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아라베스크 타일로 빼곡히 뒤덮힌 궁전과 성전.
형형색색의 튤립 꽃밭이 하나같이 시커먼 재로 변해갑니다.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범선들이 불길에 가라앉습니다.
비명과 광기에 찬 절박한 웃음소리가 사방을 유쾌하게...
그런 아비규환 속, 하렘에서 어떤 이가 도망치고 있습니다.
몸에 걸친 값비싼 장신구가 떨어져 나가고. 베일이 날리는 불씨에 그을립니다.
아, 그 벼락같은 호통을. 혹은 권력을 느꼈던 것인지.
그는 미끄러운 시체를 밟고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사방에 튀는 빗물이 아름다운 옷을 더럽힙니다.
이영:... ... (질퍽이는 땅을 밟고 나아간다. 빼어든 검 끝이 나뒹구는 것들 사이로 스쳐 지난다.)
어딜 가느냐.
서로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손을 잡아 끌어 잠을 깨웁니다.
이영:... (흠칫 떨린 눈가를 문지른다. 끌어당겨진 손을, 그리고 이어져 잡은 손의 주인을 확인한다.)
:그는 인자한 표정으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손을 정돈하는 시종들이 내는 또각거리는 소리.
: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석재 건물의 안.
아...
이곳은 당신의 침실입니다.
이영:(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본다.)
발리데 술탄은 목 끝부터 발 끝까지 검은 드레스와 검은 베일을 입고 있습니다.
이영:... 예. (손등으로 눈가를 가렸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어쩐 일이십니까. 기침하지도 않은 아들의 침소까지.
발리데 술탄:술탄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피곤에 빠져 있을까 싶어.
정무를 막 보는 참이라 지치지요?
이영:(침대에서 일어나자 분주히 다가와 세숫물을 들고 선 시종에게 얼굴을 맡긴다.) 아아... 그러고보니.
무방비한 술탄의 침소이기도 했습니다.
:발리데 술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습니다.
이영:(가만히 서서 시종들의 손에 치장을 맡긴 채로 돌아본다.) 익숙지 않은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검지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이걸 생각하면 3황자를 살려둘 걸 그랬습니다.
:발리데 술탄은 마치 당신의 말을 끊듯이 용건을 이어갑니다. 이미 죽은 이의 말은 듣기 싫다?
최근 제후국으로 들어온 공국을 알고 있지요.
항복의 의미로 공주를 보내왔으니 한 번 만나보세요.
이영:아... (미간을 살짝 좁힌 채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하렘에 발길하라 이렇게까지 찾아오시다니... (빙긋 웃는다) 후사가 하루빨리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발리데 술탄:...반려가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생의 시작이니.
이번 후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툰이 될 후궁은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쫓죠.
내쫓는다?
(죽여 내쫓는 것 외에도 나가는 방도가 있던가.)
예. 알고 있겠습니다. (그리곤 돌아선다. 팔과 귀에 매달리기 시작한 장신구들을 귀찮다는 듯 살짝 흔드러 찰랑인다.)
발리데 술탄:꿈자리가 좋지 않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마세요.
선왕께서도 등극 직후에는 여러 번 악몽을 꾸며 일어나셨습니다.
술탄께서 좋은 파디샤가 되고 있다는 증거에요.
이영:(몇을 죽이고 앉은 자리였던가. 예민하게 날이 서는 것이 당연했겠지. 그리 생각하며 한 쪽 입꼬리를 올린다.) 건강하지 못한 길이었군요.
(치장이 마무리 되고 시종들이 물러가자 발리데 술탄의 너머, 서 있는 시종장을 부른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정무를 보시고, 오후에 하렘으로 향하십니다. 술탄께서 적합한 하툰을 고르실 때까지 하렘에 입궐하는 여인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발리데 술탄이 덧붙입니다.
발리데 술탄:...선왕께서는 갑작스레 돌아가셨어요.
술탄이 오른 이후에도 우리는 아직 우리의 적이 누군지 모릅니다.
어쩌면 모두일지도 모르죠.
반란이 끊이지 않고. 공국은 젊은 파디샤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동맹을 맺거나 굴종시켜 안정을 도모하세요, 술탄.
이영:(나의 적이 나일 수 없는데. 그리 생각하니 그 죽음이 어린아이가 숨긴 사탕 속 소금덩어리 같아서 슬그머니 웃는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술탄께 가장 빛나는 파디샤가 되어보이지요. (과장스레 다가가 손을 감싸 쥐곤, 연극처럼 손등에 입을 맞춘다. 대개는 존경의 의미로 받아 들일 일이겠지만 그에게는 그저 각본에 따른 행동에 가깝다.)
모두가 우러러 볼 품성.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요?
술탄의 정체가 피로 물든 살인마라는 걸 알고도 귀족들이 당신에게 호의적일까요?
민중들이 안심하고 당신에게 국정을 맡길까요?
상인들이 당신의 결정 능력을 온전하게 믿고 있을까요?
이영:(차갑게 굳힌 얼굴로 돌아선다.
하툰이라니. 아무리 많은 여자가 들어와도, 그 누구도 나의 씨를 받는 이는 없을 예정이다. 시종장에게 그것을 알아두라 전하면 재미 있으려나.)
:곧장 얼마 전까지만해도 선왕을 섬기던 친위대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진 않을까요?
아아, 아주 오래 전입니다만.
이런 것을 배운 적도 있었죠.
선생은 이것을 이리 칭했습니다.
권력은 병력을 이기지 못하고, 병력은 재력을 이기지 못하며, 재력은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민심은 정의로만 구현할 수 있다.고요.
이영:( 잘 짜맞춘 수레바퀴의 살들. 무엇 하나 짧거나 길면 제대로 굴려나갈 수 없지만... 글쎄.)
(그것들을 한데 묶는 것은 힘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그게... 나여야겠지.)
이영:... 골치 아프군. (작게 중얼거리더니 시종장을 거느리고 침소를 나선다.)
이 제국에서 그것을 통솔할 수 있는 자는 당신 하나.
상단에 놓인 토큰은 각각 권력, 병력, 재력, 민심을 상징합니다.
당신은 여러 이벤트를 통해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는 당신의 등을 찌를 것이고
누군가는 당신의 손을 잡아 끌 것입니다.
술탄에게는 언제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됩니다만, 이곳에 정답은 없습니다.
각 지지도는 25의 최대치를 가지며, 음수로 내려가거나 25를 초과해서 올라갈 수 없습니다.
발리데 술탄:그럼, 부디 운명의 하루를 보내길.
:발리데 술탄은 예를 갖추며 방에서 물러납니다.
오전 정무를 보고나면, 이영은 하렘으로 향합니다.
정무는 언제나와 같았습니다.
공국의 위협.
속국의 복종.
이제는 감흥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렘으로 향하면, 수 많은 반려들이 술탄의 행차에 고개를 숙입니다.
아아, 우습게도...
이 중 당신의 씨를 받은 이는 한 명도 없지만요.
아무리 화려한 미인이라 해도 당신에게는 향기 없는 모란일 뿐.
:새로 온다던 하툰은 본래 공국의 술탄과 결혼했을 몸.
:그러나 어리석은 자신의 왕국이 패전했기에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습니다.
1. 목은 정문에, 후문은 뒷문에 걸린다.
2. 얌전히 하렘의 방에 앉아 향기 없는 모란이 된다.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또는 어떤 쪽을 선택하더라도...
이영:(대개는 나를 겁내고, 대개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몸이 불운하게 분리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요.
:모든 것은 술탄, 고귀한 당신의 선택에 의해...
:이영이 신부의 방 문 앞에 서면, 아아(환관)들이 문을 열고 차렴을 걷습니다.
베일 너머로 흐리게 침대와, 그 옆에 꿇어앉아 베일을 쓴 하툰의 인영이 보입니다.
이영:(그래도 예의라는 것이 있으니... 새로 온 후궁은 그 날 한 번은 안는다. 성의에 대한 표시라고 하자. 하지만 그 날 이후로 홀대받는 것은 모두가 같다.)
(무던한 얼굴로 베일을 밀어내며 들어선다.)
:술탄에게 복종하는 이들은 누구나 그 옷자락에 입을 맞춥니다.
이 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베일 너머에 싸인 입술이 당신의 옷자락에 입을 맞춥니다.
이영:(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목소리를 낸다.) 이름.
그는 천천히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베일을 들어올립니다.
수 겹의 베일이 걷어올려지면
이 쪽을 바라보는 또렷한 눈이 드러납니다.
두려움이 없는 곧은 눈.
마치 목적을 가진 것처럼...
:긴 눈매를 타고 그려진 짙은 화장도 그 인상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보석에 싸여 태어난 듯, 혹은 보석을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의연하게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당신은 기이한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이 얼굴...
꿈 속에서의 그 절박한 얼굴.
이영:(눈을 가늘게 뜬다. 다물어져있던 입이 저도 모르게 천천히 벌어진다.)
이영:(몸을 숙여 턱을 쥐고, 들어올린다. 이리 저리 돌려가며 얼굴을 살핀다.)
나한:(저항없이 턱이 들린 채 고개가 휙휙 기울어진다.)
이영:좀 더... 인상 써 보겠나. 아니,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은 아니고.
나한:... (무언가 반박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 이어지는 듯 하다가,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영:간밤에 네가 꿈에 나왔다고 말하면 믿을테냐.
이영:
SAN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나한:...필히 다른 이를 본 것을 착각하신 것이리라 믿습니다.
이영:... 글쎄. (싱긋 웃어보이더니 턱을 쥔 손을 당겨 입술을 붙인다.)
나한:(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딸려갔다가, 불시에 입을 연다.) 술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영:(벌어진 채 맞붙이려던 입술이 지척에서 멈춘다. 입을 다물면 그대로 끄트머리가 스칠만큼 가까운 거리. 내리감던 눈을 들어 시선을 맞춘다.)
(천천히 턱을 물리며 시선을 떼지 않는다.) 나를 멈춰 세울만큼 중한 것이어야 할텐데.
나한:...제게는 몹시 중하지만 술탄께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느슨하게 내려온 턱, 시선이 다시 일직선으로 이영을 마주본다.)
나한:술탄께서는 그만한 자비를 가진 분이라 믿습니다. 하렘에 여러 하툰을 두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만.
이영:(무슨 재미 없는 소리가 나올까. 그러면 베어버릴까.)
나한:그러니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영:(눈썹이 들린다. 고개가 모로 기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던가?
나한:...없습니다. (다시 시선을 내리깐다.)
허나 제가 부탁드리는 것 또한 간단한 일입니다.
1000일이 지나기 전까지, 저를 의심하지 말아주십시오.
의심?
나한:누가 저를 모함하더라도. 술탄께서는 저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천 일 뒤에는, 기꺼이 술탄이 하툰이 되겠습니다. 만약 그것이 필요치 않으시다면... ...
이영:(예상밖의 단어에 쥐고있던 턱을 놓는다.)
나한:...이 자리에서 저를 베어버리셔도 좋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글쎄, 내게는 이미 많은 하툰 후보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들여질 예정이다만.
자신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눈썹을 들썩이더니 풀썩 앉는다. 고개를 까딱이는 것은 해 보라는 뜻으로 읽힌다.)
나한:...제가 무엇이 뛰어나지는 못합니다. (잠시 어색하게 무릎으로 걷는 듯 했다가, 느슨하게 무릎 위로 올라타 입술을 맞댄다.)
이영:(그 말에 조금 웃기만 하더니, 몸에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맞붙어 오는 입술 사이로만 파고든다.)
나한:(물컹한 살덩이가 들어오면 잠시 몸이 굳었다가 이내 이해했다는 것처럼 서툴게 혀를 내서 얽어올린다. 반절 뿐이지만 약조를 받았다 여긴 것인지 눈매가 조금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이영:(서툴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나? 몇은 단단히 배워 오는 모양이던데. 무슨 자신이 그리 있어서 다짜고짜 하툰이 되어 주겠다며 조건을 내 걸었나, 싶어 입꼬리가 올라간다. 조금은 놀리고싶어져 검지를 세워 배 위로 쓸어올린다. 상의 아래, 가슴 사이의 틈으로 들어가면 잠시 멈춘다.)
나한:(손가락이 가슴 아래에 와 닿으면 명백히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하게 고개를 물린다. 한 손으로는 가슴께의 옷자락을 쥐고, 상대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쓰다 정지한다.) ... ...
이영:... 그래. 당황하는군. (가볍게 미소짓는다.)
나한:(잠시 대답을 망설인다. 여기선 뭐가 정답이지?) ... ...
모르겠습니다.
이영:아니면...
느꼈어? (명백히 장난기 섞인 얼굴이다.)
공국의 공주들을... 하렘에 후궁으로 들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곧바로 하툰이 되지 못하고 하렘에 기거하는 이들을 이미 봤겠지.
나한:...예, 보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나름의 야망을 품고 왔겠지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으로.
이영:그렇다면 그들 중 누가 나의 반려가 되리라 생각하지?
그들 모두가?
아니면.. 단 한 사람이?
...술탄께서는.
제가 본 바... (잠깐 입을 벌렸다 다문다. 그러나 끝내 참지 못한 것처럼 내뱉는다)
누구도 하툰으로 들이지 않으십니다.
이영:... (참으려 했으나 입꼬리가 벌어져 올라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만족스럽게.)
(낮아졌던 시선이 들린다. 이전보다 명확하게, 빛나고 꽉 채워진 듯한 눈동자로 마주한다.)
그럼에도 하툰이 되겠다 말 했다면 증명해야지.
네 가치를.
나한:그것은 저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기에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정중하나, 분명하게 고한다. 이것은 권력에 굴종하기 직전의 발버둥 같은 것이다.)
...제 아무리 가치있다 한들 황금으로 만든 꽃도 술탄 앞에서는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므로.
이영:(올라간 입꼬리 아래가 벌어졌다가 비틀린다. 예상 밖의 답이다. 썩...
재미있어.)
하... 흐음. (만족스러운 얼굴로 제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기울인다.)
그럼 어찌 할 생각이냐. 네 조건의 전제부터가 그른 듯 한데.
나한:(한참 고민하듯이 입술을 살짝 깨문다. 의연함에는 자신이 있으나 술탄에게는 드러난다. 술탄은 자신의 발 밑에 고개 조아리는 자들을 살피는 데에 이골이 난 자일 것이기 때문에.)
...술탄께서 보시기에 흥미로운 여흥거리가 되겠습니다.
무엇이든.
(가만 미소짓는다. 그 입가를 가린다. 재미있다. 재미있어. 이 여자는 자기 위치를 안다. 그리고 - 무엇을 바라는 것이든 - 필요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조차 내가 원하는 것을, 나를 기쁘게 할 것을 모르는데... 이 여자는 무얼 꺼내올까..)
무엇이든...
(눈을 살짝 감더니 속으로 익숙한 곡을 흥얼거린다.)
기대하마.
나한:(빛이 희미하던 보랏빛 눈에 안광이 든다. 저 눈은 연정도, 살의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의 흥미만 끌면 된다. 무엇인든. 그리고 구태여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은 그리 될 것이다.)
...예.
이영:다만... (내려졌던 눈꺼풀을 든다.) 기대에 못 미치게 되면 이 약조는 끝나는 것.
기억해두거라.
나한:명심하겠습니다. 이 목 떨어질 때까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깊게 조아린다.)
:제후국의 공주라던 이는 결국 두려움에 떨며 (혹은 떨지 않으며) 이영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영:(제 앞에 숙여진 작은 머리를 내려다본다. 저 안에 대체 무슨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열어보고 싶을 지경이야. 하지만.. 참아야겠지. 황금을 낳는 거위는 배를 가르면 죽어버린다.)
그럼.
무엇부터 해 볼테냐.
제가 아는 것이건, 술탄께서 하는 이야기건.
듣고 말하는 것에 모두 자질이 있습니다.
이영:... 들어보마. (몸을 기울여 뉘인다. 푹신하게 쌓인 방석들 사이로 몸을 묻는다.)
아는 이야기, 재미없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찌 될 지는 알겠지. (가만 미소짓는다.)
:새 하툰, 나한은 이영을 무릎에 뉘어놓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하렘에 있는 여자들보다도 목소리가 차분합니다.
나한:...저는 왕궁에 귀신이 산다 믿었습니다.
이영:(내지르는 신음 말고는 들어본 적 없어서 그런걸까. 나긋한 목소리가 듣기 좋다.)
귀신?
나한:저의 고국은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황폐해졌습니다만.
불에 휩싸인 벽돌이 떨어지거나, 깜박 잠이 들었을 때 벽이 무너지면 꼭 무언가가 저를 깨우고 밀치곤 했죠.
이영:... (공주가 험한 곳에 있었나. 아니면 궁이 함락될 떄의 이야기인가.)
그런 건 보통 귀신보다는...
수호령쯤으로 부르지않던가.
나한:평소에는 그릇을 깨트리거나 문을 세차게 여는 짓을 하지요.
많은 이들이 그것을 바람이라 오인합니다만. 그건 자바바입니다.
이상한 이름...
자바바에게 너도 그릇이나 문일 뿐이었는지도 모르지.
나한: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유독 아끼는 그릇이었는지도.
이영:... 그래. (조금 웃더니 얼굴로 손을 뻗는다. 생채기 하나 없는 얼굴을 쓸어만져본다.)
많이 아꼈나보군.
나한:자바바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하면 그것은
마르두크 신의 가호라 듣곤 했었지요.
(손 끝에 잡히는 얼굴은 분명 매끈하지만, 하렘의 이들처럼 이질적이거나 예술적이지 않다.)
:그건 최근 제국에 퍼진
이교도에서 모시는 신의 이름입니다.
이교도의 신에게 가호를 받고 있다, 이 말인가?
:잘 알려져 있는 이름이
마르두크일 뿐, 그들이 대체 무엇을 섬기는 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종말을 먹이로 태어나는, 죽음을 지배하고 시체로부터 세계를 창조한 자.
그러니 다들 자연스레 오랜 전설 속의 마르두크를 떠올린 것이겠지요.
나한:(잠시 천천히 눈을 굴린다. 그 평이 못마땅한 것처럼.) 자바바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 덕에 숱한 전쟁에서 무사했고, 이리 술탄의 곁에 당도했는데도 말이지요.
네 나라가 무사했다는 말이냐.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인다.)
내게 당도할 때까지 버텨주기라도 했다는 건가..
네가 살던 왕궁의 벽이 무너지지 않게 버텨주고, 기다리다, 내게 오도록 무너트린 것이 자바바다?
그리 낭만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줄은 몰랐는데. (씩 웃는다.)
나한:... ... ... (잠깐 입을 다문다. 물론 제 몸뚱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튼튼한 성벽 너머의 술탄과 공주, 왕자들은...)
...술탄께서는 사랑을 믿으십니까?
하지만 네가 의심치 않기를 바랐으니 지금 가진 의심은 묻어두마.
(시선을 똑바로 올려 마주본다.)
나한:(그 말에 잠시 미소를 짓는다. 다행이다, 하고 안도하듯이.)
천일 간입니다.
나한:그 후에 제가 폐하께 해가 되었다 하면 살을 저미셔도 좋습니다.
이영:... 물론, 그 때까지 네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
그걸 바라는 것처럼 말 하는 구나.
거듭, 거듭..
나한:(그러면 금방 고개를 내리깐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다만 이 하렘에서 나가는 것은 죽은 몸뚱이 뿐이라기에.
(미심쩍다. 살아 나가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 여자가 내 손을 빠져나가는 것을. 비록 그게 꿈 속일지라도...)
혹시 모르지, 네가 천일 사이에 다른 방법을 찾아낼 지. (농담처럼 말하지만 시선이 곧다. 네 생각을 캐낼 것처럼 마주보다가, 약속한 것이 떠올라 눈을 감는다.)
그래서, 자바바가 어찌 했다는 얘기였지?
나한:그 이야기는 술탄의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미간이 단번에 모여든다.)
나한:(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는 웃음을 짓는다. 어린 시절 믿었던 자바바가 진실이라 한들 하렘에서 자신을 빼내 줄 정도로 헌신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요. 그저 궁금했습니다.
술탄께서 아까부터 저를 잡아먹을 듯 보고 계시기에.
이영:... 내가? (미간이 설핏 풀어지는가 싶더니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문지른다.)
나한:(한 손을 내려 눈가를 천천히 쓸어내린다)
피곤해보이십니다.
... 발리데 술탄께서는 당연한 일이라 하셨지. 익숙하지 않은 일들 뿐이고 무거운 자리니, 선대께서도 처음엔 악몽을 자주 꾸셨다고.
(얼굴에 닿은 손 위로 제 손을 겹친다. 눈을 내리 감는다. 그렇게나 피곤해보이나.) ... 내 꿈이 궁금한가.
나한:(눈이 감기면 찬찬히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손길이 마치 어린아이나 인형을 다루듯 부드럽다.)
예. 술탄에 대해서는 궁금합니다.
이영:... 그것 참 두루뭉술한 대답이군. (입꼬리를 조금 올린다. 누가 머리를 만져주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또...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 몸이 풀어진다.)
불이.
... 수도가 온통 재로 변했다.
하렘도 마찬가지로...
시체가 뒹구는 땅을 밟고 도망치는 여자가 있었지.
나한:신기하군요. (이어지는 대답은 소곤거리듯 낮고 작다. 언뜻 듣기로는 자장가와 같은.)
이영:그 기억에... 평온한 얼굴이 아니어서 표정을 바꿔보라 했다.
나한:그것이...술탄께서 저를 기다리신 징조라 믿고 싶습니다.
이영:(코웃음치듯 픽 웃는다.) ... 그저 그리 말 할 뿐인게냐, 아니면 진심이냐.
내 기분을 맞추려 하는 말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네게는 옳은 방법일테지... (점차 말소리가 느려진다. 단어 사이가 멀어지고 숨이 늦다.)
나한:(진심이었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만 한다. 누구나 결여를 채우고 싶은 욕망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나치게 끔찍한 꿈이니까요. 저는 징조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답하는 목소리가 조용하고 나긋하다.)
바깥에서는 해가 저무는 빛이 들고,
이따금 드는 바람에 차렴이 흩날립니다.
머리를 쓰는 손은 멈추는 법이 없고,
차츰 눈이 감기면 곧 혼자 남겨질 이의 표정이 마지막으로 들어옵니다.
짙은 화장 아래, 먼 항해의 고단함과 타지에서의 외로움. 또는 그 이상이 것이 섞인 표정.
:하렘에 새로이 들어온 하툰은 언제나 그런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언제나.
이영은 통치를 시작하고, 새 하툰을 맞이했습니다.
한 번 동침한 후궁과는 다시 몸을 섞지 않는 술탄.
당신은 나한을 어떻게 대하기로 결정했나요?
이영:(
섞지는 않았으니 아직이다. 내쫓을 이유는 없고, 흥미로운 약조를 했으니 시험을 계속한다.)
(발리데 술탄에게는 결정을 유보하겠노라 이르고, 고민한다. 적극적인 후궁들의 난교 장면보다 흥미로운 것이 그 여자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야기가 끊어지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라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매일 밤 하렘의 한 방에서 잠들더니 이내, 매일 밤 침소로 부르기에 이른다.)
(몸을 섞으면 다른 후궁들과 차별하는 것이 되니 스스로 세운 규칙에 어긋난다. 이미 이영이 모르는 곳에까지 새 후궁을 총애한다는 말이 떠도는데도 스스로와의 규칙은 어기지 않을 셈인지 먼저 안으려 들지 않았다.)
세 여인 그렇게 새 술탄의 100일이 지났고,
세 여인 술탄은 궁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위해 거대한 성문을 지났다.
이영은 지도에 표시된 곳을 방문해 조사할 수 있습니다.
조사 중 새로운 지역이 해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사는 100일 단위로 이루어지나, 술탄 이영은 평소에도 얼마든지 시찰을 나가거나 어떠한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무를 볼 수 있습니다.
이영:(새로운 이야기가 가장 빨리 오가는 곳... 항구로 간다. 행상인처럼 꾸민 호위와 함께... 졸부처럼 입고 나간다.)
:술탄은 조사 중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대화하고, 추궁하고, 권력을 누리거나 정체를 숨길 수도 있습니다.
이영은 항구로 향합니다.
졸부와 행상인의 차림은 부조화스러울 정도로 화려합니다만, 항구에서는 흔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영:(
사 치 품이라고 적힌 것 같은 화려한 부채를 팔락이며 둘러본다.)
:자고로 상인들의 물건이란 품질보다 가격을 따지는 것.
물새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항구입니다.
생선 비린내에 섞인 돈 냄새, 짠내 섞인 바닷바람...
이영:(여유롭게 거닐며 둘러본다. 배에 물건을 싣는 인부들 사이를 지나고...)
:수 많은 물자들이 하역되거나 선적되고, 빠른 말투로 고함을 치는 상인들이 내린 물건을 곧장 경매에 붙입니다.
경매 붙은 물건들은 몇 백 상자 단위로 나뉘어 각지의 시장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이 모든 작업을 관리하는 통관세무서, 상인들이 장사를 하는 거리 안쪽, 배를 대는 선착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영:(소금, 향신료, 옷감... 경매하는 품목을 기웃거리다
선착장
으로 빠져나간다.)
:호위가 주변을 예리한 눈으로 경계하며 당신을 따릅니다.
이영:(항구에 관한 것을 머리에 익히고 나오기는 했으나 뻔히 눈에 보이는 커다란 배에 시선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최근 조선업이 발달했다더니 참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미인의 몸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범선,
산전수전을 겪은 듯 전투의 흔적이 남은 사략선 따위가 이영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이영:(호위에게 귀엣말로 늘어선 배들이 어디서 온 것이냐 묻기도 하며..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자고로 항구란 해적도 무역상도 품는 법이라, 두셋씩 모여 킬킬거리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영:(사략선에 먼저 시선이 닿지만, 범선 근처에 서 있는 인부에게 먼저 다가간다.)
이봐.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자세로 인부에게 다가갑니다.
"아아, 여기 카페트일랑 진즉에 저쪽으로 빠졌소! 볼라 해도 배에는 이제 없어요!"
이영:뭐? (잠깐 시선이 구르더니) ...이미 빠졌단 말이야? 늦었군.
:"그래요. 이제 여기 살만한 건 배 밖에 없어."
"사봤자 요새 들어서는 별 쓸모를 못할 거요."
이영:하하, 배라도 사야하나?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이내 미소를 거두고) 왜지?
"요즘은 바다에서 물고기도 제대로 잡기가 힘들어. 깨나 이름 날리던 해적들도 다 하릴없이 낚싯대나 드리우고 있는데, 그러니까 이만한 배를 끌고 나가봐야 만선은 글렀다 이거지."
"무게 덜 나가고 비싼 것들을 그득그득 채워와야 좀 살만할까...인데..."
하며 인부는 말 끝을 흐립니다.
:인부가 크게 웃습니다. "그래! 배라도 잡혀야 말이지!"
"하여간 이제 바다의 시대는 끝이야. 나리도 배 볼 생각이거든 맘 접으쇼."
이영:흐음. (부채를 팔락이더니 쓰고있던 색유리 안경을 밀어올린다.) 왜 그리 생각하지? 이곳 항구만의 문제인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신 인부는 입을 싹 씻을 생각인지 고개를 모로 돌립니다.
"바닷사람들이나 바다에 관심있지."
아하. 업계 일을 캐묻지 말라...그런 뜻인 것 같군요,
이영:(호위에게 고갯짓을 한다.) 새로 사업을 시작할 참이라 정보가 귀하거든. 바닷사람이 필요한 사람도 바다에 관심이 있는 법 아니겠는가.
재력
기준치: |
60/30/12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호위가 나서 동전을 몇 닢 꺼낸다.)
:호위가 기다렸다는 듯 인부에게 반짝이는 금화 몇 닢을 내밉니다.
기껏해야 은화나 동화꾸러미...라고 생각했던건지, 인부의 눈이 커집니다.
"어허...어. 알겠다, 알겠어. 그러니까 나리도 거기로 가려는 거구만?"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금화가 인부의 주머니로 쑥 들어갑니다.
이영:(고개를 기울이고 색안경 위로 시선을 띄운다.
거기?)
:인부의 입에서 의외의 단어가 나옵니다.
"페트라 말요. "
"나리처럼 배포가 큰 상인들은 말요, 요즘 배를 여기에 매어만 두고 각자 상단을 꾸려서 전부 페트라로 향한단 말이죠."
:"어디서 났는지 돈을 가득 가지고 있고, 노예의 수도 하렘의 하툰만큼이나 많단 말입니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는다.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고 곱씹는다. 노예의 수도.. 하렘의 하툰.)
:"그치만 사막을 가는 배는 없잖습니까. 거기로 가는 대상들은 육로를 사용했다가 대륙을 빙 돌아 배로 돌아오는데..."
"바로 그 배 같은 것을 낚으면 일확천금이라...그것이지요."
이영:(그렇게 많진 않았는데, 싶어 고개를 기울였다가..)
:"그러니까 항구에 남은
우리들은 그런 월척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나리도 조심하쇼."
:인부의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배에서 내린 거대한 상단이 짐을 꾸려 페트라로 향하는 것이 보입니다.
사막도시 페트라. 그곳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영:(썩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본다.) 요사이, 페트라가 그리 대단한가?
(조금 늦게 덧붙인다.) ... 재산을 털어 이 곳에 자리잡아보려고 했더니 말일세.
:페트라는 사막 내륙에 있는, 바위로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무역의 요충지이기는 하나 대부분은 머무르지 않고 경유지로 이용할 뿐이죠. 저렇게 인원을 꾸려 가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이영:예전에는 그저... 경유하는 곳 아니었나?
:"예에, 그랬죠. 내륙에 인접한 왕국의 특산품을 사러 가는 곳이나 다름 없었는데."
"저도 인부 짬을 조금 먹었단 말이죠. 페트라에 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짐을 든든히 꾸리는 건 처음 봅니다."
"저야 안 가봤으니 모르죠. 그치만 항구에서 영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면 저도 그리로 붙어 볼 겁니다."
알려줘서 고맙네. (호위에게 고갯짓하자 호위는 인부에게 금화 한 닢을 더 건네줍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통관 세무서
로 향한다. 모든 것이 페트라로 향한다, 라... 좋은 조짐은 아니군.)
:무엇이 상인들을 페트라로 끌어당기고 있는 걸까요?
바다 건너에서부터, 오로지 페트라로 향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대상단이 온다는 것은...
술탄으로서 그리 마음에 드는 조짐은 아닙니다.
이영:(제국에 머무르지 않고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대로라면 제국이 경유지가 되고, 물자가 빠져나가고만다. 그러면... 수레바퀴가 틀어지겠지.)
:비단이나 보석부터, 향신료와 각종 신기한 물건 따위를 구경할 수 있는 제국의 상점가.
그 안으로 들어서면, 중심에 무역선이나 상점이 신고를 하는 세무서가 있고, 그곳에서는 언제나 재무대신이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이영:(암행이니 재무대신은...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마주치면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세무서로 들어간다. 상인들이 작성하는 신고서를 훔쳐볼 요량이다.)
(호위에게는 훔쳐보는 걸 들키면 아둔한 도련님 행세를 할테니 알아서 둘러대라 명한다.)
:수완에 관심이 있는 대상인에서 아둔한 도련님으로 변하는 것 즈음은 이영에게 아주 쉬운 일입니다.
세무서로 들어가면...
분주하게 줄을 선 상인들이 물품의 내역과 가격을 적은 종이들을 들고 있습니다.
주인이 이래저래 부르는 내역을 받아적는 이들도 보이네요.
이영:흠.... 어떻게 해 볼까... (고민하듯 안을 둘러보더니 저벅저벅 걸어간다. 속도를 점차 올리더니 종이뭉치를 든 상인과 크게 부딪힌다. ) 아이쿠-
:이영의 행동을 조금 불안하게 바라보던 호위가...
근력을 판정해볼까요?
이영:
근력
기준치: |
80/40/16 |
굴림: |
1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아..
살아 있습니까? 미안하게 됐소.
:상인은 억, 하고 숨이 막히는 소릴 내더니 한 순간 정신을 잃은 듯...
손에 쥐고 있던 두루마리를 놓치고 털썩 주저 앉았다가 눈을 번쩍 뜹니다.
"이, 이, 이게 사람을 죽이려고 해-!!"
이영:(바닥에 흩어진 두루마리를 집어들고 내용을 한 순간 훑는다.) 아. 미안합니다. 내가 시야가 어두워서.
(색안경을 들춰보이곤) 실내에서는 벗어야하는데 말이지요.
:두루마리에는 각종 호화 물품들이 적혀 있습니다.
카페트와 비단, 도자기와 원석들...
오호라, 이 호화 물품들은 최근에 온 하툰의 공국에서 온 것들입니다.
:부유한 곳이었다더니 그 말이 꼭 맞나보군요.
공국에서 들여온 사치품들을 이 시장에서 파는 상인인 것 같습니다.
"이익, 이...앞 똑바로 보고 다니쇼!!"
이영:미안합니다. 여기, 놓치셨소. (두루마리를 건네면, 호위가 나서 상인을 일으켜 세웁니다.)
:저희 도련님께서 색안경을 좋아하셔서, 하고 호위가 상인을 번쩍 들어 세웁니다.
상인은 씩씩대지만 다시 한 번 부딪혔다간 정말 골로 갈 것 같았는지, 두루마리를 품에 넣고 성큼성큼 지나갑니다.
이영:흠. (만족스럽지는 못한 걸, 생각한다. 알고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군.)
:이영이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면...
세무를 보는 관리 중 하나가 다가와 깊게 고개를 숙입니다.
이영:(안쪽을 둘러보다가 받아적기 바쁜 사람들 뒤쪽으로 가 선다. 무얼 받아적나 들으며 소매 안을 뒤적거리다가...)
...
으음.
하아. (괜한 소란을 피웠나. 한숨쉬며 따라간다.)
관리를 따라가면, 재무대신이 집무실에서 마중을 나와 있습니다.
이영:(어쩔 수 없지... 색안경을 벗어 호위에게 넘기고 들어선다. 그 때 쯤에는 팔자걸음 대신 어깨를 쭉 편 채로 꼿꼿한 걸음이다.) 재무대신. (시선을 건네 인사를 대신한다.)
재무대신:항구에 오실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볼일이 있는 듯 하셔서...
시찰이십니까?
이영:(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의자를 당겨 앉는다.) 그렇네. 궁 안에만 앉아 있어서는 알 수 없지 않나.
재무대신:(의자 너머에 서서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긴밀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
최근 총애하시는 하툰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영:(모아쥔 손을 책상 위에 얹는다. 다음을 기다리는 시선을 남긴다.)
... 페트라가 아니라?
(고개가 갸웃하고 기운다. 갑자기 그 여자는 왜?)
아아, 대상인들의...말씀이십니까.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영:... 하툰에 대한 이야기가 그보다 중요하다는 건가.
재무대신:그가 온 공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영:(한 쪽 눈썹이 들린다.) 대상들이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
움직임이?
재무대신:페트라라고 한들 모두 술탄의 치하에 있는 것, 상인들의 눈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는 법이니까요.
예, 항구로 오는 배송 중 하렘으로 가는 것은 제가 직접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그 여자의 앞으로 오는 짐은 조금 이상합니다. 다른 하툰들과 달리 호화로운 물건이나 산지의 특산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작 가끔씩 편지 같은 것을 보내기만 합니다.
재무대신:공국으로부터 오는 답신이나 물건은 전혀 없습니다.
... (이상하긴 하지. 공주를 보내고서 아무런 것도 보내지 않는다는 건..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보냈거나... 하지만 편지를 보내는데도..)
(미심쩍은 얼굴로 골똘히 생각한다.) 재신은 어찌 생각하는가?
(재.신 늘려서 재무대신)
(술. 늘려서 술탄)
(잠시 두 손가락으로 턱을 문지른다.) 말씀드리기 대단히 외람되오나... ...
아무래도 술탄이 총애하는 하툰에 대해 함부로 말을 올리기가 껄끄러운걸까요.
이영:말 해 보라. 지금은 술탄이 아닌... (뭐였더라? 하며 호위를 돌아본다.)
(... 전재산으로 장사를 시작하려는 졸부집 도련님입니다. 하는 호위의 말을 들으면 대신에게 눈썹을 들썩여보인다.)
재무대신:(또 무슨 짓을...하듯이 눈썹을 잠깐 들썩였다가)
...마치 국내의 정세를 전하는 듯한 움직입니다.
일종의 첩자처럼 말이지요.
흠.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두겠네.
그 외에는?
재무대신:그 외에는 예년과 같습니다. 페트라로 대상단들이 빠진다고는 합니다만, 시장에서 빠져나간 호화품은 없습니다.
아마 무역이 아닌 다른 이유로 출발하는 자들 같은데, 시장에 도는 자금 규모도 줄지 않았으니 어쩌면 새로운 손님들이라 보아도 괜찮겠지요.
(곰곰... 고민한다.)
예의주시하게. 부자연스럽지 않나.
이영:(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색안경을 든다.) 오늘 들은 일들과 관련된 것은 개인적으로 보고하게.
혹여 그 여자가 이상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이영:(대신에게 시선을 둔다.) 다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내게는 자네의 지혜와 통찰력이 필요해. 그것은 사실이나.
(부드럽게 미소지어 보인다.) 기다리게. 고한 것들은 모두 귀담아 듣고 있어.
재무대신:(못내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받든다.)
이영:섣불리 나서면 용을 잡지 못하는 법이니. (색안경을 코 위에 얹고 돌아나선다.)
(의심하지 말아 달라 했던가...)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짓을 할 요량이었나보군.)
마치 자신이 의심받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한은 이영이 부를 때면 순순히 침소로 들어 매번 이야기와 함께 이런저런 일을 묻곤 했습니다만.
그 질문이 국정의 내밀한 부분을 건드린 적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제법 이영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이영:(나 모르게 하렘 바깥으로 가지를 쳐 두기라도 했을까. 그건 불가능할텐데..)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밤
-여느 하툰의 밤과는 다르지만-이 벌써 100일 째입니다.
이영:(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고려해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수상하고 미심쩍더라도...)
거리 안쪽으로 가 보자꾸나. 나온 김에 선물이라도 사서 돌아가야지.
:이영은 호위와 함께 거리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물건을 보러 나온 온갖 신분의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거리는군요.
이영:(약조는 약조이니, 당분간은 기억해두기만 할 셈이다. 그 여자에게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이것들이 그 가는 목을 조르겠지.)
이영:(가판에 내놓은 물건들을 기웃대며 걷는다. 뒷짐 진 채로 기웃대는 것들은 화려한 장신구, 세공품, 투박한 장식품들. 화잠품같은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무얼 좋아하던가?)
:그러고보면 하렘 내에서도 치장에 공을 들이지 않는 편입니다.
:반짝이가 붙은 화려한 화장품도, 발걸음마다 소리가 나는 금빛 장신구들도...
오히려 그런 것에 익숙치 않은 사람처럼 있는 장신구조차 빼먹는 일이 잦은 여자입니다.
이영:(가판에서 반지나 귀걸이 같은 것을 몇 개씩 골라 산다. 이 중 하나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려나. ... 그것도 잊어버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불만스레 고개를 기울인다.)
(다른 후궁들에게라도 주면 좋아라하겠지.)
그 때는 이 장신구의 주인이 달라지겠죠.
상점 주인은 마침 이것들이 아주 잘 나가는 거라며 에머시스트와 루비, 사파이어 따위가 달린 귀걸이를 고급스러운 함에 담아줍니다.
사람의 손가락은 열 개고 귀는 두 짝 뿐이지만, 뭐 어떻습니까.
... (괜한 짓을 하나?)
:이런 걸 가져다준다 한들 전혀 쓸모가 없으려나요?
이영:(담아준 함을 받아들고 서서 내려다보다가... 들고 저벅저벅 걷는다. 선물같은 걸 고민해서 골라 본 적이 없는데, 이리 어려운 것도 처음이다.)
:대개는 유행하는 것들이나 신품을 아무렇게나 골라오라 하면 뛸 듯 기뻐하는 것이 하툰이지만...
이영은 선물을 고르고도 한참 고민하기만 합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이대로 궁에 돌아가도 좋겠군요.
이영:(머리를 긁적이다 돌아선다. 성에 차지 않으면 어떠냐. 남편이 취향 몰라주는 것도 제 복인 것을.)
돌아가자꾸나.
:호위는 예, 하고 짧은 대답을 하며 이영을 궁까지 호위합니다.
이영:(암행을 위해 차려입었던 것들을 치우고 편한 복장으로 침소로 돌아간다. 이미 시간에 맞춰 도착해있을 하툰을 기대하고 선물이 담긴 함도 든 채로.)
:침소로 향하면, 매일 그랬듯 약간의 치장을 받은 나한이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나한:(늘어진 문 장식이 흔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고개를 숙인다.) 술탄이시여.
이영:(평소와 같은 보폭으로 걸어간다.) 어딜 보고 있었지?
(그대로 나한이 앉은 곳에 바짝 다가서 시선이 나란해지도록 몸을 낮추고, 창 밖을 본다.)
나한:여기서는 해가 떠오르는 것은 보여도 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앞서 다가오는 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말대로, 짙은 노을 너머로 밤의 장막이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이영:... 그렇구나. 창을 하나 더 내는 것이 좋았으려나.
나한:이 창으로 드는 바람이 방을 휘돌고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가 이영을 바라본다)
시찰을 다녀오셨다지요.
이영:(어깨를 감싸쥐고 창밖을 가리는 천이 팔락이는 걸 보다, 뒤늦게 시선을 내려 마주본다.) 네게도 귀가 있는 모양이지. 누가 일러주더냐.
나한:오늘은 술탄께서 피곤하실테니 각별히 신경쓰라는 주의를 들어서.
이영:... 괜한 소릴. (몸을 물리더니 가져온 함을 끌어온다.) 덕분에 설명은 덜었군. 시장 거리엘 다녀오는 길이다.
나한:항구에 있는 시장이군요. (하렘으로 올 때에 본 기억이 있다. 끌려가듯 왕궁으로 출발해 들르지는 못했지만, 왁자한 거리가 기억나는 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더니)
...이것은?
이영:사고보니 넌 장신구에 관심이 없는 것 같긴 했다만. (비어있는 귓볼을 만진다.)
나한:무거운 것을 다는 게 익숙치 않아서... ...
제게 주시는 겁니까?
이영:... 다 가져도 좋고, 하나만 골라도 좋다. 네가 아니라도 반길 이는 많으니. (손을 내려 허리를 안는다.) 욕심껏 가지거라.
나한:(양 손으로 조심스럽게 함을 열면, 눈에 들어오는 화려한 귀걸이 하며 반지 따위를 가만히 쳐다본다.)
이영:(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내려다본다. 생각보다 많이 샀군.)
나한:(시선이 이영에게 가 닿더니) 술탄께서 직접 고르신건가요?
나한:(그러자 다시 장신구로 향하는 얼굴에 미소가 깃든다. 손 끝으로 빛을 받은 보석들의 위를 쓸어내리고) ...그렇군요.
나한:술탄께서는 왕궁에 앉아서도 이런 것을 쉬이 구하실 수 있을터인데.
(천천히 장신구들을 쓸던 손이, 루비가 세공된 날개무늬 귀걸이를 들어올린다.)
이영:(허나 직접 골라본 적은 없다. 그런 것은 술탄의 업무가 아니기에.) 그게 마음에 드느냐.
나한:...예. 꼭 석양빛을 닮아서. (잠시 귀걸이를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이영과 귀걸이를 한 눈에 담았다가, 비어있는 귀에 건다.)
이영:...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본다.) 떨어지는 해가 좋은가보구나.
나한:해가 하늘에 오르는 것과, 겸허히 사라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개를 들자 새로 귀에 걸린 장신구가 흔들린다.) 술탄께서 잠에 드신 후에도 매번 해가 뜨기를 기다리곤 하죠.
이영:... 그래서 아침마다 죽은듯 잠들어있는게구나.
나한:죽은 듯... ... (그 단어가 의외라는 듯 눈을 약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이영:잠에서 깨고나면 항상 깊이 잠들어 있어서 말이다.
이영:(가만 시선을 맞추고 있던 평온한 얼굴이 슬그머니 풀어진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바람 새는 소리가 난다.) 확인 해보고 있으니 걱정 말거라.
나한:숨을 쉬는지 말이지요. ...급사할 정도로 몸이 약하지 않습니다.
(잠시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술탄께서는 저를 아끼십니까?
이영:...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있더니 볼을 감싸 당긴다. 대답이 곤란하면 나오는 버릇이다.)
나한:(대답은 않는구나. 당기는 손길을 밀지 않고 순순히 따라간다.)
이영:(입술을 맞붙인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보류한다. 천 일간은 그럴 예정이다.)
나한:(벌어진 입술 새로 드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며 잠시 숨을 들이킨다. 볼을 감싼 손 위를 한 손으로 덮고, 눈을 내리깐다.)
이영:(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파고든다. 첫번째 밤에 비하면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기꺼운 동시에... 어렵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고려하지 않는 것이. 너를 나의 행동과 생각에 있어 고려하기를 배제하려고 한다. 감싸 쥔 허리를 당겨 안는다. 나의 긴장을 무너트리고 편안하게 하는 살 냄새.)
나한:(빈 손은 어깨에 얹어지고, 자연스럽게 무게가 이영 쪽으로 기운다.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을 때면 투정을 부리듯 구는 사람. 사람들이 젊은 술탄이라 부르는 이. 처음엔 금방이라도 목을 벨 것처럼 굴고서...)
이영:(눅진하게 맞붙여올리는 혀가 잔뜩 파고들어 신경까지 녹여내는 것 같아지면 입술을 떼어낸다.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떼어낸 입술을 눈가에 가져다 댄다.) 오늘은 어떻게 해 줄 생각이야.
나한:(눈두덩 위에 입술이 내리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들어올린다.) 어제와 같습니다.
오늘은 밤과 죽음에 대해.
이영:... 그래. 내가 잠들거든 그만 해도 좋아. (바짝 붙어있던 몸을 놓아준다. 아쉽다 생각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지만, 맞붙었던 온기가 멀어지면 반사적으로 이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나한:예, 그럼. (쿠션에 기대앉아 발을 교차해 가지런히 놓는다. 언제나 이영이 머리를 뉘이던 그대로.)
이영:(당연스럽게 무릎을 베고 눕는다. 올려다 보는 얼굴은 이제 익숙하고, 머리에 얹어질 손길을 기대하며 자연스레 눈을 감는다.)
나한:(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칼을 느슨하게 쓸어넘긴다. 천천히 타들어가는 향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입을 연다.)
밤이 오는 것은 잠이 오는 것과 같고, 죽음 또한 다르지 않다고.
어머니께서는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도요.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속삭이듯 한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는 것은 결코 친밀해지라는 뜻이 아니라고도 하셨죠.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관망하는 것과, 그것을 부러 곁에 두는 건 다른 일이기 때문에... (머리칼을 쓸던 손이 이영의 속눈썹을 건드리며 가지런한 눈썹을 쓴다.)
이영:(어쩌면 좋은 가르침이다. 내 손에 죽어간 이들도 그리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울부짖으며 가지 않았을텐데.)
부러 곁에 두는 것은 어찌 말씀하셨지?
이영:(눈썹을 쓰는 손길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옳으셨군.
나한:하지만 죽음의 모습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죽음이 희망으로 오인되기도 하며... ...
그러니 죽음을 곁에 두고 살지 않으려면,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셨습니다.
생이란 익숙함과 무방비함이라는 덫에 빠지지 않도록, 목숨을 건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고... ...
그래서 방심한 자가 죽는다고도, (검지손가락으로 이영의 심장께를 쿡 누른다) 하셨죠.
이영:(반사적으로 그 손목을 낚아챈다. 번쩍 뜬 눈이 시선과 맞닿는다.)
나한:(순간 커진 눈이 이영을 빤히 바라본다.)
이영:... 그런 거라면, 내 걱정은 줄여도 좋겠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잡힌 손목을 보다가, 천천히 손을 비틀어 손가락을 얽어 잡는다.)
이영:(순순히 풀어내 얽어쥔다.) 너는 나를..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오던 말을 다잡는다. 닫힌 입술 위로 뜨인 눈이 평소보다 조금 커졌다가 내리깔린다.)
나한:... ...? (닫히는 입을 보고 약간 고개를 기울인다.)
이영:(
아끼느냐. 묻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하툰으로서는, 응당 그래야하는 법이지만, 이쪽에서 피해버린 질문이니.)
이영:(얽어쥔 손을 끌어당겨 입맞춘다.) ... 죽음보다는 잠이 가깝다. (관련 없을 이야기를 한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다시 손 끝이 머리칼 사이사이를 쓸고 지나간다.)
...저도 술탄께서 천 일간 무사하셨으면 합니다.
매일 밤 단잠을 주무시고, 죽음은 다가올 일 없도록.
그 밤은 네가 도와야지. 잠든 나를 지키는 것도 너이지 않느냐. (가벼이 말하곤 손을 뻗는다. 몸을 돌려 허리를 안으면 드러난 배에 이마가 맞닿는다.)
나한:예, 그리 하겠습니다. (머리를 쓸던 손이 허리를 감은 팔을 토닥인다.)
어둠이 물러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니 염려 마세요.
이영:그러고보니 오늘.. (살갗에 고개를 묻으니 짙어진 향에 취하듯 정신이 흐려진다.) 들은 이야기가..
공국에서... ...네게 도착하는 편지도, 선물도 없다고, ...
나한:(그 말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움직이기만 한다. 그러다 이영이 잠에 드는 순간에나 조용히 속삭인다.) ...저를 찾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긴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등을 쿠션에 기대 완전히 밤이 드리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영:(꿈결에 섞인 말소리가 슬프게 들리기라도 한 건지, 조금 더 고개를 파묻는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후의 일입니다.
대신을 만나는 정원에는, 허리를 굽히고 선 수 많은 고관대작들이 뜨거운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아(환관)들의 외침에 일순 입을 다물지만,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영:(웅성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들 번잡스레 구는가.)
(걸음을 멈추고 대신들을 향해 돌아선다.) 안타깝게도 술탄의 위대한 능력이나 지위에 맞지않게, 일개 인간인지라 들을 수 있는 귀가 두 개 뿐이니, 누군가 의견을 취합하여 말해주지 않겠나.
:그러자, 발리데 술탄과 현자가 앞으로 나옵니다.
현자는 성전을 담당하는 자입니다.
현자:선왕께서 급사하신 직후, 제위에 오른 술탄을 백성들이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를 누그러트리기 위해서라도 술탄께서 궁 바깥에 있는 성전에 들러 왕의 신실함을 보여주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직후, 발리데 술탄이 끼어들듯 외칩니다.
발리데 술탄:형제자매 중 가장 우수한 자가 제위에 오르는 것이 무어 의심할 여지가 있단 말이오!
하잘것 없는 소문에 모습을 드러내실 일 없습니다. 술탄의 신실함이라면 궁 내의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감히 술탄을 민중의 제단 앞에 무릎꿇게 하다니요?
이영:(손을 들어 언쟁을 끊어낸다.) 발리데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비단 그 때문이 아니라도, 백성들이 새로운 술탄을 마주할 자리는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현자:(파안한다.) 허면 성전에 방문하실 일정을...
이영:(입꼬리를 올리곤) 좋은 시기에 현자께서 좋은 제안을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의 술탄이 누구인지, 보아두는 것이 좋지요.
발리데 술탄:(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못내 수긍한다) 술탄의 뜻이 그렇다면 그리 하시죠.
이영:허나 허튼 소문은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발리데께서 검은 베일을 거두지도 않으셨는데 그런 모독적인 말이 돌다니, 안 될 일이지 않습니까? (대신들을 돌아본다. 이는 입단속을 바람이다.)
:이영의 말에 모두가 지당하다며 입을 모읍니다.
그리하여, 이영은 선왕의 영혼을 기리며 성전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외궁의 성전에 방문합니다.
이영은 기도가 이루어지는 며칠 간, 수 많은 시민을 만납니다.
그들의 의심과 호기심, 선망이 담긴 시선 속에서 생활합니다.
그들은 처음에 갖가지 소문이 도는 술탄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만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당신의 성품을 진정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영의 완벽한 기도 예법도 한 몫 했겠지요.
이영:(어차피 필요한 일이다. 왕이 바뀌었어도 일반 백성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낭설은 바로잡기 어렵고 지위만으로는 온전한 기반을 다질 수 없으니...)
(... 궁을 오래 비우는 것은 마음에 걸리는 군.)
현자:좋은 선택이십니다. 술탄을 한 번이라도 알현하려는 자들이 줄을 잇고 있어요.
부정적인 소문이건, 무엇이건. 실은 모두 대상의 관심을 끌려는 술수 아니겠습니까. 민중의 마음은 이리 쉬이 돌아서는 법이지요.
이영:당연한 일이지요. 선왕께서 닦아두신 길을 전부 새로 쓸고 닦아야 비로소 제 길을 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가만히 시선을 돌려 마주한다.) 정무가 바빠지기 전까지는, 매 해 선왕의 조문을 위해 찾아올 것이라 일러두십시오.
현자:(그 말에 미소를 짓는다.) 물론입니다. 이로써 성전에 충실한 백성들이 더욱 많아지겠군요.
매 해 성전의 강연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으니 이는 좋은 일입니다.
이영:파디샤의 검이었던 자가 파디샤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전에는 으레 보강이 필요한 법이지요. 남녀노소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감싸안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백성들을 한데 모아주는 가장 좋은 것이 신앙 아닙니까.
(우중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워왔다. 허나 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일 때에는... 나보다 더 나은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당분간은 소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으니...)
... 그렇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르두크신을 믿는 자들에 대해 말입니다.
아아...
헛소문과 만들어진 신을 믿는 자들이 조금이라도 설득을 더해보려 옛 전설을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현자:고대에서 전승되는 전설에 나오기로 마르두크는 시체를 통해 세계를 창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만적인 전설은 천 년 전에 이미 마무리가 되었죠.
한 순간 민중을 쓸고 지나가는 물결일 뿐입니다.
이영:(시체... ... 시선이 제단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에 속아 고통받을지도 모르는 백성들이 염려됩니다.
현자:종말을 믿는 자들은 대개 집착이 심하거나 자격지심이 큰 사람들입니다.
생에 대한 집착, 더 높은 지위를 위한 갈망.
종말이 오면 세상천지가 뒤집혀 그 틈바구니에 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죠.
술탄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릇된 믿음은 파도보다도 빠르고,
모래처럼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영:예. ...그러나... (시선은 건조하다.) ... 그들을 가엾게 보아 보살펴주시지요.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이영:모래바람이 폭풍이 되게 두어서는 안됩니다.
파도에 흙을 쏟아붓고, 모래에 물을 끼얹어야지요.
우리에게는 지금 무엇보다 안정이 필요합니다.
현자:저는 술탄께서 물과 흙이 되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현자:민중이란 말보다 행동에 움직이는 자들로,
술탄께서는 황자시절부터 아주 능하셨죠.
현자:저는 성전에서 민중의 마음을 다스릴테니, 부디 술탄께서는 죽음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생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저울 한 쪽에 추를 올려두면, 어딘가에는 그림자가 지기 마련.
귀족들은 당신의 행동을 두고 이렇게 수군거립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고저가 있는 법이거늘."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게 틀림없어. 진짜 나라를 움직이는 게 누구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신을 섬기더라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기도가 달라야 하는 법이야."
:"선왕께서는 아주 단호히 결정을 내리셨었는데..."
저택의 은밀한 연회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물담배 연기 사이로, [귀족]의 지지도가
5 하락합니다.
술탄의 빛이 강해짐에 따라 사악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재무대신이 보낸 조사단이 페트라로 가는 암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번 조사부터, 조사 가능 지역에 페트라가 추가됩니다.
이번 시찰은 어디로 가 보는 것이 좋을까요.
술탄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법입니다.
(오래 왕궁을 비웠으니 멀리 가고싶진 않군. 친위대 숙소로 가 본다.)
왕궁 입구에는 친위대들이 숙식을 하고, 훈련을 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언제나 정복 전쟁, 혹은 반란의 위험이 있기에 제국의 군대는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어깨에 견장을 단 상급 군인부터, 막 입대한 듯 앳된 티를 다 벗지 못한 젊은이들까자ㅣ.
이영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병사들은 단체 경례를 합니다.
이곳은 크게 친위대 본부와 새로 들어온 병사들이 훈련을 받는 훈련소로 나뉩니다.
이영:(평소 정무를 볼 때보다 갖춘 정복 차림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실상 책상 앞보다 이곳이 편한 건 당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군.)
:이영도 어린 시절, 병사들과 대련을 하거나 무기 다루는 법을 익히곤 했었죠.
이영:(낯익은 얼굴들도 보인다. 이제는 다들 제법 견장이 무거워져 있지만... 사령관이 앞장서
훈련소
로 향하면 힘이 들어간 자세로 걸어간다.)
:본부에는 제법 오래 친위대에 몸을 담았던 장군이나, 각 부대의 수장들이 업무를 보거나 접견을 하는 곳입니다.
술탄 외에는 누구도 허가 없이 들어올 수 없죠.
친위대장:근래 들어 시설을 조금 보수했습니다.
술탄께서 보수가 마무리 된 뒤 방문하셔서 다행이군요.
이영:(가만 둘러본다.) 처우가 미흡하지 않게 하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위함이야.
친위대장:염두에 두겠습니다. 병사들은 매번 전쟁을 위해 높은 강도의 훈련을 수행하고 있고, 제국 최고의 병사다운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친위대장의 책상에는 어지러운 자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전쟁에 관련된 지도 따위입니디ㅏ.
이영:(뒷짐 진 채 업무중인 이들을 살피며 지나간다.) 그래야지. (자연스레 친위대장의 책상에 앉는다.) 별다른 사항은 없나? (시선이 책상을 훑는다.)
이영:
자료조사
기준치: |
50/25/10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스윽... 밀어내기만 한다.)
친위대장:(이영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본다.) 전쟁과 관련된 자료입니다.
이영:(손끝이 훑어내려간 날짜들이 터무니없어 웃는다.) 이런 게 있는 줄은 몰랐군.
:공국 국민의 절반 가량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자력으로 국가를 유지하기 힘들어져 제국의 복속국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보고서입니다.
이영:(... 짓밟아놓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군.)
:게다가 이 자료에는 반란과 위협 따위의 내용이 써있기는 합니다만...
침략계획서에 가깝습니다.
:계획적인 정복 전쟁을 위한 안내서라고 할까요.
친위대장:이곳에 적힌 모든 내용은 차질없이 완벽하게 이행되고 있습니다.
이영:... (문서의 끄트머리를 펼쳐둔다.) ... 비워져있는 이유는?
친위대장: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제가 물을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내 집무실에도 사본이 필요하겠어. 계획은 계속 되어야 하지 않겠나.
친위대장:... ... ... (잠시 말이 없다가, 거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쟁에 관한 모든 사항은 현재도 술탄께 보고드리고 있습니다만.
이영:(시선을 들어 마주 본다.) ... 제국의 방향이 바뀌길 바라는가.
방향이라 하심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친위대장:...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저는 이 검이 향하는 곳이 옳다 믿습니다.
제국의 강병을 위하는 일이니까요. 이 제국이 지금과 같은 부국이 된 것 또한 모두 이 덕이었습니다.
게다가 술탄께서도 아시듯, 제국은 연승하여 승리를 거머쥐고 있습니다.
모든 곳이 파디샤의 땅이 될 것입니다.
이영:대장의 신념이 제국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 (신뢰가 담긴 눈으로 마주한다.)
(자리에서 일어나곤) 모든 곳을 제국의 땅으로 만들어주게.
정복국가라는 별칭은 자네와 자네를 따르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오신 김에 훈련소를 돌아보시겠습니까. 최근 들어온 병사들과는 마주할 일이 없으셨기에.
이영:음. 그러지. (앞장서 밖으로 나선다.) 어떤가. 쓸만해보이는 눈이 있던가.
친위대장:이전만큼은 못합니다. 특히나 최근 젊은이들은 더더욱.
:훈련소로 향하면, 신입 친위대원들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친위대장은 그 외의 용무가 있었는지 이영에게 편히 둘러보시라 이른 뒤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영:(조용히 걸어들어가며 신입 대원들을 살펴본다. 아직 자세도 엉성하고 힘이 많이 들어간 모습들.)
저런 녀석들이 신입인데도 전쟁에서 이기다니, 참...
한 쪽에서는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쑥덕대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영:(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이런 얘기를 듣는게 제일 재미있지.)
이영: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무언가 자기들끼리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한데...
이영:(뭐지... 심각해보이는데...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가까워진다.)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신입들이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각 잡힌 경례를 합니다.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어서야, 신경쓰이지 않나.
:"아, 아, 아...아, 아닙, 문제 없, 그, 그런 사실 없습니다!"
이영:심각하게 이야기 하는 걸 보면 중요한 사안같은데, 내게도 들려주지 그래. (걸음이 가까워지자 점차 내려다보게 된다. 술탄이 된 이후에는 항상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지만 황자시절에는 언제나 그랬다. 얼굴보다 정수리를 보는 것이 익숙했고 내려다보는 것이 당연스러운 체격.)
(가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다.)
위협
기준치: |
65/32/13 |
굴림: |
2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영이 다가오면 굳은 대원들이 아...하고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가, 더듬더듬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 그것이, 전쟁 중의, 시신 처리 방법에 대해서."
시신 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이영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
패잔병은 목을 매단다.
시신은 구덩이를 파 매장한다.
:포로들을 받아들였다간 반란의 싹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너,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그 정책은 선대 술탄께서 만드신 것이라고...들업..들었습니다."
이영:맞아. 그렇게 정하셨지. 완고하신 분이었으니 말일세.
다만 언제나 납득할만한 이유도 있으셨고. 아들인 내가 대신 변명이라도 해 보자면... (웃는 낯이지만 웃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선대의 그늘은 말라붙은 피 얼룩같아서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이영:날붙이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명확한 규칙과 엄격한 법이 필요하지. 순간의 충동이나 해이해진 마음 사이에 생기는 잘못된 판단을 행하지 않게 하려면 잔인함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 나 또한 그에 동의하네. 자네들은 모르겠지만 나도 즉위 전에는 전쟁에 함께 했으니 말일세.
경험자의... 조언으로 생각하면 좋겠군.
:그 말을 들은 대원들은 서로를 번갈아보다가 힘차게 대답합니다.
"저희에겐 친위대가 구원이나 다름없습니다. 걸인부터 외국인까지, 어떤 차별도 않고 지원하고자 하면 능력만을 보니까요."
이영:( 피 얼룩을 닦아 없애기 힘들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버리고 새 것으로 교체하거나, 피웅덩이로 만들거나.)
:"그래서 저희는 결코 친위대에 뜻에 반하거나 어긋나는 일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해적이 되는 것보다 친위대가 되어 공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어 영광입니다!"
대원들은 씩씩하게 경례를 합니다.
이영:(어깨를 두드려주고 끄덕인다.) 건승을 기원하지.
(몸을 돌려 걸어나가는 얼굴은 금세 굳는다. 어느 쪽이 좋을까.)
이영이 숙소를 나가다보면...
그 옆, 물자를 옮기는 작은 항구로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이동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은밀하게 몸을 수그리고 이영에게 다가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술탄, 술탄이시죠. 성전에서 술탄을 뵈었습니다."
지난 추모때 말인가.
:"술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하지 못하니, 부디..."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언제라도 좋습니다. 혼자서 북쪽 항구 아래 곁길로 와주세요."
:"저는 항상 그곳에 있겠습니다. 언제라도 좋습니다."
"제국의...아니, 세계의 존속이 달린 일입니다..."
:그러더니 외국인은 금세 주변을 살피다가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대열로 이동합니다.
:대체 그런 곳에서 무슨 말을 전하려는 걸까요?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죠.
왕궁으로 돌아오면 이른 저녁입니다.
나한은 해가 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침소에 들고,
하루 일과를 마친 왕궁은 오후의 빛을 머금고 있습니다.
이영:(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가, 발걸음마다 울리는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고개를 돌려 본다.)
그 소리가 문 앞에서 잠시 멈춥니다.
나한:(명이 떨어지면 발을 걷고 술탄의 침실로 들어선다. 여느 때와 같은 표정.)
평온하셨는지요.
이영:(시선이 가 닿는다. 치장한 모습을 훑어보며 기다린다.) 그래, 언제나와 같이.
나한:(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영에게 다가앉는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나한:이영이 장신구를 선물할 적에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나한은 그것을 잊지 않고 매번 달고 나타납니다.
이영:(그저 손을 뻗어 끌어 안을 생각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한:(이영이 손을 뻗으면, 가만히 목에 팔을 두르고 안겼다가 일순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이영:(가슴팍에 고개를 기대며 안았다가, 고개를 든다. 순간 찌푸려지는 미간을 보았던 탓에.)
나한:(평소처럼 고개를 대지 않고 드는 것에 잠시 시선을 마주친다.)
무언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나한:(다음 말을 기다리듯 목에 감았던 팔을 어깨로 옮겨 짚는다.)
이영:(
보고싶었다? 적절치 않다.
수상한 이야기가 많아서... 말 할 수 없는 것들이군.)
내 이야기는 미루어두고, ... 네 얼굴이 일그러지기에.
별 것 아닙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기에.
이영:.. 발을? (자연스레 시선이 발목으로 향한다.)
나한:(시선을 내리면 찜질을 하느라 발개진 흔적이 있는 발목이 눈에 들어온다.) 별 것 아닙니다.
이런 것은 며칠 쉬면 낫습니다.
이영:(손이 발목으로 향한다.) 조심해야지. (살짝 쥔 발목을 문지른다.)
걸음이 불편하겠구나.
돌아다닌다 한들 하렘과 정원 뿐이니.
이영:... 그렇지. (발목을 다치면 도망치는 것도 어렵겠지.)
... 그럼 됐다. 조심하라 더 이르는 것도 무용한 걱정이니. (다시금 가슴에 고개를 기댄다. 발목에 닿은 시선이 조금 늦게 돌아선다. 발목을 쥐고있던 손은 여즉 그 자리에 있다.)
나한:(순간 섬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설마 그런 짓을, 싶다가도 무슨 짓인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라 심장이 싸해진다.)
... ...예. 주의하겠습니다. (발목을 쥔 손에서 슬그머니 다리를 옮겨 빼낸다.)
이영:(손가락이 스르륵 풀려 발목이 빠져나가고 난 손을 옮긴다. 허리를 감싼 손이 맨 살결을 지분댄다.) ... ... (..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무너져도 너만은 내 곁에 있을텐데.)
나한:... (편히 기대지도, 안지도 못한 채 맨 살을 쓸고 지나가는 손길이 가시같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고개를 묻어 가슴에 입술을 얹는다.)
나한:... (어떤 생각을, 하고 덧붙여 묻고 싶은 것을 참고 머리를 감싸안는다.) ...하렘의 다른 이들에게도 정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영:(혀를 내 핥아올리고 이를 내어 긁는다. 대답하지 않는다.)
나한:(입 안으로 숨이 삼켜진다.) ... ... (잠시 입을 벌리면 하, 하고 내쉬는 숨소리가 작게 울렸다가 금세 다물어진다.)
이영:(어느새 몸을 기울여 누른다. 올라탄 것처럼 내리누른 채로 집요하게 가슴 사이를 파고든다. 헤집고 다니는 고개에 상의가 밀려나고 벗겨질 쯤에 고개를 든다.) ...내가 다른 이와 동침하길 바라느냐.
나한:(머리를 감쌌던 팔이 금방이라도 상대를 밀어낼 듯 팔에 얹혔다가, 머리에 열이 올라 숨이 가빠지고서야 틈이 난다. 한 손으로 상의를 붙잡고서 이영을 바라보는 눈이 그리 기껍지만은 않다.)
...하렘에 기거하는 이가 저 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을 바짝 당겨 고개를 가까이한다.) 이 발목도 그리 된 게야?
나한:제가 무어라 말을 하면 하렘에 있는 이들에게 벌을 내리실 것 아닙니까.
이영:(노려보듯 탐하던 눈이 움찔한다.) ...
나한:... ... (그 말에 미간이 좁혀지더니 고개를 돌린다.)
...오늘은 돌아가겠습니다.
나를 봐.
보아라.
나한:(다시 고개가 이영을 향한다. 이번 시선에 담긴 것은 분명 호의가 아니다.)
네가.. 동침하라고 하면 그리 하지.
...허니 가지 말아라.
네가 살필 이는 내가 아니더냐. 하렘의 다른 이들보다 나를..
... 나를 사랑해야지.
(눈썹 끝이 축 늘어진다.)
이영:(... 이 기분은...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가진 것 하나마저 빼앗길까 두려운.)
(간절해지는 기분.)
(나는 어쩌다...)
(이렇게 비참하게 네게 파묻혀버렸나. 턱끝까지 파묻히고도 몰랐다... 모래지옥같아.)
나한:(사랑해달라. 몇 백 밤을 보내고도 그 단어가 지나치게 생소하다. 한참이나 답을 망설이는 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주저앉는다.)
이영:(내가 지고, 네가 이겼다. 나는 너와의 약조를 저버릴 수 없게 되었다.)
나한:(전쟁왕, 구국영웅.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어쩔 도리 없이 떠올리고 만다. 불길들을...)
... ... (가만히 이영의 어깨에 머리를 댄다.) 술탄께서는...
...저를 아끼십니까.
이영:(손을 들어 안지도 못한 채, 간신히 입을 뗀다.) 나는, 너를...
... 사랑하는구나.
나한:(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제국의 황자가.)
(그 피에 독을 숨기고 있다던 소문은 다 어디로 갔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지그시 내리감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싸했던 심장이 녹는 것이 참 우습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받는다.) ...술탄의 곁에 오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싶습니다.
제가 술탄을 염려하니까요.
전쟁 뿐이었습니다. 소리도, 피도 없는.
왕이 대신을 만나는 정원에 처음 보는 방문자가 있습니다.
옷차림으로 보건대 신학자처럼 보이는 이는, 파디샤의 옷자락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선 참담한 얼굴로 말을 꺼냅니다.
:"위대한 술탄이시여, 끔찍한 악몽이 국경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교를 이름입니다. 근래 들어 제국의 백성들이 이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불편한 일이다. 불온한 바람이 일고 있음은 안다. 다만 검 한 번 휘둘러 베어내지지 않는 싹이라는 것이 신경을 거스른다.) ... 자세히 고하라.
:"술탄께서도 익히 아시겠지만, 사악한 이교는 세계가 황혼에 접어들었다 주장합니다."
"종말의 때가 다가오면 죽지 못한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전 대륙이 멸망에 빠질 것이라 믿어 폭력과 살인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자를 죽지 못한 자로 만들기 위해 친인척을 죽이거나 죽은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합니다."
"그 탓에 마치 정말로 죽은 자들이 살아난 것 같은 질병이 번져, 생사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 인간이 다른 인간들을 공격한다 합니다."
이영:... 신앙을 빌미로 폭력과 살인을...
이들은 제국을 혼돈에 빠트리고 있다. 배제할 사유로는 충분하리라고 보이는 군.
종교적 이유를 막론하고 자신이 아닌 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살인은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앞으로는 그 처벌에 예외가 없을 것이라 공포하도록.
... 감옥에 자리가 부족하다면 처형해도 좋다.
:대신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술탄의 뜻을 받듭니다.
5
모든 진영의 지지도가 5씩 떨어집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귀족들입니다.
그들이 거느리고 있던 노예과 사병들에게 이교가 퍼지며, 많은 이들이 거주지를 이탈하거나 서로를 죽였습니다.
어떤 가문은 전원이 이교에 빠져 자의, 또는 타의로 살해당했습니다.
:이는 비단 궁 밖의 귀족들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하렘의 하툰들 또한 가문의 믿음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24시간 붙어 지내기에, 그릇된 믿음을 진실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하툰의 칼 끝이 누구를 향할지는 자명합니다.
술탄은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관리가 시급한 곳이 어디일까요?
:세력을 잃어 왕가에 보낼 공물이 줄어든 귀족들?
대열에서 이탈하는 친위대원들?
난장판이 된 시장을 관리해달라 요구하는 상인들?
또는 제국의 대다수를 이루는 백성들?
이영:(잠시 고민하지만, ... 안쪽에서부터 단단히 다져가야한다. 내실없이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으니. 귀족들을 관리한다. 하렘의 하툰들과 권세있는 가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감시하고 바로세운다. 이들 없이는 국가라는 구조를 다잡기 어려우니.)
:소대 단위의 친위대가 권세 있는(문제 있는) 가문에 파견됩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자들이 이영에게 보고를 올립니다.
살해위협에 시달리던 귀족들, 혹은 이교에 빠진 귀족의 친지들이 왕가에 감사를 전하는 공무를 수레 째 보내옵니다.
귀족의 지지도가 5 오릅니다.
신학자는 이영에게 몸을 깊게 숙여 감사를 표하면서도,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을 것이라며 당부합니다.
지난 번 외국인이 은밀히 전달했던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을, 이영은 다른 시찰 중 확인했습니다.
시찰 준비를 돕는 호위가 행선지를 묻는군요.
(언제든 기다리겠다 했으니...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페트라로 향해볼까.) 재무대신이 준비한 암로의 입구를 아느냐.
:"예, 언제든 시찰을 나가실 수 있도록 암암리에 구해놓은 상단이 있습니다."
(시선이 자연스레 하렘 쪽으로 향한다. 오래 자리를 비우면 걱정하지 않을까.)
:이영은 거의 궁을 비우는 일이 없고, 하툰들은 명이 있지 않는 이상 하렘 바깥으로 나오지 않죠.
궁을 열흘도 넘게 비워야 한다면, 다녀온다 미리 일러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영:... 채비하거라. 긴 여정이겠구나. (발길을 돌려 하렘으로 향한다.)
최소한의 정예만이 이영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채비가 끝나면 바로 보고드리겠다며 호위도 집무실을 나섭니다.
하렘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영과 칼파(관리자)들 뿐입니다.
왕의 반려를 맨 눈으로 본 자는 눈알을 뽑는 형벌에 처하는 것이 이 나라의 법도이기 때문이지요.
이른 오전인지라 많은 하툰들이 각자의 방에서 한껏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영:(파디샤를 맞으러 나오는 칼파들에게 손을 들어 물리고 나한의 방으로 직행한다. 이런 시간에 이곳에 오는 건 또 처음이군.)
방으로 들어서면, 장식을 달지 않은 수수한 차림을 한 나한이 무료하게 창 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립니다.
이영:(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마땅한 말을 고르려 이런 저런 단어들을 떠올렸다 치워낸다. 너무 딱딱해, 괜한 소리까지 하는군,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나한:(이영이 들어서자 금방 놀란 눈이 되어 일어선다) 술탄께서 어쩐 일로...
이영:(걸어들어올 때와 같은 보폭으로 나한의 앞까지 걸어간다.) ... 나한. (손을 끌어올려 손등에 입맞추고 내려다보는 눈길이 다정하다. 이 사람 앞에 서면 자연스레 그리 된다.)
나한:(이영의 표정을 살피는 시선이 주의깊게 지나갔다가, 이내 마주하는 눈을 확인하고 눈 아래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린다.) 간밤에 좋지 못한 꿈이라도 꾸셨는지.
이영:(이렇게 살펴보아주는 눈에서 온기를 느낀다. 볼을 쓸어문지르고 고개를 숙여 짧게 입맞춘다. 처음에는 충동이었을 지라도 반복되면 익숙한 습관이 된다.) 아니. 꿈자리는 괜찮았지. 전할 말이 있어 왔어.
나한: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지는 순간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다. 언제부터인가 늘어난 소소한 맞댐에 익숙해져, 가까이에 선 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전할 말이라면 무엇입니까?
이영:(가만히 그 얼굴을 마주한다. 시선이 평온하고도.. 의아해보이는 얼굴을 모아 담는다. 열흘은 보지 못할 얼굴.) ... 잠시간 궁을 비우게 되어.
오늘 밤 네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아, 뭐라 말하려 했었나, 좋은 말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은데...) ... 네가 그리울테지.
나한:(한참 사이를 비우고 이어진 말에 양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술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부디 술탄의 안위를 챙기는 것에만 신경쓰세요.
이영:... (양 손을 쥐고, 모아 끌어당긴다. 두 손이 맞닿는 곳에 입술을 묻는다.) ... 네 곁에 없어도 네가 내 심장 가까이에 있음을 잊지 말아. 그리하면 무사히 돌아오리다.
나한:(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다가, 발 뒤꿈치를 들어올려 이마를 맞댄다.) 물론입니다.
(그러더니, 부드럽게 손을 빼내고서 몸을 횡으로 가로지른 장식 천을 풀어 이영의 허리띠에 걸어 맨다) 정 발이 떨어지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가져가세요.
이영:... (나한이 하는 양을 가만 지켜보는 끝에는 입꼬리가 밀려올라간다. 미소가 피어오른다.) ... 그래. 내 몸에서 떼어놓지 않겠다. (양 손목을 쥐어 당긴다. 제 허리 뒤로 감싸도록 당겨놓고 등을 감싸안는다. 벌써 그리운 기분...)
나한:(허리에 감긴 손을 모아 끌어안는다. 잠깐 힘을 주었다가 풀고 품에 고개를 기대었다가,) ... ...다녀오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술탄께서 어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저도 언제나 궁금합니다.
이영:... 그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내려다본다. 나의 보석, 나의 보검.) 이벤에 가는 곳엔... 선물할만한 것이 있을듯하진 않아. 그러니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져와 보지. 기다려주게.
(이마에 짧게 입맞춘다.)
:나한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면, 칼파 하나가 문 밖에서 준비가 되었다 이르더라고 알립니다.
이영:곧 가마. (아쉬운 눈치로 안은 팔을 거둔다.) ...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못되게 굴면 말이다... (걱정스런 얼굴로 손끝을 쥔다.)
... ... 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해 두거라.
내가 그리 말했다고.
전언이라고.
나한:그리 하겠습니다. (쥔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저도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자는 아닙니다.
이영:... (가만 미소짓는다.) ... 이제 정말로 가야겠구나. 안녕하거라.
:이영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하렘을 나섭니다.
시종들이 상단주처럼 보이는 옷으로 환복을 돕고, 긴 여행에 적합한 가죽으로 둘러진 마차가 이영을 기다립니다.
대상단의 틈에 섞여든 이영은 시시각각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모래사장을 한참 지납니다.
이영:(나한이 준 장식 천은 팔에 감아 묶는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마음에 편하니.)
:낙타를 타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산을 걷고,
그렇게 딱 닷새가 지나면 바위로 만든 도시가 서서히 시야에 들어옵니다.
황자일 시절에도 이런 곳까지는 와보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각국에서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 개방구역과, 페트라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는 주거구역으로 나뉩니다.
이영:(이런 곳에서는 전쟁도 벌이지 않는다. 원정을 떠나온 쪽이 당연히 불리하기 때문이다.)
:항구에서는 별 흉흉한 소리처럼 들렸는데, 대강 둘러보기에는 아주 평화로워 보이는군요.
제국의 중립구역이 사막인 것은 환경의 척박함 덕분이 큽니다.
이 페트라라는 도시도 아주 오래 전, 선조 대에서 각종 협정과 평화무역을 위해 원주민들을 설득해 세웠다고 하니까요.
이영:(헛걸음인가... 생각하면서도 ``개방구역`을 향해 걸어간다. 먼저 사람을 보내볼 것을 그랬을까... )
:개방구역에는 무역상들이 적당한 곳에 짐을 놓고 쉬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단 근처에서 모닥불을 피우거나, 여러 나라의 언어로 떠드는 외국인들이 가득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구석에 웅크린 채 몸을 떠는 캐러밴(여행자)가 한 명 보입니다.
이영:(슬그머니 모닥불 근처로 간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늘에 숨어 들을 작정으로 움직이다,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 자에게 다가가 몸을 숙인다.) ... 이보시오. 뭔가 문제라도 있소?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습니다. 시선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아무래도 광인 같은데.
그는 이영이 말을 걸어도 이를 딱딱거리며 떨리는 숨을 내뱉을 뿐입니다.
이 자와 대화하려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겠군요.
이영:... ... 상태가 안 좋군. (눈 앞에서 손을 딱 딱 튕겨본다.) 이봐. 약이라도 한 건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지 않자 팔을 꽉 쥔다. 이쪽으로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세게.)
(근력으로.... 해보겠어)
이영:
근력
기준치: |
80/40/16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것은 아주 오랜 역사 속에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영은 상대방의 팔에 멍이 들 정도로 힘을 줍니다.
그러자 캐러밴이 흐흐억, 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이영을 돌아봅니다.
"누, 누, 누구시오."
광인처럼 몸을 떨고 있기에 들여다 봤소만.
:"... ...과, 광인, 내가, 그리 보입니까."
(꽉 쥔 팔을 놓지 않는다. 정신을 놓아버릴까봐서.)
그는 꺼림칙한 것을 떠올리듯 몸을 부르르 떱니다.
:"...그, 그래. 당신이라도...내 얘기를 들어주시오.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그 편이 낫겠어."
(팔을 놓아주고 앞에 앉는다.)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여행객인데."
"이틀 전...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공국의 국경을 지나오는 도중...끄, 끔찍한 것을 보았소..."
:"그렇소... ...달도 뜨지 않을 정도로...어두운 밤이었는데."
"...난 도적을 당한 적이 있어서...바, 밤에도 불을 켜지 않고 익숙한 길을 외워 다니오."
이영:(고개를 가만 끄덕인다. 잔뼈가 굵은 이로군.)
:"게다가 내가 지나오기 전에, 그 길목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이야길 들어서...괜히 패잔병이라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걷고 있었소."
하고, 캐러반은 자신이 든 나무막대로 바닥을 툭툭 짚습니다.
"그런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니...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해서 잽싸게 풀숲에 숨었소."
"죽은 병사들의 소지품을 터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하..
캐러반이 허공을 노려봅니다.
:"그 자들은...시체들을 구덩이에 집어 던지고..."
이영:(바람을 잘 잡는 이야기꾼인 건지, 아니면..)
"이상한 춤 같은 것을 추고... ...하늘을 향해서 미친듯이, 웃고..."
"자, 자꾸 뭔가 온다고, 종이 된다느니. 그런 말을..."
:"그러고나니... ...그게 정말 일어났소."
"구덩이에서 죽은 병사들이 기어나와..."
... ...
캐러반은 흐어억, 하고 경기를 일으키며 이영의 얼굴을 콱 붙잡아 더듬거립니다.
"다, 당신은, 당신은 살아있소!?"
"우리 중에도 있을지 모른단 말이오. 그, 그렇게 죽고서도. 일어나서..."
이영:(놀라 숨을 참는다. 그 손을 거칠게 잡아 떼어낸다.) ... 놀랐잖소. 딱 봐도 살아있지.
:"그 날 이후로 잠을 잘 수가 없소...눈만 감으면..."
그는 이영의 손에 나동그라지고도 한참을 중얼거립니다.
"주변을...주변을 경계하시오..."
"저, 저기...저기 마차에도...어디에, 죽은 몸이 있을지 몰라..."
"으으, 으..."
이영:(그 말에 시선이 따라갔다가 돌아온다.) ...
:...광인과 대화를 하면 이영마저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이성을 판정합니다.
이영:(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미친 사람이었군. 그랬어. 그럴리가 없지않나.)
SAN Roll
기준치: |
59/29/11 |
굴림: |
71 |
판정결과: |
실패 |
(... 이교의 무리가...)
(정말로 죽은 자를 되살린다면? 사특한 음모가 일어나고있다면?)
실존한다면?
이 자의 말을 완전히 믿는다면, 죽지 못한 자는 인간의-혹은 인간과 유사한 무언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 없습니다.
:비단 권력이 교체됨에 따른 불안이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영:(이 자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는 비단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재앙이 될지도...
호위는 이영의 옆에서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광인의 헛소리일 뿐입니다. 술탄이시여, 지나치게 신경쓰지 마십시오."
이영:... 그랬으면 좋겠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자는 데리고 가라. 괜한 소리가 퍼지면 불안을 키울 뿐이다.
호위는 캐러밴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이영:...(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 생각하며 상단의 숙소로 돌아간다.)
:이영은 마차 근처에 꾸려진 숙소로 돌아갑니다.
상단 사람들은 저마다 교환한 물건들을 확인하는 중이군요.
몇몇은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주점이나 식당에서 회포를 풀겠다 합니다.
이영:(밤사이 주거구역에 숨어들어가는 것보다는... 무언가 묻기엔 낮이 좋겠지 생각한다.)
(다른 이들을 따라 주점에 가 허기를 채워야 할까 생각한다. 그간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못했으니..)
:확실히, 사막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모래를 씹는 듯 건조했습니다.
이영:(... 의식하고보니 흘러드는 음식 냄새에 가게들이 있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오히려 전쟁에 나갔을 때에 더 잘 먹었던 것 같기도 하군요.
이영은 주거구역에 있는 가게로 향합니다.
이영:(아무래도... 티나게 다른 음식이 준비되어도 괜찮았으니..)
:몇 안되는 거주민들은 무역상을 대상으로 간단한 식사와 술, 잠자리를 제공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거주민은 대부분 사막 원주민이라, 여기서 나고 자란 이가 아니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영:(... 배고프다. 뭘 먹을 수 있으려나. 전쟁통도 아니니 간단하게 칠면조 구이나... )
:타조고기나 칠면조, 낙타유를 석은 술 따위를 파는군요.
이영:(찜 요리도 좋지... 사막에서 생선은 기대하기 어려우니 새고기도 좋겠군... 하고 부응해줄 수 없는 기대를 한다.)
:항아리 안에 붙여 구운 후추빵도 사막의 별미입니다.
(생각한 것보다 양도 적고 맛있어보이지도 않아..)
(뭐가 요즘은 페트라냐, 이 녀석아...)
뼈가 절반인 새고기를 입에 우겨넣어주겠어.
이영:(벌써 200일 전, 항구에서 만났던 인부를 탓하며... 한 자리에 앉는다.)
(술에 낙타유를 섞다니...)
(혀를 끌끌 차며 앉아있다가, 주문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새 종업원이 다가와 눈썹을 들어올리고 있습니다.
:가리키라는 듯, 공통어로 메뉴가 적힌 판자를 들어보이는군요.
(검지를 들어 위에서 아래로 죽 내리긋는다.)
:그러자 종업원은 메뉴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이고, 뭐라고 외칩니다.
:곧 가격이 쓰인 판자도 이영의 앞에 놓이는군요.
(내라는 건가? 이게 얼마지? 싶어 들여다본다.)
:그런데 이거...암만 봐도 메뉴판에 적힌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이 적혀 있습니다.
(손을 까딱인다.)
:종업원은 이영을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다가와서 또 무어라 알 수 없는 말로 소리칩니다.
행운을 판정합니다.
이영:(가격이 적힌 판을 검지로 쿡쿡 내리찍더니 눈썹을 들썩인다.)
60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사람들이 이영을 흘금거리기만 할 뿐,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폐쇄적인가?
:주인은 메뉴판과 이영, 가격이 적힌 판자와 문을 가리키며 뭐라고 소리칩니다.
이건 못 알아들어도 알겠군요.
돈 없으면 나가라는 소리겠죠.
신선한 대우입니다.
이영:(팔짱을 낀 채로 쳐다보다가, 양 발을 테이블 위로 올리고 뒤로 기대 앉는다. 그리고 허리에 찬 검집을 두드린다.)
위협
기준치: |
65/32/13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똑바로 계산해.
이영:못 알아들으니까 공통어 하는 놈 데리고 오고.
:사람들이 저마다 이영을 가리키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주방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뛰쳐나오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뚫고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무어라 외칩니다.
" !"
"--- -- --- -!"
그 자는 여행객이라기엔 원주민의 옷을 입고 있고, 원주민이라기엔 생김새가 제국민과 흡사합니다.
그러더니 금방 이영에게 다가와 메뉴판을 척 가리킵니다.
가격 계산이 이상하잖아.
:그는 눈썹을 비틀고 종업원을 향해 말을 건네고, 종업원은 이내 이해한 것처럼 판자에 적힌 가격을 다시 적고 내려둡니다.
:그는 물끄러미 이영을 쳐다보다가, "제국에서 왔습니까? 여기 오는 건 처음인 모양이죠?"
이영:(의아한 얼굴로 두리번댄다.) 그렇네만.
이영:동행이 자리를 비웠는데, 여긴 공통어 하는 자가 없나?
(짜증~)
:"여긴 말이 거의 통하지 않으니까, 몇 번 와 본 사람들은 음식과 숫자를 대강 적어 보여주는 걸로 주문을 대신해요."
:"뭣 모르고 온 모양인데, 안그래도 요즘 도시가 흉흉하니까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말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보시오. 자네 술과 밥은 내가 살테니 이쪽으로 오시게.
:그 사람은 자기 자리에 앉으려다, 이영이 하는 말을 들고 냉큼 엉덩이를 붙이려던 의자 째 엉금엉금 이동해 앉습니다.
"뻔뻔하게 입 씻으려는 줄 알았습니다."
(턱을 괴고 본다.) 자네는 여기 말을 하는 군.
:그원주민의 옷을 입고 공통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하다니,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요.
"난 오지 문화를 조사하는 탐험갑니다."
:"여기 온 지는 몇 년 됐으니까 다 하죠."
:그는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종업원에게 따로 또 주문을 합니다.
:"문화를 조사하려면 지역사회에 섞여야 하고, 그러려면 1년으로는 택도 없습니다."
"지금도 당신하고 괜히 엮여서 주목받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어떤가? 여기는. 흥미로운 얘기라면 듣고싶은데. 내 부인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거든.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는다. 해 줄 이야기가 생겼군.)
:"당신 같이 정신 빠진 사람도 결혼을 하고, 세상 다 한 물 갔군 그래."
두 사람의 앞에 준비된 음식들이 착착 차려집니다.
...이 사람 때문인가? 다른 테이블보다 살이 잘 오른 음식들이 오른 것 같기도...
상냥하고... 조용한 편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팔불출 모드 on)
목소리가 아주 나긋해.
(히죽.)
"결혼은 속박입니다. 나 같은 탐험가한테는 맞지 않죠."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내는 쪽이 천 배는 더 낫습니다."
이영:주목받아도 자네는 제법 평이 좋은 것 같아. (꽉 찬 접시 하나를 끌어다 제 앞으로 가져온다.)
흠... 속박이라.
(하렘은 술탄을 속박할 수 없으니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임이 맞지만... ... 확실히 나는 나한에게 속박되어있는 것 같군. 한시라도 더 빨리 돌아가고싶으니.)
자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지. 난 성미에 맞는 것 같거든.
그러니 좋은 남편 노릇 하게 새로운 이야기나 조금 들려주지 않겠나.
:탐험가는 짭...짭...하고 고기를 씹으며 이영을 의뭉스럽게 바라보다가 입을 엽니다.
"제국에서 왔으니 여기 음식이 성에 차지 않지 않습니까?"
이영:(대강 고기를 으적이다가 술로 목을 축인다.) ... 그야 뭐...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아닙니다. 여기 사람들은 원체 검소해요."
:"척박한 지방에서는 부족한 자원을 아끼는 자가 현인으로 칭송받죠."
"그리고 베푸는 자는 둘도 없는 선인이 됩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인가..."
이영:(맞는 말이다. 비옥하지 못한 곳에서는 그 나름의 다른 기준으로 재단하겠지..)
:"여길 거점으로 두고 낯선 상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긴 무역 도시인데다 웬만큼 상품성이 있어야 교환이 되니까 방문하는 대상인들은 다 비슷하거든요."
이영:그래, 들었지. 새로이 페트라를 드나드는 상인이 많아졌다고 하더군.
:"그런데 최근엔 처음 보는 자들이 많은 짐과 돈을 가지고, 노예를 팔러 가는 건지...이상한 사람들을 데리고 올 때도 있습니다."
이영:그런데 이상한 건 호화품을 운송하지는 않고...
... 이상한 사람?
:"그런데 노예라기엔 약간, 어디서 잡혀온 사람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 상인들을 따라다니는 것 같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최근에 공국이니 제국이니 이교도가 들어와서 난리잖습니까. 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세를 불리니까. 뭔가 수작질을 하는 게 틀림 없을 겁니다."
이영:... 이상하군. (잘은 모르겠지만... 이상하다니 동조나 해 본다.)
... 이교도의 수작질이다?
:"원래 종교라는 게, 별 말도 안되는 이유로 돈 쓸어모으기 좋은 수단이잖습니까/"
"하여튼 나도 아는 건 여기까집니다. 내가 조사하는 건 이교도가 아니고 이 도시 문화니까."
하지만 자네도... 불만인 것 같은데?
이교도가 이 도시를 들쑤시면 자네의 문화 조사도 어려워질테니 말이지.
:"그렇긴 한데, 이런 건 건드리지 않는 게 내 철칙입니다. 문화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 거거든요."
"지금이 과도기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 그럼 이건 어떤가. 자네가 도시 문화를 조사하면서 알게 되는 이상한 일만 추려 제국으로 보내주게. 합당한 사례를 약속하지. 이교와 연관된 일이라면 정보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말일세.
그렇게 하면... 자네는 조사를 했을 뿐이지 않나.
"뭐...당신은 제국에서 나온 조사관 같은거요?"
"난 그냥 재밌는 얘기 들려달라기에 좀 해준건데. 이러면 곤란합니다."
이영:상인은 정보도 사고 파는 법일세. (눈썹을 들썩인다.)
... 흠...
이영:자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어깨를 으쓱이곤) 그럼 다른 얘기나 더 해주게. 이곳 사람들 사는 얘기가 좋겠군.
나중에 문화 조사를 끝내고 책으로 엮을 생각이 있나? 한 권 사고 싶은데.
아까 말했다시피, 부인이 새로운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서.
"문화지에 관심이 있나보지? 그럼 들어보고 흥미가 돋는 내용인지 생각 좀 해줘요."
:"여기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데, 사막에서는 돈이 우수수 쏟아질 구석도 없지 않습니까."
이영:(자세를 고쳐 앉는다. 나한이 듣고 흥미로워하려나..)
:"그래서 여기서 최고의 신부, 신랑감은 춤과 노래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그거 신기한 풍습이군.
:"가끔은 마을에서 축제가 열리곤 하는데, 당신이 한 달만 일찍 왔으면 볼 수 있었겠지만. 공개적으로 구애를 하는 춤판이 벌어져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춤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덕분에 이 마을은 예술가가 아주 대접을 받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참... (말문이 막힌듯 멀뚱히 있다가 푹 웃는다.)
살기 좋은 것처럼 들리는 곳이군.
외지인에게는 그리 박한데두. (슬쩍...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오면서 모래바람 소리를 들었겠지만, 여긴 더 심해요. 바람이 바위 구멍을 통과하면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리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짧아집니다. 그래서 이 지역 언어에는 줄임말이 많아요."
:"뱃사람들과 비슷한 변화가 사막에서도 이뤄진다니 재밌죠."
자네는 다른 이들이 모르는 걸 많이 알고 있어. 자네가 문화서를 출간하면 잘 될걸세. 몇 가지 안 되는 이야기었지만 벌써 흥미로우니 말이지.
:"뭐, 나도 남한테 들려주려고 정돈한 건 겨우 이 정돕니다. 나머지는 다 역사 얘기라서, 책이 아니면 하기 힘들거든요."
그는 어느새 제 몫의 식사를 다 비우고 배를 두드립니다.
"덕분에 잘 먹었네."
이영:... 언제 제국에 돌아오거든 한 번 보지. 자네가 마음에 들어.
:"엉? 그래요? 뭐...간다고 해도 한 일이년은 더 있어야겠지만. 언젠가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흐름이란 게 다 그런 거잖아요."
이영:그쯤이야 금방 지나가. 세관에 들러 페트라에서 만난 붉은 머리에 붉은 눈을 한 상인과 약조했다고 하면 일러줄걸세.
나는 인연을 의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오늘 자네가 나를 도운 것도 자네의 선택이었지, 그렇지 않나?
: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더니 머쓱하게 웃습니다.
"난 조용하게 식사하는 걸 즐겨서 그런 겁니다. 내가 착해서는 아니고요."
이영:그렇다면 나도 선택하겠다는 거야. 자네에게 다시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하여튼 덕분에 제국에서 하룻밤 잘 일은 해결했으니 좋네요."
이영:(그 말에 입꼬리를 당겨 미소 짓는다.) 딱히 자네가 착하다고는 안 했네.
마음에 든다고 했지.
(식사한 값으로 금화 한 닢을 올려놓고 일어선다.) 언젠간 다시 만나지.
남은 돈은 오늘 이야기 값이네.
:이영은 식사 값을 한참 웃도는 금액을 내고 나섭니다.
이야기 값이면 싼 편이죠.
상단은 다음날 해가 밝자마자 제국으로 출발합니다.
교환한 무역품들이 상하기 전에 제국에 도착하는 것이 관건이라, 낙타를 재촉하는 소리가 사막을 울립니다.
시찰 후로 십 몇일이 지난 어느 날,
:정무를 보고 일어나려는 이영의 앞에 친위대장과 재무대신이 나섭니다.
친위대장이 성난 목소리로 외칩니다.
친위대장:술탄이시여, 재무대신이 국고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재무대신: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돈의 흐름을 관측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자로서 드릴 말씀이 있기에 감히 나섰습니다.
술탄이시여, 부디 들어주십시오.
이영:이 무슨 소란인가. (가늘어진 눈으로 두 사람을 살핀다.)
... 고하라.
재무대신:지금 있는 국고를 활용해서, 건너 대륙과의 무역에 활용해야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생필품의 가격이 점차 오르고 있습니다. 배에 물건을 싣고 잉여 생산물을 보내면 질 좋은 생필품을 싼 값에 매입해 올 수 있습니다.
무역은 시기를 놓치면 이득을 보기 힘든 법입니다.
친위대장:말도 안되는 소릴! 술탄이시여! 막 원정을 훌륭하게 마치고 돌아온 애국자인 친위대원들의 봉급일이 코앞입니다. 이는 선왕의 유지를 망치려는 재무대신의 수작입니다!
위대한 제국의 술탄이 친위대를 소홀히 여긴다는 소문이 돌면 누가 이 왕조를 신뢰하겠습니까!
:두 사람의 뒤에 선 고관대작들 또한 쟁쟁하게 토론을 펼치며 저마다 주장합니다.
이영:재무대신. 무역에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잉여 생산물임이 맞는가?
봉급으로 지급되어야할 분량은 잉여로 판단 될 수 없을텐데 어찌 이런 소란이 일어나는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본다.)
:이영의 판단에 재무대신의 기세가 수그러듭니다.
친위대장이 의기양양하게 자세를 바로잡고, 술탄의 뜻을 받들겠다 외칩니다.
이영:재무대신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안정을 위해 물가를 잡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 다만 활용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도록.
:친위대는 연이은 전쟁에 지쳐있었지만, 술탄이 하사한 봉급과 하사품을 받고 기뻐합니다.
친위대 연병장에는 입대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가득합니다.
이후 친위대장은 병사들의 사기가 대단히 올랐으며, 반란 진압 또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한편 항구에서는 특산물과 무역품의 가격이 치솟습니다.
상인들은 비싼 물건을 가지고도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해 불만이 쌓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정복 전쟁으로 복속국이 된 곳에서 세금을 붙이지 않고 보내오는 물건들이 있기에 시장에 도는 돈의 규모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술탄의 첫 통치,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영은 새 하툰을 매우 아꼈습니다.
두 사람이 약조한 바가 있기에 결코 하렘의 누군가가 공식 석상에 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이영이 직접 부른다면 그것은 반드시 나한이었습니다.
이영:(다른 누구일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나, 종종 나한이 그때문에 나무라듯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이에게서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툰, 나한은 이영을 그리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듯 했으나 금세 그 애정에 화답하듯 부드럽게 녹아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의식적으로 당신에게 거리를 두기도 했죠.
당신이 페트라에서 돌아온 뒤부터 하렘에는 싸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유를 짐작만 할 뿐,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하렘에서 한바탕 큰 소란이 입니다.
아아가 창백한 얼굴로 달려들어와 술탄을 급히 뵙기를 청합니다.
이영:... 무슨 일이지? (신경을 두지 않은 듯 했다가 하렘의 일이라는 생각이 닿으면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일으킨다.)
:"하툰들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크고 작은 다툼은 여태 저희가 해결해왔습니다만..."
"도저히 하인들이 다룰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번 다툼에는 그... ..."
아아의 말 끝이 길게 이어지다 사라집니다.
:술탄이 총애하는 하툰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영:(말끝이 이어지지 못하는 데에 수반되는 이유야 몇 없다. 머리가 지끈거림과 동시에 속이 답답하게 급해진다.)
:하툰들의 싸움은 대개 공국 간의 관계나 지위를 이용해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공국의 귀족이나 왕족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의 뜻을 거슬렀을 때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응당한 복수와, 복수에 이어지는 응징이 따르죠.
아아를 따라 하렘으로 가보면, 나한의 방 근처에서 큰 소란이 일고 있습니다.
"술탄께서 행차하시오!"
칼파의 외침에 모여있던 모두가 일순 입을 다뭅니다만...팽팽한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영:(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한의 방으로 향한다. 싸늘하게 굳힌 얼굴에 쉬이 눈감아 주지 않으리란 뜻이 담긴 채로 돌아본다.)
보석함은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바닥에 떨어진 보석과 장신구 몇 개는 아예 갈라져 있습니다.
벽에 걸려 있던 태피스트리는 바닥에 형편없이 내던져져 있고, 나한과 몇몇 하툰들은 몸싸움이라도 했는지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습니다.
어떤 하툰은 칼파들의 지혈을 받으며 애써 흐느낌을 감추고 있고,
이영:... ... (바닥에 떨어진 장신구에 시선이 닿자 떠오른다. 항구에 시찰을 다녀오며 사 왔던 것이군.)
:어떤 하툰은 가볍게 맞거나 긁힌 상처를 문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고요하게 나한이 서 있습니다.
:머리는 엉망으로 풀어지고, 눈썹 위부터 콧잔등까지 난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 눈가를 적시고 있습니다만, 그는 소매 깃으로 상처를 누르는 것 외에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이영: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군. 잘못을 시인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야.
:이영의 물음에 한 하툰이 울부짖듯이 대답합니다.
"저 여자는 하렘에 온 뒤로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술탄이시여!"
이영:(시선이 나한의 얼굴에 난 상처에 한참을 머무른다. 미간이 좁아든다.)
:"하렘의 생활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은 채 혼자서 궁 안의 사정을 캐내듯 돌아다니기만 하고, 게다가 술탄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영:이상하다? (시선은 여전히 나한에게 둔 채로.
:"저 치가 온 뒤부터 국내와 하렘에 이교도가 번성하고 있습니다."
"출신을 보아하니 그 공국이 바로 이교도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곳이라 하더이다."
"술탄이시여, 부디 이상한 마술에서 벗어나 눈을 뜨소서!"
이영:억측이 과하군. 총애받는 이를 시기하는 것도 이해는 하는 바이나...
:곤란한 얼굴을 한 칼파가 이영의 옆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설명을 덧붙입니다.
하렘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이 나한을 흑마술을 부리는 마녀라고 말한다고 말이죠.
이영:(천천히 다가가 나한의 턱을 살며시 쥐고 든다. 상처를 들여다보고, 외려 저가 아픈 얼굴을 한다.) 의원에게 보여라.
:이 하렘을 이교도에게 내어줄 수 없다며 나한의 입지를 축소시키거나 은근하게 따돌리는 것은 전부터 있어왔다는 말도 이어집니다.
이영의 말에, 한 발 늦게 당도해있던 궁의가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나한의 상처를 살핍니다.
이 소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보고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입니다.
이영:(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 당연히 시기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도가 지나치군.
누가 시작했지?
이교도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자면 이곳의 다른 하툰들도 결백하지 못할텐데. 자신의 가문이 이교에 모든것을 바치고 잠식되었음을 모르지도 않을테고.
... 내 뜻도 전하라 일렀거늘.
:이영의 말에 주변의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이영:그 성미에 입도 벙긋하지 않았을 줄은 알았다. (나한을 잠시 돌아본다.)
:나라가 혼란해지면 사람들은 원인을 찾기 시작하고,
원인이 너무 멀거나 깊을 경우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칼 끝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불운하게도, 아니죠. 여태 나한이 해 온 행동을 생각하면 그가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영:미워하고 싶은 이가 있는데, 건드려도 반응이 없으니 얼마든지 음해해도 된다고 여겼나?
그렇게 성미 나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어.
(칼파를 불러 주도자를 색출하라 명한다.)
이 하렘에서 그런 분쟁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
너희 스스로가 알 것이다. 모두가 공범임을.
:칼파들은 이 하렘을 해가 뜨는 순간부터 해가 지는 때까지 관찰하는 자들. 그들은 금세 이영에게 두어 사람의 이름을 말합니다.
(처형을 명한다.)
:오랫동안 이 나라의 동맹국이었다가, 자발적으로 제후국이 된 유서 깊고 풍족한 공국의 공주들입니다.
병사 몇 명이 주모자를 끌고 나갑니다.
(이곳 또한 제 손 안에 넣고 주무르기를 바랐나.)
:누구 하나 감히 반박하지도, 반응하지도 못하는 하렘을 마지막으로 울리는 울부짖음이 쟁쟁하게 귀에 찔려들어옵니다.
그들의 처형은 신속하게 집행 될 것입니다.
왕명은 결코 번복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죠.
:의원들은 나한의 상처에 길게 약을 바르고, 부드럽게 저민 나무껍질을 얇게 펴 바른 뒤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영:(다가가 볼을 쓸어감싼다.) ... 아팠겠구나.
:두 사람의 주변으로 아아들이 하툰들을 방으로 돌려보내고, 칼파들은 엉망이 된 방을 분주하게 치우기 시작합니다.
이영:(길게 한숨을 내쉰다.) 의심받을 짓을 했어?
겉돌았을 뿐이었겠구나, 싶기는 하다만.
나한:... ... ... (입을 다문 채 한참 바닥만 바라본다. 비탄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시선이 이영에게 가 닿는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영:... 어째서 화도 내지 않느냐. (답답한 마음이 인다. 나를 조금 더 이용해도 좋을텐데, 답답할만치 꼿꼿한 여자다.)
어째서 내게.. 변명하지 않아.
나한:저들은 핍박과 말살이 무엇인기 모르기 때문에, 마녀로 모는 자의 피부를 긋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너는 아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나한:(다시 시선이 떨어진다. 표정을 죽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는 익숙해졌더라도 말을 지어내는 것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처럼. 헛도는 시선이 어느새 조용해진 방을 훑는다.)
...가벼운 신체의 고통에 마음 쓰지 않을 정도로는 압니다.
이영:(그 앞에 무릎을 굽힌다. 시선에 제게 향하지 않으면 좇는 이가 아니었으나, 이 사람에게만은 강요하고싶지 않아서. 그 시야 안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제게로 시선을 당기려 손을 쥔다.)
부디...
... 내게도 네 곁을 주련.
내 곁에 있어주겠다는 약조 비슷한 것을 했으니..
(가볍게 헛웃음을 짓는다.) ... 약조 하나 더 해주련. 조건없이 말이다.
:그는 이영에게 온 마음을 내주는 듯 했다가, 갑자기 문을 닫아버리는가 하면
그러다가도 덜걱 불청객처럼 성을 내버리고 이영의 곁에 앉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가,
해가 뜨면 홀연히 사라지는 달빛처럼 잔잔해집니다.
나한:(이영이 시야로 들어오면 결국 눈이 마주친다.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안타까운 시선이 담겨있는 듯이.) ...술탄께 제 곁을 내어드린다는 약조입니까.
내게 바라는 것이 너무 없어. 다른 어떤 누구와도 달리 말이다. 발리데께서도, 다른 하툰들도, 대신들도, 내 얼굴을 모르는 백성들마저도... 내게 바라는 것에 끝이 없는데.
내 곁을 내어준 네가 바라는 것이, 신뢰하는 것 하나뿐인 게 나는 조금...
... ... (시야가 아래로 꺼진다. 상처 부스러기가 남은 발치. 나뒹구는 선물.) ... 아무리 사랑하여도 채워주지 못하는 곳처럼 느껴져...
... 서운하구나.
나한:... ...저는, (말머리를 내뱉고서도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다.)
(그러다가 물끄러미 바닥을 응시하는 얼굴을 바라본다.) ...술탄께서 어떤 이인지 궁금합니다.
술탄께서도...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이영:어떤 이야기가 듣고싶은지... (발치를 훑던 눈이 위로 솟고, 대신 손이 그 발목을 쥔다.) 내 무엇이 궁금한지.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할지 잘 모르겠구나.
나한:저는 반짝이는 보석도, 금실로 짜인 비단 커튼도 원치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너무 흔하고, 가벼우니까...
(가만히 그대로 무릎을 굽혀 이영의 무릎에 앉듯이 몸을 기댄다. 온 몸에 난 멍이 욱씬거리는 듯 하여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이 궁에서 어떤 것을 보고 자라셨고, 무엇을 좋아하셨고, 누구를 싫어했으며,
이 궁 안에서 술탄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궁이 아니더라도 술탄을 둘러 싼 전부를.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제게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오직 술탄께서만 제게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이영:... (기대어오는 몸을 감싸 안는다. 부서질세라 조심스레. 가까워진 얼굴에 입술을 포개었다 떼어낸다.) 그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나한:(가까워졌다 떨어진 얼굴이, 안도의 빛이 담긴 미소에 젖는다.)
그럼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이영:그리고 약조하마. 너 아닌 누구도... (품 안의 몸을 돌려 완전히 겹친다.) 나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없으리라고.
너만이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어. (숨결이 온전히 겹쳐지도록 달라붙는다.)
나 아닌 그 누구도 모르던 모든 것을 일러주마.
나한:(고개를 느리게 끄덕인다. 한참을 침묵한 채 온기를 느끼다가, 문득 입을 연다.) ...술탄께서는.
이제...사랑을 믿으십니까?
그것이 내게 있으니, 존재한다고밖에 말 할 수 없구나.
나한:...그 사랑이라는 것이...심장을 파먹는 자해와 같은 짓이라고 해도?
(잠시 시선을 맞부딪히지 못한 채, 벌어진 잇새로 숨조차 고요히 흐른다.)
... 네가 내 심장을 갉아먹고, 파내어버린다고해도.
기꺼이 내주고싶구나.
나한:(가만히 손이 이영의 심장께를 짚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술탄의 심장은 술탄만의 것.
누구에게도 온전히 내어주시면 안됩니다.
(밀려난 고개가 어쩡쩡하게 기운다.)
하지만 나한..
(심장을 짚은 손 위로 제 손을 겹쳐누른다.)
이미 가져가놓고, 날더러 어쩌라는 게야..
:그 말에, 하툰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엉망이 된 방을 칼파들이 정돈하기 위해 나한은 술탄의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합니다.
술탄은 꿈을 꿉니다.
대지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비명과 광기에 찬 절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눈 앞에서 한 여자가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툰, 나한입니다.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얼굴이 연극을 반복하듯 미끄러집니다.
피로 더러워진,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뒤를 돌아봅니다.
여태 몇 번이나 이 꿈을 꾸었을까...
그의 표정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나한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꾹 깨문 입술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새빨갛습니다.
(내게서 도망치려해..?)
:그는 당장이라도 이영에게 달려올 것 같았다가, 곧장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뒤로 주춤거립니다.
그가 입을 벌려 무어라 외칩니다.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옵니다.
이영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혹은 입을 떼려는 순간...
어딘가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옵니다.
큰 충격을 받은듯한 감각과 함께 눈 앞이 어두워지고...
몸이 꺼지는 감각이 신경을 뒤덮습니다.
누군가가 이영에게 속삭입니다.
나한:(물끄러미 이영을 내려다보다가, 이영이 눈을 뜨자 고개를 반대로 기울인다.)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이영:... ...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손을 뻗어 쥔다.) 가지마. 가지.. 가지마.
나한:(눈이 잠깐 커졌다가, 그 중얼거림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깜빡인다.)
쭉 이곳에 있었습니다.
이영:(서럽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진다.) 네가.. 나한, 네가..
(끌어당겨 품에 가둔다. 숨이 버겁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지 못한다.)
나한:...제가? (한 손을 뻗어 천천히 이영의 이마와 볼을 쓸어내리다가 덜걱 딸려가 안긴다. 빠르게 뛰는 심장, 불규칙한 호흡.)
(양 손을 뻗어 잡히는 몸을 천천히 두드린다.)
꿈자리가 좋지 않으셨군요.
... 꿈을...
열 걸음도 가지 못하고 잡힐텐데. (작게 웃는다.)
이영:그래... 꿈이었다.. (점차 숨이 가라앉는다. 체온이, 살결이, 체향이 내 품 안에 가득하니 안정이 찾아온다.)
... 온통 불이었지.
불길에 휩싸인 하렘. 도망치던 너는 시체에 걸려넘어지고..
... 내게..
멀어지라 했어.
어찌 하기도 전에 깨어버렸다.
나한:그렇다면 멀어지지 않으셨군요. (달래는 듯한 시선이 이영을 향한다.) 그렇지요.
내가 어찌했으면 싶으냐.
나한:... ... (잠시 답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술탄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셨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실 것 아닙니까.
이영:...그렇다면 난 네 곁에 있을테다. (품 안으로 파고들며 웃는다.) 이제 나를 나보다 잘 아는구나.
... 너는?
내가 어찌 했으면 싶어? 네 생각말이다.
내가.. 네 곁에 있기를 바라는지.
나한:꿈 속에서 제가 그리 말했다면 필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허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습니다.
술탄께서 저를 믿어주시고, 아껴주시니.
어찌 떠나라 말씀드리겠어요. (손 끝으로 찬찬히 눌린 머리를 쓸어넘긴다.)
이영:... ... (여전히 부릅뜨고 있던 눈을 내리감는다.)
함께하면 내가 필시, 불행하게 죽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나한, 나는...
...모르지 않겠지만, 나는. 개의치않아.
나한:(잠시 입을 뻐끔거린다. 무어라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다시 신중하게 목소리를 흘려보낸다.)
...왜...그런 것을 감당할 정도로...저를 사랑하십니까.
저는 술탄께 아무것도 내어드리지 않았는데.
내가 보인다.
이영: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술탄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배제되고 겉돌았다.
나의 착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나는 네게서 나를 본다.
나한:... (가만히 이영을 바라본다. 그런가, 이 감정의 시초는 동질감인가? 이 자가 외로워보여서?)
이영:그리고 너는 종종, 먼 곳을 보지. 네 앞에 놓인 그 어떤 것도 너를 잡아끌지 못하는 것처럼.
새장에 넣어둔 매처럼.
나한:저는, (입을 달싹거린다. 그렇다면 나도 이 사람의 눈에 그리 보이나. 외롭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나...) ...그렇습니까.
그게 나를 너무도... ...
... 이 마음을 어찌 말하면 좋을까.
너는 나를 불안하게 해.
안타깝고, 안쓰럽고. 불안해.
나한:그것은 쉬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진귀한 무엇에 대한...갈망입니까?
이영:어디에도 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철저한 이방인마냥.. 위태로이 있는 널 보면 내 생각이 난다. 그때의 나를 떠오르게 해.
...
그저...
위로하고싶고, 달래주고싶고, 안아주고싶어져.
널 사랑해 줄 이가 있다고, 말해주고싶어진다.
... 내게 그런 것이 필요했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겠지.
나한:(이어진 말에 눈동자 속이 일렁인다. 완전한 이방인. 그 누구도 아는 이가 없고, 찾는 이가 없는...누군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잠시간 말을 잃은 시선이 이영의 얼굴을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눈썹 끝에 힘이 풀려, 마치 애달픈 무언가를 보는 듯한 표정.)
... (아무것도 묻지 않는 일방적인 불길이 피부를 녹일 때마다 본분을 잊게 된다. 나는...)
(차마 무어라 답하거나 되묻지 못하고 천천히 머리를 묻어버린다. 품을 안은 두 손에 잠시 힘이 들어간다.) ...예.
힘이 됩니다. 술탄께서 그리 말해주시는 것이.
기껍습니다.
(그러더니 다시금 고개를 들고 이영의 입술에 짧게 입맞춘다.) ...2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영:... ... 네가 나의 반려가 되는 것 말이구나.
(입술을 다시 머금는다. 욕심은 항상 네 것의 곱절이라 한참을 얽고 물다가 입술을 떼어낸다.)
내가 네 자리가 되어주마.
내 곁이 네 자리야.
:다정하게 속삭이는 소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새가 내려앉을 나무를 찾듯이.
그렇게 술탄의 통치는 2년 째에 접어듭니다.
:까다로운 정무의 처리 방식에는 금세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남아있지요.
나라를 다스린다는 건, 키 큰 갈대들이 빼곡히 심긴 풀밭을 헤쳐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억센 줄기가 살을 찢습니다.
흔들리는 풀숲이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지, 풀 사이 숨어있는 독사의 움직임일지 알 수 없습니다.
여전히 선대 술탄의 자취가 남은 왕궁도, 소문이 모이는 자리인 성전도, 그리고 어느 외국인과 나누었던 약속도 이영의 뒤를 좇습니다.
시찰을 나갈 장소를 선정할 수 있습니다.
이영:(지난 소동이 여전히 신경이 쓰이기에... 시찰을 나간다며 소란스레 일행을 데리고 나간 뒤
왕궁
으로 돌아온다.)
:왕궁은 언제나 정향과 장미의 향기가 흐릅니다.
우아한 건물이 유려한 선을 뽐냅니다.
아라베스크가 조각되어있는 웅장한 문을 지나면, 마치 돛을 올린 범선 같은 곡선의 건물이 풍채를 드러냅니다.
중앙에는 왕이 각종 귀빈과 외교사절을 만나는 접견실이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수 많은 탑과 건물이 방사형으로 뻗어있습니다.
건물의 삼면은 해안과 가깝고, 한 쪽 면은 거의 해안 위에 세워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합니다.
:이곳은 크게
접견실과, 왕족들의 내실인
하렘으로 나뉩니다.
왕궁의 안과 밖을 상징하는 공간이죠.
이영:(우선은
하렘
으로 다가간다. 미리 준비해둔대로 아아 복식으로 환복한 뒤 숨어들기로 한다.)
과연 얼마나 출신 성분을 잘 숨겼는지...
적절한 판정을 해봅시다.
이영:(흠.... 조심조심 숨어들어본다......)
은밀행동
기준치: |
20/10/4 |
굴림: |
39 |
판정결과: |
실패 |
이 궁에 이영과 같은 풍채를 가진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스쳐지나가는 정도로는 괜찮겠지요.
이영은 홀로 하렘에 향합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칼파들이 새로 들어온 듯한 여인들을 치장하기 위해 각종 장신구와 아름다운 옷가지, 화장품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영:(성큼성큼 걷다가, 지나는 아아들의 걸음걸이를 따라한다. 지난 번에 봐두었던, 그 난리 중에 상처도 입었으나 주동자는 아니라 처형을 피한 하툰의 방을 찾는다.)
:이 하툰은 제국 귀족의 여식으로, 하렘에 처음 들어올 적부터 자신만만한 태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제법 하렘 내에서 인망이 있는 모양인지, 몇몇 하툰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군요.
(옷매무새를 고치는 척 벽에 기대어 서서 듣는다.)
:하툰들은 최근 하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술탄의 눈에 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아. 꼭 반려가 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선왕께서도 하렘에 자주 기거하시곤 했잖아?"
"자식이 많기로 유명하셨죠. 누가 누구의 배에서 태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에요. 술탄께서도 그러시려나요?"
"하렘을 자주 찾으실 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곧 그 여자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지실거야. 무엇이든 금세 싫증을 내시잖아. 그러니 우리도 나름 하렘에서 인생을 찾아야 돼, 알겠니?"
"그런데...우리는 술탄께서 즉위하시자마자 이곳에 왔잖아요. 그럼 선대 술탄의 하툰들은 전부 어디로 가는 거죠?"
"모두 처형하시는 걸까요...?"
:잠시 웅성임이 커지다가, 한 하툰이 일갈합니다.
"멍청하긴, 선왕의 반려들은 전부 구궁전으로 가. 하렘은 술탄의 하툰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처형했다간 귀족들의 반발이 말이 아니겠죠."
그리고는 금세 잡담으로 말머리가 비틀어집니다.
한동안은 새 하툰들이 들어오느라 정신이 없을테니, 밀리지 않도록 외모를 가꾸고 치장을 바꾸는 것에 집중하라는 둥...
이영:(구궁전... 확실히, 걸음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딱히 마주하고 싶지않은 얼굴들도 많고, 그들도 나를 꺼리겠지 싶었기에.)
(시찰이니 가봐야할 곳이 많군...)
(나한의 방에 잠시 시선을 둔다. 잠시 들여다 보기라도 할까..)
:확실히, 구궁전은 왕궁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에 말이나 낙타를 대동해야 한다는 것이 약간의 단점이기는 합니다.
나한의 방은 소란스러운 다른 하툰들의 방과 달리 상당히 조용한 편입니다.
나한 또한 그런 것을 싫어하지 않는 듯하여, 직접 바다와 인접한 정원이 내다보이는 방을 골랐었죠.
나한은 다 먹은 포도 줄기를 들고 털이 복슬거리는 고양이와 놀고 있습니다.
무릎 걸음으로 서서 줄기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중이군요.
이영:(살풋 미소짓는다. 저러다 고양이에게 긁히겠군.)
:그 말대로, 고양이가 금세 발톱을 세우자 나한은 포도줄기를 뒤로 감춥니다.
나한:안돼. 온 몸에 털이 묻잖아. 치우는 게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야. (고양이를 퍼담듯이 안아들고는 폭신한 배에 얼굴을 묻었다가 든다)
... ... 흥...
(걸음을 옮겨 접견실
로 향한다. 오늘 밤에는 고양이를 치워두라고 해야겠어.)
:이영이 가볍게 흥, 하는 소리를 내고 돌아서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한이 고개를 번쩍 들어 문간을 바라봅니다.
나한:(금방 정색하고 문간으로 빼꼼 보이는 아아에게 시선을 던진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얼굴이 보이게 고개를 살짝 밀어넣는다. 가늘게 뜬 눈으로 보더니) 시찰중이다.
제법 즐거워보이는구나.
나한:(문 안으로 들어온 얼굴에 잠깐 눈을 꿈벅거렸다가, 이영의 머리에 기묘하게 얹힌 모자와 아아의 복장을 보곤...잠시 말문을 잃는다.)
시찰을... ...
이영:쉿. (입가에 손가락을 세워 소리내더니)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나한:(미묘한 표정이 되었다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어쨌는지 한참을 소리내어 웃는다.)
나한:그,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신다 한들 이 궁의 누가 속는단 말인가요.
이영:... ... 술탄의 복식으로 다니는 것보다는 도움이 된다.
적어도 여기까지 들키지 않고 왔으니.. (바깥으로 고개를 빼 둘러보다가, 이렇게 있는 게 더 수상할 것같아 아예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 웃지만 말고.
나한:제가 무얼 해도 변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텐데요.
... ...
(무어라 작게 꿍얼댄다)
나한:(다가가더니 비틀어진 모자를 살짝 바로잡는다.)
(바짝 다가온 얼굴을 뻣뻣하게 내려다본다.)
나한:아아들은 대개 풍채가 좋지 않으니 이 옷을 헐렁하게 입는데... (하고 이영의 차림새를 다시 들여다보더니 또 입을 다문 웃음소리를 짧게 냈다가)
잘...어울리십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바짝 조여맞는 옷을 한 번 내려다본다.) ... 됐다. 얼굴 보았으니 가련다.
시찰은 바쁘니 말이야, (중얼중얼 구시렁구시렁) 그리 길게 시간을 낼 수 없단 말이지. 네 말대로 들키기 전에...
나한:예, 알겠습니다. 그러니 빨리 이 방을 뜨고 싶으시다는 거지요. (발뒤꿈치를 들어 볼 끝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어깨의 옷깃을 두어번 가볍게 털고 물러난다)
이영:... 아아와 눈이 맞았단 소문이라도 돌면 어쩌려고..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볼을 문지르며 중얼댄다. 허나 입꼬리는 흐릿하게 올라가는 중.)
나한:술탄께서 잘 말씀해주시겠지요. 하툰들은 좋다구나 할테고요. (그러더니 금세 옆에 다가온 고양이를 안아올려, 앞발로 이영의 입술을 톡톡 친다)
다녀오세요.
(고양이를 가는 눈으로 내려다보더니 아랫입술이 댓발 나온다.)
다녀오마. (부루퉁한 얼굴로 방을 나서려다 몸을 돌려 돌아온다. 허리를 감싸안고 입술을 붙인다. 사이에 낀 고양이가 그르릉대는 것은 신경쓰지 않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찰나 후에 웃으며 방을 나선다.)
:소문이 두렵지 않으신가보군요, 하고 웃음기 서린 목소리는 뒤로 하고 이영은 접견실로 향합니다.
가는 내내 이영을 뒤늦게 알아본 하인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죠.
접견실에서는 외부 사절이나 귀빈을 만납니다.
외부공간에는 접견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창이 달린 방 하나가 있습니다.
우아한 레이스같은 살이 달린 긴 창 너머에는 무엇이 아른거리고 있고, 그 앞에서 아아 한 명이 소파의 먼지를 털고 있습니다.
창 안에서는 발리데 술탄이 다른 대신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당당한 왕처럼 보이는군요.
게다가 대신들은 당연하다는 듯 예를 갖춰 발리데 술탄의 옷자락에 입을 맞춥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는군요.
신중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이영이 술탄이 된 이후에도 마치 왕권을 잡은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이영:(언제나 나를 자신의 도구로 여기던 여자.)
(귀를 기울여듣는다.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이영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금 앞으로 나서는 순간, 발리데 술탄의 시선이 이쪽을 향합니다.
그리곤 싱긋 웃으며 이영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네요.
이영:(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본다. 또 읽혔군.)
(기분 나쁜 여자...)
(웃긴 꼴을 들키고싶지 않으니 자리에서 벗어난다. 환복해야겠어.)
:이미 다들 안 마당에 아아의 옷을 입고 있을 필요는 없죠.
이영이 환복을 명하면 하인들이 술탄의 옷을 가져와 환복을 돕습니다.
이영이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마당에, 발리데 술탄이 끼어들 곳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여전히 아아들이 접견실을 청소하고 있고, 대신들은 이미 돌아간 뒤군요.
"다들 공무를 보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발리데께서는?
:"아직 위에 계십니다. 종종 저 곳에서 직접 대신들을 만나 이야기하시곤 합니다."
"접견실은 발리데 술탄께서 짧은 섭정 기간 동안 정무를 보기 위해 사용하시곤 했으나..."
"파디샤께서 등극하신 뒤로는 저렇게 가끔 대신들을 직접 만나십니다."
"대신과 발리데께서 계실 때에는 위층에는 출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아는 다시 고개를 깊게 숙이며 물러납니다.
차를 마시던 발리데 술탄의 시선이 이영에게로 향합니다.
이영:발리데께서 여직 접견실에 행차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발리데 술탄:이 모든 것이 제국과 파디샤를 강건히 유지하기 위함이지요.
발리데 술탄:대신들은 쉽사리 고개를 돌리지 않으니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법입니다. 술탄이 온전한 파디샤가 되기 위해서 말이지요.
이영:... 미진한 아들 탓에 쉼없이 바쁘시니 죄송스럽습니다만.
발리데 술탄:내 걱정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내 한 몸의 안위보다 이 제국의 번영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니까요.
이영:아들을 불효자로 만들지 마세요, 어머니.
발리데 술탄:(눈썹을 살짝 들어올린다) 불효자라 함은?
이영:이제 편히 지내셔야지요. 느긋하게 말입니다.
(... 발리데의 의중을 떠본다.)
(심리학 판정해보겠습니다... 이 여자를 움직이게하는 본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
심리학
기준치: |
40/20/8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심리학
기준치: |
40/20/8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발리데 술탄은 선왕을 사랑했고, 충성했고, 그의 말대로 이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도 불사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왕이 죽은 지금, 무엇이 발리데 술탄을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진실로 발리데 술탄은 이영을 위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누가 술탄이라도 상관 없는 자일지도 모릅니다.
이영:(당신은 무엇을 위해 움직입니까? 일말의 모성입니까, 아니면 권력을 향한 집착입니까?)
발리데 술탄:물론입니다. 마침 칼파들이 내 물건을 구궁전으로 옮기고 있죠.
파디샤가 국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무엇보다, 언제든 파디샤의 마음에 드는 하툰이 생긴다면 그 방에 들어올 수 있도록.
... 있습니다. 허나 기다리는 중입니다. 조급함은 잊고 기다려주시지요.
발리데 술탄:(그 말에 눈이 잠시 반짝인다.) 그렇군요. 요즘 총애한다는 그 하툰입니까.
좋은 일입니다. 마음이 정해지는대로 시일을 잡지요.
이영:...예. 아직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난다.)
:발리데 술탄은 찻잔을 내려놓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이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갑니다.
그렇군요,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고 나면...
새로운 발리데 술탄은 그 사람이 되겠지요.
:이영의 기분처럼 오후의 햇빛이 부드럽게 왕궁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술탄께서 납시니 길을 열라!"
아아의 호통이 대전을 울리면, 열띤 토론을 펼치던 대신들이 입을 다뭅니다.
양쪽으로 갈라선 두 사람은 발리데 술탄과 재무대신입니다.
`우주 :(곧게 편 어깨, 꼿꼿한 허리. 꿰뚫어보는듯한 눈으로 그 중심에 선다.)
재무대신:제가 술탄께 의논 드리고자 예산안을 가져 왔습니다.
일축하여 말씀드리자면, 하렘에 배당된 예산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등극 초기이기도 하고, 발리데 술탄께서도 하루빨리 반려를 들이시고자 하렘의 관리에 신경을 쓰고자 함은 알고 있습니다만...
다른 하툰들이 사익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이영: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듣는다.)
사익이라 함은?
재무대신:... (잠시 발리데 술탄과 이영을 보더니 눈을 내리깐다)
하툰들이 과한 치장을 위해 쓰거나, 개인적으로 선물이나 취미용 물건 따위를 구매하는 데에 쓰는 비용입니다.
이영:그런 일들이 잦은가? (정리된 내용이 있으면 내놓으라는 듯 손을 내민다.)
재무대신:최근 들어 매우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영에게 예산안이 정리된 내역을 내민다)
발리데 술탄:재무대신 또한 이유를 충분히 알면서 그런 말을 올리는군요.
선왕께서는 찾는 하툰들이 대게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의 파디샤를 위해서는 하렘 전체를 새로 단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영:(내역을 살핀다. 누가 사익으로 고려될만큼의
취미생활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발리데 술탄:술탄이 전 세대의 것을 물려받기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예산을 줄이면 하툰들이 하렘 내부에서 벌이는 싸움의 규모가 커질 겁니다. 왕실의 사유재산을 재무대신이 마음대로 주무르려 하면 안되지요.
:확실히, 하렘에 배당된 예산은 선왕 때보다 3할 정도 많습니다.
이영:(대조된 내용을 보고 눈썹을 들썩인다.)
:어떤 하툰이 주문을 했는지는 적혀있지 않으나, 진귀한 동물들과 최고급 수입 직물, 보석 따위를 들여온 내역이 확실히 많습니다.
이영:(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말할 수는 없군. 누구 짓인지...)
:하렘 전체가 화려하고, 젊은 하툰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유행하기는 하죠.
어쩌면 필요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하툰 또한 왕족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품위 유지는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고요.
이영:... 지금... 예산안을 벗어나게 사용하고 있나?
딱 맞춰 사용하고 있다면 그도 문제야. 누군가 조절을 해서 채우고 있을지도 모르지.
:대신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술탄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영:칼파들에게 각 하툰의 재정 사용 내역을 보고하도록하고, 두드러지게 사치한 하툰이 있다면 알리도록. 평균이 높다면... (제 턱을 문지른다. 괜한 분란이 이는 것은 좋지 않다. 그들도 귀족이며 왕족이었던 이들. 가진 것을 뺏기는 데에는 익숙지 않고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또... 누가 당할지도 뻔하다.)
이는 감당해야할 문제일터. 발리데의 말씀대로 하툰들의 분쟁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으니.
횡령의 소지가 보인다면 처벌토록 하여 기강을 잡고, 그렇지 않다면 현행을 유지하겠다.
:재무대신이 지당하신 결론이라며 고개를 숙이고,
발리데 술탄은 조금 불만스러워 보이지만 술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발리데 술탄은 이미 저물어가는 달. 새로운 발리데 술탄이 오르면 자연스레 물러날 사람이기도 합니다.
상인들은 잠시 침체되는가 싶었던 경기에 고급품이 활발하게 돌아 목돈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이영:(의중을 모를 사람이기도 하다. 또 제 의견을, 멋대로...)
:그러나 대신들의 조사에 따라 과도하게 금품을 사들이는 하툰들의 예산이 엄중하게 관리되기 시작하고,
납품처를 찾지 못한 직물들은 조금 가치가 떨어지는 형태로 재가공 되어 민간에 풀립니다.
남은 예산은 친위대나 귀족들을 초청한 연회, 지원사업 따위에 흩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돕니다.
최근 민간에 고급 직물로 만든 장신구가 상당히 인기가 있어 무역이 되려 활발해졌다더라, 하는 것과
하툰에 간 여식들이 충분히 치장을 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표시한다는 귀족들의 투덜거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탄이 나라를 알차게 일구고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술탄이 측실에 소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귀족의 지지도가 3 떨어집니다.
그렇게 술탄의 통치도 400일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발리데 술탄의 거처가 구궁전으로 옮겨졌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곳에는 아직도 이영의 형제들의 어머니 되는 자들이 살고 있으며,
발리데 술탄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장부적 기질을 타고 났습니다.
이번 시찰부터 하렘 구궁전의 조사가 가능합니다.
이영:(어디로 향할 예정이냐는 물음에 혼자 다녀올 곳이 있다며 북쪽의 항구까지 동행하라 명한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 하지만 제 입으로 기다리겠다 했으니,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하며... 비밀통로
를 찾아간다.)
:이영에게 외국인이 은밀히 알린 비밀통로는, 친위대 훈련소 근처에 위치한 작은 항구입니다.
친위대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데에 쓰이는 곳이죠.
곁길로 들어서면, 친위대 숙소의 하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곳에 작은 길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 안쪽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여럿 있고, 외국인들의 판자촌이 가득 지어져 있습니다.
판자촌을 감시하는 듯한 불량배처럼 보이는 몇 명이 어슬렁거리는 중입니다.
이곳에는 외국인 친위대가 다수 거주하고 있으며,
:제국에 망명하고자 하는 외국인과 국적을 막론한
불량배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영:(이곳은 알아볼 수도 있는 이들이 있다.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둘러본다. 어디에서 만나야하지? 그 자도 친위대였던가. 북쪽 항구 곁길이라고 했었는데...)
:외국인 친위대 중 이영을 알아보는 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굴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저 자가 이영에게 이 곳으로 와달라고 한 자 같은데...
이영:(외국인 친위대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간다.)
(이 자가 맞나?) 이보시오. 물을 게 있네만. 북쪽 항구 아래 곁길이 어디요? (떠보듯 묻는다. 시선은 곧게 그의 눈을 향한다.)
:그는 이영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는가 하더니 이쪽이라며 외진 곳으로 향합니다.
이영:(맞군. 그나저나 이런 곳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따라간다. 의심을 거두지 않아 망토 안쪽으로 검을 쥔 채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영을 돌아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침내 와 주셨군요..."
:"아닙니다...제가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어 뫼시긴 했지만...이 이야기가 제게도 어려운 것이라..."
"...부디 이 이야기를 들은 뒤에 저와 같은 외지인들을 해하지 않겠다 약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영:... 그리 중한 이야기라면 해 보게나. 다만... 자네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그 설명이 되었다 여겨질 때에. 그 약조를 지키지.
"... ...선왕께서 암살 당하신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그 과정에서 외국의 세력이 개입한 듯 합니다."
외국의 세력?
(그럴리가. 내 손으로 그의 술에 독을 탔는데.)
"공국 사람들끼리 왕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간 뒤에 얼마 되지 않아 선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공국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은밀하게 제국을 벗어나 도망쳐야 한다는 말을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몰래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영:자세히 고하라. (낌새를 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번엔 무언가.)
:"마치 제국에 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그것이 선왕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이영:그러니까 자네 말은, 공국에는 예언자라도 있거나, 혹은... 제국에 개입을 하고 있다... 이말 이군.
이영:(전자는 들어서도 이상한 점뿐이다. 공국과 나의 시해는 연관이 없으니 다만... 후자는 마음에 걸려.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그렇습니다. 선왕은 분명히 이영이 죽였는데...
이영:(이 자가 말하는 공국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본다. 특별히 떠오르는 연결고리는?)
:그 사이에 어떤 개입이 있기라도 했다는 말일까요?
지능을 판정합니다.
이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는 공국 중에서도 나한이 온 곳의 사람 같습니다.
유난히 발음이 또박또박하고 고저가 없는 말투...
:거기서 연결지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한이 지나가는 것처럼 했던 단편적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나한:-제가 태어난 곳에는 넓은 초원이 뻗어 있는데, 서민들은 그곳에서 풀뿌리를 캐거나 열매를 따기도 합니다.
하지만 토양이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독초 군집이 모여있기도 하죠.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풀과 꽃, 맛이 없는 것, 그리고 맹독이 있는 풀과 꽃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영:(그런 걸 너도 배웠느냐, 물었었지...)
나한:그건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
...때로 희귀한 독초를 발견하면 그것을 비싸게 팔 수도 있었죠.
이 나라 사람들은 독초를 금세 구분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라도 그런 것을 먹고 죽는 일은 드뭅니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아주 가느다란 홑실입니다.
(... 내가 구한 독을 거기서 가져왔다면 말이 된다. 그들은 누군가 독살을 꾸민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선왕이리라 단정지을 수 있었던 건...)
(... 그저 들어맞은 뜬소문일지도.)
:아직 무엇이라 단정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낱 친위대원이 내밀한 이야기를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영이 사용한 독이 공국에서 난 것이라고 해도, 그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여기까집니다."
"...괜한 이야기로 술탄을 심려케 한 것은 아닌지..."
이영:... 불안한 일은 모르고 덮쳐오는 것보다 미리 아는 것이 좋지.
잘 기억해두겠네.
:친위대원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나오시라며 먼저 자리를 뜹니다.
이영:(잠시간 기다리며 주위를 살핀다. 누가 듣지는 않았을까.)
:이영이 주변을 둘러보면,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마치 폭풍전야 같군요.
이영:(... 역시... 괜한 소리를 들은 것 같군. 이윽고 자리를 벗어난다.)
이영:(제국을 떠나라... 일전에 페트라에서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무언가 이상한 일들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휘두르는 것을 보기도 했고.
한동안은 이영 그 자체가 검인 채로 살기도 했습니다만.
술탄이 된 이후로는 조금 다릅니다.
술탄은 그 자체로 제국이며, 그렇기에 모든 칼 끝은 이영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때론 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뱀의 혀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영:(이제는 칼끝이 전부 내게 향한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무언가 이영이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 없습니다.
그 속을 파보면 어디에 도달할 지...
이영:(도달하면 안되는 곳에 도달할까, 그런 걱정이 한켠에 자리잡은 채로...)
(돌아 나가다 불량배와 시선이 마주친다.)
:불량배는 이영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하더니...
...어라? 저 얼굴은...
친위대 숙소에서 마주쳤던 말단 친위대원입니다!
그는 이영을 곧장 알아봤는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이영:(눈을 가늘게 뜨고 따라간다. 저 녀석이 왜 여기?)
이봐, 거기 서.
그를...쫓아갈까요? 아니면...
(켕기는 것 같았던 얼굴이 신경쓰여. 따라붙는다.)
:어차피 뛰어봐야 이영이 왕궁에서 부르면 그만인데...
추적, 또는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이봐, 거기... 아이고.
이영:(느긋한 걸음으로 두리번댄다.) ... 어디로 간 거야?
사라져버리고... (구시렁대더니 돌아간다. 친위대에서 찾으면 되겠지.)
:본인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알게 되겠죠.
이영은 판자촌을 빠져나옵니다.
(좋게좋게 하면 덧나나. 요즘 녀석들이란. 군기가 빠졌어. 차근히 걸어 돌아간다.)
(... 내일 다시 와 볼까.)
:뭔가 볼일이 있는 거라면 내일이나, 언제라도 판자촌에 와 있겠죠.
이영은 우선 궁으로 돌아옵니다.
(궁안갓음)
(친위대에서는 조금 떨어진 방향의 숙소를... 호위가 급하게 수소문해 구하고..)
:호위는 술탄이 묵을 숙소를 구하느라 제법 진땀을 뺀 모양입니다.
이영이 방문했다는 것이 알려져도 귀찮으니, 적당한 숙소(이영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누추하겠습니다만)의 정문으로는 호위가, 뒷문으로는 이영이 들어서 묵습니다.
이영:(그런 줄도 모르고... 기다리는 동안 줄담배를 태우며 적당히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날쯤 돌아온 호위에게 아까부터 졸리다고 의도없는 면박도)
:호위는...계획에 없던 이영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연신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침상에 놓인 쿠션은 솜이 죽었고, 어딘가 냄새도 나는 것 같지만...
별 수 없이 잠을 청하는 수 밖에요.
이영:페트라때보다는 훨씬 낫군... (쿠션을 툭툭 두드린다.)
(... 언질없이 궁을 비워 걱정하지 않으려나...)
이영:(걱정스러운 맘이 든다. 벌써 보고싶고...)
(... 고양이랑 놀다 잠들었으려나.)
(하지만 보통 가지 못하는 날엔 전언이라도 남겼으니까...)
(... 안 나타나고 전언도 없으면 걱정... 안 하려나...)
(... 해주겠지... 걱정...?)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이 잠들었으려나...?
오히려 편안해하나...?
(섭섭해벌써)
:어쩌면 아주 편하게 자고 있을지도 몰라...
되려 이영만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치는 밤입니다.
이영:(나한 생각에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뒹굴거린다...)
그러다 깜박 졸았는지, 조금은 잠을 잤는지...
어느새 날이 밝습니다.
(... ... 나한... 보고싶네...)
이영은 다시 걸음을 재촉해 판자촌으로 향합니다.
이영:(두리번두리번. 버적버적. 누가봐도 찾을 놈 있는 사람처럼 길가로 내려온다.)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벽에 기대서 주변을 으슥하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놈!
이영:(너구나!!!! 성큼성큼 다가가서 어깨를 꽉 쥔다.)
:이영은 큰 보폭으로 다가가 친위대원?의 어깨를 쥡니다.
:그는 어깨가 잡히자 흐아악, 하고 튀어오릅니다.
이영:우리 어제 만났지. 그 전에도. (씩 웃어보인다.)
:"저...저저저저....저는...저는..."
"제가 그게..."
"하, 한번만 봐주십쇼..."
"부업을 한다는 것을...예..."
이영:... 오호, 그랬나? (눈썹을 들썩인다.) 난 자네가 인사 없이 도망가서 그랬던 건데.
그럼, 무슨 부업을 하고 있나?
"... ... ...어...아, 알고 오신게 아니었습니까...?"
괜히 말했다, 그런 표정으로...
이영:(딱 걸렸구나, 이 녀석아. 기분좋게 웃어보인다.)
낱낱이 고해보거라.
: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쥐어 짜듯이 내뱉습니다.
"그, 그게..."
"저는...이 판자촌에서 몇 푼 돈을 받으면서...예...자치 치안을...봐주고 있습니다..."
"호, 혹시 언제 전사라도 할지 모르잖습니까..."
"급여만으로는 생활을 하기도 힘들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 근본적으로 돈이 필요하니까요..."
"...친위대에서 말하는 대의나 명예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이영:그것은 빤한 이야기지 돈이 목적이 아니면 더 이상한 거니까.
흐음. (잠시 대원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군법 상...
이런 부업은 허락되지 않겠지?
물으나 마나입니다.
당연히 안 됩니다.
이영:하지만 자네에게는 다행이지. 나는 군법 바깥에 있고...
(입꼬리를 올린다.) 굳이 사사로이 처벌할 정도로 깐깐한 작자도 아니거니와...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네가 하는 일 자체는 불법도 아닌듯하니. 그렇지 않나?
혹시... 불법적인 치안 관리인가?
:그는 희망을 가졌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세차게 젓습니다.
"저, 절대 아닙니다!"
"외국인들이라고 괜히 해코지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겁니다, 예."
"이, 이것도 국민을 지킨다면 국민을 지키는...?"
"...일...? 이라고...?"
이영:(납득한듯 끄덕이며 손에서 힘을 푼다.) 그렇다면 자네의 딱한 사정도 알았으니, 더더욱 고발할 이유는 없지만...
이영:자네, 어제 내 얼굴을 보고도 도망쳤지.
술탄과 눈이 마주쳤는데 내빼다니, 그것은 괘씸하여 말이야. (웃는 얼굴에 점차 살기가 든다.)
"... ...어, 엄벌하실 줄로만 알고..."
이영:그건 납득 못하네. 대신 면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기회를 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나?
"아니, 알겠습니다..."
"제가 뭔가 특별히 시키실 것이...?"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게.
... 자네도 하렘을 알겠지.
내 가장 총애하는 하툰은 보석보다 이야기를 좋아하거든.
이영:그러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용서해주지.
어때, 나쁘지 않지?
:그는 이영이 마음을 바꿀세라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 아. 그럼...친위대 숙소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괴담을..."
"술탄께서는 부두 좀비...를 아십니까?"
... 부두 좀비?
아니, 처음 듣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부두 좀비는 죽었는데 살아 움직이는 자들을 말하는데..."
"제국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시체들은...제대로 묻거나 매달지 않으면 죽은 영혼들이 저주를 걸어 휘리릭, 일어난다는 겁니다."
"죽은 채로 주둔지까지 터벅터벅 걸어와서 자는 병사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는 거죠!"
"실제로 그렇게 찢긴 시체를 본 적도 있습니다. 암."
이영:아, 그래. 그래서 제국에서는 시체를 처리할 때 전부... (잠시 생각을 멈춘다. 이런 식으로 타당성을 부여하나.)
... 찢긴 시체도 본 적 있다고?
:"예에. 뭐, 누가 사지를 잡아 뜯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아마도 어떤 미친 병사들의 소행이라고 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부두좀비에 당하고 싶지 않으면 시체들이 걷거나 기어오지 못하게 제대로 묻어놔야 한다는 거였죠."
그는 으, 하고 몸서리를 칩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날만큼 삽질을 열심히 했던 적이 없습니다."
"요즘도 열심히 합니다."
"그 때는 죽을만큼 했습니다."
(눈을 홉뜨고 본다.)
(썩 성에 차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반려에게 전해주기에는 너무.. 잔인한 이야기 아닌가?)
시체니 좀비니 하는 걸...
:여자에게 인기 없는 남자들이나 좋아하는 내용이죠.
이영:자네는 잠자리에서 여자에게 그런 얘길 하고 싶은가?
(쯧쯧 혀를 차곤...)
됐네. 더 건질 이야기도 없는 것 같고.
자네는 이 근방의 치안 유지에나 힘써야겠군.
이영:(재미없는 놈... 쯧쯔... 혀를 찬다.)
이영:다음에 만날 때까지는 좀 더 재미있는 얘기를 알아두도록 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판자촌을 벗어난다.)
이래서야, 원.
오늘 해 줄 이야기는 못 건졌군요.
이영:(떼잉.... ....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왕궁으로 돌아간다.)
(얼굴까지 기억에 남은 친위대원이라 앞으로도 종종 보이면 불러세우고 재미있는 얘기 없나 물어볼 꼰대 궁리나 한다)
이영은 느긋하게 궁으로 돌아옵니다.
궁으로 돌아올 때는 이미 노을이 지는 저녁입니다.
:노을이 지는 때면 언제나 그랬으니,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영:(노을에 물드는 하늘빛 머릿결. 그 뒷모습을 기대하며 나한의 방으로 향한다.)
:이영이 방으로 들어서면, 기대대로 나한은 창가에 걸터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곤 인기척이 나자마자 뒤를 돌아봅니다.
나한:(이영을 보자 창가에서 곧장 내려와 다가온다.) 폐하.
이영:(가만 미소짓는다.) 또 하늘을 보고 있었느냐.
나한:(잠시 민망한 기색이 내비쳤다가, 중얼거리듯이 답한다.)
찾으신다는 기색이 없으시기에 아아에게 물었습니다.
이영:내가 당연히 너를 찾으리라 생각했어? (웃음기 묻은 얼굴로 내려다본다. 사랑스럽다. 나뿐 아니라 너도 어느새...)
내 생각뿐이었구나.
그렇지?
나한:...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양이도...
이영:으음? (눈썹이 비틀린다. 고양이 소리에 시선이 떠나 고양이를 찾는다.)
나한:(어느새 이영의 발치에 다가가 몸을 부비는 고양이를 내려다본다.)
이영:(시선이 따라간다. 짧게 울며 올려다보는 것을 보고 슬쩍 웃는다.) 저 녀석이 나를 찾아서 그랬다?
(허리를 감아쥐고 당긴다.) ... 나는 네가...
내 생각을 했을까. 오지 않아 걱정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면 어쩌나...
... 생각도 나지 않아 편히 자고있을까...
그런 생각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는데도?
나한:... (한 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러셨습니까.
...염려했습니다. 시찰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나 하고.
이영:... (입꼬리가 은은하게 번져 올라간다.) 그랬구나.
염려시켜 미안하고... (고개를 숙여 코끝을 맞춘다.) 기분 좋구나.
(발치에서 웅얼대는 고양이를 무시하고 입을 맞췄다 뗀다.)
나한:(가볍게 떨어지는 입술에 슬쩍 미소를 짓더니 양 팔을 둘러 몸을 끌어안았다가, 천천히 놓는다.) 시찰은 어떠셨습니까.
이영:시시했다. (어느새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맞붙었다 떨어지는 살결이 아쉽지만 그보다 기분 좋은 것이 앞선다.)
네가 보고싶어 견딜 수가 있어야지.
(허리를 안은 채로 침대로 향한다.)
나한:(주춤주춤 발을 옮기다가, 거의 들려 옮겨지다시피 침대에 앉는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언제나 국정에 힘을 쏟고 계시지요.
이영:... 말도 말아. 온통 머리 아픈 일들 뿐이다.
어느 하나 부딪히지 않고 수월한 일이 없어. (한숨을 폭 쉰다. 잠시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과 함께 허리를 안는다. 그대로 무게를 실어 눕혀버리곤 눈을 감는다.)
그러니 쉴테다. 오늘은 말이지.
나한:(가만히 감은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실 건가요.
이영:오늘? (눈을 뜨지고 않은 채 대꾸하더니 잠시 고민한다.)
나한:(그리곤 천천히 손을 뻗어 머리칼을 쓸고, 피로가 묻은 눈가에 시선을 둔다.)
이영:일전에 시찰중에 만났던 자가 있어. 긴히 할 말이 있으니 꼭 와달라 하였지.
그 자를 만나러 다녀오는 길이다. 불길한 징조가 있다더군. (조금씩 얼굴이 풀어진다.)
그나저나, 그 자...
나한과 말투가 닮았어. (살짝 웃는다.)
나한:불길한 징조라 함은... ... (중얼거렸다가 이어진 말에는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습니까?
이영:일전에 선왕이 서거하시기 전에 그러리라는 소문이 돌았었다더군.
이번에는 같은 입들 사이에서 제국에서 피신하라는 말이 들린다고...
이영:그렇지만은 않겠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으니 그런 이야기가 도는 것일게야.
쉽게 생각할만한 재앙같은 것보다는... (눈을 슬그머니뜬다.) 유의미한 것.
오아시스가 없는 곳에 도시를 세울 수 없듯이.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이지않나.
오늘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긴 하지만... (끙, 앓는소릴 내더니 나한을 향해 돌아눕는다.) 생각중이긴 해. 어떤 것이 피신할만큼의 이유가 될런지.
확실히, 최근 이교도들 때문에... (이야기하다말고 작게 하품한다.) ... 폭력사태가 늘기도 했고...
나한:(이영이 돌아본 얼굴이 미소를 지을 듯 말 듯, 희미하다.)
...술탄께서 나라를 직접 돌보시니 별 일 없을 것입니다.
보기보다 걱정이 많으시군요. (한 손으로 침상을 딛고 일어나, 이영의 머리를 무릎에 뉘인다.)
이영:(무릎에 얹힌 머리를 편하게 고친다. 벤 무릎이 익숙해 편안하게 눈을 감고) ... 그랬으면 좋겠구나.
... 나는 대체로, 생각이 짧고 즉흥적이거나, 참을성이 없어보이는 편이다. 나도 그걸 알고 있어. 나는 문文보다는 무武에 가까운 사람이고.
허나 실상 나는 참을성이 좋은 편이지. 숨죽여 지내는 것이 익숙한. (한쪽 눈을 뜨고 올려다본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어느 쪽인 것 같아?
나한:...제가 보기에 술탄께서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는 눈길, 귓가에서 찰랑이는 귀걸이와 늘어진 목걸이가 시야를 이리저리 가린다.)
적재적소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남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고개를 천천히 기울인다.)
이영:(시야가 어지럽다. 시선을 빼앗는 것들 사이로 내가 찾는 그 눈에 겨우 맞닿는다.) ... 예를 들면? (적재적소.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 보인다면 다행이기도 하지만... 나한이 자신을 관찰해보았다는 점, 오래 걸리지 않아 이런 물음에 답할 정도로 나를 보아왔다는 것이 퍽 기쁘다.)
나한:군주에게 적재적소란, 보다 큰 결정을 이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 때로는 소를 위해 대를 포기하는 것.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듯, 술탄께서 하는 모든 일과 그 결과는 쓰임이 있음이 그 증명이지요.
...저도 글로나 읽어 군주가 갖춰야 할 쓰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아는 체를 하는 기분이 들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이영:(가만 미소짓는다.) 군주로서 듣기에 기쁜 말이다.
더더욱, 네가 그리 생각해주어 기뻐. (손을 뻗어 볼을 감싼다.)
그러나 어렵구나. 매 선택마다 어떤 것은 포기해야한다는 것이. ... ... 차라리 모두 포기한다면 그것은 쉽던데 말이야.
... 그런 식으로 좋은 군주는 될 수 없겠지...
나한:저는 궁 바깥의 술탄에 대해 쉬이 상상하지 못합니다. (검을 든 모습이라면 알고있지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좀먹기 전에 그만둔다.) 적어도 제가 보는 폐하는...괜찮습니다.
이 제국에 들어온 백성 중 하나로서도, 그러기를 바라고요.
(부드러운 손길이 이영의 몸에 얹힌다. 달래듯이.)
... ...저는 술탄의 하툰인 동시에, 패전한 공국의 공주입니다.
저는 양 손에 다른 짐을 들었으나 그 무엇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손이 천천히 토닥인다.) 술탄께서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이영:... (달래주는 손 위로 제 손을 얹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 ... ... 내 어깨에 얹힌 그 모든 것이 벅차고 버거워진다 여겨질 때쯤 내게 위안을 주는 자.)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너 하나만큼은 내려놓지 않을테다.
네가 내 위안이고, 빛이자 그늘이고, 숨이자 쉼이니.
그러니... (시선을 맞추고, 살풋 웃어보인다.) 지켜봐주련.
약조한 날이 지나고서도 말이다..
나한:(당신은 어쩌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떤 경계심도 없는 눈. 풀어진 미간. 만약 내가 당신이었더라면...절대로 나만은 사랑하지 않았을텐데.)
(죄스러워서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술탄이 원하신다면.
이영:... 그래. (감싸쥔 손을 끌어다 입맞춘다. 내가 바라지 않아도 네가 내 곁을 바라고, 우리가 같은 것을 바라는 날이 오기를. 내 마음이 욕심이 아니게 되는 날이 다가오고있다고 믿는 이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를. )
오늘도, 어떤 밤이 서서히 지나갑니다.
이영이 이 제국을 통치한지도 500일이 넘어갑니다.
"술탄께서 납시니 길을 열라!"
아아의 외침에도 웅성임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영:... (가늘어진 눈으로 내려다본다. 시장바닥이나 이곳이나... 진배없군.)
:이번에는 친위대도 그 사이에 섞여있는 듯 합니다.
친위대장이 고개를 까닥이자, 젊은 친위대원이 무릎걸음으로 나서 파디샤의 옷자락에 입을 맞춥니다.
친위대장:이 자가 이교를 퍼트리는 자를 목격하였습니다.
증언하기를 행동이 괴이쩍다기에 친위대 몇 명을 이끌고 가 급습했습니다만...
그래서? 무엇을 목격했지?
"이미 죽은 시체들과...죽지 않은 자들이 즐비했습니다."
죽지 않은 자라니. 살아있는 자도 아니고, 기이한 표현을 하는군요.
이영:... ...
죽지 않은 자라 함은...
그것이군.
"힘없이 처참한 몰골로 천천히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해서, 저희가 가둬져있던 자들을 구조하려 하였는데."
"그들은 자발적으로 이 곳에 들어왔다며 오히려 친위대원들을 쫓아내려 하고 이교도 사제를 숨겼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전부 사살했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직접, 술탄께 보고를 드리려고..."
이영:그들은... 한 번 죽었던 자들일 것이다. 혹은 그리 만들기 위해 죽임을 당했거나.
어느 쪽이건 그들 또한 이교도였을 가능성이 있지.
:"주, 죽었던 자...그들이
의식을 방해하지 말라 했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로..."
"영생을 얻는 의식이란 말씀이십니까?"
이영:(짧게 치하한다. 친위대의 판단은 옳았으며 적합한 처분을 했다.)
... 그럴리가.
그것은 영생이 아니다.
:"그 자들은 그
의식이라는 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믿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이영:그들은 속고있을 뿐이지. (그리 믿어야만 한다.)
(그들의 주술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아는 바는 없지만, 그래야만한다. 그렇기에 주장한다.)
... 또, 어떤 것을 목격했지?
생포한 자는 없는 모양이고...
:"이 이상 급습한 자는 없지만, 조사를 다녀보니...이런 자들이 암암리에 수를 불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이 이교가 어디에서 시작해 퍼지고 있는 것인지를 찾을 수가 없어...저희도 혼란스럽습니다."
친위대원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조아립니다.
이영:... 더이상 지체할 수 없군. (미간을 찌푸린다. 뿌리를 찾지 못하면 소모전이 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큰 숲에 숨어있어.)
(무엇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무지몽매한 이들을 유린하고있다. 얼마나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홀려있을지.)
... 대장은 들으라.
이영:이교의 교리가 세상의 섭리와 들어맞지 않으니 그들은 제국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죽음을 거부하고 영생을 구한다는 이름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유린당하고 있지.
지금 이 시각부터 이교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어느 하나 용서치 않을 것이며 전원 처벌하도록 한다. (낮고 평이하게 읊조린다.)
또한...
이미 몸 담았던 자가 회개하는 것, 그리고... 그런 이들의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짧게 말을 멈추고 시선을 마주한다. 내포된 의미는 당연스레, 내부고발자.) 그런 경우에 한하여 면벌토록한다.
이영:... 이 명은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가라. 너희가 제국을 구할 것이다.
:모두가 고개를 숙여 파디샤의 말을 받듭니다.
온 제국에 이교가 퍼지고 있습니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전 진영의 지지도가 6 떨어집니다.
이교를 잡아들이려면 어디부터 치는 것이 좋을까요.
역시 외래와 왕래가 잦은 상인들?
이 나라의 돈줄을 쥐고 있는 귀족들?
일선에서 이 제국을 지킬 병사들?
이영:(귀족들이 이교로 돌아서면 곤란하다. 무엇보다... 되돌려놓기 어려운 상대들이니 우선 싹을 밟아야...)
(귀족가문들을 단속하고 보호한다. 위쪽부터 다져두어야 단속이 조금 더 쉽기도 하다.)
몇몇 귀족들은 확실히 친위대의 등장을 마뜩찮아했고,
어떤 귀족들은 안심하기도 합니다.
귀족의 지지도가 4 상승합니다.
이영의 명령이 제국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원하던 고위 내부 고발자는 나오지 않고, 때때로 젊은 친위대원이나 백성들이 이영에게 무릎 걸음으로 찾아와 고개를 조아리며 이런 일이 있었다, 저런 일이 있었다며 보고하고 호소합니다.
:마치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쥐 사냥을 하는 것 같군요.
이영:(... 소모적이다. 이런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백성들도, 친위대도 지치고 만다.)
(그리고 나도...)
분명히 어디엔가 소굴이 있을텐데...
시간은 서서히 흘러,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영은 직접 이 진위를 파헤치기 위해 조금 더 내밀한 곳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새로운 장소로 시찰을 나가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영:(어디로 가 볼까 고민하다, 바쁜 사이 잊었던 발리데 술탄에 대한 경계심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 구궁전으로 향한다.)
:수백 년 전부터 조금씩 증축된 구궁전은 보안을 위해 건물을 쌓아올릴 때마다,
그 건물을 설계하고 건설한 사람들을 처형합니다.
그 탓에 설계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도망칠 길을 몰래 만들어두곤 했습니다.
수백명이 만들어 낸 복잡한 퇴로들이 얽혀, 구궁전의 길은 마치 미로처럼 느껴집니다.
들어오려는 자도, 나가려는 자도 쉬이 받아들여주지 않는 공간.
이곳은 크게 선왕의 하툰들이 지내는 별실과, 왕위 경쟁에서 밀려난 형제나 자식들이 갇히는 감금실로 나뉩니다.
이영:(... 비밀 통로에 몸을 숨기고 걷는다. 그 많던 하툰들이 여기에 다 폐위되듯 옮겨진 뒤로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발리데 술탄도 이곳으로 옮기는 것이 기껍지 않았을테지.
별실
의 기색을 살핀다.)
:술탄이 되어도, 되지 않아도 왕가는 언제나 살얼음판 같습니다.
왕족이 되는 것보다 귀족이 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죠.
별실에는 중년의 하툰들이 모여앉아 조용히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영:(무슨 이야기들을 하시나. ... 들은지 오래되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도 어렵겠지만... 들어본다.)
이영: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선왕께서 돌아가신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시신을 못 봐서 그럴수도 있지. 장례도 금세 치뤄졌고..."
"암살자들이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두기까지 했다며? 모으느라 힘들었다던데."
"독을 탔다면서 왜 그런짓까지 했담."
"쉿, 조용히 해. 저 이는 시신을 본 뒤로 식사도 잘 못하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발리데 술탄께서 선왕의 시신이 훼손된 게 알려지면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해 관을 열지 않으셨어."
이영은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선왕의 잔에 독을 타 그의 죽음을 확인했을 뿐...
이영:(... 훼손되어 공개되지 않은 시신...)
:하툰들이 모여있는 자리 한 구석에, 혼자 근심어린 표정을 한 하툰이 있습니다.
저 자가 시신을 발견했다는 하툰이군요.
(아는 얼굴인지 슬쩍 본다.)
본 적은 있지만,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는 사람입니다.
왕궁이라는 게 다 그런 곳 아니겠어요.
이영:흠... (시신을 발견했다는 하툰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어쩔까, 생각한다.)
술탄이 구궁전에 온 것 정도는 이상한 일이 아닌지라 말을 걸어도 문제는 없겠지만,
이곳에 온 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면 문제가 되겠군요.
이영:(그렇다.... 발리데 술탄에게 들키고싶지 않으니...)
(눈여겨보았다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물어볼까.)
:그래도 괜찮겠어요. 소문이 퍼지기 전에 말이죠.
이영:(질문은 나중으로 미루고 주위를 살핀다. 발리데는 이곳에 없나...)
(그럼 감금실쪽으로 가 봐야하나?)
:발리데 술탄은 이곳에 모여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본인의 방에 있거나, 지금은 외출 중일지도...
이영:(천천히 살펴봐야겠군... 감금실쪽부터 가 볼까.)
구 궁전에서도 안쪽,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입니다.
이 곳의 창문들은 숨구멍에 가깝고,
몇몇 문에는 석회를 발라 왕위에 방해가 되는 왕족들을 가두어둔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몇몇 칼파들은 술탄들의 유령이 나온다고 이곳을 꺼립니다.
굳이 그런 사유로 꺼리지 않아도, 이곳은 함부로 들어왔다가 실종되는 자가 적지 않은 곳입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이영:... (안쪽을 들여다본다. 누가 여기에 있지?)
:이영은 추적, 은밀행동, 혹은 민첩을 판정합니다.
이영:
민첩
기준치: |
50/25/10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민첩
기준치: |
50/25/10 |
굴림: |
56 |
판정결과: |
실패 |
은밀행동
기준치: |
20/10/4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은밀행동
기준치: |
20/10/4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누군가가 안쪽 복도의 벽 위쪽을 만지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러자 벽처럼 보였던 벽돌들이 옆으로 밀려나가고, 낡은 복도가 입구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향하는 것은...
나한?
(... ... 내가, 뭘 본 거지?))
:이영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벽이 도로 닫힙니다.
... 대체, 무슨...
(홀린듯 같은 위치로 다가가 손을 뻗는다. 여기 어딘가를...)
(만진 것 같았는데..)
무언가 버튼 같은 것이 눌리더니, 다시금 낡은 길이 열립니다.
:안쪽은 몹시 어둡고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으며...
이미 나한은 보이지 않는군요.
이영:(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지는.... 알아야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하지만...)
(... 나한을 의심하지 않기로 약조했다.)
(...)
(길 안쪽으로 들어서지 않는다. 닫히기를 기다렸다가 돌아나온다.)
나한? 아니면 닮은 사람?
하지만 잘못 볼 리가 없는데...
이영:...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나한을 내가 잘못 볼 리가...)
(... 머리가 아프군.)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아까 보았던 하툰은 내일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게다가 나한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있죠?
아무리 이영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들...
이영은 올 때처럼 조용히 왕궁으로 돌아갑니다.
이영:(나도 몰랐던 곳인데... 생각하며 왕궁으로 돌아와서, ... 환복하자마자 하렘으로 직행한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하렘에 이영이 들어서자, 많은 하툰들이 이영을 반깁니다.
이영:(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다 나한의 방이 보이자 멈춰선다.)
(... 아까 본 것을 묻는 것은 약조에 어긋나는가? 어긋나지 않는가?)
하지만 의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들도 필요한 법인데...
또는 나한이 지금 저 방에 없다면.
그건 어떤 증명이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영:... ... 그래. 오랜만이구나. (저를 반기는 하툰의 허리를 감싸당긴다. 증명하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의심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럼 의심할 일도 없고, 나한이 이영을 경계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영의 손길에 하툰은 분에 겨운 기쁨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영의 손을 이끕니다.
이영:(평소처럼... 내가 돌아오던 시간까지는 나한을 잊어야겠지.)
천천히 가련. 넘어지겠구나. (이끄는 손을 힘주어당긴다. 걸음은 천천히 따라간다.)
:이영은 실로 오랜만에 다른 하툰의 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냅니다.
이영:(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관계를 끝맺지 않는다.)
:이영의 품에 들어온 하툰은 많았지만, 씨를 받은 이는 없습니다.
그건 이영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이영:(아쉬워하는 반응에도 그저 매무새를 정돈하고... 나한을 제 침실로 데리고 오라 명한 뒤 하렘에서 벗어난다.)
:칼파들이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고, 침실에 가 있으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한이 들어섭니다.
이영:(물담배 파이프를 떼어내자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온다. 창밖을 보던 시선이 문가로 돌아선다.)
나한:부르셨습니까. (여느 때처럼 잘 치장을 받은 모습으로 들어서 이영의 건너편에 앉는다.)
이영:... (가만히 마주본다. 파이프를 내려놓고 제 옆자리를 살짝 내려보았다 고개를 든다. 곁으로 오라는 신호다.)
나한:(고개를 살짝 수그리더니 군말없이 이영의 곁으로 다가와 앉고, 잠시 얼굴을 살핀다) 근심이 있어보이십니다.
이영:오늘은 조금 피곤하구나.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기댄다.)
나한:(한 손이 이영의 얼굴을 감싸고 올라와 나긋하게 쓸기 시작한다.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앉은 자세를 고치고) 그럼 일찍 침상에 들지 않으시고요.
이영:(살살 고개를 젓더니 허리를 안는다.) 그래도 네가 보고싶어서.
나한:그럼 바로 찾아오시지 않고. (낮의 일을 들었는지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잠시 이영을 내려다본다) 험한 곳으로 시찰을 다녀오셨습니까?
이영:... ... (잠시간 대답이 없다가) 구궁전에 다녀왔다.
나한:발리데 술탄을 뵈러? (눈을 두어번 깜박인다)
이영:(고개를 젓는다.) 다녀와서는, 네가 없을까봐 네게 가지 못했어. 약조했지 않니. 의심하지 않기로...
... 대답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 네가 아닌 다른 여자의 품이 필요해 그리 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단지 그뿐이야. (안은 허리를 끌어당겨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나한:... ... (그 말에 일순 표정이 변했을 지 모르겠으나 이영이 얼굴을 묻은 탓에 보이지 않았다. 봤나? 그런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오직 그 약조 하나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 긴장하는 것이 이영에게도 느껴진다. 한참 조용하던 입이 달싹거리다가 잊었던 것처럼 이영의 머리를 다시 쓸어내린다.)
(왜 나를 그 정도로 사랑하느냐 묻고싶다. 대체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만드는지...눈 밑에 좁아들었다가 천천히 풀린다.)
...이해했습니다.
(살결에 이는 냄새를 들이마신다.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한참을 숨만 고르고 있다 입을 뗀다.) 오늘은 너를 안고싶구나.
나한:(눈을 내리감고 있다가, 천천히 뜬다. 일종의 감사인사가 되려나. 그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이영:(입술이 가슴팍을 누빈다. 어느새 뒤로 돌아간 손이 풀어낸 상의가 너무나도 쉽게 흘러내리면 더 넓은 곳으로 뻗어나간다.)
나한:-하, (맨살에 입술이 닿으면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쉰다. 공기에 닿는 살이 유난히 추운 기분이라 어깨를 좀 움츠리곤 손에 잡힌 뒷머리를 연신 손 끝으로 만지작거린다.)
이영:(한 손에 쉽게 잡히는 가슴을 짓누르다 예민해진 곳을 건드린다. 이를 내 무는 것과 동시에 손끝으로 지분거리기를 양쪽에 나누어 한다. 약조한 탓에 참고는 있으나 본디 상냥한 성미는 아닌 탓에 나한에게만은, 괴롭히듯 어루만지는 것이 퍽 새롭다. )
나한:(머리에 얹혔던 손이 흘러내려 어깨를 짚었다가, 잔뜩 예민해진 살을 지분거리면 상체가 앞으로 수그러져 덮히듯 한다. 아랫배가 간질거리는 기분이 생소하기도 하고, 조금 쓰라릴 정도로 집요하게 오르내리는 손길이 괜한 쾌감을 부추겨 눈가가 조금 붉어진다.) -폐, 폐하. 조금...
이영:응? (눈만 들어 올려다본다. 물었던 끝을 혀로 핥았다가, 깊이 물어 빨아마신다. 반응이 크네. 이런 것을 좋아하던가. 손끝에 약간 힘을 주어 꼬집듯 한다. 이렇게 녹아내릴듯 무너지는 걸 보는 것도... 기분이 좋네.)
나한:... ... (한참동안 꾹 내리감긴 눈이 뜨일 때마다 혼란스러운 빛을 내비쳤다가, 발 끝을 꿈지럭거리며 무릎을 모은다. 수그러진 머리가 이영의 귓가에 닿으면 속삭이듯이 중얼거리기를) ...다른 이의, ...품에 안기는 것이 처음이라.
술탄께서 기대하시는 바를...채워드리기가.
이영:(이곳에 온 하툰들이야 다 그렇지만, 안기는 것이 처음이라는 말이 이리 기꺼운 것은 또 처음이다. 벅차게 아래가 부푸는 기분이 들어 고개가 주억인다. 힘을 줘 차오르는 기운을 누르며, 모인 무릎을 짚는다.)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그보다...
(무릎 안쪽으로 손가락이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사막을 여행하는 발걸음처럼 천천히, 누구보다 확실히, 지워질 그 발자국을 남기며.) 네 처음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기뻐.
나한:(고개를 들어 마주친 눈에 잠시 망설임이 일었다가, 다리 사이로 부드러운 손길이 들어오면 더듬거리며 발을 옮겨 사이를 벌린다.) ...술탄께서 성에 차신다하면 그것으로 다행이온데. (목각인형 마냥 양 손이 놀고 있는 것이 민망했는지 어설프게 손을 뻗어, 긴 옷자락 안쪽. 약간 부푼 것을 쥐고 눈치를 살핀다) ...배워보겠습니다.
이영:(하, 짧은 숨이 떨어진다. 손길이 느리게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것마냥 크게 덮친다. 반기듯 벌어진 틈으로 부드럽고 여린 살을 디뎌가며 파고든다. 가장 내밀한 곳. 누구에게도 허락지 않았던 곳에 손끝이 파고든다.) ...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나한:(나름 손을 대어 본 것이 무색하게, 손 끝이 젖은 살에 닿으면 일순 얼굴이 끓어 오르는 것처럼 붉어진다. 생소한 감각에 절로 다리가 도로 움츠러 들었다가 천천히 힘을 푼다. 정말로 그런 곳에, 하고 어린애같은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양손에 쥔 것을 느리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이영:(꾹, 꾹... 손끝이 젖은 살 사이를 오간다.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것을 짓누르며 점차 더 아래로, 아래로... 잔뜩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지켜보다 다시 가슴으로 입을 옮긴다. 고개를 눌러붙이면 몸이 가로질러 다리는 바라던 것보다 더 벌어지게 된다. 네 평온은 잠시 맡아두마. 내 그것을 좋아하지만...)
나한... (아래에 뻐근하게 피가 몰려오고, 서툴게 문지르는 손길이 힘조절에 실패하자 길게 잡아끄는듯한 소리를 낸다.)
나한:(숨이 점차 가빠진다. 아래가 잔뜩 젖은 것이 찌걱이는 소리로도 느껴져 아랫입술을 깨물면 귀 끝이 달아오른다. 온 몸을 밀어붙이는 듯한 쾌감에 도저히 수그리는 것으로 버틸 수가 없어 등이 점점 뒤로 눕는다.) 으응, 읏... (그러다 이영이 제 이름을 부르면 다급하게 손에 힘을 풀었다가, 때맞춰 찾아온 쾌감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잔뜩 벌어진 다리로 몸을 조인다. 기분이...이상하다? 좋다?)
이영:(가슴에 묻은 입술이 행여 떨어질 세라 눕는 몸을 따라간다. 어느새 온통 덮어누른 모양새가 되어선... 젖은 소리를 더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내려든다. 더 안으로, 축축하고 좁고 뜨거운 곳을 파고든다. 대단히 많이 젖는 것도, 대단히 좁은 것도 아니지만 그저...) ... 잘 세우는구나. (상대가 다르기에 제 반응이 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제 허리를 감은 다리가 기껍다. 안달난듯 조여오는 힘이 여리면서도 간절하게 느껴져 만족스럽고... 흥분되어서. 바짝 들린 허리를 잡아누른다.) 퍽 즐거워보이는군.
기대라도 되는가보아. (허벅지 안쪽을 잡아 벌린다. 빠져나온 손을 꽉 밀어넣는다.)
나한:(귀가 먹먹해진다. 정신이 그냥 몽롱한 것이 아니라 몸을 붕 띄우는 듯 해서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안쪽을 헤집는 손가락이 내벽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어깨가 떨리고, 질 좋은 쿠션 위로 머리장식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흩어진다. 현실감을 찾으려 간신히 눈을 뜨고 이영을 바라보면, 잔뜩 젖은 몸을 탐하는 듯한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 낯부끄러운 건지 신음 섞인 항변을 툭툭 내뱉는다.) 기대가, 아니라... ...기분이, 흐윽, 이, 이렇게. 갑자기... (점점 속도를 붙이는 손길을 막으려는 듯 한 손이 다급히 올라와 손목을 붙잡았으나 그뿐이다.)
이영:(손목을 쥐는 손이 참 작다. 간절해보이지만 힘이 금세 빠지고 만다. 안쪽을 헤집듯 쑤시는 손가락에 번번이 어깨를 잘게 떠는 모습이나, 흩어지는 숨소리. 예뻐, 아름답다. 그 무엇보다 귀한 모습이다.) 기분이? 어떠냐. 좋아? (잔뜩 젖어든 안쪽에 벌써 아래가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 넣고싶어. 하지만... 겨우 손으로도 이렇게 벅차하는 걸 보면 이르겠지.)
나한:(기분이? 헐떡이는 숨 사이로 들리는 소리에 간신히 고개를 주억인다.) 아, 안쪽이, 읏, (머릿속에 어지럽게 산개된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지 않으려 이를 앙다물었다가 겨우 맞는 대답을 한다) ...좋, 습니다, (쾌감이 오를 수록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된다. 발을 얹어놓은 허벅지를 밀어내다시피 하며 등이 꼿꼿하게 휜다.)
이영:(도망치듯 벗어나는, 밀려올라가는 몸을 따라 손을 꾹 밀어올린다. 안쪽이 잔뜩 넓어졌으니... ) 더 좋은 게 남았으니 잘 됐구나. (손을 빼내고 발목을 쥐어 당긴다. 몸이 끌려내려오면 제 아래에 놓인 몸을 탐욕스런 시선으로 훑어내린다. 나한의 손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빳빳해진 것에 닿는다.)
(비틀리는 골반을 쥔 채로 입구에 맞춰대고 문지른다.) 이건 기대해도 좋겠구나.
나한:(금방이라도 절정에 치닫을 것처럼 쾌감이 올랐다가, 뭉툭하고 뜨거운 것이 닿으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밑을 내려다본다. 저런 게... ... ...) ... ...아, 안, 못, 안들어 갈 겁니다. (골 사이를 문지르고 지나가는 것에 허리가 떨리다가도 심장이 싸해지는 기분이라, 마치 봐달라 애원하는 것 마냥 이영을 바라본다.)
이영:(입꼬리가 길게 올라간다. 아랫배가 꽉 조이는 기분. 쾌감이다. 애원하고 두려워하는 얼굴이 왜 좋을까..) 들어가. 못 넣은 적 없다. (조금은 걱정이 들어 고개를 숙여 입맞춘다. 떨어져 나올 때에는 작은 조언을. 숨 깊이 고르거라, 하고.)
(허리를 꾹 내리누르면 잔뜩 헤집어놓아 벌어진 틈으로 밀려들어간다. 뜨겁고, 비좁고, 축축한...)
잘 받아 먹거라. (낮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짓누른다.)
나한:(미소에서 술탄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섬뜩함이 서린다.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것을 좋아하는...그러나 쾌감에 묻혀 생각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이영이 속삭이면 곧장 그것을 이행한다. 그럼에도 안을 비집고 밀고 들어오는 것이 빠듯하다. 몸을 반으로 가르는 듯한 기묘한 고통과 쾌감이 머리를 조이는 것 같아 앓는 소리를 내며 발 끝으로 비단 침상을 밀어낸다. 마치 그러면 밀어넣는 것을 그만두기라도 할 것 처럼 양 손으로 제 위에 덮힌 몸을 밀어낸다. 한참 숨 쉬는 것을 잊었다가 한 번에 들이킨 소리가 가쁘다.)
이영:(밀어내는 손을 제 어깨로 올린다. 밀지만 말고 당겨줬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며 더 깊이 파고든다. 빠듯하게 좁은 아래가 버거워서 숨을 깊이 고르고나서야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 아직...이다. 흣, 읏... (버티려 짚은 침대가 엉망으로 구겨지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시선이 집중된다. 잔뜩 달아올라선 눈물이 맺히는 얼굴을. 보고있으면 숨이 가빠지는 그 모습을.) 나한, ㄴ, ... 나한... (중얼거리며 부르는 이름에는 하고싶은 수많은 말이 담겨있다. 허나 지금은 모두 줄여 그 이름 두 글자로 대체할 뿐이다. 좋아, 사랑해, 좁아, 야하다거나 좀 더 좋아해달라는 말도 포함해서.)
나한:(어떤 다짐을 했어도 쾌감에 무너져버리는 자신이 한심하다가도, 애타는 목소리 불리는 제 이름을 들으면 아무래도 좋아진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심장께에서 터진 무언가가 신음으로 빚어져 나온다. 속을 내리누르며 움직이는 허릿짓에 고개가 파르르 숙여졌다가, 온기를 느끼고 싶어 어깨에 올라간 손이 목을 감고 잡아당긴다.) 폐, 으응, 폐하, (손톱을 세우지 않으려 주먹을 쥐고 있다가, 고개를 쭉 내밀어 입술을 가져다 붙인다.)
이영:(귓가에 닿는 숨이, 당겨안아주는 품이 좋아. 아래로 모든 긴장이 몰리는 기분에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가, 느리게 깊이 찔러누르기도 한다.) ...이영. (제 이름을 허락한다. 입술을 맞붙인다. 언제나 평온하고 때때로 느긋한 노을같은 여자가... 나를 원한다. 나를 바라고 잔뜩 달아올라서... 처음 만난 날의 비장함보다 강하고 사랑에 겨운 날들의 온도보다 뜨겁다. 입 안을 헤집어놓는다. 이곳도, 저곳도 전부 가지고 싶어. 너를 내게 줘. 내가 가지게 해줘. 너를 나로 가득 채우게 해줘.)
나한:(귀에 들리는 이름이 생소하다. 그게 술탄이 날 때 받은 이름이겠지. 아주 가까운 이에게만 허락된...그렇게 생각하면 별 수 없이 속이 벅차오른다. 당신은 왜 나를 의심하지 않지? 왜 나를 벌하지 않고, 기꺼이 여겨주지? 이 궁의 누구보다 내게서 거둬갈 게 가장 초라할텐데. 그럼에도 누군가의 시선이 자센에게만 향해 있는 것이 좋아서, 입술이 잠시 떨어지면 천천히 중얼거려본다.) ...이영.
이영:... 응. (시선이 곧게 네게 향한다.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사실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네 입에서 나온 내 이름. 그 누구보다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같아. 기뻐. 술탄으로 즉위한 이래 그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그리 해선 안됐고, 그리 하게 두지도 않았다. 허나 너는, 너 하나만큼은... 언제나 내 심장 곁에 두리라.)
나한:(낯선 이름이 입 안에 담기면 선득한 기분이 든다. 인두가 심장을 지져 상흔을 남기는 것만 같은...떠오르는 태양 같은쾌감과 지는 달과 같은 고통. 순간 입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달아올라 허공에 흩어진다. 이걸 뭐라고 부르지? 물음을 담은 듯한 눈이 잠시 이영의 얼굴을 스쳤다가 이내 몸을 끌어안는다.)
이영:... (쾌감이 등을 훑어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 찰나 터져나온 소리가 온 몸을 적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안긴 채로 목덜미에 낮게 읊조린다.) ... 좋으냐. (방금 전과 같이 움직여보려한다. 다시 듣고싶으니, 다시 한 번 허리를 쳐올린다. 이쪽? 아니면 저쪽? 조금 아래?)
(작은 몸이 웅크러든 것이 안쓰러울지도 모르나...) 이름, ... 불러주면 좋겠구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리고 만다. 밀어붙이기는 멈추지를 않는다.)
나한:(한 번 달아오른 몸이 쉬이 꺼질 생각을 않고 움찔대는 통에 머릿속이 번쩍이는 것만 같다. 이 궁에 온 뒤로 단 한 번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내리감긴다. 골격이 드러날 정도로 젖혀진 어깨 덕에 몸이 빈틈없이 맞붙고, 한숨처럼 간신히 내뱉는 소리가 툭툭 끊긴다.) 좋, ...으응, 좋아요, 이영. 그렇게, ...하는 거...
이영:(좋다고 말해준다, 내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가질 수 없을것만 같았던 여자가. 내게 자신을 내어주고 만족을 표한다. 세상 천지 그 무엇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던 여자가. 당겨붙인 살이 뜨끈하게 맞붙었다 빈틈이 생기면 드는 공기가, 꽉 밀어붙여 입에서 새는 숨이 뜨겁게 익어 있어. 숨이 벅차도록 황홀한 기분이 들어. 신이 내린 술처럼 네 피부에 맺히는 체액을 받아마신다. 살결을 쓸어올리는 혀가 차게 느껴질지, 뜨겁게 느껴질지도모르겠다. 온갖 색채가 머릿속에 차오르는 것같아 대답 대신 거듭 같은 행위를 반복해낼 뿐.)
나한:(안쪽을 찔러 뚫어내는 듯한 감각. 속을 다 내보이고 멈추지 말라 조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다가 더, 하는 소리로 감히 상대를 재촉하고 만다. 살결에 닿는 혀가 미치도록 뜨겁다가도 까슬하게 간질거려서 몸을 비튼다.) 으응, 아-...흑, 응... (한껏 수그러진 머리를 이영의 목께에 비비다 정신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어깨를 깨문다.)
이영:(제가 들은 말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요구였음을 알아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은 기억할 수 있었다. 뭐였지, 어떻게 보챘더라, 기억하고 싶어. 더 바래줘. 다시 들려줘.) 아, 읏... ...하, 나한... (강하게 살을 짓이기는 감각에 고개가 번쩍 들린다. 하지만 이어 쾌감이 덮쳐오자 힘주어 든 턱이 잘게 떨린다. 단단히 안고있던 몸을 당겨누르면 더 깊이 파고든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빠짐없이 알아야겠어. 네가 알려주려하지 않는 것들도 모조리, 직접 겪고 탐해내겠다. 숨기고 가리는 것은 약조한 것으로 족해. 발목을 쥐어 당기면 몸을 갈라낼 것처럼 쳐올리게 되고, 떼어낸 몸을 내려다보게 된다. 어떤 얼굴로 나와 함께하고 있느냐. 싫어 울고있진 않을까, 찰나에 걱정이 스친다.)
나한:(입에서 한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살을 가르는듯한 쾌감이 온 몸을 덮친다. 드러난 살 전체에 가시가 돋아 몸 깊은 곳을 찌르는 것처럼...구명줄이라도 된 것처럼 붙잡고 있던 몸이 떨어져나가는 순간 딸려가듯 등이 들렸다가, 아랫배가 눌리는 저릿한 감각에 교성을 내뱉으며 허리가 앞으로 휘어진다. 동시에 떨어진 얼굴을 올려다보는 표정이 드러난다. 잔뜩 찌푸려져 내려간 눈썹, 눈물이 맺혀 흘러내리다 만 눈동자가 일렁이며 애가 타는 듯이 이영을 바라본다. 조금이라도 더 온기를 느끼려는 손이 어깨 옆에서 흘러내린다.) 흐...읏, 이영.
이영:(아래로 떨군 시선 끝이 흔들린다. 바랐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걱정했던 것과도 다르다. 허나, 그보다,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응, 여기에... 있어. (발목을 쥔 손을 밀어올려 무릎을 모아누른다. 그 뒤에 덮어 누르듯 몸을 얹으면 멀어졌던 몸이 가까워진 만큼 깊이 들어선다. 그리고 천천히...) 응, 나한.. 그래. (부드럽게 퍼지는 미소. 가까워진 얼굴에 입술을 얹는다. 일렁이는 그 눈매에, 달아오른 뺨에, 그리고 잔뜩 젖은 입술에.)
나한:(벌어진 입에서 모자란 숨을 채우려는 듯이 하, 하고 뜨거운 숨결이 내뱉어졌다가 가슴이 부풀 정도로 차오른다. 이런 건 못 버텨, 아릿할 정도로 단 입맞춤과는 다르게 깊이 속을 찌르는 것은 자비가 없다.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고, 기묘한 기분이 팔을 벌레처럼 타고 올라온다. 속이 잔뜩 좁아지면서 애원하듯 이영의 얼굴을 붙잡는다) 아, 으...앗, 아, 안돼요. 그렇게, 기, 깊게. 흐윽,
이영:(아래를 잔뜩 좁혀오면 등허리부터 뒷목까지 점점 좁아드는 감각에 머리가 핑 돈다. 그러니까, 이지를 상실한 것처럼 굴게 된다. 잡힌 얼굴에서는 독처럼 짙은 시선이 넘쳐흐르고, 무릎을 모아쥔 손에는 힘줄이 바짝 선다.) 왜? 왜, ... 왜 안돼? (숨이 차오른다. 허릿짓이 점점 크고 거센 풍랑이 되어 몰아친다.
깊게,라는 말에 반응하듯 더 깊이, 더 꼿꼿하게 찔러넣는다. 밀어올릴 때마다 동그랗게 말리는 몸이 들썩이는 것이나 바짝 고정된 시야에 든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는 것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쾌감이, 쾌감만이...)
나한:(욕정과 집착이 가득한 눈. 다정과는 다르지만, 지독히도 싫어한다고 여겼던 시선이건만...속이 울렁인다. 무엇이든 받아내고 싶다는 욕구가 비집고 올라온다. 이영이 짚었다 손을 옮긴 자리마다 점점이 붉은 자국이 남는다. 물음과는 달리 답할 겨를도 없이 몰아치는 통에 숨이 점차 짧아진다) 으, 응, 흐윽, 가, 갈 것, 갈...것 같, (감각을 피하듯 모로 돌린 얼굴이 쿠션에 연신 비벼지고, 그에 맞춰 속이 짜내듯 좁아진다.)
이영:(납작하게 비틀린 몸을 틀어 쥔다. 어깨였던가, 손목이었던가, 허리? 닥치는대로 쥐고 묶듯 고정한 채로 찔러넣는다. 더 깊이, 잔뜩 조여낸 속에 비빈다. 좀 더, 조금 더... 머리 끝부터 하얗게 녹아드는 기분에 고개를 처박고 끝까지 허리를 쳐올린다.) 나, 나한.. 나, ... ... 아, 읏... (숨을 겨우 끊어내쉬다보면 응집되었던 것이 결국 터져버리는듯 쾌감이 몸을 쓸어내린다. 고꾸라지듯 괴인 고개 아래로 몸이 고꾸라지면 몸이 잘게 떨리고 숨을 끌어모아 내쉬기 바쁘다.) .. ... ... 나한... (옅게 부른 이름이 한숨처럼 흩어진다.)
나한:흐윽, (순간 속으로 쏟아지는 것에 눈에 번쩍 뜨였다가 순식간에 시야가 하얘진다. 움츠러든 몸이 옴싹달싹도 하지 않고 품에 스며들듯이 맞붙었다가 불규칙적으로 떨린다. 방금... ...) 으...읏,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머리가 아찔해지며 몸에 힘이 죽 빠진다.)
이영:(품 안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자 고개를 들어 내려다본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닿는대로 입맞춘다.) ... (잠시간 들여다보다 입술을 맞붙인다. 입 안으로 파고들어 훑어내고 진정되지 못한 숨을 받아마신다. 현실감없이 좋아서 이 기분을 이어가고싶어. 이토록 순수하게 기뻐본게 얼마만인지.)
나한:(가물가물하게 겨우 뜨인 눈이 이영을 바라본다. 눈 앞의 것이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졌다가...) ... ... (입이 몇 번 달싹인다. 폐하라고 해야할지. 이영이라고 해야할지. 결국 결정하지 못한 채 도로 눈을 닫아버리고 고개를 빼 입맞춤에 응한다.)
이영:(몸을 짓누른채 입맞춤을 이어간다. 먹먹하게 짙은 숨이 오가다보면 어느새 다시 진득해진 몸짓으로 네 몸을 탐한다. 입 안부터, 당겨쥔 허벅지를 타고오르거나, 바짝 선 가슴을 뭉개누르기도 한다. 아직... 더 가지고 싶은지도 몰라.)
나한:(이영의 혀가 닿는 자리마다 아직 쾌감이 가시지 않은 듯 오싹하게 떨린다. 몇 번에 나눠 들이키는 숨에 옅은 신음이 섞였다가) ...자, 잠깐...
... ...두, 번은...조금...
이영:(고개를 들고 가만 올려다본다.) ... 싫으냐. (조금은 누그러진 얼굴, 대신 눈썹 끝이 내려앉았다.)
이영:그러면, 응? (몸을 바짝 붙이며 올라온다.) 싫었어?
나한:... (잠깐 시선이 내려앉는다) ...내일도 스스로 걸어야 하기에.
이영:... ... (입꼬리가 올라간다.) 걷지 못하면 내가 발이라도 되어주마.
나한:(꼭 이영을 흘기기라도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몸을 밀어내던 손을 차차 물린다.) ...짖궂으십니다.
이영:내 더 짖궂게 굴 수도 있는데... (떠보듯 한 쪽 눈썹을 들어올린다. 시선이 낮아지더니 물리던 손을 낚아채듯 쥐어 제 심장께에 얹는다.)
나한:(손이 일순 움찔했다가 손가락 끝이 살결을 약간 쓸고 지나간다. 심장박동.) ... ...폐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는 이리 하지 않으시지요.
이영:(썩 맘에 들지는 않는 호칭인지 잠시 시선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돌아온다.) ...그래.
나한:...제가 각별하기 때문입니까? (묻는 행동이 조심스럽다.)
이영:(그 말에 반응하듯 입술이 툭 벌어진다. 잘 영글은 열매가 툭 터져버리는 것처럼. 그러더니 시선이 저물었다가, 제 심장께에 얹어둔 손을 꾹 쥔다.) 그렇다 말하면 부담스럽겠느냐.
너와의 약조가... 네 신념이 흔들리게 되느냐.
나한:(잠시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였다가 천천히 돌아오고, 고개가 미약하게 가로저어진다.)
...벅차도록...기쁩니다.
이영:(입꼬리가 천천히 떠오른다. 밤하늘을 가르고 올라 빛을 퍼트리는 해처럼. 온 얼굴이 기쁘게 물든다. 꽉 쥔 손을 가슴에 짓누르고,) 여기가 네 자리야.
내 심장 가장 가까운 곳. 네 자리로 남겨두겠다.
내 너를 사랑하고 말았으나, ... 네가 기뻐해줄지 몰라 걱정했다. (가만 마주보다 끌어안는다. 심장이 쿵쿵 뛰어오른다. 가슴이 아니라 목구멍에 달린 것처럼 크게 울린다.)
나한:(사랑을 받는다는 것.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아니, 기대해서는 안되었다.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망쳐놓는지 알았다면...그럼에도 가까운 것만 기껍게 보고 짧은 온기를 바라게 된다. 천천히 그 몸에 머리를 기댄다.)
이영:(기대어오는 몸을 조심스레 끌어안는다. 부서질까, 깨어질까... 온 몸으로 감싸며 숨죽인다. 그 작은 몸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기뻐서, 기쁨에 겨워서.)
깊게 중독된 후에는 이미 되돌리려 해도 늦은 뒤.
모든 최면이 그렇듯 인간을 어리석게도 만들죠.
술탄의 하루가 서서히 저물고, 또 어떤 하루가 밝아옵니다.
왕이 대신들을 만나는 정원에는, 허리를 굽힌 고관대작들이 뜨거운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신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친위대장과 현자입니다.
이영:(근엄한 얼굴로 걸음해 제 자리에 선다.) ... 고하시오.
현자:친위대의 행동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전하.
(폐하,,,)
(ㅈㅂ 벌하지마세요)
현자:질서를 앞세운다며 일반 시민들의 가택을 수색하거나 멋대로 세금을 받아 사리사욕을 채우는 등 교란이 심합니다.
일부 병사들은 치안을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비용을 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멋대로 민가를 수색할 수 없게 조치해주시옵소서.
친위대장:친위대는 민가 수색으로 이교도 소탕에 많은 공을 올리고 있습니다, 폐하.
이영:(눈을 가늘게 뜬다. 미간이 찌푸려진 채로 친위대장의 말을 듣는다.)
친위대장:게다가 말단 친위대원들은 봉급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실정인 경우가 많아, 사적으로 치안 업무를 겸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자가 전한 세간의 소문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습니다!
이영:... ... 현자와 친위대장은 들으라.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짚었다가 손을 내린다.) 친위대가 이교도 소탕에 직접 앞장서고 있고, 그에 따른 공은 명실상부한 바.
또한 친위대장의 말대로 말단 대원들이 사적 치안 업무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게 돈다면 금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대신 공에 대한 포상을 해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 허나 이교도 소탕을 위해 민가를 수색하는 권한을 거둘수는 없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힘이 들어간 눈으로 현자를 마주한다.)
친위대장은 친위대의 행실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함을 잊지 말라. 규율과 원칙을 말하고 행하는 집단이 가장 질타받는 것은 당연하다.
월권한 병사를 시민들이 고발하면, 그 병사 또한 친위대원들이 처벌하게 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기에 처벌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영의 명에 따라 친위대는 군법을 고쳐 민간 겸업을 금지했습니다.
시민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집에 수색당하는 일이 줄어 이영의 결정에 크게 기뻐합니다.
병사의 지지도가 5 차감됩니다.
여느 때와 같이 하렘을 찾은 이영은, 나한이 방에 없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칼파들에게 물으면 아까 급하게 정원에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는군요.
이영:... 정원에? (앞장서 안내토록하고 뒤따라간다. ... 불안한 기분이 든다.)
이영:(... 찾아나서지 않는 편이 좋을까, 하지만, 걱정이 되어서니까..)
나한은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풀숲 사이를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고 팔다리에 단 값비싼 장신구가 바닥에 끌려다니는 것도 마다않는군요.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 도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영:(그 모습을 보자마자 달려든다. 다른 어떤 생각보다, 걱정이 앞선다. 생채기라도 날까, 저리 불안해하는듯한 모습이 낯설고, 걱정스러워서.) 나한. 무슨 일이냐, 어찌 여기서 이러고 있어. (옆으로 다가앉아 손을 잡아든다.)
나한:아, 폐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힌 채 눈썹을 한껏 내리트리고 이영을 바라본다.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잠깐 숨을 몰아쉬다가)
...제 소지품이 여러가지 사라졌습니다.
이영:소지품이? (맺힌 땀을 쓸어내고 머리칼을 정리해준다. 손끝을 살펴보곤 입맞춘다.)
나한:야생동물의 짓인지, 무엇인지... ... (잠깐 입을 우물거리다가) ...그 중 정말 소중한 목걸이가 있기에...
이영:칼파를 시키지 않고. 혼자 어찌 다 찾으려 했어.
나한:(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와 끝이 상한 손톱. 못해도 족히 두어시간은 돌아다녔음이 분명한 꼴이다.)
... ...그들도 하렘을 보살펴야 하기에...
(라고는 하지만, 성격상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음이 분명한 눈치다.)
이영:... ... 그들이 보살펴야하는 것은 하렘이 아니라, 하렘의 하툰이다. 그중 가장 먼저 보살펴야할 이는 단연 너이고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한을 안아든다.) 돌아가자. 물건을 찾는 것은 네 손으로 혼자, 직접하는 것보다 여럿에게 시키는 편이 낫다.
어떤 것인지 일러주련. 반나절 안에 찾을 수 있을게다. (뺨에 짧게 입맞춘다.)
그리 소란을 일으킬 일이 아닌... ...
이영:혹, 네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다면 어찌 할테냐. 내 지시라면 온 궁을 다 뒤집어 엎어서라도 찾아줄텐데. (조금은 진지한 눈으로 들여다본다. 나한을 시기할 자가 있음을 잊지 않았다.)
... 부디, 내가 돕게 해주련. (완고하게 굴 성 싶으니 이젠 자연스레 애원을 한다.)
나한:(한참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녹색 돌이 동전만한 모양으로 달려있는 목걸이입니다.
주변이 일렁이는 별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붉고 작은 보석들이 붙어있습니다.
...그것만 찾으면 됩니다.
이영:다른 것은 상관 없느냐. 여럿 잃어버린 것처럼 말했지 않아.
나한:다른 것은 잡다한 것들이라...괜찮습니다.
이영:... 그래. 꼭 찾아주마. (품에 그러안은 채 나한의 방으로 돌아간다. 다가선 칼파에게 분실물을 찾으라 이르고...)
(하렘의 다른 하툰들의 방 또한, 그들이 소지한 것도 전부 확인하라 이른다.)
이영의 말에 칼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안절부절 못하던 몇몇 칼파들은 나한이 하렘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곧장 더운 물을 떠와 손 끝과 발을 닦고 장신구를 여며주는 것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영이 계속 옆에서 말을 거는 동안에도 신경이 쓰이는지 창 밖을 흘금거리는군요.
이영:(칼파들의 손에 나한을 잠시 맡겨두었다가, 여전히 온 신경이 바깥에 쏠린 모습을 잠시 가만 지켜본다.) ... 그리도 소중한 물건이냐. 장신구 같은 것에는 영 흥미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한:...예.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가 이영을 돌아본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유일한 것이라.
혼수로 삼아달라 청하고 고국에서부터 가지고 왔습니다.
(천천히 손등을 쓸어만지다 쥔다.) 남기신 것이 없었어?
나한:(이영이 손을 쥐면,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린 듯 천천히 어깨가 내려간다.) 그리 환대받지 못한 공주인지라...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흠뻑 젖은 칼파가 무릎걸음으로 돌아옵니다.
"찾으시던 장신구가 이것이시온지..."
이영:(어깨를 당겨안다가 칼파가 내민 장신구를 본다. 설명과 비슷한가..)
나한:(표정이 일순 밝아지며 목걸이를 받아든다) 네, 맞아요. 고맙습니다.
(안도가 가득한 얼굴로 이영을 돌아보며 그제서야 풀린 미소를 짓는다) ...감사합니다, 폐하.
이영:(밝아진 얼굴로 나한을 바라본다.) 다행이구나.
이영:(고개를 돌려 목걸이를 찾아온 칼파를 칭찬하고 보상을 약속한다.)
크툴루 신화
기준치: |
0/0/0 |
굴림: |
8 |
판정결과: |
실패 |
:스치듯 본 목걸이는 기묘한 힘이 일렁이는 듯 합니다.
저것은 필히 마법적인 물건이구나, 그런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 정도로 말이죠.
이영:(목걸이를 내려다보다보면 표정이 조금 가라앉는다. ...
의심치 않기로, 의심치 않기로...)
이영:(이내 나한의 손을 접어 목걸이를 쥐게 만든다.) ... 다신 잃어버리지 않게, 소중히 해야겠구나.
나한:(이영을 마주봤다가, 기쁘게 미소지으며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건다) 폐하 덕분입니다.
:나한은 이영의 몸에 천천히 기대는 듯 하더니 고개를 늘어트립니다.
이영:... (이 목걸이를 한 걸 본 적 있던가. 시선이 한참 펜던트에 닿아있는다.)
:그야 몇 시간이고 바닥을 기어다녔으니 피곤할만도 하죠.
분명히 기억을 되짚어보면...처음 오던 날부터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장신구에 비하면 지나치게 수수해 눈에 띄지는 않았죠.
이영이 이 목걸이를 눈여겨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이영:(품 안의 나한을 가만 내려다본다.
어찌하여... )
(조금은 찌푸린 채로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다독이듯 안아 뉘인다.) ... 자꾸만 이런일들이 네 주위에만 생기는 것이야...
마치 태풍의 눈이 된 것처럼...
이영만 이 기류를 감지하고 있는 걸까요?
이 태풍은 대체 어디까지 휘몰아칠 셈인지...
나한을 따라 눈을 감는 밤은 그리 편안하지 않습니다.
이영:(궁 안에는 눈이 수두룩하다. 나만이 이를 깨닫는 것이 아니겠지. 부디, 네가 휩쓸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래, 차라리 태풍의 눈이 되거라. 그러면 누구도 너를 보지 못하고 쓸려나갈테니. 그리 생각하며 끌어안은 채 눈을 감는다.)
술탄은 꿈을 꿉니다.
대지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비명과 광기에 찬 절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또, 눈 앞에서 한 여자가 도망치고 있습니다.
물론, 나한입니다.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얼굴이 연극을 반복하듯 미끄러집니다.
피로 더러워진,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뒤를 돌아봅니다.
그의 표정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나한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이영:(이제는 다르다. 처음 이 꿈을 꾸었을 때만 해도 칼을 꺼내 들고 달려가는 마음에는
감히, 하는 분노가 일었지만..)
(... 걱정이 앞선다. 넘어진 네가, 이 불길 속에 홀로 달리는 네가.)
:비틀거리는 걸음이 이영에게 쏟아질 듯 움찔거리다가 멈추고 맙니다.
그가 입을 벌려 무어라 외칩니다.
이영:(자신을 떠나라 외치는 네가. 그 말이 고통스러워보이는 것이 기분 탓일까.)
제발, 이영.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될 겁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지 않습니다.
끔찍한 고통이 온 몸을 엄습합니다.
하늘에서 호각소리같은 것이 울리더니,
:공기를 찢으며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마치 사냥터를 연상시킵니다.
그 중 하나가 어깨를 뚫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영은 곧 이것이 오발탄임을 깨닫습니다.
그 외의 화살은 전부 나한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수 백 발의 화살이 그의 몸을 찢고, 물들입니다.
이영:(어깨를 쥔 채로 서서, 경악으로 물든다.) 나, 나한... 나한...
:쓰러지는 그것이 도저히 사람의 형체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영:나한!!!!!!!!!!!!!!!!!!!!!!
검은 물 위로 붉은 피와 화살이 맥없이 떠다닙니다.
몸이 혼절하듯 앞으로 고꾸라지는 감각과 함께...
누군가가 이영에게 속삭입니다.
이영:(온 몸이 떨린다. 언제 감았는지 모를 눈이 번쩍 뜨인다.)
:눈을 뜬 자리에는 놀란 표정의 나한이 이영을 붙잡고 있습니다.
나한:... ... (이영이 깨어나자, 그대로 숨을 내쉰다.) 괜...찮으십니까?
이영:(여전히, 분노와, 공포, 그리고 상실감에 온 몸이 떨린다. 긴장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이영:(나한이 살아있어, 숨을 쉬고, 말을 한다. 나를 보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떠나라 말하지 않아.)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들고, 끌어당겨 안는다. 확실히 이곳에 존재함을, 네 생을 증명받고 싶어.)
(잔뜩 메인 목소리가 성대를 겨우 비집고 나온다.) 네, 네가.. 나한, 네가..
나한:...예, 폐하. 여기에 있습니다. (이영의 머리를 힘주어 안은 채, 현실감이 들도록 천천히 머리칼 사이를 쓸어낸다.)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요.
이영:네가.. 나한... 나한이.. 또, 그 꿈에, 네가... (밭게 내쉬고 겨우 들이키던 숨이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 네가... 네가 또 내게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
이름을 불러줬어...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나한:...천지가 뒤흔들린다는 그 꿈입니까. (어린아이를 달래듯 고개를 기대고 머리를 쓴다.)
얼마든지 불러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이영이 평화를 찾는다면.
이영:... 허나 죽은 것은 너였다. (찢어져 갈라지고 부서지던 몸. 여기에 단단하고 부드럽게 존재한다. 그 품에 조금의 혈향이라도 있을까 샅샅이 살피듯 숨을 들이킨다.)
내게 네가, 함께있으면내가 고통스레 죽을 것이라 했는데, 실상 고통스럽게 죽은 것은 너였어...
... (제 이름을 읊는 나긋한 목소리에 입술을 꾹 문다. 크게 마셨던 숨이 끊어내쉬어진다.) ... 더 불러줘.
더... (더 깊이 파고든다.)
나한:...이영이 죽는 것보다...제가 그리 되는 것이 더 두려우셨어요?
이영:(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공포가 언어로 구현되자 눈물이 고인다.) ... ... 내가 죽는 줄 알았던 때에는, ... 혼자 남을 너를 걱정했는데...
... ... 어쩌면 좋아. 네가.. 네가...
... 그리 될 바에는 너를 멀리 보내고싶구나. 그런 일이 네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개를 파묻으며 어깨에 대고 웅얼거린다.)
나한:... ...그건, (말이 툭 끊어졌다가. 팔을 뻗어 이영의 머리를 끌어안는 힘이 강하다.) ...안됩니다.
이영만큼이나... ...저도, ...이영이 죽는 것이 두려워요.
(정말 그런 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눈을 힘주어 감은 채 고개를 비빈다) ...그런 말 마세요.
이영:... ... (네 등허리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더, 조금 더. 꽉 안아 맞닿은 심장의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 너를 두고 사라지지 않으마.
네 곁에 있을테니, 너도 내 곁에 있어.
(고개를 물려 입술을 포갠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픈 꿈이었다. 그러나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통 위로 덮인 구름같은 것에 취하는 기분이다.)
나한:(대체 누가 이리도 유약하고 작은 생물에 이런 고통을 떠안겼단 말인가. 내리 뜬 눈으로 이영을 바라보다가 입을 맞춘다. 내가 있음으로 한 겹 베일을 감싸는 셈이 된다면.)
섬뜩한 피가 흩뿌려진 모래 위로 파도가 스쳐 지나갑니다.
처음부터 바다 비린내 밖에는 없었다는 것처럼...
짙푸른 바닷물과 검은 하늘이 유난히 닮아보이는 밤입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릅니다.
주변을 둘러싼 사건은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베일처럼 희미합니다.
그 너머에 희망과 공포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춥니다.
:오래 전, 이영은 나한이 구 궁전 감금실의 비밀 문을 이용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추궁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영은 거듭된 고심 끝에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찾습니다.
이영이 어둠 속에서 본 그 복도... ...
이영이 갔던 비밀통로와 유사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요, 지상에 드러나면 마치 시가지를 지나는 하수로 만들어진 내천처럼...
이번 시찰부터 '지하수로'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 통로는 왕궁 아래를 중심으로 수도에 거미줄처럼 깔린 지하수로와 유사하게 생겼습니다.
설마 그것이 구궁전까지 이어져 있을 줄은 몰랐지만요.
이영:(어쩌다 네가 그런 길을 알게되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 의심치 않겠다는 약속이 목을 죄고 궁금증이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아. 이럴 땐... 환기가 필요하다. 눈을 멀리 두어야 해.) 궁 밖으로 시찰을 다녀와야겠구나.
(근래 문제가 되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라 성전으로 향하기로 한다.)
경건한 분위기의, 향 냄새가 풍기는 성전입니다.
이곳은 언제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성전 주변으로는 부촌이 뻗어 있습니다.
마치 성전의 일부인 것처럼 반짝이는 타일들로 외관을 장식한 집들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이 지역은 크게 현자가 머무는 성전과 사람들이 모이는 번화가로 나뉩니다.
이영:(시선이
번화가로 접어든다. 평범한 기도객처럼 꾸몄으나 당당한 자세 탓에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지나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조용히 호위에게 질문할 따름이다.) 제위 전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냐. 인파의 규모라던지, 말이다.
:사암으로 만든 판석이 깔린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번화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 중정이나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차와 단 간식을 들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모두 좋은 옷을 입고 있고, 생활고라곤 겪어본 적 없는 자들 같습니다.
이영이 묻자 호위가 고개를 숙이며 답합니다.
"이 주변에 사는 자들은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이기에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만..."
"...파디샤께서 즉위하신 뒤로 기도하러 오는 자의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얼마 전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늘어나 저 곳까지 줄을 서 있습니다."
이영:"... 이교도를 색출한 이후부터라고 보면 되겠느냐."
:"예. 최근 파디샤께서 신중하게 민심을 살피셨기에 이교도에 현혹되는 일이 적어졌다 사료됩니다."
이영:다행이구나. 그 때문에 걱정이 컸으니...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다. 얼굴을 아는 자만 아니라면 상관 없겠지, 생각하며 둘러보기도 한다. 이들도 이교도 때문에 고생들 했겠군.)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씩 이영을 흘금거립니다.
아마도 잠행을 나온 친위대원이나 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설마 술탄이라고는 상상도 못할지 모릅니다.
이영:큼큼... (헛기침하며 목에 두른 천을 코 아래까지 끌어올린다.)
:이영이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비단 천으로 만든 작은 장신구 따위를 판촉하는 행상인들도 있군요.
이영:(... 장신구에는 눈길이 꼭 가 닿는다. 퍽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보이면 생각나는 이가 있으니.) ... 이건 어디에 하는 장신구요?
"이건 요즘 귀부인들 사이에서 아주 유행하는 장신구입니다. 어깨에 두르는 천이나 허리띠를 고정하는데에 쓰는데, 여기에 쓰인 천이 왕실에도 납품된다는 최고급 비단입니다."
"너무 비싸서 한 단을 통째로 썼다간 가격이 치솟지만, 이건 작은 장식으로 만들었기에 아주 적절한 가격에 훌륭한 품질을 갖출 수 있었죠."
이영:오호... 왕실에 납품되는 것이라. (보여주는 장식을 만지작거린다.) 어찌 쓰는 것인가 보여주게. 찔러넣는 것인가?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인다. 이런 것이라면 나한도 곧잘 하고 다니겠군.)
:"아니요. 이건 귀부인들을 위해 제작된 것이라 천을 상하지 않게 하기까지 합니다. 이 뒤에 천을 단단히 집을 수 있는 꽂이를 달아 몇 겹의 천이라도 풀리지 않게 만들 수 있지요."
이영:썩 좋은 물건이군. (턱을 문지르며 웃는다. 어디보자, 나한이 자주 입는 색과 어울릴만한 것이...)
:나한은 평소에 한색으로 물들인 옷을 자주 입곤 하죠.
흰색이나 초록색도 잘 어울리겠어요.
이영:(이리저리 손을 움직여보다가,) 흰 것으로 하나, 아니.. 이 녹빛도는 것도. 그리고, 흠.. 이 검붉은 것도 하나 주게.
:이영이 물건을 고르는 손짓에 상인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예, 예. 아주 자수가 아름답게 나온 것으로 드리지요."
상인은 천으로 감싼 함에 장신구를 하나하나 조심스레 담아 내밉니다.
이영:(호위가 받아들도록 몸을 기울인다.) 다음에 또 좋은 물건 가지고 오게나.
:호위가 공손하게 함을 받아들고, 값을 치르면 상인은 기분좋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새로운 고객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이영:(입가에 미소가 걸린 채로 걸음을 마저 한다.) 좋은 선물을 구했구나.
이영:
듣기
기준치: |
65/32/13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디선가...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데...
그 중에 이영의 귀에 익은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영:(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다. 무슨 소리람.)
"멸망의 조짐이라니까! 지금 누구보다 독실한 신자인 나를 모욕하는거얏!"
"웃기시네~! 제단에 정신을 의탁한거겠지!"
어라, 이 묘하게 왕받는 말투는...
페트라에서 만났던 탐험가와 유사합니다.
이영:(눈을 가늘게 뜨고 본다. 누가 이렇게 왕받는 소릴...)
어, 어엇. 저 녀석, 그 때 그 녀석 아니냐. (손가락질하며 호위 돌아봄)
(생각해보니호위는모름당연함)
(나혼자밥먹다가어그로끌었음)
"예...? 파디샤께서 아는 분이십니까?"
호위는 저딴놈하고? 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영:아, 그... (잠시 생각해보더니) ... 페트라에서 함께 식사했던 적이 있지.
광인을 이송하느라 네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밤에 말이다. (어깨 으쓱이더니 무슨 소리 하나, 멀찍이서 팔짱끼고 구경이나 해요)
:호위는 그 말을 듣고 그렇군요, 하고 탐험가를 미심쩍게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봐도 페트라 원주민은 아닌 것 같아서겠죠.
아무튼 약소하게나마 도움을 받은 일이 있다.
:탐험가는 최근 이교도들이 늘어나고 흉흉한 소문이 도는 사건을 멸망의 징조라 생각하는 자들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탐험가가 수적으로 열세인데다가...
말본새가 좋지 못한 탓에 곧 주먹이라도 나갈 것 같습니다.
(흐음. 시찰 중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면 안 되는데.... 저 치가 무슨 이야기를 들고 왔을지도 궁금하단 말이지. 잠시 고민하다 성큼성큼 다가간다.)
이보게, 오랜만일세. 여기서 다 보는군. (탐험가의 어깨를 탁 쥔다.)
탐험가는 눈이 동그래져서 이영을 바라보고, 곧 주먹을 꺼내들 것 같던 사람들도 이영에게 이목이 쏠립니다.
이영:(빙긋 웃어보이곤..) 이쪽은 자네 친구들인가?
:"친구?! 난 이런 놈들 친구로 둔 적 없어!"
그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항의하며 주먹을 흔듭니다.
아무래도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기술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이영:(얼굴을 굳히고 다가서 내려다본다.) 친구도 아니고, 주먹을 휘두른다? 아무리 노상이라 할지언정 상도가 없는 자들 아닌가.
위협
기준치: |
65/32/13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흉흉한 눈으로 내려다봅니다)
:사람들을 이영을 친위대원이나 군인으로 오해한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흐악, 하는 소리를 내더니 탐험가와 이영 주변으로 간격이 형성되는군요...
"오우, 당신 군인이었나? 얼뜨기인줄 알았는데."
이영:(어느 쪽이건 크게 다르지 않기는 하다. 전장에 수도 없이 나섰던
파디샤의 검이었으니...)
... 그럼 어쩔 거지?
아니....
그게 중요한가. 자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재앙인데.
(반박하려는 시늉을 보고 손을 들어 막는다.) 자네는 입 다물고 있는 게 도와주는 걸세.
:"내가요? 난 말을 되게 예쁘게 하는 편인데."
"어느 지역을 가도 아주 잘 지낸다고요."
이영:그 동네에서는 말썽 안부리려고 하더니 제국에 와서 푸는 건가? 대체 어떻게 거기서 얌전히 지낸 거지?
:"제국만 오면 이래요. 하여간 이래서 제국 사람들은 싫다니까...아, 그쪽만 빼고요."
"그나저나 군인이었다니까 이야기가 좀 되는군요. 세관에 도착하자마자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고...남이 발까지 씻겨주더라니까요."
이영:(혼자 픽 웃는다. 그렇게까지 대접해줬나...)
세관에 그렇게까지 할 손님은 아니라고도 전해둘 것을..
:탐험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가방을 챙겨듭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만나다니 별 일입니다. 인연은 인연인가봐요."
이영:그러게나 말일세. (한 쪽 입꼬리를 올린다. 별난 인연이군. 왕궁 밖을 흔히 드나드는 것도 아닌데 이리 번번이 만나다니.)
그래서, 페트라의 연구는 다 끝내고 오는 참인가>
?
:"아뇨, 다시 돌아갑니다. 이번은 문화지 초안을 대리인한테 넘기러 온 거고요. 아직 더 위쪽으로 볼일이 많아서 제국에는 오래 안 있을거에요."
"내가 몇 년만에 오긴 했지만, 아주 흉흉해지기까지 해서 더 머물기가 싫어요."
탐험가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 이거 하나 먹게, 하고 길거리 음식을 가리키며 이영을 바라봅니다.
이영:... 그런데? (눈을 가늘게 뜨더니 호위에게 고갯짓한다.)
:호위는 이영의 고갯짓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내 이영과 탐험가의 몫으로 고기 꼬치를 사들고 오는군요.
이영:(제 몫은 거절한다. 호위에게 먹으라는 듯 눈짓하고 돌아본다.) 제국이 흉흉해졌다는 말인가? 치안에는 힘쓰고 있는데 말이지.
:탐험가는 고기꼬치를 받아들곤 우물우물 먹기 시작합니다.
"종말론 같은 어이없는 소문이 퍼지고 있잖아."
이영:흠.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교도의 이야기지 않나.
:"내가 그쪽한테 이교도 이야길 하긴 했지만서도요..."
"나는 이교도라는 게 다 종교를 빌미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허황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국 사람들은 그 이교도라는 걸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더라고요."
"아, 역시 고기는 제국 것이 훨씬 맛이 좋네."
이영:사리사욕이라면서 행하는 일들이 폭력이니 말일세. (잘 먹는 꼴을 보니 긴장이 풀려 픽 웃는다.)
:"뭐, 수단이 과격하니까 이교도라고 불리는 거겠죠..."
이영:그들이 왜 그런 방식을 택하는지도 뻔하지 않나. 이교도의 사상에 반대하는 가족을 죽이면 그들이 가산을 쏟아붓는 데에 반대할 자가 없어지지.
:"시작한 사람의 수작은 몰라도, 그런 게 널리 퍼진다는 건 확실히 세상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뜻이에요. 물론, 어..."
이영의 이름을 모르는 탐험가가 꼬치로 이영을 가리키다가 휙 돌리면서 얼버무립니다.
호위의 눈빛이 흉흉하군요.
이영:... 그렇게까지 과격한 방식을 택하는 건 상식 밖인지라 오로지 사욕만을 목적으로 뒀다고는 생각지 않아.
... 윤.
"윤의 말대로 돈을 끌어모으기 위함이라면 귀족들을 꼬셔내는 게 빠를 거고,"
:"인간을 끌어모으기 위함이라면 백성들을 꼬셔내는 게 빠를 거란 말이죠."
이영:(이 자는 통찰이 빠르다. 군상을 관찰하고 파악해내는 것이 업인 자가 판단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귀한 일이지.)
헌데 이들은 그리 해내고 있다, 이 말인가?
혹은, 그 두가지 모두 이들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인가.
:"아닙니다. 저울은 절대 수평이 될 수 없죠."
"이교도가 둘 중 하나를 잡으면 다른 쪽은 제국에 충성하겠죠."
이영:둘 중 하나는 놓쳐야한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둘 다 잡으려 했다간 그물에 무엇도 남지 않게 되는 법이에요. 뭐, 듣기로는 술탄이 어리다고 하긴 하던데."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할지 잘 알고 있기를 빌어야죠. 나도 책도 내고 돈도 벌어서 조사단을 끌고 다니고 싶단 말입니다."
이영:... (그렇군. 모두 다 쥐겠다는 것은 욕심인가. 그렇다면 가장 탐나는 토끼가 어떤 놈인가, 그걸 정해야한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보나.
:그의 말이 옳습니다. 양 손에 모든 것을 쥘 수는 없는 법이죠.
"나는 뭐...왕 노릇 같은 건 문외한이지만."
"내가 술탄이라면 힘 없고 제 손으로 돈 버는 사람들을 챙기겠어."
이영:... 그렇군. 자네더러 쿠데타를 일으키고 술탄이 되라는 건 아니니 걱정 말게. (씩 웃어보인다.)
:"가진 놈들은
남들보다 더 가지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기 마련이야. 손 뻗으면 권력이 닿는 자리에 있으면 더더욱 심하고."
"근데 우리는 완전 단순하잖습니까. 나라도 왕이 내 편 들어준다고 하면 머리라도 박겠어."
이영:(자네 편은 이미 들어줬는데.. 싶어 작게 큭큭댄다.)
거, 이마 조심하게.
:머리를 골백번 정도 박아야 할텐데 말이에요.
탐험가는 말해놓고 눈을 끔벅거리더니 이영을 불쑥 쳐다봅니다.
"군인이면...윤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죠? 이거 말 잘못했네."
"좌우지간 내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다."
이영:(어깨를 으쓱이곤) 잘못 말 한 거면 당장 추포했을테니 두려워하진 말고.
:탐험가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혀를 찹니다.
"윤도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그러더니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갈 길이 바쁘다며 손을 흔듭니다.
이영:(그 모습을 웃으며 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돌아선다.) 생각보다 심각한지도 모르겠군. 이전의 제국을 아는 자가 보기에 지금 제국이 겁먹은 것처럼 보인다니 말이야.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파디샤께서 고려할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이영:나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니다. 국가는 거대하여 개인의 시선으로는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 밖에 없어. 아무리 전해주는 눈들이 있다 해도...
:그 말에 호위는 답을 않고 고개를 숙여 받들 뿐입니다.
성전 내부에는 경건한 향 냄새가 풍기고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러 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군요.
이영이 성전에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자가 이영을 발견하고 마중을 나옵니다.
이영:(뻣뻣한 고개로 시선만 내려 인사를 받는다.)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공연히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소.
파디샤께서 성전에 방문하시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요. 기도를 드리러 오셨습니까?
이영:그렇습니다. 그리고... (긴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고개를 낮추며 눈을 든다.)
아무래도 걱정이 들어 말입니다. 근래 이교도의 불경한 말들이 민중의 귓가에 떠도는 듯 하여...
현자:(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가, 이영을 내실로 안내한다)
파디샤께서 이렇게 찾아주셨으니, 현자들이 파디샤들께 하는 전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등극하셨을 무렵 바로 말씀을 올려야 했지만 그 때는 시기가 혼란했기에...
이영:...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에는 모든것이 혼란스러웠고 어려웠다.) 배려에 감사하오.
:그는 이영에게 먼 옛날, 제국에 주어진 예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핸드아웃 예언을 공개합니다.
바람의 시대라 함은 무엇인가.
현자:저는 오래 전, 이교도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올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혹 이 시대가, 예언이 도래하는 때는 아닌가. 하고...
이영:(조금 웃는다.) 현자께서는 걱정도 많으십니다.
혼란한 시기마다 같은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현자:바람의 시대란 제국이 융성한 때를 일컫습니다. 매번 우려하기는 하였으나...
...허나 이번은 유달리 조짐이 심상치 않기에 파디샤께 여쭙습니다.
파디샤께서는...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그리 하시겠습니까.
이영:... ... (눈을 바로 떠 마주한다. 잠시간 고민한다.) ... 제국이 사라진다면 살아남고자 움츠린 겁쟁이가 되겠군.
나는 항상 목숨을 내어놓고 살았소. 그 삶의 목적에는... 무엇이든 되고자 함이 있었지.
그때는 무엇이고 될 수 없었거든. (자조적으로 웃는다.)
허니 두렵지 않소. 내 지금 살아감에 있어 첫째는.. (순간적으로 나한의 얼굴이 머리에 스친다. 떠나지 말라던 말들.) ... 제국을 유지함에 있으니..
어쩌면 이영의 길은 그를 따라 정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를 위해 남거나,
그를 위해 떠나거나...
현자는 부디 파디샤의 앞날에 거슬림이 없기를 기도하며 이영을 배웅합니다.
:이영이 궁으로 돌아와 하렘으로 향하면, 나한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드문 일은 아니지만요.
이영:(나한이 알아채는 것보다 빨리 방문자를 알아채고 달려온 고양이의 등을 문지르더니 안아든다. 나한에게 다가가 짧게 입맞추며 웃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나한:폐하. (이영을 보면 잠시 입가에 미소가 오른다.) 이런저런 사념입니다.
이영:어떤? (안고있던 고양이의 손으로 나한의 볼을 툭 누른다.)
그 중에 내 생각도 있었는지 궁금한데.
나한:이 궁 안에서 하는 모든 것이 폐하에 관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고양이의 말랑한 발바닥이 볼에 닿으면 웃는 소리를 냈다가 이영의 손을 함께 감싸쥔다.)
그저... ...
수심에 잠긴 하툰이 있어 그 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이영:...응? (고개를 갸웃하곤 버둥대기 시작한 고양이를 풀어놓는다. 대신 곁에 바싹 붙어앉더니 허리를 감싸안는다.) 친하게 지내던 이냐.
나한:(고개를 가만히 저었다가 이영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허공을 응시한다. 마치 염려하는 자를 눈 앞에 그려보듯이.)
아주 최근에 이 하렘에 들어온 자입니다.
발리데 술탄께서 직접 간택해 데려왔다 하여 들리는 이야기를 살펴보니...
나한:... (잠깐 입을 달싹인다.) 친위대장의 여식이라더군요.
나한:스스로 이곳에 오기를 원한 것 같지 않아 방 밖으로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습니다.
... (그 모습이 꼭 이곳에 막 도착하던 때의 자신과 겹쳐보였다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
이영:... (그 얼굴을 가만 내려다보다가, 볼에 입술을 붙였다 뗀다.) 걱정이 드느냐.
더러 그런 이들도 있다. 가문을 위해 헌납된 이들. 끝끝내 울어버리고 마는 이들 말이야.
내 어찌 하겠나, 하렘은 발리데의 손으로 가꿔지는 곳이니. (혀를 끌 차고는 볼을 감싼다.) ...네가 왜 마음을 쓰는 지는 대충 알겠지만... 문 밖에서 걱정하는 것보다는 들여다보고, 마음 써주는 편이 좋을게다.
나보다는 네가 낫지 않겠니. (어깨를 으쓱인다.) 내가 들어서면 울음을 터트려 버릴걸.
나한:(이영의 말에 작게 웃음을 짓는다.) 저는 폐하께서 다른 하툰들에게도...존경을 살 수 있는 어진 술탄이라 생각합니다.
일부러 그리 하지 않으시는거지요.
이영:(... 과거를 떠올려본다. 흥을 돋구라며 저들끼리 난교를 시키던 적도 있었는데.. 나한은 본 적 없으니 다행인가.)
... 글쎄... (어깨를 으쓱인다.) 부러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아. 너 하나면 족한데 내 무엇하러.
(그리곤 품으로 파고든다. 천을 벌려 맨살에 입술을 붙인다. 어리광부리듯이.)
나한:보이지 않는 존경 또한 파디샤께 힘이 될테니까... (그러다 이영이 입술을 붙이면 작은 소리를 내며 나무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을 잡고 들어올린다.)
이영:(얼굴이 번쩍 들리자 개궂게 웃는다.) 이 또한 내게 힘이 되는데두.
나한:저는 진지합니다. (눈썹에 힘을 준 얼굴이 이영을 향했다가)
...발리데 술탄께서 여러 여식을 데려오셨지만 이렇게 끌려오듯 한 것은 처음이라 염려되어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영:... ... (진지해진 얼굴을 가만 마주하다 퓨우, 한숨을 내뱉곤 몸을 세운다.) 알았다. 네가 그리 걱정하니 나도 마음이 쓰이는구나.
나한:(이영이 마침내 제대로 된 대답을 하면 슬쩍 미소를 짓는다.)
이영:... 근데 꼭 지금이어야하는 건 아니겠지? (허리를 쥔 손 끝을 세워 간지럽힌다.)
나한:아직 정무가... (이영이 허리를 간질이면 맨살에 무방비하게 오르는 감각에 작게 다문 소리를 냈다가 또 손등을 찰싹, 소리가 나게 친다)
폐하. (눈에 힘을 주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영:아얏. (입으로만 소리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마주본다.)
... ... 정말?
제가 폐하의 침소에 걸음하는 날이 적어지는 것을 바라십니까?
이영:(눈이 가늘어지고 아랫 입술이 툭 불거져나온다. 아무리봐도 불만스럽다고 적힌 얼굴이 되어선...) ... ...
알았다, 알았어. 다녀 오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나한:(그 표정이 볼만하다 생각했는지, 결국 웃어버리며 이영의 얼굴을 끌어당겨 양 볼에 입을 맞춘다) 다녀오세요, 이영.
이영:(순순히 끌려가더니 볼에 입술이 닿기 전부터 잔뜩 웃는 얼굴이 된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마주 본 채로 기다린다.) ... 하나 빼먹지 않았느냐.
나한:(꼭 안 해줄 것 마냥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밀어 입술에 입을 맞추더니) 이제 괜찮으시지요.
이영:(활짝 웃어보인다.) 그래. 금세 다녀올테니 잠들지 말고 기다려야한다. 못 전한 선물도 있으니...
:이영이 하렘을 나서면, 계속 기웃대던 아아가 나직한 목소리로 이영에게 무엇을 고합니다.
이영:(다가서는 아아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걷는다.)
:"...하툰께서 말씀하신 예의 여식 말입니다."
:"그 아이가 오기 전까지 친위대장이 딸을 하렘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며 몇 번이나 발리데 술탄께 항의했었습니다."
"허나 저희로서는 발리데 술탄의 명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하렘에 그 아이를 들였는데...
:"...얼마 전에 발리데 술탄이 아끼는 심복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예. 신경쓰지 말고 할 일을 다하라 하셨습니다."
이영:... 그리 판단하시는 것이냐. (시선이 구궁전의 방향으로 향한다.)
:"감히 저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점 잘 알고있습니다. 허나..."
"...발리데 술탄과 친위대장은 파디샤의 곁을 받치는 두 기둥이기에...혹여 궁에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술탄께서 부디 응당한 조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이었는데... 피곤스러운 기분에 양 눈썹이 한참 들렸다 내려앉는다.) ... 안내하거라.
걷히지 않은 발 너머로 작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영:(차라리 울지 않는 때에 찾아왔다면 조금 나았을까, 생각하며 발을 걷어내며 들어선다.)
:이영이 발을 걷고들어서면, 나한보다도 조금 더 어려보이는 하툰이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크게 뜨더니 넙죽 엎드려 절을 합니다.
"수, 수, 술, 술탄이시여.."
이영:(침대에 걸터앉으며 돌아본다. 어리긴 어리군.) 네 걱정을 하는 이가 있어 오게 된 것이니 두려워 말라.
:그 말에 하툰은 덜덜 떨리는 고개를 천천히 듭니다.
"아, 아...아, 아버지께서...?"
이영:... 내 총애하는 하툰이 있음을 아는가. 그이가 자네를 걱정스레 여기고 있어.
:"...압...니다. 하렘 안에서 지나가시는 것을...본 적이 있어..."
그 하툰이 어째서? 하고 의아해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이영:자네가 원치않게 끌려온 것 같아 걱정하고 있더군.
(... 팔자에 없는 짓이군.) .. 이 곳에 왔다고 죽는 것 아니다. 그리 귀신처럼 울고만 있으면 얼굴이 짓물러터지겠구나. 네 아비가 걱정하는 걸 알면 걱정시키지 않을 생각도 해야지 않겠느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 말에 하툰은 고개를 떨구며 예, 하고 힘없이 대답합니다.
파디샤가 하툰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전부 살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이영이 단시간에 그 내막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더라도, 발리데 술탄과 친위대장 사이에 어떤 권력 경쟁이 있음은 명료합니다.
이 일이 대신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괜한 분열이 이는 것을 보고있기보다, 한 쪽의 손을 들어주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제국의 유지와, 내실의 안정, 그리고 나한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도요.
이영:(실상, 더 많은 하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한 하나면 충분한데 무엇하러 계속 하툰을 더 들인단 말인가. 다신의 권력을 이런 식으로 남용하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발리데 술탄은 어디서고 정점에 서려 드는 여자다. 가장 가까운 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이런 식으로 행사하는 힘이 기껍지 않다. 끌려온 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 화를 피하려 발리데 술탄에게 굴종할 이들이 눈에 보인다.)
... 아이야.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이영에게서 상상도 못했던 말이 떨어지자, 하툰은 마치 동앗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듭니다.
"...예, 예."
이영:하렘에서 내쳐진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더라도 집으로, 네 아비에게 돌아가고싶으냐.
:하툰은 고개를 여러 번 주억이며 애써 눈물을 참는 것처럼 눈에 힘을 주더니 허겁지겁 대답합니다.
:"예, 괜찮습니다. 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영:네가 바라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가질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내게도 체면이 있고, 하렘에는 지엄한 규율이 있으니 약조하자꾸나.
(때로는 간교한 뱀이 되어라, 재빠르게 누구의 목도 물 수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내도록 범이 되거라, 짓누르고 찢어발기는 힘을 모두에게 드러내라. 그리 가르치셨지요.)
내 네게 자비를 베풀었음은 네 가족만이 알게 해라. 공표하기로는 내가 너를 바라지 않아 손도 대지 않고 내친 것이 될게다.
(이 아들, 제 어미의 목도 물 수 있는 뱀이 된 듯 합니다, 어머니.)
(이 자비는 알음알음 번져 당신의 목부터 머리속으로 파고드는 독이 될겁니다. 사람의 입은 가벼우니 말입니다.)
이영:... 발리데께서도 너무하시지. 너 같은 어린애를 말이다.
네가 어찌 하렘에 오게 되었는지는 네 아비가 더 잘 알고 있을게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는 날까지 울음을 그치고 단장하거라. 하렘에서 박하게 굴어 얼굴이 상했다 여기면 네 아비가 내 목을 치려 들지도 모르니.
(... 그 아비는 이제 나의 반려를 비호하려 들겠지. 좋은 일이다.)
:하툰은 이영의 말을 받듭니다. 이 결정은 내보일만한 언어로 포장되어 대신들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이영:(대답을 듣자 옷자락을 휘날리며 돌아나간다.)
:술탄은 모두의 적이기도 하며 모두의 아군이기도 합니다.
이영:(또한, 재정대신에게 이른다. 당분간 하렘의 예산이 크게 느는 일이 없으리라고.)
:그러니 이 제국에서 처신을 할 때에는 자신의 검 끝이 술탄의 눈 앞까지 들이밀어지지 않게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뱀은 오랜 시간을 들여 먹잇감을 사냥하는 법이니까요.
발리데 술탄은 지는 해. 더 이상 새로운 권력을 쥐어주어서는 아니됩니다.
호랑이의 이빨보다 소문이 빠르다던가요. 귀족들은 술탄의 결정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이영:(그 모두를 나한이 가졌으면 한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일로, 친위대장은 조금 더 강한 발언권을 얻었습니다. 더 이상 발리데 술탄이 친위대에 무어라 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귀족의 지지도가 3 떨어집니다.
그렇게 술탄의 다음 통치가 시작됩니다.
:페트라에 방문했을 때에 들었던 목격담, 그리고 종말에 대한 무수한 소문들...
호위를 시켜 알아보니, 이교도의 손이 비교적 덜 뻗쳐 있었던 하층민들을 위주로 비밀스럽게 집회나 전파가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하남부에 펼쳐진 드넓은 갈대밭 어딘가에서, 특정한 시간과 날짜에 이교도 사제가 방문한다는군요.
이번 시찰부터 갈대밭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영:(여전히 구궁전에서 보았던 나한이 마음에 걸려. 하지만... 의심치 않기로 했으니... 하지만...)
(어쩌다 그 곳으로 향하는 입구를 찾아내버렸는지도 모른다. 저도 모르게 탐험을 즐겼을지도 모르지. 들판에서 뛰놀던 여자아이가 벽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은 숨막히는 일일테니.)
(... 혹여 그 통로에 위험한 것이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 그곳에서 몰래 모험을 즐기고 있다면, 적어도 위험한 것은 없어야할텐데. 바깥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다면, 그래서 외부인을 맞닥트린다면...)
(지하수로를 확인하기로 한다. 명목은... 궁 밖에서 궁 내부로의 침입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것으로.)
제국의 지하에는 멀리 있는 수원지로부터 물길을 끌어오는 상수도 시설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마치 거미줄과 같은 모양이죠.
그리고 그 수도관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이 들어가 보수할 수 있는 길을 복잡하게 뚫어두었습니다.
석회를 바른 수도관이 얼기설기 엮여있고, 그 옆을 따라 보수하는 통로가 놓여 있습니다.
이영:(길이 복잡하군. 물소리가 끊이질 않고...)
:친위대 훈련소, 왕궁, 신전...대부분의 주요 시설이 이어져 있습니다.
보통은 사람이 지나갈만한 크기지만, 몰래 탈출하기 위해 설계자가 건축해놓은 숨겨진 길들도 있습니다.
중간중간 철창도 있고, 궁성의 보안을 위해 수로 아래 길은 결코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이영:(출입이 가능한 것은 어디인가를 확인한다. 바람이 새어나가는 곳들.)
:길을 제대로 찾아가려면,
행운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영:(그러니까, 이쪽이던가? 아니.. 저쪽인가?)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영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길을 가늠합니다.
구궁전 아래 숨겨진 통로로 나아가다보면...
좁은 길폭 전반에 이끼가 끼어 있습니다.
수로의 안쪽으로 갈수록 파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옵니다.
왕궁에서 가까운, 섬을 따라 연결한 수로...
수로의 안쪽에서 기묘한 녹색 불빛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영:(어째서 저런 빛이... ... 촛불도, 햇빛도 아닌, ...)
(기이한 빛에 의아함을 가진 채로 천천히 다가간다.)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저수조가 보입니다. 자연동굴을 다듬은 것처럼 종유석이 자라있는 저수조의 물 한가운데,
작은 배 같은 것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 배 자체가 녹색 불빛을 내며 지하를 밝히고 있군요,
저수조의 가장자리에는 책장이 있고, 그곳에는 작은 단지가 올라가 있습니다.
(... 왕궁의 지하에 이런 불길해보이는 것들이 숨겨져있단 말이냐.)
(누가, 누가 감히...)
(분노가 끓어오르기 전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저수조로 다가가 안쪽을 살펴본다.)
저수조는 이영의 명치까지 올라오는 정도로 물이 차 있습니다.
배를 살펴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겠군요.
이영:(
젖은 채 돌아가고싶진 않은데.... 잠시 바라보다 책장쪽으로 몸을 돌린다. 물을 뚝뚝 흘리고 다니는 것도 싫으니 이쪽을 먼저 볼까.)
저자가 환각 상태에서 목격한 이계의 신이나 그들에 관한 지식들이 적힌 다양한 자료들... ...
얼핏 보면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료조사를 판정합니다.
이영:
자료조사
기준치: |
50/25/10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영은 자료들을 모아 대강의 맥락을 파악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 적힌 두루마리를 찾아냅니다.
이영:(재차 확인하며 다시 읽는다.
미래를 내다보는 꿈.)
... ... 설마. (고개를 돌려 저수조에 담긴 배를 바라본다. 크기가, 어느 정도였지.)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두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입니다.
(누가 이런 괴상망측하고 사특한 짓을.)
(이 왕궁의 자하에서 벌이고 있단 말이냐.)
:대체 누가 시작한 짓이지?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
이영:(책장 위의 단지를 살핀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하고.)
이영:(
이 주문은 누굴 위한 것이냐, 나를? 아니면 또다른 누군가를?)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시종들이 이영의 손톱을 깎았을 때에 그것을 모아 넣어두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단지 쓰레기통 정도라고 여겼을만한 크기의...
그렇다면 저 주문의 대상은...
필시 이영이겠군요.
(... 어째서?)
(누가?)
(무엇을 위해?)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이런 짓을 벌여?)
:주문의 진상을 알게되면, 이성을 판정합니다.
이영:
SAN Roll
기준치: |
53/26/10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렇다면, 그 꿈은 정말로...)
(... 꿈일 뿐인 꿈이 아닌 게로구나.)
...정말로 예지몽이었다니.
기분 나쁜 악몽이 아니라...
이영:(네가 내 앞에서 떠나기를 빌고, ... 꿰뚫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 그저 악몽이 아니구나.)
:게다가 이 나라의 술탄을 두고 은밀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이영:(손이 잘게 떨려온다. 분노와 함께 밀려드는 것은 두려움이다. 이 두루마리에 다가올 미래를 막아내는 방법같은 건 적혀있지 않아. 나는 어쩌면 좋단 말이냐. 한 나라의 술탄이 이리도 무력할 수 있단 말이야.)
(시선이 저수조를 채운 빛으로 돌아선다. 저것이 무엇이기에... 내게 그런 미래를 보여주는 것인지.)
:녹색 불빛은 저수조를 은은히 밝히고 있습니다.
불길한 일렁임입니다.
이영:(홀린듯 수조로 다가간다. 알아야겠다. 직접 봐야겠어. 그저 배일 뿐이잖느냐. 이건, 저런 얼토당토않은 글에 적힌 괴상한 손톱이 아냐.)
(.. 아니어야지.)
이영은 저수조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뇨, 이건... ...
작은 손톱들이 길게 자라나...마치 파충류의 피갑같은 모양으로 얽힌 형상입니다.
그것이 배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 ...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군요.
이성을 판정합니다.
이영:
SAN Roll
기준치: |
52/26/10 |
굴림: |
3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주문을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상황을 만회할, 타개할 방법을 찾으려면...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이영이 방금 본 책장에서 찾았던 두꺼운 두루마리가 그 답이 되겠죠.
자료조사를 판정합니다.
이영:
자료조사
기준치: |
50/25/10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당장 이 자리에서 이 내용을 전부 읽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다만 시간을 들여 이것을 연구한다면 이 주문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알 아지프의 연구는 시나리오 내에서 이것을 처음 발견한 시점부터 진행할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연구한다면 476일이 필요하지만, 이영이 특정한 항목을 충족할 때마다 연구기간을 100일씩 단축할 수 있습니다.
자료조사 기능치 50 이상 / 감정 기능치 50 이상 / 지능 50 이상
300일의 시간을 단축해 176일을 소요하거나, 추가로 이성을 1d7 소모하고 100일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영은 이번 시찰이 끝나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시점부터 100일간 신화서를 연구합니다.
...
그 때, 누군가 수로를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영:(황급히 둘러보다가, 기둥 뒤로 숨어든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은...발리데 술탄입니다.
그는 조용히 저수조 주변을 돌아보는군요.
이영:(기둥 뒤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그 모습을 지켜본다.)
발리데 술탄:(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쪽에 숨어계신 건 누구신가.
이영:... ... (눈치도 좋으셔라.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기둥 뒤에서 걸어나온다.) 발리데시여.
발리데 술탄:(놀라지도 않았는지, 가만히 이영을 응시한다.) 놀라셨겠지요.
허나 보신 바와 같이...이 모든 건 파디샤를 위한 일입니다.
이영:... ...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까.
허면 제게도 귀뜸정도는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간 수도없이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리 힘들었는데 말입니다.
발리데 술탄:(그 말에 천천히 미소를 짓는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파디샤께서도 대대로 내려오는 예언에 대해 들으셨겠지요.
이영:발리데께서도 바람의 시대가, 끝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발리데 술탄:그것이 어느 때건, 미리 예언을 깨 두는 것은 제국에도 이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선왕의 유지였고, 지금은 제가 잇고 있죠.
이영:부러 끝을 앞당기는 것 말씀이십니까. (선왕의 유지? 눈썹을 모아 일그러트린다.)
발리데 술탄:선왕 때부터 시작한 정복전쟁 또한 이의 일환이죠.
당신이 아직 어렸을 시절, 신비주의자라는 이가 이 주문을 먼저 제안했습니다. 본래는 선왕의 손톱과 나의 시신을 쓸 예정이었으나... ...
(천천히 수로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린다.)
누군가가 선왕을 암살하는 바람에.
미리 적혀있던 전술서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발리데 술탄:그래서 파디샤에게로 주문이 내려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개를 느리게 끄덕인다.)
본래 주문에 앞장서던 신비주의자라는 자도 선왕이 암살당한 뒤로 겁을 먹고 도망쳤습니다.
이제는 그 일을 내가 하고 있죠. 그가 허겁지겁 도망치면서 주문의 일부를 남겼기에.
온전하지도 않은 주문을 파디샤인 제게 쓰려 하셨습니까. (쓰게 웃는다. 웃음은 껍데기일 뿐, 시선은 차다.)
저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도구가 되었고.
발리데 술탄:주문이 진행되는 과정은 내가 모두 지켜보았기에 틀림이 없습니다. 파디샤께서도 저 배의 모습을 확인하셨겠지요.
이영:... 손톱이 저리 자라다니, 징그럽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깎은 것들은 꼭 태워야겠어요.
발리데 술탄:... ...나는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술탄.
그보다는 제국이 스러지는 것이 더욱 두렵죠. 우리는 이 제국을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나의 시신을 쓰는 것도 불사했어요.
발리데 술탄:급박한 즉위를 한 탓에 파디샤께 주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 것은 유감입니다. 허나...
파디샤께서도 이제는 아시지 않습니까?
발리데 술탄:파디샤가 해야 할 일은 제국을 부흥하는 것이라는 걸.
제게 이지라는 것이 남기는 하는 겁니까.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길에 무엇이 자리한단말입니까!
발리데 술탄:인간의 사사로운 감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최초의 통치자가 되는 겁니다.
영원한 통치자. 그것만이 영원한 제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영:(머리가 지끈대는 기분이라 이마를 꾹 눌러짚는다. 대화가 통하질 않는 기분이다. 당연하겠지, 그녀는 제 아비와 같이 나를 그저 자신의 수단에 적합한 도구로 보고 있을 뿐이다. 내 어미라는 이 여자가 나를
아들로 생각해 본 적은 있을런지.)
... ... 제게 시간을 주세요.
지금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발리데 술탄:얼마든지. (그렇게 대답함과 동시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장한 병사들에게 손짓한다.)
이 주문에 관한 일은 모든 고관대작들이 동의했습니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토록 하세요.
이영:(천천히 내려가는 손등 너머로 찬 불같은 시선이 튑니다.)
(... 그러니까, 나는... 또...)
(... ...)
수단이었군요.
또 다시, 달콤한 말에 속아...
이제는 제국을 위한 제물이 되다니.
선왕을 죽인 게 잘못이었을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영과 함께 실릴 제물은 대체 누가 될까요.
이영:(힘없는 걸음으로 하렘에 닿는다. 생각이 너무 많아. 하지만 무엇보다 슬프다, 위로받고싶어. 그래서 당연스레 너를 찾아 왔다.)
:이영이 하렘으로 돌아오면, 노을이 지는 저녁입니다.
수평선에서 소금기를 머금은 주홍색 바람이 불어오고, 하렘에는 후궁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가 파도와 함께 울려퍼집니다.
이영:(죽상으로 걷는다. 그러니까 ... (누구라도하나)죽(일)상이다.)
:해안가가 보이는 하렘의 정원에서, 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수 많은 하툰들이 연회에 참가해 있고, 그 중에는 나한도 끼어 있습니다.
이영은 잔을 내밀거나 음식을 권하는 하툰들도 마다하고 화려한 연회 사이를 죽상으로 걷습니다.
우드를 뜯거나 노래를 부르는 하툰, 춤을 추는 하툰들...
그리고 나한은 연회의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앉아 인공 수로에 발 끝을 담근 채 목걸이만 만지작거리고 있군요.
연회에는 그리 흥미가 없어보입니다.
이영:(걸음은 자연히 그리로 향한다. 다가와 시선을 끌어보려 노력하는 하툰들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그러다 또 잃어버리겠구나. (옆에 서서 나한이 만지작대는 양을 내려다본다.)
나한:(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이영을 바라본다.) 폐하.
오시는 줄 몰랐습니다.
이영:(읏쌰, 옆에 붙어앉아 신을 벗고 수로에 발을 담근다. 꼭 따라하는 것처럼. 물이 시원해 기분이 나아지는 건지, 네 곁이라 기분이 풀어지고 마는건지 모르겠다.) ... 변덕처럼 온 것이다.
나한:발리데 술탄께서 오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가만히 이영을 바라보다가) 폐하의 속을 어지럽히는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이영:발리데께서? (미간이 자연히 찌푸려진다. 마주한 얼굴을 가만 보다, 턱을 당겨 짧게 입맞춘다.) 그래. 네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는 게구나.
나한:예, (말 끝이 조금 늘어지는 듯 하다가 입술이 맞닿자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그래보이십니다. (시선이 이영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라본다.)
(그러다 손을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미간을 살살 펼친다)
이영:(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가, 미간이 눌러 펼쳐지자 결국 조금 웃는다.) ... 그리하면 내 구겨진 마음도 펴지는 것이냐.
나한: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좋을텐데. 술을 좀 가져다드릴까요. 음식이나.
(이영을 따라 웃듯이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이영:...그런게 필요해 너를 찾은 것이 아니다. (허리를 당겨 안는다.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소근거리기 시작한다.)
...발리데께서 이상한 꿍꿍이가 있으시더구나.
나한:... ... (눈이 옆으로 돌아가 이영에게 향한다) ...어떤?
이영:... 나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 작정이시라던 걸. (어쩐지 공허해진 눈으로 멀리 시선을 던진다.)
내가 꾸던 꿈 말이다. 거듭 되돌아오던... 그 악몽이 예지몽이라면 어쩔테냐.
나한:... ... (눈을 천천히 깜박인다.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발 아래에 흐르는 물을 한참 바라본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저 꿈에 불과하다고 여겼는데.
이영:그것이 징조라고, 내가 예지몽을 꾸게 된다 하더구나.
(조금은 초조하고 불안한 눈으로, 나한의 손을 꼭 잡는다.) ... ...
발리데께서는...
나한:(잠시 여러 생각이 스치는 표정으로 이영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뜻이지? 마치 그렇게 묻는 듯이.)
무엇의 징조입니까.
이영:(이야기에 두서가 없다, 당연하겠지. 정리된 문건을 읽고 받아들이는데도 오래 걸린 이야기를 이리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전달하려니.)
나의, ... 내가...
신이 되는 것의...
인간이 어찌 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날 때부터 인간인데... (가만히 이영의 머리를 쓸다가 이마를 짚어본다. 혹시 열이 있는 건 아닌가? 국정에 지쳐 정신이 오락가락하나?_
이영:(불안하고 불길한, 불명예스러운 것을 뒤집어 쓴 것같은 불편한 얼굴.)
차라리, ... 차라리 당연스레 그러리라 믿고싶구나. (자연히 눈을 감는다. 네 손길에 고개를 묻으려 끌어내려 제 볼을 감싸게한다.)
...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구나, 다만...
... 서러워서 그래.. (작은 손에 숨겨지지 않는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한:... (가만히 이영을 바라보다가, 몸을 끌어당겨 안는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한다.)
파디샤가 된 것이 폐하께 그리 벅찬 일입니까?
이영:(등허리로 파고든 팔이 몸을 바짝 붙여안는다.) ... ... 내게 맞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본디 바랐다기보단, 그래야했던 것이라, 하지만...
... 여전히 나는 이곳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듯 해.
때로는, 존재라는 것이.. 허무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한...
내 이름도 낯도 전부 지워지고, 그저 파디샤의 검으로, 그저... 신이 되기 위한 제물로 서 있는 껍데기일 뿐이지. (기운이 빠진 것처럼 몸이 축 늘어진다. 무겁게 나한을 짓누르고 균형을 잃을 것처럼 기운다.)
... 나는 누구야?
나한:(
신이 되기 위한 제물...? 그 말에 잠시 미간이 좁아들었다가...이영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준다.)
폐하께서는... ...
...제 부군이십니다.
다른 이들이 폐하를 무어라 불러도 저는 그리 여기겠습니다.
이영:... ... (그 말에 힘없이 입꼬리가 중력을 거스른다. 티나지 않게 아주 조금, 미약하게나마.) ... 벌써 그리 말해도 괜찮은 것이냐. 약조한 날은 아직 조금 남았는데...
나한:폐하께서도 한 번 품은 하툰은 다시는 찾지 않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둘 다 하나씩 약조를 어긴 셈 치지요. (가엾은 인간. 살벌하지만 유약한 파디샤...) ...저 또한 오랫동안 그리 여겨왔습니다.
그다지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는 이라고.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목소리가 줄어든다.) ...파디샤께서...제 모습에서 자신을 본다 말씀하셨을 때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니 폐하도 그리 느껴주셨으면 해요.
내 곁에 존재해주는구나. 네가.. 나와 함께.
... ... (끌어안은 팔이 다시금 힘을 준다. 어깨에 묻은 고개에서 숨을 끝까지 들이켜 네 체향을 폐 가득 담는다. 여기에 있어. 내 곁에. 언제까지고. 꿈의 잔상이 스치는 것은 무시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검. 내 앞을 막는 것은 베어내고 나가리라. 이전에는 나를 지키려고 했다. 허상과도 같은 사랑을 위해 나를 벼려가며 싸웠다. 허나 이제는 달라. 너를 지키기 위하여. 너와 내가 함께 존재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베어 없애리. 그것이... 나의 조국이라하더라도, 나를 낳은 어미라고 하여도 관계 없다. 이 나라도 품어 낳아준 어미에게서도 얻지 못한 위안을 주는 네가 여기 있으니,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 나한.
나한:예, 여기에 있습니다. (무게가 실려 조금 몸이 기운 채 조곤조곤 답한다.)
이영:... 내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이 빛바랜 것처럼 무디고 닳아진 것처럼 들릴지라도, 이 심장 가득하게...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나한:(
사랑한다. 그 말이 가슴에 벅차게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좋다. 처음에는 이것을 불편함으로 여겼으나, 조각배에 올라 파도를 타는 듯한 울렁이는 기분이...달갑게 다가오는 날이 오게 될 줄은.)
... (낯선 단어를 내뱉으려는 입술이 달싹인다.) 저 또한, 이영을... ...
:어느 순간, 연회장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툰들이 마치 광대를 보는 것처럼 웃거나, 걸인을 본 것처럼 가벼운 비명을 지릅니다.
그 중심에는...
바다에서부터, 불안정한 모습으로 흔들거리며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영:(처음에는 신경쓰지 않다가, 파도처럼 이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그 사람의 얼굴은 노을을 등지고 있어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그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칼입니다.
"술탄께 신의 영광이 있기를!"
이영:(반사적으로 일어나 나한을 가로막고 선다.)
:삽시간에 평화롭던 연회가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영:(칼을 뽑아들고 성큼성큼 다가간다.)
멈춰라!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마주한다.)
죽지 못한 탐험가가 이영에게 칼을 휘두릅니다.
죽지 못한 탐험가:
검
기준치: |
30/15/6 |
굴림: |
59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5 |
(칼을 쥔 손목을 쳐내고 제압해본다.)
근접전(격투)
기준치: |
60/30/12 |
굴림: |
98 |
판정결과: |
실패 |
그러니 칼이 닿기도 쉽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이영:자네, 나를 기억하지? (시선을 맞춰보려 애쓴다.)
:그의 두 눈은 푹 꺼져서 동공에 하얀 막이 덮혀있습니다.
이영:제길... (완전히 이지를 잃었다. 꼭두각시같아.)
죽지 못한 탐험가:
검
기준치: |
30/15/6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4 |
이영:(반사적으로 몸이 그 틈을 파고들어간다. 이는 전장에서의 습관이다. 보인 틈을 놓치면 그 다음으로 베어지는 것은 자신의 몸이었기에.)
검
기준치: |
60/30/12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7 |
그는 한 번 휘청이는 듯 했다가...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지 몸을 뿌득뿌득 돌려 이영을 바라봅니다.
검
기준치: |
30/15/6 |
굴림: |
1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피해: |
1 |
(칼을 들어 막는다.)
이영:(내려치는 검을 쳐내고 찌른다. 이 이상은 그에 대한 모독이다.)
검
기준치: |
60/30/12 |
굴림: |
71 |
판정결과: |
실패 |
피해: |
5 |
:두 검이 맞닿으며 검신이 이영의 팔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영의 차례.
이영:...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인간과 다른 그 움직임을 좇는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는, 말 그대로 죽지 못한 자다. 움직일 수 없게 베어내는 것밖에는...)
검
기준치: |
60/30/12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피해: |
6 |
그는 기괴하게 입을 벌려 웃으며 허리춤에서 단도를 하나 꺼내듭니다.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이영:(위험하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사막의 탐험가들이 들고다닌다는 반달형 검에는...
그런 생각이 이어지는 순간 검이 휘둘러지고, 그 앞을 나한이 막아섭니다.
이영:(눈이 크게 뜨인다. 언제, 여기에, 네가.)
ㄴ, 나..
:그는 칼날에 베이는 순간에도 얼굴을 약간 일그러뜨릴 뿐.
어디선가 들고 온 길다란 금속 봉이 탐험가의 머리를 깨부시고,
이영:(찰나가 억겁처럼 느껴진다. 나한, 나한... 왜 네가.)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춘 탐험가가 바닥으로 무너집니다.
이영:(재빨리 나한을 받쳐안는다.) 나한...!
왜, 왜 그런 것이야, 네가 어째서, 왜 그런 짓을... (떨리는 목소리로 내려다본다.)
:그는 고통에 얼굴을 구기다가, 한참만에 숨을 몰아쉽니다.
나한:...여행자들의 독은, ... ...쉬이 해독할 수 없기에. (그러다가 목 안으로 피가 끓는지 밭은 기침이 이어진다.)
칼파들이 증상을 전달하고 약을 나르는 것이 분주합니다.
이영:아, 안돼. 나한, 말하지 말거라. (안아든 채로 황급히 나한을 옮겨 뉘인다.)
여행자의 독이라 했다, 그래. 부디, 나한... (두서없이 궁의에게 말을 전했다가, 손을 꼭 쥔 나한을 내려다보았다가, 어디에도 없을 신에게도 빈다.)
(안 됩니다. 꿈과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이 예지몽이라면 그 전까지는 나한이 무사히 살아있어야지요.
...아, 피부로도 느껴집니다.
점점 무언가가 이 제국을 좀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그 주문이 제국을 구하는 길일까요.
...
그렇게 술탄의 통치, 800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영:(생과 사의 갈림길 중 어디도 아닌 곳에 선 자들. 그들의 신이 되는 것이 진정 옳은 일인가. 그리하면 이 제국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누구의 믿음인가. 맹목적으로 누군지도 모를 이의 말에 간절하게 매달린 이들이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이 주문은... 옳지 못한 것이다. 바람의 시대가 저물고 제국이 쇠하더라도 나는 이를 바로잡겠어. 그래야만... ... 너와 내가 함께 존재 할 수 있으니. 내가 네 곁을 떠나면 그럴 수 없잖니.)
(침대 맡에 앉아 신화서을 읽다가, 여전히 찬 손을 들어올려 쥐고, 입맞춘다.)
과연, 이영이 이영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요.
서서히 시간은 흘러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이영은 신화서를 연구하는 동안에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에는 분명히 뒷부분이 더 있어야 한다고요.
(이것은 온전한 주문이 아니다. 분명, 이 뿐이 이냐...)
(아냐)
:하지만 입수한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신화서의 기초에 대한 파악은 마쳤습니다.
이영:(혹, 갈대밭에 나타난다던 사제가 발리데를 떠난 자와 동일인이라면...)
(뒷부분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끔찍한 신과 그들의 계보, 우주의 근원에 대해 수천, 수만장에 달하는 자료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와 경험과 질서, 생각을 전부 뒤엎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고삐를 쥘 수 없는 신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 앞에 인간들은 한낱 미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끔찍하도록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영:(이런 질서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군.)
:그리고 이영은 주문
고대신의 수호를 얻습니다.
이영:(허나 그들은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테지.)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당 해봐야겠지요...
모든 것이 점차 진상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이영의 시찰 또한 이제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죠.
이영:(그 날 이후 자연스레 매일같이 나한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오늘은 잠시 다녀올 곳이 있기에 궁을 비워야한다.)
이영:(불안하지 않을수 없지만, 그간 너무나 미뤄온 일이기에. 이제는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밀어내던 얼굴을 떠올리면 여전히 한숨이 일어도... 지금이 적기겠지.)
(떠나기 전 하렘에 들러 간다.)
나한의 간병을 담당하는 칼파가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이영을 맞이합니다.
나한도 오늘은 일어나 있군요.
이영:... 나한. (곁으로 다가가 손을 쥔다.)
나한:예, 날이 좋아 창가에 앉아있고 싶어서요. (가만히 이영의 손을 쥐었다가 고개를 조금 기울인다.) 매번 찾아오실 때마다 곧 죽을 사람을 보듯 하시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영:...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잖아. (겨우 웃는듯 마는듯한 얼굴로 마주보다 짧게 입을 맞춘다.)
공기가 찬 건 아닌가? (슬며시 감싸안기도 한다.)
나한:물론 그렇겠지만요. (편안하게 이영의 품에 기대 앉았다가) 조금은 그렇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일어나있지 않으면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있기만 하니 지루해요.
이영:... 금세 괜찮아질거야. (끌어안으면 닿는 곳에 꾹 눌러 입맞춘다.) 지루하지 않게 책이라도 잔뜩 가져다두라 일렀거늘...
나한:글자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요. 하루 두어시간이 고작입니다.
금세 피로해지곤 하는 게, 꼭 어린아이가 된 것 같더군요. (고개를 뒤로 기댄 채 느리게 눈을 감는다.)
이영:... 그렇구나. (감싼 어깨를 손끝으로 보듬는다.)
이리 어리광을 부리고, 아픈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지도 모르겠어. (가벼이 웃으며 입가에 제 입술을 꾹 누른다.)
나한:짓궂은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 말이 느려졌다가, 또 한참 침묵하더니)
폐하께서 무사한 건 좋아도 걱정을 끼치는 건 달갑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 더 힘을 주어 안는다.)
나한, 너는 그저..
내 곁에만 있어도 족하다.
나한:(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이영을 바라본다.)
폐하께서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하셔도?
...그래도 곁에 있어주겠다면 말이다. (멋쩍게 웃어보인다.)
나한:저는 폐하께서 파디샤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걸림돌에 가까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작게 웃는다.)
대단한 사치를 바라는 사람도 아니고요... (숨이 휴, 하고 내쉬어지는 듯, 말 끝이 희미해지더니 느리게 꿈벅이던 눈이 감긴다.)
이영:( 그 얼굴을 가만 보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듯 시선이 올라갔다가,) ... 궁금한 것이 있어.
나한:...어떤? (묻는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린다)
세기도 어렵게 말이지.
나한:제게 이 목걸이를 준 사람이...그리 일렀습니다.
제가 파디샤를 만난 뒤로 천 일.
불운하게도 시기상 그것이 유언이 되었기에 반드시 지키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 목걸이는... (가만 내려다본다. 이제는 낯익은 문양.) 유품을 청해 가져온 것이라 하지 않았더냐.
... ...이 다음 번에 오실 때에.
그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영:...그래. 재촉하지 않으마. 졸음이 쏟아지겠지. (가만히 안아들어 침대로 향한다.)
(나한의 눈이 감기는지 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리 묻어두기로 할 따름이다.)
나한은 머지 않아 정말로 잠이 듭니다.
회복을 하는 동안에는 몸이 회복에만 전념하기 위해 체력을 최대한 비축한다 하던가요.
말햇다
부쩍 잠이 늘기도 했고, 이영도 신화서를 연구하느라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시찰을 마치고 나면, 무언가 들려주겠지요.
이영:... (금세 잠들어버린 얼굴을 쓸어만지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여전히 미련담긴 얼굴로. 시찰을 다녀오니 늦을 수 있다 말하지 못했는데...)
(... 기다려줄테지, 너라면. 그리 믿고 이마에 가벼이 입맞춘다.)
(... 서둘러야겠군. 시찰에 나선다.)
:나한은 이영을 재촉하거나 추궁한 적이 없습니다. 마치 이영의 믿음에 보답하듯.
이영이 나한을 믿는만큼, 나한도 이영에게 조금씩 다가와 이제는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이영은 갈대밭으로 향합니다.
수도 남부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
도시의 절반은 될 듯한 습지입니다.
:이곳에는 성인 키를 훌쩍 넘는 길이의 갈대와 풀이 아무렇게나 자라있으며,
자칫 발을 잘못 딛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들이 수 없이 산재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풀숲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색의 독사들이 땅을 기면 풀잎들이 흔들리곤 합니다.
...
이영이 갈대밭 근처로 당도하면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갈대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으며, 서로 말도 걸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기색입니다.
이영:(시선이 그들을 따라 훑는다. 너무 눈에 띄는군.)
(조금 천천히 걸음을 옮겨 따라간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들을 조용히 따라가면, 풀이나 나뭇가지들이 기묘하게 꺾인 흔적이 보입니다.
이것들이 길을 알려주는 지표겠군요.
그리고, 저 멀리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종말이 다가왔을지언정,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에서는 새로운 삶에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시 바삐 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걸인들이 한데 모여, 썩어가는 등걸이나 바위에 걸터앉아 사제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영:(귀 기울이며 지표들을 따라 걷는다. 여기서는 또 어떤 선동으로 이들을 속이고 있나.)
:이교도 사제는 판자가 덮힌 구덩이를 가리킵니다.
그 판자에는 죽은 자는 모두 그 분의 충실한 종이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제가 3일 전, 이 구덩이에 죽은 이를 넣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그는 다시 살아날 것이고,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을 겁니다."
"자, 다들 들으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죽은 자는 모두 그 분의 충실한 종이 된다'고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판자를 젖히자... ...
그곳에는 몸이 절반으로 갈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영:(여러 개의 등 뒤에서 가만히 노려본다.)
:그 사람의 상반신은 눈을 뜨고 일어나...파리와 구더기로 가득한 자신의 시체를 털어냅니다. 마치 갓 죽은 것 같은 모습으로, 이교도 사제의 발에 입을 맞춥니다.
이영:(경외를 보내는 시체... ... 내가 지금껏 보고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군.)
"자아, 저를 따르고 이 광경을 사람들에게 간증하십시오!"
사제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데리고 사막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 ...
아마도 페트라에 방문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란 저들이었겠군요.
저들은 이제 제국 곳곳에서 이교도 사제의 행동을 간증하고, 새로운 신도들을 만들어내겠죠.
이영:(이 바람은 쉽게 번진다. 마른 들판의 들불처럼. 커다란 충격일 수록 크게 치는 파도가 되지.)
(... ... 대잡아야한다.)
(다잡아야
(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를 살펴본다. 이교도 사제가 서 있던 곳, 판자 아래.)
:판자 아래에는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구더기와 파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남겨진 하반신도요.
그렇다면... ...
구궁전에서 들었던 선왕의 시신을 훼손한 자들에 대한 것도 조금씩 퍼즐이 맞춰집니다.
이교도들이 하는 짓을 알고 있었고, 혹여라도 선왕을 소생시키는 것을 막고자 하는 어떤 세력이었겠죠.
:고관대작들은 모두 동의했다 하니 왕궁 사람들은 아닐테고,
이교도에 대해 수상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던 부류는...
나한과 비슷한 억양을 가진 외국인들 정도일까요.
이곳에는 두루마리 같은 것을 숨겨놓을 공간은 없어보입니다.
(갈대밭을 헤치고 나온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겨우 이런 자리에 가지고 올 리도 없었다. 내가 그리 바랬을 뿐.)
이영:... ...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고, 한켠이 찝찝해.)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매캐한 죽음의 냄새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영:(지독한 일들을 하는 인간들... 인간이기에 그렇게 지독해질 수 있는 거겠지.)
(왕궁을 떠나 걸어온 길을 돌아간다. 친위대 숙소 뒷편의 통로로 향한다.)
이곳은 부쩍 사람이 줄어들어 있습니다.
정말로 가족과 친지를 데리고 떠난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영:(두리번대며 다닌다. 지난 번엔 이쯤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그도 떠난 걸까요.
(조용히 발걸음을 돌린다. 정말로 모든것이 저물어버리면 어쩌나.)
:이대로 손 쓸 방도도 없이 제국조차 저물어버린다면...
이영은 낯선 상단-이라고 생각했던-무리가 페트라를 거쳐 사막의 폐허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제국에 오래 전 정복당한 도시의 잔해가 있는 곳입니다.
그 도시에 관해 문헌을 찾아보면, 이곳은 유골을 지하에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도시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지하 공동은 점차 넓어져, 결국은 지하납골당이 거대한 미로처럼 변해버린다나요.
:누구나 길을 잃기 일쑤인지라 어느 시점 이후로 조사를 금지했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고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이영에게 아아의 알현 요청이 들어옵니다.
이영:(읽고있던 문서를 마저 읽는다.) 무슨 일이지.
:"...술탄이시여. 하툰의 상태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직접 고해드려야 할 것 같아 뵙고자 요청드렸습니다."
이영:하툰? (고개가 다시 들린다.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일어날 것처럼 몸을 세운다.)
:"예. 한동안 차도가 보이는 것 같더니 오늘 아침부터 급격하게 열이 오르셨습니다."
"...직접 가보심이."
아아의 말은 마치 하툰이 죽기 전에 방문하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영:(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앞장서라는 말도없이 성큼성큼, 서두른 걸음이 이어진다.)
하렘에 도착해 곧장 나한의 방으로 가 보면, 한낮임에도 바람을 막기 위해 창에는 두터운 천이 내려와있고, 방 안은 기름등으로 밝혀 놓았습니다.
이영:(분명 지난 밤에 보았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어째서...)
:두꺼운 옷을 입고 겨울 이불을 덮었는데도, 그 위로 떠는 것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영:(하렘에 당도하고도 걸음을 멈추지않고 나한의 방으로 향한다. 침대로 가까이 가 몸을 숙여 살피고, 손을 뻗어 뺨을 감싼다.) ... ... 나한.
:병상 옆에는 냄새조차 거의 나지 않는 환자용 미음과 연한 차가 놓여 있으며, 하툰을 모시는 칼파들이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한:(얼굴에 닿는 손길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가 시선을 굴린다.) 폐하. (중얼거리듯 인사하는 목소리에 반쯤 숨이 섞여있으나 소리만은 분명하다.)
이영:그래, 여기에 있다. (손을 찾아쥐고 당겨 제 볼에 붙인다. 어째서, 어찌 이렇게... 떠날 것 처럼.)
... 떠나지 않을것이라 했지. 네가 그리 말했지 않아.
나한:(그 말에 숨을 크게 내쉬는 것처럼 바람 빠진 웃음을 내었다가) ...괜찮습니다. 원체 독이라는 것이...
몸에서 빠져나가려면 열로 삭혀야 하는 법이라. (후, 하고 눈을 도로 감았다가 다시 느릿하게 들어올린다.)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영:(그 말을 듣고도 낯에 어린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 그리 믿으마. 네 말이라면 달과 태양이 하나가 된다 하여도 믿겠다 약조했으니. (쥔 손을 돌려 손등에 짧게 입맞추고, 침대 가에 앉은 채로 몸을 숙인다. 이마와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몸을 든다.) 부디, ... 어서 돌아오련.
나한:이미 하렘에 들어온 몸. (잠시 무언가 생각하듯 시선이 천장을 맴돌다가) ...한 번 이곳에 들어온 이상...탈출구는 죽음 뿐이라던가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이영을 바라본다.) ...칼파들을 물려주시겠습니까.
이영:...그런 소릴... (미간이 좁아지다, 나한의 말에 고개를 돌린다. 문가에 선 이들에게 나가라 명하고 돌아본다.)
:이영이 명하면, 아아와 칼파들이 차례로 문 밖으로 나섭니다.
나한:(눈을 깜박거리기만 하며 이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독이 오른 자는 밤낮으로 열이 오르내리길 반복하다가 갑작스레 씻은 듯 나아버리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린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인가...) ...폐하께서 저를 과분하게 여겨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영:... ...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어 입을 달싹이기만 한다. 나한을 과분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나한은 이미 자신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이가 되었으니.)
...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소릴 하는게야.
나한:(과분한 사랑, 그 말을 속으로 되뇌이다가...) ...하렘에 들어오는 자는 누구나 발 끝에 목적을 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권력이 되었건, 애정이 되었건, 부가 되었건...
이영:(네가 바란 것이 무엇이든 상관 없는데. 무엇이건, 내 네게 못 줄 것이 없는데. 그런 생각에 머리만 쓸어낸다.)
나한:(이 사람을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 자꾸만 말끝을 잡고 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럿 생기는 바람에 본래의 목적도 흐릿해지고, 그저 온기 가득한 품에 안겨서...) ...폐하께서는 왜...
그 날 저를 보고도 모른 체 하셨습니까.
이영:... ... 약조하였으니, 지켜야지. (차가워진 몸을 자꾸만 어루만지고 품에 가두어 온기를 나눈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조금 웃는다.) 의심치 않기로 했지 않니.
...무언가, 말해주고싶어진게냐.
나한:(열이 올라 시야는 아른거리고, 머릿속의 실은 온통 꼬여 말을 내뱉으면서도 앞과 뒤를 분간하는 것이 어렵다. 그저 목구멍에 걸린 것들을 뱉듯이 물을 뿐.) 제가 폐하의 나라를 망치는 장본인이면 어쩌시려고...
이영:... 전부 부수어 없애도 괜찮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재로 만들어도 좋아. 역사에 길이남을, 여자에 미친 왕으로 기록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한숨을 쉬더니 평온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본다. 사람 몸이 이리 불덩이같고,또 얼음장같으면... 어쩌면 좋아.)
나한:(여자에 미친 왕. 그 말에 웃음소리를 내다가 문득 찾아온 격통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몸을 옹그린다. 그러기를 몇 초, 간신히 가신 감각에 다시 몸에서 힘을 뺀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저는 공국의 수단이자 비책이었습니다. (다시금 뜬 눈이 똑바로 이영을 올려다본다.)
이영:(갑작스레 웅크리는 몸을 다급히 안고 살핀다.
의원을 부를까, 나한, 고개를 끄덕이면 부르겠다. 말하다, 조금 편안해진 모습에 숨을 고른다.) ...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르겠구나. (이전과 같은 얼굴로 내려다본다. 셈하려면 얼마든 셈해볼 수 있는 말이나 그러기를 선택지 ㅇ낳는다. 의심하지 않기로 약조했고, 의심하고싶지 않기에. 그리고, ... 의심 끝에 뾰족하게 드러나는 끝도 개의치 않기에.)
나한:(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다. 왜?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아니면 이 자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제 어머니는 신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천히 내쉬는 숨을 타고 부드럽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치 하렘에 처음 왔던 날들처럼...) ...매일 밤마다 들려주시는 이계의 신비한 이야기들...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신과 마술들...
이영:본디 아는 것이 많았군. (좋게,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려든다. 나긋하게 들려주는 말에 눈을 내리감고, 이마에 짧게 입맞춘다.)
나한: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낯선 것을 두려워하기에. (마치 당신이 이 나라에서 그러했듯이, 하는 것처럼 시선이 이영의 면면을 살핀다.)
이영:(마주하는 시선에는 애정과 염려만이 담뿍 담겨있다.)
나한: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숲 속에서... ...옷 한 번 개어본 적 없는 고운 손으로... (말을 잇다가 천천히 눈이 감긴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뜨고) ...사람들이 아무리 손가락질을 한들 어머니는 끝까지 고아하셨습니다.
(마녀의 자식은 마녀. 그 말을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는지,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
...처음에는, 폐하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담담하게 뱉는 말에는 한 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채다.)
이영:... ... 이제서야 네 뜻을 일러주는구나. (가만가만 손끝이 이마를 규칙적으로 살가이 쓴다.)
어머니를 많이 닮았니. (들은 말 뜻이 다른 것처럼 평이하게 군다. 내 목숨도 내어줄 수 있으니 자리를 털고일어나련.)
나한:...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국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어머니가 궁에서 내쫓겨 부랑자 신세가 된 것도...
(느리게 눈을 감고 이마를 쓰는 손에 머리를 모로 기댄다.) ...예.
이영:미인이셨겠어. (기대어오는 뜨거운 머리를 받치고, 당겨 안는다. 어느새 나란히 곁에 누워 안은 채로.) 나를 알고 있었어?
나한:제국의 문양을 달고, 내 나라를 불태운 사람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감은 눈 앞에 그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붉게 타오르는 대지. 그보다도 선명한 불길.)
이영:... 너는 나를 보았구나. (익숙한 자신의,
검이었던 시절의 모습이다.)
나한:(잠시 말 없이 눈을 뜬다. 여전히 당신을 의심하고 있어. 의심하는 동시에 더 없을 정도로 연모하고, 아끼고...그렇기에 부디 당신이 아니기를 빌면서...)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이에요... (웅크린 머리를 품 안으로 집어넣는다.)
이영:(되물으려다 만다. 네가 피하려는 것들이 나를 위함을 깨달았기에. 내 곁에 있으려 생각하지 않고있음을 알기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어. (파고드는 머리를 감싸 안는다. 네가 내 품으로 들어온다면 나는 놓아주지 않아. 너를 거절하지 않아. 너와 내가 외면하는 것이 무엇인들 나는 네가 더 소중하다.)
나한:(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머리를 돌린다. 제국과 윤이영, 발리데 술탄과 제국의 심부에 대해서...대가 없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왜 이리도 사람을 안온하게 만드는지.)
...여전히 저를...
아끼십니까?
이영:내 목숨보다도 더, 너를 아낀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고개숙여 닿는 곳에 입맞춘다.)
그러니, ...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 같지 않겠니. 응?
나한:(이미 늦어버렸다면 차라리 마음껏 사랑하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짓일까. 머리 위로 내려앉는 온기에 천천히 숨을 내쉰다.) ...글피만 지나면,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열이 찬 머리가 사고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늘만 이대로 있는 것은 누구라도 용서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나하나 치워내다보면 어느새 내쉬는 숨이 점차 규칙적으로 바뀌어간다.)
이영:... 기다리마. (너를 만난 첫 날에도, 너를 처음 보았던 꿈속에서도 우리가 이리 되리라 생각해 본 날이 없다. 어쩌다 우리는 뒤틀린 채로 사랑하게 되었나. 네 땅을 짓밟은 자를 사랑하는 너, 내 목숨을 앗아가려는 자를 사랑하는 나.) ... 이리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만나게 되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지금에서야, 백일몽이나 펼쳐보게 되는 것이지.)
:뜨겁고 동시에 차가운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 사랑.
나한은 그 이후로도 사흘을 더 앓다가,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몇 십일이 더 지난 뒤.
이영은 꿈을 꿉니다.
대지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비명과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익숙한 풍경이 연극을 반복하듯 미끄러집니다.
나한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이영:(또, 또 한 번 네가 내 앞에서 죽겠구나. 매번 조금씩 더 나아간 장면을 보곤했지. 오늘은 무엇을 보게될까. 내 죽음?)
같은 꿈을 3년간 수 백번은 꾸어왔습니다.
어째서 꿈은 이어지기만 할 뿐 결말이 뒤바뀌지는 않는지.
화살 중 하나가 빗나가 어깨를 관통하지만, 이제는 아픔도 무가치합니다.
화살에 꿰뚫린 나한이 고꾸라집니다.
:흐른 피는 깊은 수로를 타고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물 위에 뿌려진 화살들은 수면을 뚫지 못하고 맥없이 물을 떠다니고 있습니다.
... ... ...
이영:(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꿈이 바뀌는 걸까. 네가 죽지 않는 미래는 오지 않는거야?)
:하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더 남아있지?
관찰력을 판정합니다.
이영:
관찰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한참을 네 시신에 시선이 머무른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하지.)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 결말이 바뀌는가... ...
화살이 떨어지기 전에 저 물로 뛰어들었다면 화살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닥을 적시는 핏물에 비친 이영의 얼굴과 눈이 마주칩니다.
이영:(나는, 이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아니까...)
(나는 막을 수 있어... 그렇구나.)
:피를 뒤집어 쓴 제국의 검, 그 모습과 다를 바가 없군요.
이영:(네게로 쏟아지는 화살비를 대신 맞을 수도 있어. 네가 내게서 도망치지 않도록 설득할 수도 있어. 네가 뛰지 못하게, 묶어둘 수도 있겠지.)
(네가... 이 수라장에 존재하지 않을 방법도 있다.)
그 순간 눈 앞에 빙글 돕니다.
불타는 갈대밭의 아우성이 펼친 비단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군요.
시선의 끝에 닿는 것은 발리데 술탄과...
...처음 보는 얼굴의 남성입니다.
:두 사람은 화살에 꿰뚫린 이영의 어깨를 보고 격분하며 병사를 다그치고 있습니다.
"파디샤를 다치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
그리고 그 주변에는 친위대장과 현자, 재무대신이 있군요.
(또 다시 나를, 모두가..)
(깨끗한 도구로 사용하고자하는군.)
:제국의 검이었다가, 이제는 제국의 제물이 될 뿐인걸까요.
발리데 술탄이 두 사람?을 데리고 오라 지시합니다.
병사들이 나한의 몸을 들어올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훅. 눈 앞이 어두워집니다.
이영은 눈을 뜹니다.
이영:(식은땀에 온 몸이 잔뜩 젖은 채로 눈을 뜬다. 가빠졌던 호흡이 탁 터지며 눈을 떴던 것 같은데... 시선이 주위를 훑으면 익숙한 공간, 익숙한 잠든 모습이 눈에 든다.)
:하, 하고 터진 숨에 찬 새벽공기가 폐를 휘감고 들어옵니다.
나한은 아직 곤히 잠든 채입니다.
이영:(숨을 고르며 옆으로 바짝 다가가 안는다. 아직 살아있어, 아무 일도 없었어. 여기 그대로 있어. 확인하듯 감싸안고 입맞추고, 심장이 뛰고 있음을, 네 호흡이 가지런함을,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내가 너를 지킬게. 내가 그리할 수 있다.)
나한:(잠결에 별안간 잡아끄는 듯한 압박이 느껴지면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익숙한 품인 것을 확인하고 졸음이 묻은 팔을 둘러 안는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이영:으응... (잠긴 목소리로 고개를 파묻는다.) ...나쁜 꿈을 꿨어.
나한:오늘도요...아무래도 선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나 봅니다. (잠긴 소리로 중얼거리며 등을 토닥인다.)
이영:... (그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동이 튼 뒤에 하는 것이좋겠다. 말 대신 행동으로 투정을 부리듯 품으로 파고든다.) 혹여, 네게 발리데께서 어떤 제안을 하거든...
그러마 하고 내게 말해주어야한다.
나한:(품을 파고든 머리칼이 살을 간질이는 것에 잠깐 웃다가, 이어진 말에 슬그머니 눈을 제대로 뜬다)
무언가 염려하시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이영:많지. 내게 기대가 너무 크신 나머지, 이교도의 힘을 빌려 이상한 짓을 벌이려고 하는 중이시거든. (품 안에서 웅얼거리며 말을 잇는다. 눈을 감은 채 숨을 들이킨다. 이제는 익숙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체향.)
나한:...괜찮습니다, 폐하. 저는 이 궁에서 폐하 이외의 사람은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요. (천천히 머리칼을 쓸어내며 중얼거리더니, 규칙적으로 토닥이기 시작한다.)
눈을 조금 더 붙여두세요.
이영:... 그래. 나만큼 너를 아끼는 이도 없으니, ... (다만 내 사랑만큼 화살이 네게 날아올까 걱정이라.) 누구도 믿어선 안된다... (말 끝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영원히 이 시간 속에 갇히고싶어.)
나한:...네, 그 어느 누구도. (속삭이듯이 중얼거린다. 당신 외에는 누구도 믿지 않기로 했다. 나 자신조차도. 의심의 끝에 생존이 있는 법이라 배웠기에.)
이영은 각종 문헌의 정보와 고지도를 결합한 결과, 옛 도시의 지하납골당으로 향하는 통로를 알아냈습니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곳으로 향해보면, 마지막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죠.
이영:(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머릿속으로 가늠하다 보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허나 그 모든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떠나기 전에 나한에게 지하수로에서 본 모든 것을 전한다.)
(자신이 어떤 것을 쫓고 있는지, 발리데 술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꿈에서 본 발리데 술탄이, 나한의 시신을 원했으리라는 추측도 함께.)
(나의 꿈은 모두 진실된 예언이며. 허니 그 때까지 우리는 무탈하리라는 것도.)
:나한은 이영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궁을 비운 사이를 걱정하는 이영에게 의연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요.
다만 걱정이 있다 한다면, 그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일까요.
이영은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지하납골당으로 향합니다.
이미 수백년 전 폐허가 된 도시 아래에는, 누구도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모를 긴 지하납골당이 있습니다.
산소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번번히 횃불이 일렁이기도 하고, 길을 잃는 순간 이곳 자체가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지하터널의 벽마다 안치된 채 방치된 해골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곳에서 원하는 장소에 도달한다는 것은...상당한 행운을 필요로 합니다.
행운을 판정합니다.
이영:(단단히 채비를 한 채 들어왔지만 생기없이 비워진 무덤이 주는 인상은 어쩔 수 없이 섬찟한 법.)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예민하게 곤두세워진 신경에 번번이 주위를 둘러보고, 걸음을 멈추다보니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바닥을 두드리며 가던 것이 무색하게, 이영의 체중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울컥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수천개의 해골과 토사와 함께 이영은 반 층 정도 아래로 떨어집니다.
3의 체력을 잃습니다.
이영:(소리칠 수는 없으니 입을 꽉 다물었지만... 온갖것들과 함께 떨어지며 부딪히고 나니 여기저기 욱씬댄다. ) 퉤, 퉷. (입 안에 들이찬 모래와 알 수 없는 것들을 뱉고, 뿌옇게 변한 차림을 툭툭 털어낸다.) 제길, 얼마나 뚫어댔으면...
실수로 떨어졌더라도 불운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이, 이 복도의 벽에는 일렁이는 별 같은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태 이영이 지나오면서 본 벽들보다 훨씬 깨끗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문양...이영은 이 문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화서의 삽화, 그리고 나한의 목걸이에 새겨진 것과 꼭 같은 모양입니다.
이영:... (시선을 잡아끄는 낯익은 문양. 발걸음이 절로 향한다.)
:복도를 나아가면, 그 끝에는 거대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 중앙. 테이블로 보이는 곳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초 하나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영:(기둥 뒤에 숨어 주위를 살핀다. 누가 다녀갔나, 아니면 아직 있나...)
:그 안에는 수 많은
관이 놓여 있고, 테이블 위에는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들이 놓여 있습니다.
아직 주변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영:(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테이블로 다가가면서 곁눈으로 관을 살핀다.)
:관뚜껑에는 하나같이
죽은 자는 모두 그 분의 충실한 종이 된다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그 안으로 얼핏, 각기 다른 인종과 성별의 시신들이 보입니다.
이영:(죽은 지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은 걸 보면... 최근에도 채워넣고 있는 건가.)
:...아마도 그 상단으로 위장한 이교도들의 짓이겠지요.
이영:... (흘긋 주위를 살피고 두루마리를 들여다본다. 혹시, 이거...)
:두루마리에는 이교를 전파시키기 위한 자료들이 잔뜩 적혀 있습니다.
자료조사를 판정합니다.
이영:
자료조사
기준치: |
50/25/10 |
굴림: |
56 |
판정결과: |
실패 |
:파피루스에는 이영이 읽어낼 수 있는 특이한 주문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주문을 읽고 나면, 문득 이영은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들에서 기시감을 느낍니다.
지하수로에서 찾았던 기괴한 총론서. 그것과 구조와 서술방식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황급히 두루마리를 품에 넣고, 주위를 살핀다.)
이영:(빠르게 읽어내린 내용을 깊이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는 앞부분을 읽으면서도 알았지.)
:제대로 읽으려면 돌아가는 길에나 가능하겠지만, 우선은 이것을 찾은 것만으로도 큰 소득입니다.
이영:(결국은 말도 안되는 내용인 것 같지만... 반쪽짜리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발리데도 순진하시긴.)
:발리데 술탄은 반쪽짜리 신화서만을 읽고, 그것이 온전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두 부분을 합쳐 읽어보면,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영:(떠나기 전, 주위를 살피다 초를 집어든다. 종이 조각에 붙을 붙여 관 안으로 떨어트린다.
안식을 얻으시오.)
:이영은 돌로 만들어진 관 안으로 불씨를 집어넣습니다.
인간을 억지로 죽음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 없겠죠.
이영:(원치않게 되살려져서, 자신의 의지 없이 움직이는 것. 더할 나위 없는 고문이리라.)
(조만간 이 곳은 무너트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납골당에서 빠져나온다.)
돌아가는 길에 신화서의 나머지 부분을 제대로 읽어볼까요?
이영:(안전해졌다고 느끼면, 두루마리를 꺼내 읽는다. 어떤 말도 안되는 걸 써 뒀나 볼까.)
:이영은 천천히 알 아지프의 뒷부분을 읽습니다.
두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나면, 그제서야 이 신화서가 말하려는 내용이 드러납니다.
이 책에서 잘려나간 부분이 바로 핵심입니다.
이교도의 신과, 세계의 멸망에 관해 쓰인 두 책이 아니라, 이교도의 신이 불러올 멸망에 대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새로운 세계의 신을 강림시키고, 그를 따르는 하나의 절차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알 아지프의 민낯, 혼돈의 신 강림을 공개합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면...발리데 술탄이 가지고 있었던
기이한 영겁이라는 주문은 이 강림을 위한 밑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영:이런 걸, 이런... 이런 걸 제국의 파디샤의 몸에...
:영생을 가진 지배자를 만드는 주문이 아니라, 신을 불러내는 재료가 되는 셈이지요.
혼돈의 신은 죽지 못한 자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삼아 이 땅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영:(이 의식이 불러올 재앙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발리데는 속았다. 하지만 단순히 속았다고만 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냐.)
이영:(불현듯 고개를 든다. 몇 일이나, 지났지?)
:가령 발리데 술탄이,
그 날부터 이것을 준비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날이란 나한이 하렘에 당도한 날이기도 하며,
두 사람이 약조한 천 일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이영이 즉위한 지는 대략 3년.
어림잡아 세어보아도, 아직 1000일이 되지 않았다면...
그에 매우 근접할 것입니다.
혹독했던 연구 속에서 얻어낸 단 한 가지 불변의 진리.
작용과 반작용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신화서를 연구한 이영이라면, 이 주문을 뒤집어 사용했을 때에 송환 주문이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나한.)
(네가 나와 함께해준다면, 할 수 있어. 널 지킬 수 있어. )
:꿈은 예언일 뿐, 미래를 알면 현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박차를 가할 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면,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이영:(지금이 바로 그 때야. 비틀린 것들을 되돌리고 바로잡을 때.)
(다가올 모든 일을 기억하고 되새긴 채로, 왕궁으로 돌아간다.)
이영이 왕궁에 거의 다다르는 순간,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커다란 충격이 밀려들어옵니다.
땅이 찢어지면서 내는 비명소리, 하늘이 벌어지면서 나는 신음소리가 전신을 울립니다.
어떤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집니다.
이영:(... 벌써. 아직, 안 되는데...!)
:이 땅에 발 디딘 인간인 이상, 어디서든 이 충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성을 판정합니다.
SAN Roll
기준치: |
48/24/9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아아, 때가 도래했습니다.
바깥은 현현한 지옥입니다.
순식간에 해가 가려집니다.
그 자리가 찢어진 것처럼 갈라져 있고, 그 안에서 이채가 도는 틈새가 드러납니다.
그 속에서부터 생전 보지 못한 생물체들이 유영하듯 허공으로 흘러 넘칩니다.
:두꺼비같이 웅크린 모양의 생물 아래에서 촉수가 뻗어나와 도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영:(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걸 마주하면 몸이 우뚝 굳는다. 하렘을 향해 달려가던 발이 멈추고, 얼어붙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기분.)
:대롱같은 입에서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고, 그것이 뇌 속을 헤집어놓는 듯 어지럽습니다.
이영:(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분노. 세상을 부수고 어지럽힌 죄는 단단히 물어야 할 것이다.)
(두렵다. 난생 처음보는 흉물스럽고 거대한 것들이. 허나 두렵지 않다. 내게는 방도가 있으니. 그러니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사방이 불타기 시작하고, 사방에서 멸망의 때가 왔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거리로 죽지 못한 자들이 내장을 쏟아내며 걸어나옵니다.
죽음이 사방에서 넘실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에도 그것들에 대항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배와 창고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가장 부유한 자부터 빈곤한 자들까지 다를 것 없는 날것의 모습으로 뛰어다닙니다.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는 범죄가 법이라는 듯, 황금 귀걸이와 잘린 귀를 함께 주머니에 욱여넣기 바쁩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수 많은 눈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던진 돌이 죽지 못한 자들의 머리를 맞힙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이 항거하기 시작합니다.
죽지 못한 자들이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하나, 둘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한 편, 궁궐의 벽이 무너집니다.
죽지 못한 하툰들이 친위대에게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칼파나 아아들, 병사들을 제외하면 항거하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숙련되지 않은 자들이 휘두르는 마체테는 베일을 베어내기만 할 뿐입니다.
순식간에 하렘과 궁궐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하렘의 사람들은 새로운 주인 아래 원하던 힘을 찾습니다.
하렘의 탈출구는 죽음 뿐이라던가요?
그렇게 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계층도, 힘도, 재산도 구분되지 않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맞서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악착같이 휘두른 검이, 용기로 던진 돌이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죽지 못한 자들에게 던진 돌이 만들어 낸 선은, 어느 새 산 자와 죽지 못한 자를 가르는 경계가 됩니다.
건물의 잔해와 사람이 만들어낸 경계가 담벼락이 되고,
그 뒤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버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입니다.
:이영은 혼란 속에서, 하렘에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데자뷰를 느낍니다.
그래, 바로 이 풍경입니다.
절박한 웃음소리. 비명소리.
(외울 수도 있는 풍경, 소리, 냄새.)
(나한이 분명 저쪽에서..)
나한!!!
:눈 앞에 하렘에서 뛰쳐나오는 나한이 보입니다.
(나를 믿어, 내게로 와. 간절하게 바라본다.)
나한:폐하! (맨발로 달음박치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가, 일순 정지한다. 두 눈에 망설이는 빛이 역력하다.)
(달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오로지 그 하나만을 바라. 빗발치는 화살비 아래서 너를 지켜내는 것. 그 이후는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
나한:(내 발로 두 제물을 준비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떠났다간, 그 꿈의 반대로 한 들 그것이 살아나갈 구멍이 될 것인가.)
나한의 등 뒤가 새까매지는 것이 보입니다. 공기를 가르고 날아오는 활시위 소리가 매섭습니다.
나한:(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눈이 경악으로 물들더니 이영을 향해 달려온다)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이영:(멈출 수 없어. 달려가 나한을 끌어안고 뒤돌아선다. 그리고...)
(고대신의 수호를 사용한다.)
(수거;)
(강하게 끌어당겨 뒤로 넘어져 구른다!)
이영: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나한을 끌어당겨 구르면, 눈 앞에 바다로 넘어가는 경계가 보입니다.
수 천발의 화살이라도 물 속이라면.
:피로 물든 바다 위를 하염없이 떠다니던 화살들이 떠오릅니다.
이영:(그대로, 나한을 안고 굴러 물 속으로 빠져든다. 멈추지 않는다. 외려 땅을 차 거세게 구른다. 잔해나 땅에 부딪히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나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영은 함께 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두 사람 모두 행운을 판정합니다.
이영:
운
기준치: |
60/30/12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나한:
운
기준치: |
50/25/10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물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화살비를 알렸던 화살이 나한의 등을 긁고 지나갑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뒤섞인 바닷물 위로 화살이 우두두두, 하고 박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거품에 공기가 갈려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어두운 물 속은 공기 없는 동굴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영:(나한을 끌어안은 채 물 속 깊이 가라앉다가, 헤엄치기 시작한다. 추적을 피해야한다.)
(지하수로라면 안전하겠지...)
:해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물이 들어오는 곳을 찾기만 하면 그곳은 반드시 수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로의 입구를 잡고 비집어 들어가면, 금세 수위가 낮아지는 곳이 나타납니다.
이영:(뭍에서 조금 멀어지면서 한 번씩 물 위로 고개를 낸다. 나한이 무사한지 확인 하고,) 나한, 나한.
나한:(한참 숨을 참고 있던 중에 물이 밀려 들어갔는지, 연신 기침을 하며 물을 뱉는다.) 괜, 괜찮습니다.
이영:(해냈다, 해냈어. 삽시간에 안도하며, 나한을 끌어안는다.) ...무서웠다. 너를 정말로 잃을까봐.
나한:... ... (이영을 바라봤다가, 입술을 한 번 꾹 깨문다.) ...하지만 저희가 살아있다는 걸 다들 알지 않았겠습니까.
이영:...시간은 벌었지 않니.(희미하게 웃어보인다.)
나한:이대로 나간다 한들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텐데,
(뭐라고 더 말하려던 것처럼 미간이 좁아들었다가, 시선이 아래로 비껴나간다.) 폐하께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모두가 목격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그리 밀접하지 않으니 제물로 소용 없을 거라고 말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이영:(안았던 등에서 핏물이 배어나는 것도 모른채, 양 손을 꼭 쥔다. 네 말에는 조금 웃었다.) ... 네가 내 진정한 반려임을 모르는 이가 궁 안에 없는데 어찌 속이려 했어.
(고개를 비틀어 짧게 입맞추고 떨어져 나온다.) ... ... 내게 방도가 있다. 함께 해주겠느냐.
나한:(바닷물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 위로 이리저리 흩어지고, 그 아래로 가라앉은 시선이 이어지다가...이영이 입을 맞추고 떨어지면 금세 눈썹이 내려앉는다.)
이제는 정말 폐하와 함께 하는 것 밖에는 길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영의 손을 조금 힘주어 쥐고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입니까.
이영:(미소가 길게 번진다. 네게 다른 선택지 없이 나뿐이라는 것이 썩 기분이좋다고 하면 흘겨보겠지.) 그래. 하늘을 가르고 쏟아지는 저것들을 돌려보내면 발리데 술탄도 정신을 차리겠지.
그들이 우리를 찾기 전에, 사람들 사이로 숨어도 된다.
이영:이 수로는 무수히 많은 길로 이어지니 말이야.
(젖은 머리를 쓸어넘겨주고, 납골당에서 찾은 알 아지프의 뒷부분, 찢어졌던 진실과... 신을 돌려보내는 주문에 대해 설명한다.)
알고 있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바람의 시대라고 하잖아.
이영:멸망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장을 열 거야.
나한:(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평소라면 분명히 그리 생각했을텐데. 기묘하게도 힘이 실린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믿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땅이 불타고, 사람이 무수히 죽어나가고, 궁궐은 폐허가 되었는데도...
이영:...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멈추기라도 해야지. 사실, 우리에게 이것 외의 방법도 없지 않니. (풋 웃으며 마주본다.)
(주저앉은 나한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채로, 시선을 맞춘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밖에 없고, 그간 고민하고 걱정하던 모든 것이 바닷물에 씻겨져 내려갔다. 무엇이 다가와도 내가 알던 미래보다 더 나아갔어. 나는 만족해.)
... 아직도 걱정되면 말이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입맞춰주련. (씩 웃는다.)
나한:... ... (정말이지 지독할 정도로 끈질긴 남자다.) ...이영을 믿어요.
당신이 이 나라의 파디샤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보다도 나를 아껴주는 유일한 정인이기 때문에. (몸을 일으켜 짠기가 도는 입술에 입을 맞춘다.)
이영:(제게로 쏟아지는 무게를 받아낸다. 맞닿은 입술이 눈물보다 짜서 다행이라 여겼다. 네가 현재에 슬퍼 우는 맛보다 강하니까. 한참 네 입술을 탐하며 바짝 붙인 몸이 따뜻했고, 숨이 부드럽고, 손길이 다정해서. 없던 용기도 생기는 기분. 긴장이 전부 녹아 사라진 것 같아.)
(입술이 떨어지고 마주한 눈가에 짧게 입맞춘다.) 나의 유일한 정인. 나의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이 세상이 이대로 멈춘다고 해도 상관 없으나... 내 너 하나를 위해 살리고자 한다.
(감싼 볼을 손끝이 몇 번인가 쓸어낸다.) 혹 모든 것이 잘못되면, 마지막은 함께 할까. 나고 자란 것은 따로였어도 말이다.
나한:(어렴풋이 미소를 짓는다.) 잔인한 약속을 부탁하시는군요. ...허나 그리 하겠습니다.
이 애정은 오직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볼을 감싼 손 위에 제 손을 얹고, 조금 힘주어 누른다. 죽음을 각오하고 이 나라에 왔으니 무엇인들 어려울까.)
이영:가급적이면 애정으로 갚아주었으면 싶지만.. (살며시 웃는다. 겹쳐진 손 아래 제 손을 얌전히 맡기고.) 실은 말이야. 나는 겁쟁이란다.
죽는 게 두렵고 버려지는 게 두려웠지. 술탄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죽고싶지 않았을 뿐이고, ... 지금은 널 잃고 혼자 되는 것이 두려워.
... 나 없이 네가 혼자되는 것도 두려워.
... 비밀이다. (입꼬리를 당겨 웃는다.)
나한:그 비밀,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이영에게 생과 사를 약조할 수 있는 것도 이 몸 하나 뿐일테니.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가 뜬다.)
이영:(이마에 짧게 입 맞추고, 일어선다. 네가 일어설 수 있게 손을 당겨준다. 이제는 가야겠지.)
나한:(이영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다. 어두운 수로 안. 몇 번이나 돌아다닌 적이 있지만...)
...사방이 트인 곳으로...
궁 근처의 작은 섬까지 이어지는 수로가 있습니다.
이영:(짧게 끄덕인다.) 나보다 네가 이 궁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아.
예상해보건대... (흐음, 하고 고개를 기울이더니) 모험심이었느냐.
나한:조사의 일부였습니다.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만... (옅게 웃더니 이영의 손을 이끌고 수로를 걷기 시작한다.)
이영:(손을 맞잡고 걷는다. 누가 찾아올까 예민하게 들으며 조심히 이동한다.)
:차박, 차박. 두 사람은 복잡한 지하수로를 걸어갑니다.
어느새 수로의 끝,
초소조차 없는 작은 섬으로 나서면...
허공에서 거대한 생물이 다가옵니다.
연체동물을 닮은 부정형의 존재.
그 모습은 악마, 또는 선지자와 같습니다.
이영:(수로를 나서자마자 맞닥트린 것. 나한을 낚아채 뒤로 숨기고,)
:거대한 촉수를 일렁일 때마다 바다와 땅, 하늘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집니다.
마력을 3 소비합니다.
이영이 주문에 마력을 불어넣자,
이영의 뒤에서부터 불꽃 모양으로 일렁이는 연녹색의 빛이 흘러나옵니다.
아니, 이건...나한의 목걸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입니다.
두 사람의 주변을 빛이 감싸면, 수 만 명이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치 그것이 신호가 되는 것처럼 촉수들이 주춤합니다.
속삭임과 대롱의 비명이 맞닥트립니다.
우주에 쌓인 억겁의 역사가 두 사람을 보호합니다.
나한:빛이... ...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기묘한 빛이 감도는 허공을 바라본다.) ...쓸모가 있었군요.
이영:... 어머니께 감사해야겠군. (겨우 한숨을 몰아내쉰다)
(나한을 돌아보고, 손을 내민다.)
나한:... (이영의 손을 붙잡는다. 강하게.)
이영:(시선에 담긴 뜻은 단순하게도, 지금이다. 혹은 시작하자. 이런 단호함 뿐.)
나한.
나한:(긴장이 감돌던 눈이 일순 일렁였다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진다.) 모든 것이 어떤 모습으로 끝나건, 저 역시도.
제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이영을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
이영:(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얼굴로 미소짓는다. 만족스레 번지는 입꼬리가 이내 벌어진다.) ... ... (더 좋은 답을 찾지 못해 그저 빈 단어를 빚다가 입술을 꾹 깨문다.) ...
나 지금 행복해.
나한:아직 그리 말씀하시기엔 조금 이르지 않나요. (그러면서도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는지, 조금 다가붙는다.)
이영:(살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허리를 당겨 안은 채로. 주문을 사용한다. 이 시대의 종막을 알리기 위한 마지막 선언을.)
이영은 비용으로 이성 9을, 나한은 비용으로 이성 6을 바칩니다.
각각 마력 5를 바칩니다.
기본 성공 확률은 5%입니다.
추가 마력을 소진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온 돌풍과 사막의 모랫바람, 불타오르는 대지의 냄새가 두 사람의 휘감습니다.
두 사람의 외침에 반응하듯 대지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이계의 생물들이 수 많은 촉수를 떨기 시작합니다.
대롱이 힘을 잃고 처지기 시작합니다.
허공에 떠 있는 이채, 해가 있던 자리에서 일렁이는 하늘의 창이 우물거립니다.
:살을 깎아내고 뇌를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 엄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을 중심으로 곧은 빛이 하늘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체를 중심으로, 창공과 바다. 땅이 둘로 나뉘어갑니다.
갈라짐 사이에서 인간의 가시범위를 벗어난 수만가지의 색이 튕겨집니다.
행성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립니다.
42
이영:(손을 꽉 잡고 나한을 마주본다.)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파도가 몰아치던 모습 그대로 굳습니다.
불어오던 모래폭풍이 허공에 뜬 암반처럼 숨을 참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이영: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 ...
:이 순간 살아있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두 사람의 손 끝에서 뛰는 맥박 뿐.
입이 마르는 긴장, 그 찰나가 지나면... ...
이영:(말이 멎은 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나한과 마주보고..)
:마치 그 모든 재해가 거꾸로 돌아가듯 되돌아갑니다.
세상을 가른 균열이 아물어갑니다.
나한:(마찬가지로 이영을 마주본다. 아직 심장이 멎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불어오던 모래폭풍도, 밀려오는 파도도 이전으로 빠져나갑니다.
바람이, 공기가, 대기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듯 거꾸로 돌기 시작합니다.
그 흐름에 이계의 것들이 떠올라 쫓겨나듯 균열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거리에 들어찬 죽지 못한 자들이 개미떼처럼 딸려올라갑니다.
세상을 반으로 가르던 이채는 오색의 태양처럼 큰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구멍. 그 구멍이 서서히 닫히는 순간, 누군가가 이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거대한 빛과 함께 균열은 완전히 닫혀버립니다.
하늘에는 제국을 비추는 해가 떠 있습니다.
이영:(시선을 느끼자 돌아보지만, 그곳에는 해가 남아있을 뿐.)
:부드러운 바람에서 불씨와, 여름의 장미가 내는 눅진한 향기.
바다가 싣고 온 소금의 냄새가 전해져 옵니다.
(시선을 내려 자신의 반려를 마주한다.)
나한:(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돌아온 태양을 바라보다가, 맥이 탁 풀린듯 어깨가 떨어지더니 곧장 이영을 온 힘을 주어 끌어안는다.)
이영:(미소가 번지고, 나한을 와락 끌어안는다.)
나한:... ... ...무서웠어요. 정말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까봐... (바닷물과 다른 짠기로 축축해진 눈가를 연신 품에 비비며 중얼거린다.)
이영:(끌어안은 머리에 짧게 입맞추고 품에 가둔다.) 나한이 나를 믿어줘서, 함께 해줘서 할 수 있었어.
(우리는 지어져있던 운명을 찢어 가르고 여기에 서 있다. 죽음과 빚어지고 멸망의 반석이 되는 미래는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았어. 이 태양은 예정에 없던 빛을 우리에게 내리쬐고 있다.)
(목적없이 살기위해 살아왔으나 살고자하는 이유가 되는 이가 생겼다. 어떤 것이 가로막아도 용기 낼 수 있게 되었다. 살아가기에 급급한 삶은 피폐하고 척박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아. 비에 젖은 장미처럼 비옥하고 아름다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나의 반려. 나의 사랑. 나의 해이자 달이며, 바람이고 비인그대.
(제 등을 안은 손을 떼어내고 한 발짝 물러선다. 그리고 한 쪽 무릎을 꿇는다.)
내 곁에 있어주겠다 약조했지요.
이영:내가 천 일간, 약조한 바를 잘 지켰습니까?
나의 하툰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손을 내민다.)
나한:... ... (가만히 그 음성을 듣던 눈이 햇살에 반짝이는 듯 했다가, 천천히 만면에 웃음이 번진다.) 제국의 파디샤이자 술탄이시여. 하렘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생과 죽음을 모두 그대에게 바치겠노라 맹세했습니다.
한 치의 의심도, 우려도, 망설임도 없이. 이 천 일이 천 년이 되더라도. 제 약조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그 손을 붙잡아 천천히 이마에 가져다댄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그대에게 바치겠어요.
세 여인:-그렇게 제국이 쌓아올린 문명과 아름다운 예술품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수 많은 인간이 죽었단다.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이 이룩한 것들은 찰나에 미미한 것일 뿐. 그러나 그것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것 또한 인간 뿐이니.
술탄은 제국을 처음부터 재건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고, 그 곁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하툰이 자리했지.
끝이 있으되 시작이 있으니...멸망이라 함은 인간의 시대의 시작이었단다.
그렇게 닦은 새 초석으로 세워진 것이 지금의 제국이란다.
아이:그럼 그 술탄이랑 하툰은 어떻게 됐는데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구나.
아이:그런 게 어딨어? 마지막이 얼렁뚱땅이야.
세 여인:그렇게 궁금하거든 직접 가서 물어보련.