 계단을 만들었어요.
천문대가 있는 집은 두 배로 멋지지 않겠냐면서요.
 
라티나:박사님다우시군요. (오래 보지 못했지만, 그럴 법 했다.)
어딘가의 마법학교에 나올 것 같은 통로네요.
 
노아:아, 무슨 영화인지 알 것 같아요. (작게 웃으며 계단을 앞장서서 올라간다)
 
라티나:(따라 계단을 오르며 농담을 던진다.) 혹 소리를 지르는 식물이 나오던가요.
 
노아:다행히 아직 판타지 속의 맨드라고라는 발견 못했어요.
침묵을 지키는 식물들 뿐이죠.
 
라티나:과묵한 녀석들 뿐이군요.
그렇기에 그 사이에서 편안했던 거겠지만.
 
계단을 오르자,
 
텅 빈 테라스를 닮은 넓은 옥상이 펼쳐집니다.
 
그새 해는 완전히 떨어졌고, 광활한 하늘이 라티나와 노아의 위로 펼쳐져 있습니다.
 
선선한 밤바람이 머리칼을 흔듭니다.
 
옅은 색의 달이 주변을 옅게 비추고...
 
하늘은 도시에선 보기 힘든 별빛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관찰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테라스 한 중앙에는 거대한 천체망원경이 놓여 있습니다.
 
노아:근사하죠? 여긴 박사님이 직접 꾸미셨어요.
(라티나의 소매를 당겨 망원경 앞까지 이끌고 온다)
 
라티나:(요람 위로 덮인 별빛 천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다가, 이끄는 손길에 그제야 망원경 앞에 선다.)
박사님의 겸손이었군요. 작은 천문대가 아닌데요. (가만히 중얼거린다.)
 
노아:박사님은 이것보다 훨씬 큰 천문대도 많이 돌아다니셨나봐요. (망원경 앞의 의자에 앉아 작은 조정기들을 돌리고, 겹겹의 렌즈들을 넣었다 빼며 망원경을 조정하기 시작한다)
저는 망원경 세팅을 하는 게 고작이지만... ...됐다. (의자에서 일어나 라티나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보세요.
 
라티나:역시 제게는 커다란 무대처럼 보입니다. (언어의 마디마다 선선한 밤바람이 섞인다.)
...(곧 내어준 자리에 앉아, 망원경을 보기 전 고개를 돌려 너를 본다.)
읽은 적 없던 책을 펼치기 직전의 느낌입니다.
 
노아:(그 말에 작게 웃더니) 분명 좋아하실거에요.
두껍지만 멋진 책이거든요.
 
라티나:두꺼운 만큼 오래 그 세상에 머무를 수 있겠군요. (밤바람 사이로 편안히 속삭인다.)
그럼...
펼쳐볼까요.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망원경에 얼굴을 가까이 한다. 곧 푸른 눈이 가까워진다.)
 
푸른 눈이 검은 하늘에 가까워집니다.
 
시야가 온통 검게 물드는 듯 했다가, 중앙에서 빛나는 두 별이 보입니다.
 
다른 하나가 조금 더 작은, 두 겹의 식쌍성.
 
푸른 빛과 노란 빛으로 빛나는 두 별은 천천히 껍질을 벗듯 그 빛을 변화시킵니다.
 
노아:(옆에 쪼그려앉아, 별이 아주 자그맣게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곧 색이 변할거에요.
 
푸른 빛은 이내 보랏빛으로 변하고,
 
노란 빛은 이글거리는 태양의 주황빛으로 변합니다.
 
마치 오로라가 그 위를 한 겹 덮은 것처럼...
 
노아:(먼 우주에서부터 울리는 거대한 교향곡 아래, 숨을 죽이고 속삭이듯 말한다.) 예쁘죠.
 
라티나:(빛을 덮은 빛. 검은 하늘 위의 별이 피어나고, 이내 지며 마침내는 열매를 맺는 것을 목격한 듯 싶었다. 그 교향곡 속에 감히 노랫말을 속삭이듯 대답한다.)
...마법처럼요.
 
노아:이 별의 색이 이렇게 변하면, 곧 행성들이 한 줄로 서는 거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해요. 태양처럼 빛나는 건 태양빛을 받아서 그런 건지, 은하수가 반짝이는 빛을 반사해서 보라색처럼 보이기도 하는 건지.
...이름이 뭐랬더라. 조화... ...순서...그런 느낌이었는데. 박사님 말로는 내일쯤이라고 했어요.
 
라티나:노아는 어느 쪽이었으면 합니까?
태양빛과 은하수의 빛 중 하나를 닮을 수 있다면요.
 
노아:식물을 키우는 건 태양빛이지만... (고민을 하는 듯 잠시 말이 없다가)
저는 은하수요. 태양을 닮은 건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요.
 
라티나:(두 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잔잔히 묻는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은하수를 고른 것도...
제가 태양을 닮았다고 말한 것도요.
 
노아:태양은 생명의 근원이니까요. 모두가 열망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뜨거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적절하게 따듯하고, 어떤 때는 모습을 숨길 때도 있고.
지구에서 보는 태양은 흰 빛이라서...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제가 보는 선생님은 따뜻한 사람이거든요.
 
라티나:(천천히 망원경에서 시선을 떼 너를 바라본다.)
 
노아:(제 나이보단 제법 침착한 미소를 올린 채 시선을 마주한다) 그쵸?
 
라티나:...
...말은.
 
노아:그거 칭찬이죠?
 
라티나:조금 더 자라면 알게 되시겠죠.
 
노아:조금 더... ...얼마나요?
선생님만큼?
 
라티나:(눈을 가늘게 뜬다.)
꿈은 크게 꿔야죠.
저보다 더 많이.
 
노아:선생님보다 더 많이... (멀다...하며 작게 탄식한다)
잘 먹고 잘 자야겠네요. (농담처럼 웃다가, 부는 바람에 작게 어깨를 움츠린다) 여름이어도 밤은 쌀쌀하네요. 들어갈까요?
 
라티나:(문득 밤바람 사이의 그 웃음에서 익숙한 누군가를 본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어깨를 푼다.) 그러죠.
 
노아:(망원경의 렌즈를 닫고, 당겼던 조정 장치들을 풀어두며 앞장서 계단으로 향한다.) 별들이 일렬로 서는 것도 관측할 수 있는지 여쭤봐야겠어요.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라티나: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어라, 라티나의 양 손 끝이 짙은 남색으로 보입니다.
 
라티나:...?
 
아니...그냥 남색이 아니라, 꼭 밤하늘에 물 든 것처럼 반투명합니다.
 
반투명한 손 사이로 별을 닮은 반짝임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성을 1 잃습니다.
 
라티나:...(반투명해진 손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곧 그 손을 주머니에 넣어 숨긴다.)
 
마치 지워지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라티나:...
 
두 사람이 옥상에서 내려오면,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입니다.
 
노아:오늘은 날이 추우니까, 손님 방 뒷문도 닫아드릴게요.
 
라티나:네. (가볍게 인사하듯 고개를 까딱인다.)
...
노아.
 
노아:네? (뒷문을 닫다 말고 돌아본다)
 
라티나:(여전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로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즐거웠습니다.
오늘도.
 
노아:(그 말에 새삼스럽다는 듯 웃더니) 저도요.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라티나:...저도 그렇습니다. (먼 훗날까지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노아: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인사를 마치며 뒷문을 닫고, 경쾌하게 손을 흔들며 방을 빠져나간다.)
 
찬 공기가 통하던 방은 금세 조용해집니다.
 
라티나:...
(다시 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 내려다 본다.)
 
역시, 여전히 손 끝은 반투명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라티나:...꼭 지우려는 것 같네.
 
"없던 일이 된다"고 했던 게 이런걸까요?
 
라티나:...
 
여기에서 지워지고 나면 무엇이 남는 것일지...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립니다.
 
양 박사:아직 안 자고 있었네.
하긴, 늦게 일어났으니까 안 피곤하겠다.
 
라티나:...박사님.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양 박사:표정이 안 좋은 걸. 무슨 일이야? (라티나의 안색을 살피더니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침대 맡으로 이끈다.)
 
라티나:(그의 손길을 따라 나란히 침대 맡에 앉는다.) ...
여기로 온 뒤부터 노아와 함께 여러 풍경을 보아왔습니다. 행복했고, 따뜻했고... 그림 같았죠.
하지만... 여기서 제가 할 일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요.
 
양 박사: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놓치고 있을까봐 무서워?
 
라티나:...네. 이게 꼭 그 경고처럼 느껴져서요.
 
양 박사:이거?
 
라티나:(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제 한 손을 내밀어 보여준다.)
 
양 박사:(라티나의 손을 바라보지만,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 눈에는 멀쩡해 보이는걸.
 
라티나:...네?
 
양 박사:(손 끝으로 라티나의 손을 천천히 쓸어보더니) 만져지는 것도 문제 없고... ...
하지만 어떻게 보이는지 짐작은 할 수 있겠다.
(마치 실존을 알려주려는 듯 손 끝을 덮어 쥔다.)
 
라티나:...제게만 이렇게, (반투명한 손 위를 덮는 손길에 천천히 말을 삼킨다.)
... ...
 
양 박사:...당신은 여기 사람이 아니지?
 
라티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방인이죠.
 
양 박사:생각해보자.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구슬 모빌을 떼어 손에 든다.)
이걸 운명이라고 쳐. 이 구슬들은 인간들이고, 이 실은 관계와 시간이겠지.
(모빌을 끝을 건드리자, 천천히 구슬들이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아주 작은 파동으로도 운명들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잖아.
그런데 이 모든 운명의 시작이 되는 구슬이 사라진다면, (모빌의 매단 첫 매듭을 푼다. 흔들리던 모빌들이 바닥을 쏟아지며 요란한 구슬소리를 낸다.)
이 운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걸까?
네가 운명을 거슬렀기 때문에, 이 세계가 모빌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기 위해...라티나 그레이라는 구슬을 떼어버리고 있는 걸까?
 
양 박사:(다시 라티나에게 다가와, 빼냈던 구슬 하나를 내민다.)
 
라티나:... (반투명해진 손으로 그 구슬 하나를 받아든다.)
 
양 박사:(침대맡에 앉아 구슬을 바라보다가)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 라티나 그레이.
솔직히 처음에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았었지만...
저 애는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았거든.
선물도 가지고 있고. (라티나의 목에 걸린 수정을 건드린다.)
이제는 정말 고마운 손님이라고 생각해.
 
라티나:...(구슬은 작고 연약하다. 매단 매듭을 푸는 것만으로 곤두박질칠 만큼이나. 그러나 구슬은 연약하나 깨지지 않았고, 이렇게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의지로 살게 된다고.)
...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이방인에게 쏟아지기에는, 둘과의 만남은 지나치게 따뜻하고...)
...생쥐 대장으로써 감사드리죠. (또 사랑스럽다.)
내일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조화파수렴이라는 것.
 
양 박사:이거 웃긴 찍찍이들이야, 정말. (기분좋게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가)
그래, 내일이야. 그 수정이 흩뿌려진 힘을 모으는데에 도움을 줄 거고... ...
내일 일어나자마자 나를 찾아와줘. 줄 게 있는데, 아직 다 못찾았거든. 방이 적당히 지저분해야 말이지...
 
라티나:(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장난스레 눈을 가늘게 뜬다.) 누군가와 닮으셨습니다.
 
양 박사:오, 그래? 그거 좋은 의미인가?
음...아니, 좋은 의미가 아닌 것 같은데. 확실해.
 
라티나:해석하기 나름이겠죠? (어깨를 으쓱인다.)
고마웠습니다. 이런 말은 조금 이를까요?
 
양 박사:능청스럽긴.
지금은 더 어울리는 인사가 있잖아, (침대에서 가볍게 일어난다) 잘 자.
 
라티나:... 능청스러운 게 어느 쪽입니까?
...
안녕히 주무십시오.
 
양 박사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섭니다.
 
새벽을 닮은 귀뚜라미 소리가 방에 울리네요.
 
라티나:...
 
조금은 초조한 마음이 가셨나요?
 
라티나:(한결 편안하게 눈을 깜빡이며, 손 안의 구슬을 고쳐쥔다.)
 
손에 들어온 구슬의 양감이 나쁘지 않습니다.
 
천천히 눈을 감으면, 라티나는 편안한 잠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라티나:(침대에 누워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점점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
 
눈을 뜨자, 식물질이 무성하게 내려온 정글입니다.
 
거대한 나무들의 미로처럼 보이는 풍경.
 
잎사귀들 사이로 초록빛 햇빛이 들어와 라티나를 비춥니다.
 
익숙한 곳, 익숙하게 발에 닿는 흙, 익숙한 빛... ...
 
라티나:...여긴.
 
이 정글에는 언제나 싱그러운 소리가 가득 차 있고, 그 어떤 생명체도... ...
 
라티나:(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아니, 오늘은 아니군요.
 
저 멀리 누군가가 서 있습니다.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지만, 흰 가운이 눈에 띕니다.
 
라티나:... ...
(저 멀리 서 있는 누군가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걷던 걸음은 곧 빨라져, 뛰기 시작한다.)
 
라티나는 점점 빠르게 그곳을 향해 다가갑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아무리 달려도, 도저히 거리가 좁혀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풀과 나무들이 점점 빽빽하게 자라나, 라티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팔로 헤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정글.
 
한 치 앞마저 굵은 풀과 나무들이 걸음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라티나:(점점 빽빽하게 자라는 나무들을 팔로 어떻게든 헤치려고 해 본다. 한치 앞까지 막힌 녹음 사이로 외친다.)
노아!
 
그러자, 익숙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물은 금세 불어나 라티나의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덮고, 가슴께까지 불어나더니, 머리 위까지 차오릅니다.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시들어 재로 변해 물에 섞여듭니다.
 
라티나:(막을 새도 없이 차오르는 물은 익숙하다. 나는 이 흐름을 알고 있어!)
 
완전히 물에 잠기고 나면... ...
 
... ...깨어나지 않습니다.
 
라티나:(이제 곧, 잠에서 깨고...)
 
밝은 햇빛이 라티나의 몸을 비춥니다.
 
라티나:(...깨고...?)
 
물은 당신을 아프게 하지도 않고, 숨을 틀어막지도 않습니다.
 
라티나:(머리 위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본능적으로 발버둥치던 몸짓이 서서히 멈춘다.)
(아프지 않아.)
 
물 속에서 느긋하게 흔들리는 머리칼이 눈 앞을 가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라티나:(숨이 막히지도...않아.)
 
누군가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라티나:(눈을 크게 뜬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뒤를 돌아보면, 노아의 두 눈과 시선이 맞닿습니다.
 
그가 입을 엽니다.
 
입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방울이 위로 올라갑니다.
 
노아?:...시간이 없어요.
 
라티나:... ...
제가,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떻게든 입을 열어 언어를 만든다.)
 
상대방이 답을 하려는 순간, 물이 휘몰아칩니다. 물 아래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감쌉니다.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라티나:...허억. (어떤 답도 듣지 못하고 물 아래로 당겨지는 듯한 감각. 동시에 번쩍 눈을 뜬다.)
...하아....하...
 
눈을 떠 보면, 침대 아래로 꼴사납게 굴러 떨어져 있습니다.
 
라티나:(더듬더듬 뺨과 목을 짚어본다.)
 
전에도 이렇게 깬 적이 있었는데.
 
라티나:...(딱딱한 바닥부터 느낀다.)
 
다행히 라티나는 아직 실존합니다.
 
다만, 뺨을 짚으며 스쳐간 팔이 상당히 투명해져 있군요.
 
라티나:...(제 팔을 보며 짧게 한숨을 쉰다.)
게다가...또야? (침대 위에 한쪽 다리를 걸친 채로 까딱인다.)
 
까딱까딱.
 
작은 강아지 티셔츠는 없지만...
 
양 박사:(문간에 기대서 그 꼴을 본다) 찍찍이도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나?
 
라티나:...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생쥐라고 못할 거 없죠. (바닥에 누운 채 거꾸로 로이를 본다.)
먼저 찾아와주신 겁니까?
줄 게 있다고 하셨죠.
 
양 박사:그래. 왜냐면... (길게 하품을 한다)
밤새 선물을 찾았는데...
당신이 20시간 가까이 잤고... (입을 다물었다가..)
(또 하품을 한다) 내가 무진장 피곤하거든. 그래서 빨리 줄 거 주고 자러 가려고 했지.
 
라티나:(거꾸로 눈을 깜빡이다가 그제야 휙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난다. 부스스한 채로) 제가 곰처럼 자버렸군요.
 
양 박사:그래, 난 지금이 겨울인가 했어. 노아가 당신이 죽었는 지 여러 번 확인도 했고.
(낮은 의자를 질질 끌고 와서 라티나의 앞에 앉는다.)
자... (안경을 벗어 셔츠에 꽂아놓고, 라티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준비 됐나?
 
라티나:...(남은 잠을 깨려는 듯 손을 들어 양 뺨을 찹찹, 친다.)
(반듯하게 눈을 뜨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각오했습니다.
 
양 박사:좋아. 그럼...
#
 
양 박사와 라티나의 시선이 맞닿습니다.
 
라티나의 머리 위에 양 박사의 손이 올라가자,
 
...어쩐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장난스럽게 웃는 양 박사의 두 눈이...어쩐지 빛나는 것 같습니다.
 
라티나:...박사님?
 
그 순간, 라티나의 눈에 창문 밖 정원의 식물들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자라나는 것이 보입니다.
 
익숙한 나무들.
 
그것들은 나무바닥을 뚫고 나와 두 사람을 감쌉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라티나:...!
 
수리하라, 수리하라, 수리하라, 수리하라... ...
 
라티나, 주문 '별의 가호'를 습득합니다.
 
양 박사가 손을 떼자,
 
시야가 한 번 아찔했다가...다시 멀쩡한 방이 보입니다.
 
양 박사:멋지지?
 
라티나:...(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것을 되새기듯 눈을 깜빡인다. 나무바닥을 뚫고 나왔던 풍경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멀쩡한 방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잊지 못할 선물이네요.
 
양 박사:어디에 써야 할 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거야. (그러더니, 미미하게 빛을 내기 시작한 수정을 가리킨다.)
 
라티나:(그의 손길을 따라 흐른 시선이 목에 걸린 수정을 바라본다.)
그리고...하늘이 알려주겠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마칠 무렵,
 
방 밖에서 무언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울립니다.
 
라티나:(문가로 고개를 돌린다.)
 
노아:(뒤집어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안경을 고쳐쓴다) 박사님! 진짜로 별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라티나:(못 말린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민다.) 다칩니다.
 
노아:발을 헛디뎌서요... ... (머쓱하게 라티나의 손을 잡고 엉거주춤 일어난다)
 
양 박사:타이밍 죽이네.
그럼...노아, 네가 손님을 데리고 다녀와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는 알지?
(맡긴다, 하고 한 마디를 덧붙이더니 하품을 크게 하며 방을 나선다. 그리고 완전히 나가기 전 라티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지금이야, 인사 타이밍.
 
라티나:(졸음이 묻은 다정한 얼굴을 향해 가만히 시선을 던진다.)
(미미한 빛을 내기 시작하는 수정을 한 손으로 쥔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양 박사:(눈썹을 내리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물론. 당신이 날 기억하기만 한다면.
 
라티나:(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인사는 조금 달라지는 셈이다.)
고마웠습니다.
또 만나죠.
 
양 박사:그래, 생쥐대장. 나도 재밌었어. (손을 두어번 흔들더니 방을 완전히 빠져나간다)
 
두 사람이 짧은 인사를 마치면, 노아가 라티나를 이끌고 뒷문과 이어진 숲으로 향합니다.
 
노아:빨리 가면 늦지 않게 볼 수 있을 거에요.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니까...
 
라티나:(바쁘게 걸어가는 동그란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우뚝 걸음을 멈춘다.)
그럼, 뛸까요?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소원 하나 들어주죠.
 
노아:네? 저 달리기 잘 못하는데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라티나를 바라봤다가,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앙다물었다가 곧장 자세를 취한다)
이쪽으로 쭉 달리면 학교가 나와요. 그리고 학교를 지나가서 또 숲으로 가야돼요. 그러니까...선생님이 맨 처음 쓰러지셨던 거기요!
 
라티나:(함께 자세를 취한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 것 같습니다. 목적지는 그 장소. 레일은 그렇게 이어지는군요?
달리기, 못 하지 않을 텐데?
 
노아: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아니, 이럴 때가 아니에요! 하나 둘 셋 하면 뛰는거에요!
하나... ...
 
라티나:다 압니다. 둘.
 
노아:...셋!
 
두 사람은 이제 달리기 시작합니다.
 
남색 호수를 지나, 공터가 나오고, 그 뒤로 학교가 보입니다.
 
나른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
 
노아와 라티나가 그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갑니다.
 
라티나:(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사이로 숨을 뱉으며 뛰어간다.)
 
숲에 난 샛길에 들어서서 달리면, 해가 빠른 속도로 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치 때가 되었다는 듯이 수정은 점점 더 화려한 녹색으로 빛나기 시작합니다.
 
샛길조차 사라지고, 얼마나 더 뛰었을까요.
 
나무가 나지 않은,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납니다.
 
라티나가 불시착했던 그곳입니다.
 
누가 먼저 도착했을까요? 민첩 롤!
 
라티나: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노아: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라티나가 잽싸게 먼저 공터를 밟습니다.
 
노아:(헉헉대는 숨을 간신히 고르며 뒤따라 도착한다) 어...어떻게 이렇게 빨리 달리시는 거에요...
 
라티나:(차오른 숨을 갈무리하며 앞머리를 쓸어넘긴다. 몇 번 더 숨을 삼킨 뒤에야 여유롭게 뒤를 돌아본다.)
어른의 힘이라고 해 둘까요?
 
노아:저도 어른이 되면...빠르게 뛸 수 있을까요... (겨우 숨이 진정되면 하늘을 바라본다.)
아, 잘 보인다...
 
라티나:(그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든다.)
 
둥그런 하늘을 바라보자,
 
일곱 개의 밝은 빛이 하늘에 떠 있습니다.
 
노아:... ...저게 전부 행성이에요. 우리가 서 있는 이 지구까지요. (와아, 하고 작은 감탄사를 낸다.)
 
라티나:... ...더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티나의 몸도 조금 더 우주에 녹아들어갑니다.
 
팔부터 어깨까지, 그리고 발부터 무릎까지.
 
라티나:(남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다.)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일곱 개의 빛은 천천히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그것들이 일렬로 내려온 선 순간.
 
행성들이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듯 하더니...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빛이 내려와 라티나의 수정에 때려박힙니다.
 
라티나:(우주로 물들어가는 제 몸에 걸린 수정 위로 박히는 빛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수정이 빛을 흡수하듯 떨리다가, 폭발하듯 초록빛으로 산산조각이 납니다.
 
마력 +50
 
노아:(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눈을 둥그렇게 뜬다)
빛이...
 
라티나:(제 역할을 다 했다는듯 산산조각이 난 수정에, 빈 목걸이를 어루만진다.)
초록빛이군요.
 
라티나가 내린 입방체는 분명 이 근처에 있겠죠.
 
당신을 기다리면서요.
 
노아:... ...네. 꼭...마법 같았어요.
 
라티나:... 노아가 제게 보여준 것만 할까요. (이야기는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선을 맞추고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용담의 이름, 정했습니다.
 
노아:(어쩐지 숨을 죽이고 묻는다) 뭐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라티나:(그 속삭임에 응답하듯 입가 옆에 우주로 물든 한 손을 댄다.)
밀키웨이.
 
노아:밀키웨이. (이름을 다시 한 번 되뇌이며) ...좋은 이름이에요.
 
라티나:누군가를 닮은 만큼이요. (천천히 손을 내린다.)
 
손을 내리면, 저 구석. 공터가 시작하는 곳에 모습이 드러난 입방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라티나:(그 입방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노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노아:...? (라티나와 시선을 마주쳤다가, 마찬가지로 공터 한 구석을 바라본다.)
어, 음... ...
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왠지 선생님이 어디 가실 것 같아요.
 
라티나:...
소원은 이걸로 합시다.
(놀라지 않도록 느리게 손을 뻗어 작은 어깨를 당겨 품에 안는다.)
(그리고 천천히 토닥인다.)
 
노아:(품에 이마를 대고 있다가, 천천히 상황을 파악한다. 팔을 뻗어서 마주 안더니.) ...정말 가시는 거에요?
왠지 놀랍지는 않아요. 조금 아쉽고... ...슬프지만.
꼭 다른 곳에서 온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라티나:(품 안의 몸을 여전히 느릿하게 토닥인다.)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슬퍼해주는 제자가 있으니, 선생님으로써 이보다 더한 보람이 있을까요.
고마웠고, 먼 훗날에도 고마울 겁니다.
무언가를 해낼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당연한 순간들이 어떤 사람 덕분에 뒤바뀌게 되거든요.
달리는 것에 자신이 있고, 어디서든 손해볼 것 같은 사람이죠.
그 사람에게 양상추 샌드위치나 만들어 주러 가볼까 하고요.
언젠가 노아도 놀러 오십시오.
 
노아:...꼭 다시 만나러 갈게요.
(이내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 때도 식물을 좋아하신다면, 선물도 들고 갈게요.
...저도 선생님을 만나서 즐거웠어요. 손님을 안내한 것도 처음이었고, 멋지다고 해 준 사람도 처음이라서... ...
다시 만날 때는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팔을 풀고 한 걸음 물러난다.) ...보고 있어도 돼요? 가는 거...
 
라티나:마지막 장을 볼 만큼 멋진 사람, 말이죠. (한 걸음 물러난 검은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네.
노아가 그게 좋다면요.
 
노아:(고개를 얕게 끄덕인다.) 그럼 여기 있을게요. 배웅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라티나:(안경알 너머 포플러 한 쌍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천천히 입방체를 향해 곧은 걸음으로 걸어간다.)
 
입방체의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라티나는 수리할 방법을 알고 있죠.
 
라티나:(누군가가 쥐어준 선물 덕분에.)
(굳게 닫힌 문을 향해 머릿속의 주문을 외우기 전, 뒤를 돌아 노아 쪽을 본다.)
 
노아:(조금 떨어진 곳에서 뒷짐을 진 채 서 있다가, 라티나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접어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인다.)
 
라티나:...정말이네요. 배웅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는 것.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덤덤한 표정으로 마주 손을 흔든다.)
(곧 천천히 손을 내리고, 짧은 막을 내리듯 입방체 앞에서 눈을 감는다. 이내 머릿속으로 별의 가호를 외운다.)
 
주문을 사용하자, 라티나에게서 흰 빛이 나오더니
 
입방체로 빨려들어갑니다.
 
그와 동시에, 입방체의 문이 열립니다.
 
텅 빈 내부. 언제나 그렇듯 넉넉한 크기입니다.
 
라티나:...
(그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라티나가 입방체에 들어서서 문이 닫히자, 투명하게 변한 벽을 통해 바깥이 보입니다.
 
노아:(입방체에 조심스럽게 다가서서 한 손을 올리고 중얼거린다.) 잘 가요, 라티나.
 
두 사람 사이로 붉은 색의 숫자가 떠오릅니다.
 
라티나:(그 위에 마주 손을 올린다.) 또 만날 겁니다, 노아.
 
315360000
 
숫자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노아는 벽 앞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고,
 
커다란 나무들이 점차 시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숫자가 더욱 빠르게 줄어듭니다.
 
당신에게 익숙한 회색빛 풍경이 보이다가,
 
주변은 순식간에 빌딩 숲으로 변하더니,
 
라티나와 노아가 그 앞을 스쳐지나가고,
 
어느 순간 풀과 나무가 자라난 현재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5
 
4
 
3
 
2
 
!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방체의 문이 열리고, 짧은 안내음이 나옵니다.
 
[2054년 8월 29일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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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시나리오
 
<녹의 요람>
 
END.
NOTICE 210911 BLUE29/녹의 요람_노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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